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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 관세 vs. 25% 전기 할증료
한 발씩 물러나며 갈등 일단락
불확실성 기반한 협상 전술 계속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자국으로 들어오는 캐나다산 철강과 알루미늄 제품에 50%의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밝혔다가 불과 반나절 만에 철회했다. 캐나다가 자국 일부 지역에 부과할 것이라던 전기료 할증을 전면 중단하기로 한 데 따른 결정으로, 시장에서는 관세 압박 카드를 손에 든 트럼프 대통령의 ‘혼란 전술’이 의도한 만큼의 성과를 거둘 수 있을지 주목하는 모습이다.
보복엔 보복으로, 중요한 순간 “존중”
11일(이하 현지시각)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의 소셜미디어(SNS) 트루스소셜에 올린 게시물을 통해 “미국으로 들어오는 전기에 대해 캐나다 온타리오주가 25%의 관세를 부과한 것을 근거로, 나는 상무장관에게 미국으로 들어오는 모든 캐나다산 철강·알루미늄에 추가 25%의 관세를 부과하도록 지시했다”며 “이로써 (캐나다산 철강·알루미늄 관세는) 총 50%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발언은 캐나다 온타리오주 더그 포드 주지사가 미국 미네소타·미시간·뉴욕주 일대 150만 가구와 기업에 캐나다가 송전하는 전기 요금에 25% 할증료를 부과한다고 밝힌 직후 나왔다. 전날 포드 주지사는 “미국이 무역 전쟁을 확대한다면, 우리가 보내는 전력을 완전히 차단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간 온타리오와 퀘벡 등 캐나다 일부 주는 수력 발전을 통해 생산한 잉여 전기를 미국으로 수출해 왔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번 조치가 12일 오전부터 발효된다고 밝혔다. 애초 12일은 미국이 캐나다산 철강과 알루미늄 제품에 대한 25%의 관세를 부과하기로 예고한 날이다. 그러면서 “조만간 해당 지역의 전력 문제와 관련해 국가 비상사태를 선포하겠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캐나다가 농산물 등 특정 품목에 대한 관세를 철회하지 않을 경우, 자동차 산업에 대한 관세도 인상할 것이라며 “사실상 캐나다 자동차 제조업을 영구적으로 폐쇄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양국의 갈등은 이날 포그 주지사가 대미 수출 전기에 25% 할증요금을 부과하려던 계획을 잠정 중단하겠다고 말하며 일단락됐다. 그는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부 장관과 생산적인 회담을 가졌다”면서 “미국 3개 주에 대한 전기 추가 요금을 잠정 중단하는 데 동의했으며, 앞으로 하루나 이틀 내에 워싱턴으로 가서 협상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 또한 포드 주지사의 결정을 존중한다고 화답했다. 그러면서 미국 역시 캐나다산 철강 및 알루미늄 관세를 두 배로 인상한다는 계획을 재고하겠다고 덧붙였다. 같은 날 피터 나바로 백악관 수석 고문도 기자들과의 만남에서 ‘캐나다에 50% 관세가 부과되지 않는가’라는 질문에 “맞다”고 답하며 “러트닉 장관이 협상을 아주 훌륭하게 해냈다”고 언급했다.

관세압박 성과 자축 분위기
캐나다에 대한 관세 부과를 철회했음에도 트럼프 대통령은 관세가 자국 경제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입장을 견지했다. 그는 이날 오후 워싱턴DC에서 열린 ‘비즈니스 라운드 테이블’(BRT) 분기 회의에 참석해 “관세율은 언제든지 25% 이상으로 오를 수 있다”면서 “세율이 높아질수록 기업들이 미국에 공장을 건설할 가능성도 커진다”고 강조했다.
전날 백악관이 고강도 관세 정책으로 해외 기업의 미국 투자가 늘고 있다며 현대차와 LG전자, 삼성전자를 예로 든 것 역시 이와 같은 맥락이다. 백악관은 “여러 해외 기업이 잠재적 관세로 인한 피해를 줄이고자 미국 시장으로의 확장을 모색하고 있다”며 “이는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 노동자를 우선하고 미국 경쟁력을 향상하겠다는 약속의 직접적 결과”라고 주장했다.
백악관은 현대차와 관련해 “한국의 자동차 제조업체는 관세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 지난 1월 미국 현지 생산을 확대할 계획을 밝혔다”면서 “또 조지아주의 새로운 공장에서 하이브리드차를 생산할 예정”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LG전자에 대해서는 ‘한국의 거대 전자업체’라고 정의하며 멕시코의 냉장고 제조 공장을 세탁기·건조기를 생산하는 테네시주 공장으로 이전하는 것을 고려하고 있다고 전했다.
삼성전자와 관련해서도 한 매체의 보도를 인용해 “멕시코에 있던 건조기 제조 공장을 사우스캐롤라이나주로 이전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소개했다. 우리 기업들 외에도 이탈리아 주류 회사 캄파리(CAMPARI), 대만의 컴팔(COMPAL) 전자, 명품 그룹 루이뷔통모에헤네시(LVMH) 등이 미국의 관세 압박과 그에 따른 성과를 포장하는 데 동원됐다.
백악관은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후 50일 동안 미국 국민을 위한 50가지 승리를 거뒀다”며 그 가운데 일곱 번째로 자국 제조업 활성화를 꼽았다. 첫 번째 승리로는 ‘전례 없는 방식의 국경 보호’를 지목했으며, 이어 △미국 노동자에게 공평한 경쟁의 기회를 제공하는 관세 정책 △글로벌 기업 신규 투자 확보 △해외 미국인 인질 구출 △이란에 대한 최대한의 압박 △에너지 생산 확대 △연방 정부 관료제 개혁 △DEI(다양성·형평성·포용성) 정책 폐기 등을 주요 성과로 제시했다.
오락가락 전술, 비즈니스 신뢰도 흠집
시장에서는 관세를 두고 주변국들과 갈등을 마다하지 않으면서도 중요한 순간 한발 물러나는 트럼프 대통령의 행보를 두고 ‘전술’이라는 평이 우세하다. 예측 불가능한 사람이라는 이미지를 만들어 향후 협상에서 우위를 점하려는 의도라는 해석이다. 실제로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과 캐나다에 대한 관세를 면제하는 과정 중에도 여러 차례 입장을 바꿨다. 지난달 26일 각료회의 때는 “관세 부과를 4월 2일까지 한 달 더 면제할 수 있다”고 밝히고는 바로 이튿날 “3월 4일 발효 방침에 변화가 없다”고 말하는 식이다.
다만 이처럼 불확실성에 기반한 전술은 미국의 비즈니스 신뢰도를 떨어뜨릴 수 있다는 점에서 그 한계가 명확하다. 투자와 일자리 창출 등 기업의 중요 결정을 미루는 요소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이는 미국은 물론 전 세계 경제의 불확실성을 키우는 악영향을 낳을 수도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일관된 지적이다.
이미 자본시장에서는 미국의 주가 하락과 물가 상승에 대한 우려가 짙어지는 양상이다. 최근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지수는 트럼프 대통령 취임 이후 4% 남짓 떨어졌다. 여기에는 고율 관세가 미국의 경제성장이나 물가에 부정적일 것이라는 투자자들의 전망이 깔려 있다. 아트 호건 비(B.) 라일리 파이낸셜 시장전략가는 “트럼프 행정부는 관세 정책을 발표했다가 철회하면서 핑퐁 게임을 하는 것 같지만, 실제 효과는 크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