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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규모 인구·내수 시장 등 매력도↑
인프라 불균형 및 지정학적 불확실성도
중장기 방향성에 주목하는 투자자 증가

미·중 갈등이 장기화하며 글로벌 제조업계가 ‘탈중국’ 행렬을 서두르는 가운데, 그 대안으로 인도가 급부상하는 모습이다. 인도는 올해 세계 최고 수준의 경제 성장률을 기록할 전망이며, 정부의 강력한 제조업 육성 정책과 내수 시장 규모를 앞세워 기업 유치를 서두르고 있다. 미국의 리쇼어링 정책 등 일부 불안 요소도 존재하지만, 시장은 인도를 ‘시간이 편드는 나라’로 보고 장기 투자를 확대하는 분위기다.
‘포스트 차이나’ 인도, 압도적 성장률로 주목
9일 무역업계에 따르면 국제통화기금(IMF)은 지난달 발표한 세계경제전망 보고서에서 인도의 올해 국내총생산(GDP)이 세계 4위 수준에 달할 것으로 예측했다. IMF는 “인도의 올해 GDP는 4조1,870억 달러(약 5,685조원)에 도달해 일본(4조1,860억 달러·약 5,682조원)을 소폭 앞설 전망”이라면서 “이 같은 추세라면, 세계 4위 경제 대국으로 올라설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같은 관측은 글로벌 제조업계가 ‘차이나 엑소더스’ 흐름 속에서 새로운 대안을 모색하는 데서 비롯됐다. 미·중 갈등이 장기화하면서 중국 시장의 불확실성이 커지자, 다국적 기업들이 공급망 다변화를 서두르고 나선 것이다. 이 과정에서 가장 강력한 대체지로 부상한 인도는 세계 최대 인구 보유국인 동시에 잠재 내수 시장이 큰 나라로 꼽힌다. 나아가 정치적 안정성과 개방적 경제 구조를 동시에 갖춘 몇 안 되는 신흥국으로 평가된다.
경제 성장률 측면에서도 인도는 압도적인 성과를 보인다. 국제연합(UN)은 지난해 ‘세계 경제 상황 및 전망’ 보고서를 통해 인도의 GDP 성장률을 6.2%에서 6.9%로 상향 조정했으며, IMF 또한 이와 유사한 6.8%를 점쳤다. 평가가 상대적으로 보수적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조차 지난해 인도의 성장세를 6.7%로 관측했다. 인도의 저렴하고 풍부한 노동력, 탄탄한 인프라가 제조 중심 산업 구조로의 변화와 이에 따른 성장을 앞당길 것이란 게 이들 경제 기구의 일관된 시각이었다.
성장 둔화 속 트럼프 변수까지
그러나 이 같은 장밋빛 전망은 현실로 이뤄지지 못했다. 인도는 지난해 6.5%의 성장률로 4년 만에 가장 낮은 성장세를 기록했다. 이는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가장 큰 폭의 둔화로, 경기 급반등에 따른 기저효과가 사라지면서 고성장 모멘텀이 약화한 데 따른 결과로 풀이된다. 이처럼 시장 전망치를 밑도는 경제 성장률은 인도가 공급망 중심국으로 확실히 자리 잡기에는 아직 갈 길이 멀다는 신호로 해석된다.
여기에 글로벌 공급망을 결정지을 도널드 트럼프 미국 정부의 정책 기조 또한 인도 경제에 중대한 변수다. 미국의 보호무역주의 강화와 자국 중심 산업 회귀(리쇼어링) 전략이 제조업 중심 국가들엔 악재로 작용할 것이란 관측이다. 이와 관련해 샘 조킴 EFG자산운용 이코노미스트는 “인도는 2025∼2026 회계연도에도 6.5%가량의 성장세를 유지할 것으로 보이지만, 미국의 관세 정책은 여전히 큰 불확실성”이라며 “인도 정부가 미국과 협상을 얼마나 성공적으로 끌어내느냐가 향후 인도 경제의 핵심 변수”라고 짚었다.
나아가 인프라 수준 격차도 현실적인 과제로 지목된다. 대도시와 중소 도시 간 물류망, 전력공급, 교육 수준 등 지역 간 불균형을 이유로 외국 기업의 진출이 수도권에만 집중되는 양상을 보이는 탓이다. IT나 서비스 산업과 달리 제조업은 고도화된 물적 인프라를 필요로 하는 만큼 인도의 본격적인 제조업 중심지화를 위해선 균형 있는 인프라 투자가 병행돼야 한다는 목소리 또한 커지고 있다.

악재 속에서도 시간은 인도 편?
이와 같은 불확실성에도 불구하고 글로벌 시장은 여전히 인도를 장기 투자처로 분류하는 경향이 강하다. 일시적 성장 둔화나 지정학적 변수보다 인구 구조와 내수시장, 정부의 산업정책 방향성이 더 중요하다는 판단에서다. 특히 글로벌 기업 입장에서는 지금 당장 완벽한 환경을 찾기보다는 향후 10년 이상을 내다보고 ‘잠재 성장성’에 베팅하는 것이 더 합리적인 선택으로 인식되는 양상이다.
인도 정부도 생산 시설 유치를 위해 세제 감면, 외국인 직접투자(FDI) 규제 완화, 생산연계 인센티브(PLI) 확대 등 다양한 유인책을 적극 추진 중이다. 여기에 도로, 항만, 통신 등 사회간접자본(SOC) 투자 또한 공격적으로 진행되면서 물류와 생산 환경 또한 빠른 속도로 개선되고 있다. 이처럼 정부 차원에서 ‘자립 인도(Self-Reliant India)’ 전략을 중심에 두고 추진력을 더하고 있다는 점은 여타 신흥국과 인도를 가르는 결정적 차이다.
글로벌 주요 기업들도 앞다퉈 인도에 대한 투자 속도를 높이는 모습이다. 테슬라는 인도 생산시설 구축 가능성을 공개적으로 언급한 바 있으며, 애플은 아이폰 생산 물량의 상당 부분을 인도 공장으로 이전하는 작업을 추진 중이다. 일본 도요타, 프랑스 르노 등 다수의 완성차 업체도 인도 내 합작 투자 규모를 확대하고 있으며, 삼성전자와 마이크론 등 IT 기업들도 인도 생산 확대 계획을 구체화하는 단계다. 인도가 단순히 중국을 대체하는 것을 넘어 새로운 공급망의 중심이 될 수 있다는 관측에 힘이 실리는 배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