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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완성차 기업, 내연차 강화 의지 트럼프 2기 출범 이후 전기차 전환 속도↓ 중국산 전기차 공세, 낮은 수익성도 과제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이 내연기관차와 하이브리드차 신차 출시에 열을 올리고 있다. 세계적인 전기차 캐즘(일시적 수요 둔화) 장기화로 인한 영향이 심화되면서 수익성이 좋은 차종에 주력한다는 전략이다. 특히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재집권 이후 전기차 전환 과정이 순탄치 않은 만큼 내연기관 시장 재공략을 통해 기회를 만들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너도나도 전기차 '급브레이크'
6일 자동차업계와 복수 외신에 따르면 글로벌 완성차 제조업체들은 최근 전기차 판매량이 줄어들자 내연기관 파워트레인을 유지하거나, 이를 활용한 플러그인하이브리드(PHEV), 주행거리연장형전기차(EREV) 출시로 방향을 틀고 있다.
포르쉐는 지난해 3분기 실적 발표에서 전기차 타이칸 판매량이 절반가량 줄었음을 밝히며 기존 순수전기차로 계획했던 모델들을 하이브리드 혹은 내연기관으로 출시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발표했다. 이와 관련해 루츠 메슈케 CFO(최고재무책임자)는 "현재 결정을 내리는 중"이라며 "분명한 것은 내연기관을 훨씬 오래 고수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간 내연기관을 포기하겠다고 밝혀 온 중국 소유의 영국 로터스자동차도 2028년 순수전기차만 출시한다던 기존 계획을 폐기했고, 폭스바겐과 현대차그룹 또한 전기차 외에 PHEV와 EREV 차량을 강화하겠다는 방침이다. 폭스바겐은 미국 시장에 진출한 스카웃모터스를 통해 전기차와 EREV를 공급하겠다고 발표했고 현대차그룹도 EREV 개발에 돌입했다.
BMW도 전략 재검토
BMW는 1조원 규모의 영국 전기차 투자 계획을 재검토하기로 했다. BMW는 지난달 24일 성명을 내고 “자동차 업계가 직면한 여러 불확실성을 감안해, 영국 옥스퍼드 공장에서 미니 배터리 전기차 생산을 재도입할 시기에 대해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앞서 BMW는 지난해 영국 정부의 지원 아래 옥스퍼드 공장에서의 전기차 모델 생산을 포함해 6억 파운드(약 1조905억원)를 투자할 것이라고 발표한 바 있다. 해당 공장에서 2026년까지 전기차 생산을 시작하고 2030년부터는 전량 전기차 생산으로 전환할 계획이었지만, 이번 성명으로 인해 불투명해졌다.
이밖에 제너럴모터스(GM), 메르세데스-벤츠 등도 최근 몇 주 사이 내연기관 및 하이브리드 차종 신모델이나 업그레이드에 대한 투자 계획을 발표했다.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글로벌 모빌리티 자료에 따르면 올해 하이브리드 신모델 출시는 43% 급증해 116종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내연기관차에 60조원대 보조금 지급
완성차 제조업체들이 전기차 전환에서 내연기관 유지로 방향을 튼 이유로는 전기차 판매 상승 지표가 가파르지 않은 점이 꼽힌다. 시장조사업체 SNE리서치에 따르면 지난해 글로벌 전기차 판매 대수는 전년 대비 5.4% 성장했지만, 주요 완성차 그룹은 역성장했다. 특히 전기차 선진 시장인 유럽의 성장이 뒷걸음쳤다. 유럽 지역은 223만 대를 판매해 전년 대비 1.4% 감소했다.
이처럼 전기차 시장이 정체 국면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글로벌 자동차업계는 트럼프 대통령이 예고한 25% 수준의 관세와 미국 인플레이션감축법(IRA)에 따른 전기차 보조금 지속 여부 등과 관련한 불확실성에도 직면한 상태다. 또한 내연차 퇴출로 일자리 감소를 우려하는 자동차 산업 종사자들의 반발, 전기차 개발에 필요한 대규모 투자 부담, 충전 인프라가 부족한 데서 오는 불편 등도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여기에 내연기관차에 대한 보조금도 전기차 전환 속도를 늦추는 데 한몫했다. 글로벌 컨설팅사 ERM에 따르면 가장 많은 보조금을 지급한 국가는 이탈리아(160억 유로, 약 24조원)다. 그 뒤로 독일이 137억 유로(약 20조원), 프랑스가 64억 유로(약 10조원), 폴란드가 61억 유로(약 9조원)로 이었으며, 스페인은 1억 유로(약 1,495억원)로 상대적으로 적은 금액을 제공했다. 유럽연합(EU)이 말로는 내연기관차 종식과 전기차 전환을 얘기하면서도 내연기관 자동차에 거액의 보조금을 지급해 온 것이다.
아울러 중국이 값싼 전기차를 내세워 글로벌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점도 전기차 전환을 늦추는 요소로 풀이된다. SNE리서치에 따르면 중국 최대 민영 자동차 회사 BYD는 지난해 전기차와 PHEV 등 총 413만7,000대를 팔았다. 저가 전기차 모델들이 급성장한 영향이다. BYD는 지난해 3분기 처음으로 매출이 테슬라를 앞지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