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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화당 주도로 통과, 찬성 218표·반대 206표 트랜스젠더 선수 활약 사례 잇따르며 논란 185㎝ 수영선수 대학대회 우승 대표 사례
미국 하원이 여성으로 성전환한 사람의 여성 운동경기 참여를 금지하는 반(反)트랜스젠더법을 사상 처음으로 통과시켰다. 가결된 법안은 트랜스젠더 선수의 여자 종목 참가를 막기 위해 ‘타이틀 9’를 개정하는 내용이다. 타이틀 9는 정부 재정이 투입되는 교육 프로그램이나 활동에서 성별에 따른 차별을 금지하고 있다.
하원 '스포츠 여성과 소녀 보호법' 가결
14일(현지시간) 미국 하원은 여성으로 성전환한 트랜스젠더가 여성 자격으로 스포츠 경기에 참여하지 못하도록 하는 내용의 ‘스포츠 여성과 소녀 보호법’을 찬성 218표 대 반대 206표로 가결 처리했다. 공화당 의원 전원과 텍사스주 출신 민주당 하원의원 2명이 찬성표를 던졌다.
해당 법안은 학교에서의 모든 성차별을 금지하는 현행 연방법을 개정해 트랜스젠더가 여성을 위한 프로그램 또는 활동에 참여하는 것을 금지하는 내용을 담았다. 이번 개정안은 현행 연방법이 가리키는 ‘성(gender)’을 ‘출생 시 개인의 생물학적 특성과 유전학’에 따라 규정하도록 했다.
트랜스젠더의 스포츠 출전 자격 부여는 이를 반대하는 공화당과 지지하는 민주당의 충돌을 상징하는 사안이었다. 개정안을 발의한 그레그 스튜비(공화당·플로리다주) 하원 의원은 “이 법안은 남성과 여성에게 동등한 기회를 보장하도록 하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공화당 소속인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은 선거 기간 이 법을 제정하겠다고 공약하기도 했다. 반면 민주당은 “여성이 여성임을 증명하기 위해 수치스러운 신체검사를 받는 등 인권침해를 겪을 수 있다”며 반대했다.
남자 시절 400위 '리아 토머스', 호르몬 치료 후 1위
실제 조 바이든 정부 당시 개정된 현행 연방법은 성별을 이유로 연방 재정 지원을 받는 교육 프로그램이나 활동에서 어떠한 차별도 받지 않도록 하고 있다. 학업 프로그램과 스포츠 활동도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성전환 후 성별의 스포츠 경기에 출전해도 제약할 수 없다. 이를 두고 애초에 남성으로 태어나 선천적으로 신체적 능력이 앞서는 트랜스젠더와 여성의 경쟁이 불공평하다는 논란이 일었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는 미국 여성 수영대회를 휩쓸며 화제를 모았던 펜실베이니아대 선수 리아 토머스(25)를 둘러싼 공정성 논란이다. 토머스는 2017년부터 남성팀에서 수영 선수로 활동하다 2021년 여성팀으로 옮겼다. 그는 남성호르몬(테스토스테론) 수치를 낮추는 호르몬 치료를 받아 미국대학스포츠협회(NCAA)가 정한 여자 대회 출전 조건을 충족했다.
키가 185㎝인 토머스는 호르몬 치료로 근육량과 근력이 줄어들긴 했지만, 남자팀에서 대회에 출전할 때보다 여자팀으로 경쟁할 때 훨씬 높은 순위를 차지했다. 그의 남자 시절 미국 랭킹은 400위권이었지만, 2022년 3월 500야드(457m) 자유형 부문에서는 1위를 차지하면서 미국 역사상 최초로 NCAA에서 우승한 트랜스젠더 여성 선수가 됐다. 하지만 이미 남성으로 신체 발달이 끝난 사람이 남성호르몬 수치를 낮춘다고 여성 선수로 인정된다면 생물학적 여성 선수에게 공정하지 않다는 논란이 커졌다.
여자 대학 선수를 중심으로도 비판의 목소리가 높았다. "남자 생식기를 제거하는 수술을 받지 않는 토머스와 같은 라커룸을 쓰는 게 끔찍했다"는 동료의 주장도 나왔다. 결국 국제수영연맹은 트랜스젠더 선수의 여자부 경기 출전을 사실상 금지하는 결정을 내렸고, 토머스는 이후 공식 경기에 나서지 못했다. 이에 토머스는 "국제수영연맹의 결정은 무효이고 불법이며 차별"이라고 국제올림픽위원회(IOC)에 소송을 제기했지만 IOC도 토머스가 아닌 국제수영연맹의 손을 들어줬다.
성전환 선수 인권 지지하지만, 스포츠에선 '공정성'에 무게
세계 최고 수준의 여성 엘리트 선수 대부분이 남성에서 여성으로 바꾼 선수와 경쟁하는 게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 영국 맨체스터 메트로폴리탄대와 스완지대 연구진은 지난해 스포츠 학술지 '저널 오브 스포츠 사이언스'에 게재한 논문을 통해 영국, 미국, 캐나다, 남아프리카공화국, 호주 등 세계 각지의 엘리트 여성 선수 175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 결과를 공개했다.
조사 결과 하키, 카누, 럭비, 육상, 수영 등 다양한 종목 선수로 꾸려진 응답군 중 58%가 스포츠는 성 정체성이나 사회적 성별이 아닌 '생물학적 성'으로 구분해야 한다고 답했다. 연구진이 '월드클래스'라고 분류한 종목별 주요 세계 대회, 올림픽, 패럴림픽 출전자 중에서는 이 비율이 77%까지 올라갔다. 스스로를 여성이라 생각하거나 사회적으로 여성으로 인식되더라도 신체적으로 여성이 아니라면 함께 경쟁하는 게 불공정하다는 반응이 우세한 것이다.
영국 BBC방송도 자체 조사 결과 자국 여성 선수 70%가량이 성전환 선수와 경쟁이 불편하다고 답했다고 보도한 바 있다. 특히 해당 연구에서는 종사하는 스포츠의 성격에 따라 반응도 달랐다. 럭비 등 신체적 충돌이 잦은 종목 선수들은 47%가 성전환 선수와 경쟁이 부당하다고 봤다. 부당하지 않다는 의견이 38%, 그 중간을 택한 비율은 15%였다. 육상처럼 신체 능력 자체가 매우 중요한 종목에서도 부당하다는 의견(49%)이 그렇지 않다는 쪽(38%)보다 많았다. 그러나 양궁 등 운동능력보다 집중력이 중요한 스포츠 종목 선수들은 부당하다고 답한 비율이 32%까지 떨어졌다. 오히려 부당하지 않다는 반응(51%)이 더 많았다.
주목할 점은 응답자 대부분(94%)이 정체성대로 생물학적인 성을 바꿀 권리를 지지했다는 사실이다. 종목별 주관 단체들이 성전환 선수를 위해 더 포괄적인 정책을 펴야 한다고 답한 비율은 81%나 됐으며, 66%는 현 체제에서 성전환 선수가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다는 문제의식을 보였다. 여성 엘리트 선수들이 '인권' 측면에서는 성전환 선수들을 지지하고 있다는 의미다. 이런 양면적 반응은 스포츠의 영역에 들어오면 '공정'이 양보할 수 없는 최우선 가치로 부각된다는 방증이라고 연구진은 해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