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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영리 단체로서의 설립 취지 유지해야”
인수 무산 후에도 영리 법인 ‘산 넘어 산’
오픈AI 내부 갈등 종식은 선행 과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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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가 오픈AI의 영리 법인 전환이 중단되면 인수 제안을 거둬들이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약 140조원에 오픈AI를 인수하겠다던 그간의 주장에서 한 발짝 물러난 것이다. 업계에서는 머스크의 인수 제안이 무산되더라도 오픈AI의 지배구조 개편 및 추가 투자 유치 계획에는 차질이 불가피할 것이란 평가가 나온다.
고도화된 AI 개발 위해 자금 유치 절실
14일(이하 현지시각) 로이터통신 등 현지 매체에 따르면 머스크는 전날 변호인단을 통해 법원에 제출한 서류에서 “오픈AI 이사회가 비영리 단체로서의 설립 취지를 유지하고, 기업 전환을 중단할 의사가 있다면 인수 제안을 거둬들일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그렇지 않다면, 비영리 법인은 제3의 독립적인 구매자가 자산에 대해 지불할 금액만큼 보상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오픈AI는 지난해 하반기부터 영리 기업으로의 전환을 추진 중이다. 오픈AI와 최대 투자자인 마이크로소프트(MS)는 이를 위해 투자은행까지 고용한 상태다. 샘 올트먼 창립자 겸 CEO와 오픈AI는 고도화된 인공지능(AI) 개발에 필요한 자금을 원활히 조달하기 위해서는 영리화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이에 지난해 10월 펀딩 라운드에서는 향후 2년 이내 영리 기업 전환에 성공하지 못할 경우 투자금을 돌려주겠다는 조건으로 66억 달러(약 9조5,000억원)의 자금을 유치하기도 했다.
올트먼 CEO와 함께 오픈AI의 창립을 함께한 머스크 CEO는 크게 반발했다. 오픈AI와 샘 올트먼 CEO가 ‘공익을 위한 AI 개발’이라는 애초의 목표를 저버리고 이익 추구에만 집중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결국 머스크 CEO가 이끄는 투자 컨소시엄은 오픈AI를 지배하는 비영리법인을 974억 달러(약 140조8,000억원)에 인수하겠다는 제안서를 제출했다. 오픈AI를 인수해 자신의 AI 스타트업인 xAI와 합병시킨다는 계획이다.
올트먼 CEO는 물론 브렛 테일러 오픈AI 이사회 의장 또한 머스크 CEO의 인수 제안을 즉각 거부하고 나섰다. 그가 실제 인수·운영 의사가 없음에도 단지 ‘견제’를 위해 이 같은 제안을 내놨다는 비판이다. 오픈AI는 12일 법원에 제출한 서류에서 “회사를 비영리 단체로 유지하기 위해 인수를 제안했다는 머스크의 주장에 진정성이 없다”고 짚으며 “머스크는 자신의 경제적 이익과 오픈AI와 경쟁하는 자신의 AI 사업과 직접 선정한 투자자들에게 유리하게 오픈AI가 모든 자산을 자신에게 이전하도록 하려는 것”이라고 힘줘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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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픈AI 자산 가치 재설정 가능성↑
다만 시장에서는 머스크 CEO의 이번 제안이 단순히 거절에서 끝나지 않을 것이란 평이 우세하다. 오픈AI의 지배구조 개편 및 추가 투자 유치 계획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분석에서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머스크의 제안은 올트먼에게 상당한 압박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보도했고, 뉴욕타임스(NYT)는 “오픈AI가 1년 넘게 추진해 온 기업 구조 개편에 차질이 불가피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올트먼 CEO는 현재 두 개의 대형 프로젝트를 추진 중이다. 오픈AI를 비영리 법인에서 완전한 영리 법인으로 전환하는 것과 소프트뱅크를 포함한 투자자들로부터 400억 달러(약 54조원) 규모의 자금을 유치하는 것이다. 이 가운데 투자 유치 건에 대해서는 최근 진전을 이뤘다. 리드 투자자 소프트뱅크로부터 300억 달러를, 여타 투자자들로부터 100억 달러를 나눠서 조달하는 방식이다. 다만 영리 법인 전환은 여전히 요원한 상황이다.
WSJ은 “머스크의 제안이 오픈AI의 자산 가치를 재설정할 가능성이 있다”고 짚으며 “비영리 법인은 자산을 공정한 시장 가치로 매각해야 하는 의무가 있어 이번 제안 이후 더 낮은 가격으로 오픈AI를 영리법인으로 전환하는 것이 어려워질 수 있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만약 비영리 법인이 머스크의 제안보다 낮은 금액으로 오픈AI의 영리법인 전환을 승인할 경우, 규제 당국의 감사를 받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실제로 오픈AI는 영리 법인 전환과 관련해 이미 법인 등록지인 델라웨어주와 본사 소재지인 캘리포니아주의 감시를 받고 있는 상태다.
핵심 인력 이탈에 내부 갈등 최고조
영리법인 전환을 둘러싼 내부의 반발 또한 오픈AI에는 해결해야 할 과제다. 영리법인 전환을 본격화한 지난해 초를 기점으로 핵심 경영진이 잇따라 퇴사하는 등 혼란이 심화하고 있는 탓이다. 오픈AI에서는 지난해 2월 핵심 연구자였던 안드레이 카르파티가 자리를 정리한 데 이어 같은 해 5월에는 올트먼 CEO의 해임을 주도한 바 있는 공동 창립자 일리야 수츠케버가 퇴사했다. 이어 8월에도 공동 창업자 중 한 명인 존 슐먼이 경쟁사 앤스로픽으로 자리를 옮겼다.
심지어 지난해 11월에는 오픈AI의 전직 연구원인 수치르 발라지가 생을 마감하면서 오픈AI를 둘러싼 각종 논란에 기름을 부었다. 오픈AI에서 4년간 일하며 챗GPT 개발에 참여한 발라지는 숨을 거두기 직전 NYT 인터뷰를 통해 “오픈AI가 저작권을 침해하고, 인터넷 환경에 피해를 주고 있다”고 폭로하며 자신의 블로그에 AI의 저작권 침해 현황을 분석하는 글을 올렸다. 그로부터 한 달 뒤 발라지는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됐고, 사건은 자살로 종결됐다.
이후 시민단체와 학계에서도 반대의 목소리를 높였다. AI 기술의 윤리적 개발을 옹호하는 국제 청소년 연합 인코드는 머스크 CEO의 가처분 소송을 찬동하는 변론서를 제출하게 해달라고 요청했으며, 지난해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한 ‘AI계의 대부’ 제프리 힌턴 교수는 인코드의 요청을 지지한다고 밝혔다. 힌턴 교수는 성명에서 “오픈AI는 회사를 비영리 단체로 유지하는 동안 세금 등 수많은 혜택을 받았다”며 “불편해지면 모든 것을 파괴하도록 허용하는 것은 AI 산업 내 다른 플레이어들에게 매우 나쁜 선례가 될 것”이라고 일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