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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미엄 전기차 64% “보조금 때문에 구매”
캘리포니아, 친환경차 환급 제도 재도입 추진
전기차 업계엔 악재, 테슬라엔 호재?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가 폐지를 검토 중인 전기차 세액공제가 미국 소비자들의 전기차 구매에 가격보다 큰 영향을 미친다는 설문조사 결과가 나왔다. 세액공제 폐지 시 전기차 판매량 감소가 불가피할 것이라는 시장의 우려가 커지는 가운데, 캘리포니아는 주정부 차원의 보조금 지원을 선언하고 나섰다.
올해 판매된 전기차 87% 세액공제 수혜
2일 미국 시장조사업체 JD파워에 따르면 올해 미국 내에서 판매되거나 장기 임대(Lease·리스)된 전기차 가운데 약 87%가 세액공제를 받은 것으로 확인됐으며, 평균 세액공제 금액은 5,124달러(약 720만원)로 집계됐다. 조 바이든 정부가 제정한 인플레이션감축법(IRA)에 의거해 미국 내 소비자들은 북미에서 최종 조립한 차량 중 일정 요건을 충족한 전기차에 한해 최대 7,500달러(약 1,054만원)의 세액공제를 받을 수 있다.
전기차 소비자 8,000명을 대상으로 한 이번 조사에서 테슬라를 포함한 프리미엄 브랜드 전기차 구매자 64%는 IRA에 따른 세액공제와 인센티브가 구매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답했다. 이는 가격을 꼽은 비율(36%)보다 28%p 높은 수치다. 대중 브랜드 전기차 구매자 중에선 49%가 세액공제 및 인센티브를 차량 구매 주요 원인으로 꼽았다. 이 또한 가격을 선택한 비율(39%)보다 높았다. 정부의 세액공제가 소비자들의 전기차 구매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브랜드별 전기차 세액공제가 구매에 미치는 영향에서는 폭스바겐이 81%로 가장 크게 나타났다. 이어 쉐보레(77%)와 테슬라(72%)도 비교적 높은 수준을 나타냈다. 세액공제가 구매에 가장 적은 영향을 미친 브랜드는 도요타로, 21%의 소비자만이 차량 구매의 주요 요인으로 세액 공제를 택했다.
시장에서는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이 IRA 축소 또는 폐지를 시사한 만큼 향후 전기차 판매량 축소가 불가피할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미국 내 주요 자동차 업체들을 대표하는 자동차혁신연합(AAI)은 지난달 트럼프 당선인에게 보낸 서한에서 “미국 자동차산업이 성공과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안정적이고 예측할 수 있는 규제 환경이 필요하다”고 강조하며 “세액공제가 없어지면 자동차 산업에 해를 끼칠 수 있다”고 우려의 목소리를 내기도 했다.
캘리포니아 “친환경 교통의 미래 약속”
연방정부 차원에서 제공하는 세액공제가 없어질 것이란 우려가 커지면서 주 정부 차원의 보조금을 약속하는 사례도 포착된다. 민주당 소속 개빈 뉴섬 캘리포니아 주지사는 지난달 25일 성명을 내고 차기 행정부가 연방 차원의 전기차 세액공제를 없애면 캘리포니아가 과거 시행했던 친환경차 환급 제도의 재도입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트럼프 행정부가 (전기차) 세액공제를 없앨 경우 즉각 개입해 캘리포니아에 깨끗한 공기와 친환경 일자리를 만들겠다는 우리의 의지를 강화하겠다”면서 “우리는 친환경 교통의 미래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며, 오염을 유발하지 않는 차량의 더 저렴하게 만들겠다”고 힘줘 말했다.
캘리포니아는 앞서 IRA 도입 이전인 2010년부터 2023년까지 무공해 자동차 구매자를 대상으로 환급 제도를 운용해 전기차 1대당 최대 7,500달러를 지원한 바 있다. 14년간 투입한 예산은 14억9,000만 달러(약 2조원)에 달하며, 이를 바탕으로 전기차 59만4,000대 구매를 지원했다. 캘리포니아주는 해당 제도를 통해 이산화탄소 390만 톤(t)과 미세먼지 195t을 줄이는 성과를 거뒀다고 밝혔다.
세액공제 효과 못 누린 테슬라엔 긍정적
시장에서는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전기차 세액공제 폐지가 일론 머스크 최고경영자(CEO)가 이끄는 테슬라에 미칠 영향을 주목하는 모양새다. 영국 일간 파이낸셜타임스(FT)는 “미국에서 전기차 판매로 이익을 내는 업체는 테슬라가 유일하다”고 짚으며 “다른 자동차업체들이 전기차 판매에서 손실을 내는 만큼 세액공제는 테슬라의 경쟁사들에 더 많은 혜택을 주고 있다”고 말했다. 지금까지는 정부의 세액공제가 테슬라를 제외한 전기차 업체들의 손실을 줄여줬지만, 더는 이와 같은 손실 만회를 기대할 수 없을 것이란 의미다.
리스 판매의 허점도 장기적으로는 테슬라에 유리하게 작용할 전망이다. IRA의 세액공제를 받으려면 배터리 등 부품이 중국, 러시아, 북한 등과 관련된 외국우려단체(FEOC)에 의해 만들어져서는 안 된다는 조건을 충족해야 하는데, 리스 차량의 경우 해당 조건이 적용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는 그간 테슬라를 제외한 전기차 업체들이 리스 판매를 폭발적으로 늘려온 이유기도 하다. 반면 테슬라는 잔존가치 하락 위험을 피할 목적으로 직접 판매를 강조해 왔다.
이 때문에 대다수 전기차 업체가 손실 확대 및 판매량 급감의 위기에 처했다는 게 시장 전문가들의 일관된 견해다. 웨드부시증권의 댄 아이브스(Dan Ives) 애널리스트는 “트럼프의 당선은 전기차 산업에 전반적으로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면서도 “다만 테슬라에는 엄청난 긍정적 영향을 가져올 것”이라고 말했다. 머스크 CEO 또한 최근 테슬라 콘퍼런스콜에서 관련 질문을 받고 “경쟁자들에 치명적(devastating)일 것”이라며 “우리도 영향이 불가피하겠지만, 장기적으로는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답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