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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조업 강국의 쇠퇴, 에너지 위기에 무너지는 독일 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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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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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의 사회적 책임을 자각하며 공정하고 균형 있는 시각을 최우선으로 합니다. 꾸준한 추적과 철저한 리서치를 바탕으로 사실만을 전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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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스바겐·바스프·콘티넨탈·보쉬, 구조조정 돌입
탈원전 정책·코로나·러-우 전쟁에 전기요금 폭등
산업 생산량 10년 전보다 ↓, 수출 경쟁력 약화

유럽 경제의 심장 독일이 또다시 '유럽의 병자'로 전락하고 있다. 최근 독일 경제는 유럽 주요국보다 더 급격히 흔들리고 있으며, 이미 경기침체에 접어들었을 가능성도 크다. 독일 경제가 부진한 이유는 명확하다. 오랜 기간 생산성 증가폭이 둔화했고 에너지 가격 급등이 성장에 부담으로 작용했다. 여기에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이 같은 역풍을 더 거세게 했다. 러시아산 연료를 대체하기 위해 유럽이 더 비싼 에너지원으로 전환하면서 제조업 의존도가 높은 독일 경제는 특히 큰 타격을 입었다.

에너지 위기 직면 독일, 산업계 직격탄

12일 산업계에 따르면 독일 자동차기업 폭스바겐(Volkswagen)은 지난해부터 독일 내 공장 10곳 중 3곳을 폐쇄해 수만 명 규모의 일자리를 감축하고, 직원 급여를 10%씩 삭감하는 내용의 강도 높은 구조조정에 나섰다. 세계 최대 규모의 화학기업 바스프(BASF)도 지난해 독일 루트비히스하펜 본사 축소와 공장 폐쇄를 포함해 2,600개의 일자리를 감축한다고 발표했다.

독일의 자동차 부품업체 콘티넨탈(Continental) 역시 지난해 7,150명의 일자리를 감축하겠다고 선언한 데 이어, 올해 초에는 2026년까지 자동차 연구개발(R&D) 부문에서 3,000명을 감원하겠다고 추가로 발표했다. 자동차 부품 및 전동 공구로 유명한 보쉬(Bosch)는 2032년까지 독일 내 사업장에서 3,800명을 포함해 전 세계에서 5,500명을 감축할 계획이며, 125년의 역사를 가진 브랜드이자 ‘고장 안 나는 세탁기’로 유명한 독일 가전기업 밀레(Miele)는 자국 내 일부 공장을 폴란드로 이전할 예정이다.

독일을 대표하는 기업들이 공장 문을 닫거나 주변국으로 생산 거점을 옮기며 ‘탈(脫)독일’에 나서고 있는 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에너지 비용이 폭등했기 때문이다. 독일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하반기 전기요금은 ㎾h(킬로와트시)당 평균 41.6센트로 EU 27개국 가운데 최고였고 EU 평균 28.5센트보다 46.0% 높았다. 특히 지난해 겨울에는 전기요금이 평소의 10배 수준까지 치솟기도 했다.

이로 인해 독일 산업계는 큰 타격을 입었다. 독일화학산업협회(VCI)에 따르면 에너지 비용 급등의 여파로 독일 내 화학 기업 10곳 중 1곳은 생산을 영구 중단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 밖에도 평소 전력 소비량이 높은 철강, 플라스틱, 배터리, 자동차 등 독일의 핵심 산업계 역시 일제히 생산 감축에 나섰다. 동시에 비싼 전기료가 제조 비용에 고스란히 반영되면서 수출 경쟁력도 악화했다.

독일 전기요금 EU 회원국 중 최고

독일의 에너지 비용 폭등은 자초한 영향이 크다. 독일 경제를 지탱했던 저렴한 러시아 파이프라인 가스는 러-우 전쟁 이후 러시아 의존도 탈피를 선언하면서 사라졌다. 러-우 전쟁 직전 독일은 천연가스의 55.2%, 석탄의 56.6%, 석유의 33.2% 등 대부분의 에너지를 러시아에서 수입했다. 그러나 전쟁 이후 유럽은 우크라이나를 지원하며 러시아에 대한 제재에 나섰고, 러시아는 그 반대급부로 유럽으로 향하는 천연가스와 원유 공급을 통제했다.

그럼에도 독일을 비롯한 유럽 전체 천연가스 수요의 20% 가까이는 여전히 러시아산으로 연명하고 있다. 유럽연합(EU)은 러시아산 부족분을 미국 셰일가스로 메꾸면서 위기를 넘겼다고 자평하지만 이는 목마른 사람이 마시는 바닷물과 같다는 게 중론이다. 실제 독일의 에너지 수요는 에너지 위기를 기점으로 감소하기 시작했는데, 이를 두고 독일 정치인들은 러시아 화석연료 상한제의 치밀한 구성과 국민들의 절약에 힘입어 러시아 의존도와 단절하게 됐다고 자화자찬했다. 따라서 넷제로와 그린딜을 더 강력하게 추진한다면 글로벌 친환경 시장에서 유럽이 주도권을 잡게 됨은 물론, 화석연료 의존도를 끊고 저렴한 재생에너지를 사용하는 선순환 구조로 자리잡을 수 있을 것이라 자신했다.

하지만 천연가스 수요를 줄였던 결정적인 원인은 제도가 아니었다. 지난 2021년부터 2023년 중반까지 유럽 대륙에서 소비한 천연가스의 가치는 1조1,200억 달러(약 1,626조6,000억원)로, 러시아가 천연가스를 무기화하면서 유럽은 2년 반 만에 지난 10년 치에 해당하는 가스를 태웠다. 즉 ‘엄청나게 비싼 가스’를 소비했던 것이다.

유럽 천연가스 가격은 2022년 MMbtu(100만 열량 단위)당 60달러를 훌쩍 넘는 최고치를 기록한 이후 극적으로 하락했다. 이에 당시 많은 전문가들은 유럽의 에너지 위기가 해소됐다고 판단했지만, 이는 오판이었다. 에너지 위기 이전 평균치에 비해 여전히 40% 이상 높은 천연가스 가격은 뉴노멀로 자리 잡았고, 2022년과 2023년 두 번의 온화한 겨울 이후, 라니냐(적도 부근 해수면 온도가 평년보다 낮은 현상)와 둥켈플라우테(Dunkelflaute·어두운 무풍 상태)를 맞이한 독일은 재생에너지가 전력을 생산하지 못하면서 전력 가격이 다시 치솟고 있는 상황이다.

저성장 시달린 독일의 親원전 급선회

이렇다 보니 독일 내부에서는 혁신 정보기술 투자 부족, 자동차 제조업 및 중국 수출의 과도한 의존 등과 함께 탈원전으로 인한 에너지 정책 실패가 도마에 오르고 있다. 친환경 에너지 확대와 기후변화 대응을 목표로 했던 정책은 의도와는 다르게 독일 경제에 큰 부담을 주고 있으며, 에너지 안보 및 산업 경쟁력 저하 등의 문제를 초래하고 있어서다. 또한 탄소 배출 저감을 목표로 했던 정책이 오히려 석탄 사용 증가로 역효과를 내고 있다는 분석도 적지 않다. 무탄소 에너지인 원전이 중단되면서 전체 탄소 배출량이 오히려 증가하는 역설적인 상황이 발생했다는 지적이다.

이에 독일 차기 정부는 에너지 정책과 경제 회복의 균형이라는 과제에 직면했다. 독일 경제는 2023년에 이어 2024년에도 위축됐으며, 올해도 경기침체에서 벗어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독일의 올해 예상 경제성장률은 유럽 최저 수준인 0.3%에 불과할 정도로 침체에 빠져있다. 여기에 각종 생활용품과 에너지 비용이 치솟고 있어 스태그플레이션(경기침체 속 물가 상승)이라는 분석까지 나오고 있다. 이는 1945년 히틀러 정권 붕괴 이후 가장 긴 기간 동안 지속된 경제 침체다.

지난달 치러진 독일 총선에서 승패를 결정지은 요인 중 하나도 에너지 가격 급등에 따른 경기 우려였다. 차기 총리가 유력한 중도 우파 성향의 프리드리히 메르츠(Friedrich Merz) 기독민주당(CDU) 대표는 우선 급한 대로 가스발전소 50기를 지어 에너지 가격을 낮춤으로써 산업 경쟁력 회복과 생활비 절감에 나설 것을 약속했다. 규제 완화와 감세 같은 친(親)시장적 정책을 통해 3년간 마이너스와 제로 성장에 허덕이고 있는 독일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겠다는 공약도 잊지 않았다.

이에 따라 유럽에서 가장 강력한 탈원전 정책을 추구했던 에너지 정책도 원전 가동으로 뒤집힐 가능성이 점쳐진다. 메르츠 대표는 에너지 비용 급등과 관련해 “처음에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원인일 수 있었지만, 지금의 문제는 현 정부의 효과 없는 친환경 녹색 에너지 정책이 초래한 것”이라고 했다. 이어 “내가 총리로 취임하면 아무런 구체적 대안 없이 원자력발전소가 폐쇄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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