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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D 예산 삭감은 '연구자 책임'?, 면피성 정책 남발하는 정부의 '원죄'

R&D 예산 삭감은 '연구자 책임'?, 면피성 정책 남발하는 정부의 '원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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尹 대통령 "R&D 효율화는 韓 도약시킬 거대한 힘"
연구자 책임 강조하면서 정부 책임은 '나몰라라', 뿌리 깊은 '면피'의 덫
"'선진국 추종자' 프레임 여전, 운 좋게 얻어걸릴 거란 생각 거둬야"
윤석열-엑스포-유치-실패-유감
윤석열 대통령의 모습/사진=대통령실

윤석열 대통령이 R&D 예산 효율화를 강조하며 존 F.케네디 미국 대통령을 다시 한번 언급했다. 케네디 대통령은 1962년 인류 최초로 사람을 달에 착륙시키는 임무를 결단한 인물이다. 윤 대통령이 올해 R&D 예산 삭감으로 냉담해진 과학계를 찾아 케네디를 언급한 건 선진국을 따라가던 기존 R&D 관성을 도전·선도형 R&D로 탈바꿈해야 한다는 취지를 역설하기 위함으로 풀이된다.

케네디 대통령 거듭 소환, 尹의 본심은

윤 대통령은 5일 오전 서울 성북구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에서 열린 '2024년 과학기술인·정보방송통신인 신년 인사회'를 방문해 "마음껏 꿈꾸고 도전하실 수 있도록 저와 정부가 온 힘을 다해 뒷받침하겠다"며 이같이 밝혔다. 이어 "케네디 대통령은 존재하지 않는 것들을 꿈꿀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고 했다"며 "여러분의 꿈, 여러분의 도전이 우리나라를 도약시키는 힘"이라고 힘줘 말했다.

앞서 윤 대통령은 지난해 11월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민간위원들과 만난 자리에서도 케네디 대통령을 언급한 바 있다. 당시 윤 대통령은 "케네디 대통령의 여러 업적이 있지만, 문샷 프로젝트를 만든 것이 '영원히 기억될 수 있는 최대의 업적'"이라고 말했다. 문샷은 미국이 달을 보기 위해 망원경 성능을 높이는 대신 아예 달 탐사선을 만들겠다고 선언한 계획이다. 윤 대통령은 그동안 강한 결단력으로 과학의 진보와 혁신을 만든 케네디 대통령의 개척정신에 존경심을 표현해 왔다.

다만 과학계에선 윤 대통령을 향한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고 있다. 올해 R&D 예산이 지난해 대비 4조6,000억원(14.8%) 삭감돼 26조5,000억원 남짓밖에 편성되지 못한 탓이다. R&D 예산이 삭감된 해는 1991년 이후 33년 만으로, 특히 수조원의 예산 삭감은 과학계에 있어 초유의 사태다. 이 과정에서 윤 대통령은 주무부처인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R&D 시스템 개혁과 예산 삭감 필요성을 현장과 소통하지 못해 과학계의 거센 반발을 받았다. 윤 대통령이 지난해에 이어 이날 신년인사회를 찾은 배경도 과학기술계에 양해를 구하고 제도 개혁 필요성 등을 언급하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실제로 윤 대통령은 R&D 소통 부족으로 문제가 격화하자 대통령실 산하에 과학기술수석실을 신설한다는 대책을 내놨다. 이날도 과학기술수석실 신설 계획을 재공언하고 소통을 늘리겠다고 밝혔다.

효율성 증대 내세운 尹, "유체 이탈 아니냐"

윤 대통령식 R&D 예산 삭감의 최종적인 목표는 효율성 증대다. 이와 관련해 이종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은 "R&D 나눠 먹기, 소액·단기 과제 뿌려주기, 주인이 있는 R&D 기획 등 R&D 예산이 비효율적으로 사용되는 경우들이 있었던 것이 사실"이라며 "낡은 관행과 비효율을 걷어내고 최고 수준의 R&D, R&D다운 R&D를 수행하는 건강한 과학기술 생태계를 조성하기 위해 노력해야 할 시기"라고 윤 대통령의 입장을 대변했다. R&D 예산의 양적 성장에 비해 질적 성장을 위한 구조개혁은 여전히 부족하다는 지적이 과학기술계 내부에서조차 제기돼 왔다"며 "이 과정에서 연구 현장에서 우려하는 학생 연구원 등의 인건비 문제는 연구와 학업에 지장이 없도록 해결할 것"이라고 덧붙이기도 했다.

하지만 과학기술계에선 다소 어이없다는 반응이 주를 이룬다. 애초 R&D 예산이 효율적으로 사용되지 못한 데는 정부의 책임도 분명 있을 것임에도 모든 책임을 과학기술계에 돌렸다는 비판이 적지 않다. 특히 대통령실이 주장하는 'R&D 예산 갈라먹기 관행', '과학기술 기득권층의 부당이득 편취'에 대한 볼멘소리가 크다. 이에 대해 한 연구원은 "실제 이권 카르텔이 형성돼 있다면 이는 심각한 담합이기에 배제해야 할 사안"이라면서도 "다만 정부는 정부 연구비를 건네받은 과학기술계만을 죄인처럼 몰아가고 있다. 갈라먹기·나눠먹기로 예산을 배분해 준 기획재정부와 과학기술혁신본부는 어찌 일언반구도 없나?"라고 쏘아붙였다. "정부 R&D 예산을 가장 많이 집행하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산업통상자원부, 중소벤처기업부도 묵묵부답"이라며 "사실상 정부 기득권층의 유체 이탈 아니냐"고 일갈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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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D 비판론 강화하는 정부, '정부 책임'은 없나

정부는 출연연구소에 대한 예산도 삭감했다. 출연연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예산을 낭비하고 있다는 비판론적 시각에 기반한 결정이다. 그러나 분명 짚어야 할 것은, 출연연을 운영한 직접 경영자가 정부라는 점이다. 출연연이 실패했다면 출연연에 제대로 된 임무를 주지 못하고 예산과 인력을 통제하기만 한 정부의 책임이 클 수밖에 없다. R&D 예산 삭감 및 출연연 개혁은 분명 필요한 조치일 것이다. 이는 출연연 내부 인사들도, 과학기술계 측도 인정하는 바다. 그러나 제 역할을 하지 않고 책임만 떠넘기는 정부의 비겁한 모습에 분노하는 이들이 적지 않은 건 사필귀정이다.

결국 정부 차원에서 국가 R&D의 구조 자체를 변혁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현 정부는 R&D에 대해 "연구자가 정부 연구비로 '할 수 있는 연구'만 하려 한다"고 비판하지만, 실패하면 불이익을 감수해야만 하는 환경에서 도전적 연구를 포기하는 것을 무조건 연구자의 잘못이라 말할 순 없을 것이다. 애초에 정부가 '할 수 있는 연구'만 하도록 제도를 만들어 놓고 애꿎은 연구자만 다그치는 꼴이다.

과거 한창 발전하던 시기 우리나라가 주로 채택하던 방식은 여타 선진국에 인력을 파견해 기술을 배워오는 것이었다. 해외 한인 과학자들을 양성함으로써 우리나라는 성공의 발판을 마련할 수 있었다. 다만 오늘날엔 이미 배워올 만한 기술은 모두 배워온 데다 최근엔 기술 보호주의가 강화돼 타국의 기술을 끌어오기도 쉽지 않다. 이제 우리나라의 발전에 중요한 건 다름 아닌 독자적 기술 발전이다. 그러나 정부의 인식은 여전히 과거에 머물러 있다. 적정한 투자를 통해 일정의 성과를 내야 하는 시대에서 개천에 용 나기만을 기다리고 있단 의미다. R&D 예산 삭감 이면에 잠든 책임 회피의 원죄를 인식하고 뿌리 깊은 곳 남아 있는 '선진국 추종자' 프레임을 벗어 던져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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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DS] 2024년 AI 전망, "더 알아가는 해일까, 더 멀어지는 시간일까"

[해외 DS] 2024년 AI 전망, "더 알아가는 해일까, 더 멀어지는 시간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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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AI 붐에 대한 과대광고가 난무했던 한 해
기술 이해와 교육이 무엇보다 중요해져
현재 AI 발전 속도를 고려하면 규제가 더 시급해

[해외DS]는 해외 유수의 데이터 사이언스 전문지들에서 전하는 업계 전문가들의 의견을 담았습니다. 저희 데이터 사이언스 경영 연구소 (GIAI R&D Korea)에서 콘텐츠 제휴가 진행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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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Scientific American

2023년은 인공지능의 진화와 사회에서의 역할에 있어 변곡점이 되는 해였다. 생성형 AI가 등장하여 인공지능의 잠재력이 음지에서 대중의 상상력의 중심으로 옮겨졌다. 또한 OpenAI 이사회의 드라마가 며칠 동안 연말 뉴스 토픽을 장식하기도 했다. 그리고 바이든 행정부가 행정명령을 내리고 유럽연합이 AI 규제를 목표로 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2023년은 AI 붐의 해였다. AI가 세상을 구할 것이라는 이야기든 세상을 파괴할 것이라는 이야기든, 언젠가 AI가 어떻게 될지에 대한 비전이 현재의 현실을 압도하는 것처럼 느껴지는 이야기들이 오갔다. 미래의 해악을 예측하고 기술의 윤리적 부채를 극복해야 하지만, 기술에 대한 충분한 이해 없이 과대광고에 휩쓸리면 마술처럼 보이는 AI의 미래가 만들어질 위험이 있다.

인공지능의 원리를 깨달아야, "문제는 교육이야!"

AI 마법에 가장 큰 타격을 입은 분야는 교육이다. 작년 이맘때만 해도 대부분의 뉴스 헤드라인은 학생들이 어떻게 이 기술을 이용해 부정행위를 할 수 있는지, 그리고 교육자들이 어떻게 이를 막기 위해 애쓰고 있는지에 초점을 맞췄는데, 해가 거듭될수록 학생들에게 AI에 대해 가르치지 않으면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는 인식이 확산하면서 많은 학교가 금지 조치를 철회했다.

결국 학생들이 AI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배우지 않으면 그 한계를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AI를 유용하고 적절하게 사용하는 방법과 그렇지 않은 방법을 이해하지 못한다. 아울러 이는 학생에게만 해당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사람들이 AI의 작동 원리를 더 많이 이해할수록 AI를 사용하고 비판할 수 있는 권한이 더 커질 수 있으므로 걱정이 앞설 땐 충분한 학습이 선행돼야 하는 이유다.

따라서 전문가들은 올해 엄청난 학습 압박이 몰려올 것으로 전망했다. 이전 세대의 기술 복잡도를 넘어선 새로운 시대가 열렸기 때문이다. 1966년 엘리자(ELIZA) 챗봇을 만든 조셉 바이젠바움(Joseph Weizenbaum)은 기계는 "가장 경험이 많은 관찰자조차도 현혹하기에 충분"하지만, "이해를 유도할 수 있을 정도로 평이한 언어로 기계의 내부 작동을 설명하면 그 마법은 무너진다"고 썼다. 그러나 생성형 인공지능의 문제점은 엘리자의 매우 기본적인 패턴 매칭 및 치환 방법론과 달리, 인공지능의 마법을 무너뜨릴 수 있을 만큼 '충분히 쉬운' 언어를 찾기가 훨씬 더 어렵다는 것이다. 그 결과 기술이 이해하기 어려운 만큼 사람들이 적절한 대응책 마련할 수 있는 시기는 미뤄질 수밖에 없다.

"더 많은 AI 기술 전문가를 채용하기 위해 서두르고 있는 대학들이 AI 윤리학자를 채용하는 데에도 많은 노력을 기울였으면 좋겠다"고 미국 콜로라도 소재 볼더대학교 정보과학 부교수 케이시 피슬러(Casey Fiesler)는 말했다. 언론 매체들이 AI에 관한 과대광고를 지양하고, 모든 사람이 자신의 AI 기술 사용과 그 결과에 대해 성찰했으면 좋겠다고 그녀는 덧붙였다. 인공지능을 비판적으로 바라보기 위해선 정보에 입각한 비평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아 조언했다.

알고리즘, "알아도 모르고 배워도 쫓아가지 못하는 시대?"

2022년 ChatGPT가 공개되면서 수익과 명예, 글로벌 패권을 차지하기 위한 전면적인 무한 경쟁이 시작됐다. 새로운 AI 애플리케이션의 홍수와 더불어 더욱 강력한 AI를 기대하는 움직임이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이로 인해 새로운 문제도 생겨날 가능성이 높아졌다. 예로 들어 딥페이크로 생성된 이미지와 동영상은 규제에도 불구하고 만연하며, 개인과 민주주의에 해악을 끼치고 있다.

게다가 ChatGPT가 공개된 이후 1년 동안 생성형 AI 모델의 개발은 빠른 속도로 계속되고 있다. 텍스트 프롬프트를 입력으로 받아 텍스트 출력을 생성했던 1년 전 ChatGPT와 달리, 새로운 세대의 생성형 AI 모델은 멀티모달로 학습되며, 이는 학습에 사용되는 데이터가 위키피디아(Wikipedia), 레딧(Reddit)과 같은 텍스트뿐만 아니라 유튜브 동영상, 스포티파이(Spotify)의 노래, 기타 오디오 및 시각 정보에서도 제공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애플리케이션을 지원하는 차세대 멀티모달 대규모언어 모델(LLM)을 사용하면 텍스트 입력을 사용하여 이미지와 텍스트뿐만 아니라 오디오와 비디오도 생성할 수 있다. 5년 전만 해도 상상할 수 없었던 새로운 종류의 AI 재난이 발생할 가능성도 함께 높아진 것이다.

또한 기업들은 스마트폰에서 LLM을 실행하는 것을 포함하여 다양한 하드웨어와 다양한 애플리케이션에 배포할 수 있는 LLM을 개발하기 위해 경쟁하고 있다. 이러한 고급 AI 기능은 일반 비즈니스에서 정밀 의학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엄청난 혁신을 불러올 수 있으나, 이러한 고급 기능이 인간이 만든 콘텐츠와 AI가 만든 콘텐츠를 구분하는 데 새로운 도전과제를 제기할 뿐만 아니라 새로운 유형의 알고리즘 피해를 야기할 수 있다. 생성형 AI에 의해 생성된 합성 콘텐츠의 범람으로 인해 악의적인 사람과 기관이 합성 신원을 만들고 대규모의 잘못된 정보를 생산할 수 있는 세상이 도래했다.

미국 연방거래위원회(FTC)는 AI를 이용한 콘텐츠 제작의 용이성으로 인해 사기, 속임수, 개인정보 침해 및 기타 불공정 행위가 발생할 수 있다고 경고한 바 있다. 유튜브와 같은 디지털 플랫폼은 AI가 생성한 콘텐츠의 공개에 대한 정책 가이드라인을 마련했지만, 미국 데이터 프라이버시 및 보호법(American Data Privacy & Protection Act)과 같은 개인 정보 보호를 위해 노력하는 의원들과 FTC와 같은 기관에서 알고리즘의 피해에 대해 더 면밀히 조사할 필요성이 있다. AI가 사람들이 하는 모든 일과 점점 더 밀접하게 얽히면서, 이제는 알고리즘을 기술의 일부가 아니라 알고리즘이 작동하는 맥락, 즉 사람, 프로세스, 사회에 초점을 맞춰야 할 때가 온 것이 분명하다.

영어 원문 기사는 사이언티픽 아메리칸에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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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안뽑] ㉗ElasticSearch 쓰는 방식으로 본 한국 개발자 vs. 해외 개발자

[개안뽑] ㉗ElasticSearch 쓰는 방식으로 본 한국 개발자 vs. 해외 개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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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ad of GIAI Korea
Professor of AI/Data Science @ SIAI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이 '기술을 써 봤다'는 자랑이 아니라, 
회사에서 필요한 기능을 효율적으로 해 줄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는 사고 방식이 장착 안 된 경우가 너무 많아
사업 목적을 이해하고, 회사가 필요한 것에 맞춰 선제적으로 대응할 수 있어야 진짜 고급 개발자
개발 플랫폼들을 다양하게 써 본 경험은 피상적인 능력치에 불과해

기업을 만드는 이유가 뭘까? 그냥 남 밑에서 일하기 싫으니까 창업하는건가? 아니면 자기가 만들고 싶은 상품, 시장에 없는 상품인데 시장에서 수요가 있을 것 같은 상품을 만들어 낼 수 있는 능력이 있기 때문일까? 그런 능력과 열정이 있는데, '왕관을 쓰려면 그 무게를 이겨내야 한다'는 표현 속에 함축된 어려움을 모두 극복해낼 수 있는 의지까지 갖추고 있기 때문일까?

그간 개발자들을 뽑아보면서, 좀 더 넓게는 디자이너와 기획자까지 범위를 넓혀서 자칭 '기술직'에 있다고 하시는 분들에게서 공통적으로 느낀 건데, 이분들 중 많은 숫자가 '내가 하고 싶은 일'에 대한 관심이 매우 높은 편이다. 대학 동기들 중 압도적인 대다수가 그저 남들이 보기에 그럴듯한 직장을 갈려고 했었는데, 나처럼 딱 이런 종류의 일자리를 찾겠다며 1개 직군에 일점사를 하는 경우가 드물었던터라 처음에는 참 신기하고, 반갑고 그랬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이 분들이나 나 같은 사람들이나, 회사가 원하는 것을 해야된다는 책임감이 약하고, 내가 하고 싶은 일에 지나치게 치중하는 경우들이 많다는 것도 알게 됐다. 그저 공무원들처럼 하루하루 시간만 보내고, 안 짤리기만 바라고 있는 직군들이 자기 발전이 0에 수렴한 채로 직장을 다니는 것에 비하면 훌륭한 자세라고 생각하지만, 반대로 자기가 하고 싶은 것만 찾기 때문에 회사가 잘 돌아가도록 만들기가 매우 어렵다. 즉, 또 다른 의미에서 회사 직원으로 월급 받는 값을 못 하는 사람들인 것이다.

개발자-안-뽑음_202312
개발자-안-뽑음_202312

회사가 필요한 일 vs. 자기가 하고 싶은 일

보통 회사가 필요한 일을 수익을 창출하는 일이라고 하면, 직원들이 하고 싶은 일은 몰래 숨어서 놀고, 일도 안 하지만 정작 연봉은 많이 받고 싶은 일이라고 하면 될까? 군대식 용어로 '땡보'에 해당하는 가벼운 업무를 하면서 고액 연봉을 받고 싶은 사람들의 심리야 충분히 이해가 되는데, 개발자들이 회사 사정에 전혀 맞지 않는 고급 언어로 고급 개발을, 회사가 쓸 일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만들고 싶다고 고집을 피우는 장면을 볼 때마다

차라리 그만둔다고 그러지 왜 저렇게 앞뒤 꽉 막힌 소리들을 할까

는 생각을 안 할 수가 없다.

사실 회사에 그 어떤 직원을 뽑아도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나만큼 미루고 참고 있는 인력은 없을 것이라고 꽤나 장담할 수 있다. 난 수리통계학 훈련도가 전세계 상위 0.01% 수준인 인재들이 풀어내는 문제들을 사업에 적용해볼려고 창업을 한 사람인데, 그간 내가 가장 가까이 간 사례는 SIAI에서 MSc AI/Data Science 교육 과정의 시험 문제를 만들었던 것에 불과하다. 한국에서 제대로 풀어내는 사람 1명 찾기 힘들다는 것을 시간이 지나면서 깨닫는 중이지만, 정작 글로벌 명문대의 학부 3~4학년 수준에 불과한 문제들인데, 그 문제 만드는게 한국 귀국해서 내가 가장 머리를 복잡하게 쓴 업무였다.

근데, 개발자들을 뽑아놓으면 회사에 트래픽이 1억, 10억이 되어야 쓸 의미가 있는 개발 플랫폼(자기네들은 '기술'이라고 부르더라)들을 써야된다고 주장한다. 자기가 그걸 써 보고 싶은데, 다른 회사들은 그걸 안 쓰고, 나는 그런 도전을 하는 인간이니까 여기에 찾아온 거겠지? 근데, 나도 그걸 쓰고 싶은 욕심만 있는 상태지, 회사 사정이 그걸 쓸 수가 없다. 좀 더 넓게 보면, 한국 전체에 그런 개발 플랫폼을 쓸 만한 사업체를 꾸리는 곳이 아예 없다는 생각도 든다. 한국 인구가 고작 5천만에 불과하잖아?

그런 분들은, 자기가 그런 '기술'을 쓰고 싶으면 회사에서 그 '기술'이 왜 필요한지를 설득해야 되는데, '안 시켜주면 나간다' 정도가 그 분들의 사고 방식이다. 정작 그 '기술'을 써서 만든 상품으로 어떻게 시장에 팔아야 되는지를 같이 고민해주는 경우는 한번도 못 봤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못하고 있다는 이유로 대표가 그러니까 당신들도 그렇게 참고 기다려라고 할 자격은 없다고 생각하지만, 최소한 회사에 왜 그게 필요한지 설득하는건 개발자 직군에 있는 당신들이 해야하는 일 아닌가? 내가 이걸 해야한다며 떠 먹여줘야 하나?

내 기준엔 양심도 없이 자기가 하고 싶은 것만 찾는 이기적인 인간인데, 아마 그들의 눈에 나는 자기들의 눈높이를 못 맞춰주는 무능한 대표일 것이다.

하고 싶은 일을 시켜주는 회사에 못 갔으면 타협해야 하지 않나?

고급 '기술'이라고 불리는 소수 정예들 전용의 개발 언어에만 한정되는 사건이 아니다. 일반적인 개발 언어를 쓰고 있어도 회사에 필요한 기능이라는 것이 있고, 그 기능 개발에 투자할 수 있는 인적, 물적 자원이라는 한계가 있다.

그런데, 저런 욕심이 있는 분들 중에 학습 속도가 내 눈높이를 맞춰줄 수 있는 인력이 과연 한국에 몇 명이나 될까? 그 학습 시간동안 회사는 월급도 주고, 다른 업무들을 다 지연시켜야 하는데, 왜 당신들의 학습 속도를 다 맞춰줘야 하지?

보통 기업들이 개발자를 위시한 '기술직'을 뽑을 때

  • XXXX라는 업무 해 봤냐?
  • 업무 할 때 X, Y, Z라는 사건들에 어떻게 대응했냐?

라는 질문들을 통해 '즉시 전력감'인지 아닌지를 판단할 것이다.

왜들 저렇게 인력의 잠재력을 바탕으로 채용을 하지 않을까, 왜 같이 성장하려고 하지 않을까, 기업들이 너무 이기적이다고 생각했는데, 교육 비용을 뽑아낼 수 있는 인력이 정말 희귀하고, 교육 비용을 뽑아낼 수 있는 업무도 매우 피상적인 업무들인 '개발 라이브러리' 갖다 붙이기 정도 밖에 없더라. 학습 속도가 너무 느리고, 학습을 할 수 있는 깊이가 매우 얕기 때문이다.

우리 SIAI에 조교로 있던 한 학생이 있던 직장에서 Data Scientist가 되기 위해 열심히 공부하겠다길래 뽑았던 Y대 DS 석사 출신이 선형대수학을 공부하겠다고 해 놓고는 정작 '이상한 코딩 학원', '이상한 코딩 교재'를 보고 있길래 질책했던 경험담이 공유된 적이 있다. 자기는 '비전공자 출신이기 때문에 그런거 안 봐도 된다'고 했다던데, DS석사 출신이 선형대수학을 모르는데 뽑힌 것도 기적이고, 뽑혔으면 양심있게 선형대수학을 공부했어야 된다고 생각하는데, 다른 한편으로는 채용을 잘못한거라고 밖에 볼 수 없다. 뽑아봐야 '교육 비용'이 엄청나게 들어가는데 정작 교육의 성과가 나올 확률이 0인 인력이기 때문이다.

저런 인력들이 MIT에서 AI/Data Science 박사 공부를 5년, 포닥을 3년씩 하고 결국은 고급 논문이 안 나와서 학계에 남는거 포기한 다음에 구글, 마소, 오픈AI 같은 글로벌 최상위 기업에서 인류 최고의 도전을 하고 있는 분들과 엇비슷한 눈높이로 고액 연봉을 요구하고, 중요한 업무를 하고 싶다고 주장하는 것은 웃음 포인트일까, 아니면 비난 포인트일까?

월급주는 회사가 필요한 능력을 못 갖췄으면, 자기가 하고 싶은 방향이 아니면, 알아서 그만둬야 되는거 아닌가? 그 능력을 갖추기 위해서 이를 악물고 노력하고, 회사의 목표와 자신의 방향을 일치시킬 수 있도록 회사에 필요한 내용들을 제안하고, 자기 스스로도 바뀌어야 할텐데, 그런 기업 문화, 인재 문화가 한국에서는 굉장히 보기 드문 일이다.

개인화된 서구식 기업 문화, 기업 이름 기준의 한국식 기업 문화

영미권이라고 해서 대기업의 높은 입사 난이도를 뚫은 것의 가치가 낮은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한국처럼 대기업을 들어갔다는 이유로 자기가 우월하다고 생각하는 '기술직' 직원들은 그렇게 많지 않다. 자기 능력이 부족해서, 다른 길을 보게 되어서 1년 남짓 안에 그만두는 비중은 '일반직'보다 '기술직'으로 가면 갈수록 더 높아진다. 능력자들이 굳이 딱딱한 기업문화 속에 오래 있는 경우도 드물다.

자기PR이 강한 사회인만큼, 회사에서 어떤 신규 사업을 한다고 그러면 회사에 필요한 내용이 뭘지에 대해서 스스로 고민하고, 적극적으로 제안하는 경향이 일반적이기 때문에, 누가 시켰으니까 "까라면 까야 된다"는 사고 방식은 상대적으로 덜하고, 내 이름이 올라가서 오랫동안 기록에 남는 만큼, 자기 이름을 걸고 일을 해야 커리어를 키울 수 있다는 사고 방식도 잠재 의식 수준에 내재되어 있다.

예를 들어, 우리 회사에 'ElasticSearch'라고 하는 '기술'을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개발자가 있다고 해 보자. 'ElasticSearch'같은 개발 응용 플랫폼들을 '기술'이라고 부르는게 내 입장에서는 거북한데, 일반적인 DataBase(DB)와 달리 데이터를 JSON 파일 형태로 저장해서 관리하는 플랫폼이지, 이게 무슨 '상대성 이론'을 항성간 여행에 적용해 인류의 생활 반경을 현격하게 넓히는 것 같은 혁명적인 사고 전환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 개발자는 '나도 ElasticSearch를 쓰고 싶다'는 생각으로, 그 ElasticSearch의 홈페이지에서 소개하는 비즈니스 적용 사례들을 보여주면서 나한테 우리도 이걸 써야 '기술회사'의 명성에 걸맞는 회사가 된다고 주장한다. 좀 단순화하면 그냥 JSON 파일로 저장하고, 파일 검색 방식으로 DB처리 방식을 바꾼건데, 일반적으로 쓰이는 MySQL DB를 교체할 수 있는지 알아보니, 그건 불가능하단다. 결국 기본 서비스 대체가 안 되니까, 특정 서비스 전용으로 쓰는 고민을 해야하는데, ElasticSearch를 쓰자고 주장하는 개발자는 회사가 돌아가는 사정도 모르고, 회사가 필요한 수익성 모델도 모르고, 회사에서 완성된 서비스를 팔기 위해 해야하는 인력 고민, 홍보 고민, 시장 수준에 대한 고민은 전혀 아는 바가 없다. 그냥 자기가 하고 싶은 욕심만 있는 것이다. 최소한 나는 개발만 한다, 나머지는 네가 다 해라는 식이다.

BigDataGraph

ElasticSearch를 쓰고 싶기만 한 한국 개발자, 기능 개선에 곁다리로 붙여주는 해외 개발자

그 개발자는 6개월이나 걸려서 ElasticSearch가 제공해주는 Kibana dashboard를 하나 붙이고, 내가 그려 붙여라고 하는 Sankey chart 하나 제대로 못 그리다가 회사를 떠났다. SIAIMBA AI/BigData 수업 중에 AI in Digital Marketing이라는 수업에서 가르치고, 학점을 받으려면 과제 상황에 맞게 직접 그려봐야 되는 빅데이터 전용 그래프 중 하나다. (위의 이미지에서 (2,3) 좌표에 있는 그래프다.) 이런 교육은 안 받았으니 못 할 수도 있겠지라고 양보하고, Kibana dashboard를 로그인 없이 일반 방문자가 다 볼 수 있도록 제한을 풀라고 하니 그것도 Kibana에서 기능을 지원 안 해준단다. 경력 15년이 넘은, 국내 초명문대 학위증을 당당하게 자랑하는 개발자다.

모든 시스템을 새로 만든 요즘, 파비리서치 웹페이지에서 기사 검색을 MySQL DB에서 돌리니까 시스템 과부하가 바로 눈에 들어오더라. 워드프레스로 만들었으니 당연한 상황일 것이다. 어떻게 개선할 수 있을까? 어차피 기사들은 다 Text에 불과하니까, 근데 평소에 서비스 속도 개선을 위해 캐시(Cache)를 만들 때 html 파일을 만드니까, 그리고 html 파일이 대부분 Text니까, 그럼 html을 JSON 파일로 변경한 다음, 그 JSON 파일들을 ElasticSearch에 연동해서 검색 기능을 지원해야줘야겠다고 생각했다.

다행히 워드프레스 플러그인 중에 내가 생각했던 내용을 비슷하게 구현해놓은 플러그인이 있더라.

물론 설치해놓고 나니 우리 회사 사정에 맞지 않는 부분이 많아서 이것저것 고치는 중인데, 검색 기능 자체를 아예 다른 서버에서 돌려서 DB에 주는 과부하를 없애버릴 수 있고, html 파일들을 캐시에만 쓰는게 아니라 이렇게 재활용할 수 있어서 1석2조라고 생각하고 있다.

우리 회사가 워드프레스를 쓴 지 6년이 지났는데, 내가 그 개발자였다면 직접 ElasticPress 같은 플러그인을 만드는 수준으로 회사에 ElasticSearch를 붙이는 고민을 했었을 것이다. 실제로 내가 그렇게 했고, 검색해서 플러그인을 찾은 것, 심지어 코드를 뜯어고쳐서 회사 사정에 맞추고 있는 것이 그 증거다. 모두가 알다시피 나는 개발자 출신도 아니고, 개발도 모르는데 이런 생각을 하고 작업을 진행하고 있으면, 개발자라면 나보다 훨씬 더 빠른 속도와 효율성으로 이 업무를 해야 급여를 받을 자격이 있지 않나? 그게 안 되면 개발자라고 하지 말아야지?

저 분은 ElasticSearch를 써 봤고, Kibana를 이용해서 Dashboard를 만들어봤다고 이력서에 자랑스럽게 써 놨다. 실제로 쓰기 위해서 Customizing은 단 한번도 한 적이 없다. 쓴 적이 없으니까. 개발자 본인이 어떻게 쓰는지조차도 몰랐으니까. 나는 1주일이면 넉넉하게 다 할 일을 저 분은 6개월 동안 '교육 비용'을 쓰고도 '설명서'보다 한 걸음도 더 못 나간 것이다.

이게 단순히 프로그램을 설치하고 끝나거나, 플러그인 하나로 적용되는 기능이 아니어서, ElasticSearch를 다른 서버에 설치하고, 서버간 연동시키고, 버전 호환성과 기능 호환성을 따지고, JSON 변환에 쓸 Raw data를 DB에서 읽지 말고 캐시로 쓰이는 html 파일들에서 읽도록 만들고, 이미지를 못 가져가서 문제가 생기니까 DB에서 이미지 부분만 갖고가서 이미지 서버와 연동하는 작업들, 검색 속도 개선을 위해서 ElasticPress의 기본 옵션들을 고치는 작업들도 계속 진행 중인데, 이런게 개발자가 직접 찾아보고 해야 할 일 아닐까?

해달라는 요청 있을 때까지 가만히 '설명서'만 따라가는게 개발자의 일인가? 그건 그들이 좋아하는 AI라고 쓰고 '자동화'라고 읽는 시스템으로 처리 가능한 시대가 곧 올 것이다. 곧.

얼마 전 소셜 로그인 플러그인 기능 개선을 위해서 인도의 한 개발팀이랑 10분짜리 짧은 콜을 했었는데, 사용자에 대해 구독 여부 같은 Key값으로 조건 검색 및 다른 사이트 연동 검색이 필요하다고 그러니까, DB에 과부하가 걸릴테니 기능 개선 욕심을 일부 포기하던가, 아니면 'ElasticPress'라는 플러그인을 좀 고쳐서 'ElasticSearch'가 그 부분을 대신하도록 해 줄 수 있다며, 약간의 추가금을 더 내면 어떻겠냐는 제안을 받았다. 내가 위에서 설명한 일을 이미 하고 있다고 그러니까, 그럼 내가 직접 해라면서 뭘 고치면 된다고 함수들을 모아놓은 파일 몇 개를 불러주더라.

국내 초명문대 출신 개발자와, 인도에서 대학도 안 나온 개발자 사이에 어떤 격차가 있는지 느껴지시는가?

그 인도팀에게 150달러를 주고 일을 맡길지, 한국 초명문대 출신 개발자에게 고액 연봉을 주고 일을 맡길지를 판단하는 것은 당신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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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대는 학부만해도 되는데, 통계학은 대학원을 가야된다 - ②

공대는 학부만해도 되는데, 통계학은 대학원을 가야된다 - 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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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eith 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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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대는 학부 교육이 불필요한 저(低)기술 직장이 매우 많았던 반면
통계학은 학부 고학년 교육이 실패하면 경제·경영 등의 문과보다 경쟁력이 떨어짐
그러나 공대생을 채용하던 기업들이 글로벌 시장에서 중국, 동남아, 동유럽에 단가 싸움에서 밀리는 상황이 됐음
10년 후에도 공대 출신들이 지난 40년 만큼 쉬운 취직이 될 것이라는 기대하기 어려워

지난 2022년 봄에 학생들의 질문을 받고 통계학 전공자들이 왜 대학원을 가야하는지에 대한 글을 쓴 적이 있다

2년 남짓이 더 지나면서 개발자들을 더 겪어봤고, 시장 상황을 더 지켜봤고, 공학도들이 무슨 공부를 하는지, 통계학도들이 무슨 공부를 하는지 더 봤기 때문에, 한번쯤은 위의 내용을 업데이트 해야하는 상황이 된 것 같다.

결론부터 말하면, 공학은 학부 수준 교육이 필요가 없는 직장들이 매우 많고, 학부 수준 이상을 쓰는 직장이 거의 없기 때문이고, 통계학은 국내 학부 교육이 지나치게 수학적이어서 현장에 쓰이기 어렵기 때문이다.

공대는 학부만해도 취직할 수 있다?

공학 전공 별로 사정이 조금씩 다르겠지만, 컴퓨터 공학 쪽을 보면 대부분 개발자로 취직을 할텐데, 개발자들이 대학교 컴퓨터 공학과 전공이 과연 필요한지 의문이다. 그간 컴퓨터 공학 전공자들을 다수 채용도 해 봤고, 국내 명문대부터 전문대 출신들까지 다양하게 겪어봤지만, 컴퓨터 공학을 전공했다는 이유로 개발자들의 코딩을 더 잘하게 된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오히려 실업계 고등학교에서 개발자 교육을 전문으로 받은 경우가 훨씬 더 개발을 잘 할 가능성이 높다.

직장이 공학 학부 전공을 쓰느냐 마느냐를 가르는 잣대는 학부 저학년 때 열심히 배웠을 공학수학을 얼마나 다양하게 활용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생각하는데, 국내 직장에서 수학 교육이 왜 필요한지 깨닫는 숫자는 정말 극소수에 불과할 것이고, 특히 컴퓨터 공학을 학부 이상 수준으로 쓰는 경우는 국내의 현실을 봤을 때 아주 예외적인 일부 직장에서만 일어나는 사건일 것이다.

그간 국내 공대가 '인공지능'을 가르친다고 하면서 기초적인 선형대수학, 미분방정식에 기반한 수학, 통계학 모델링 지식 대신, 코딩 위주로 돌아가는 대학원을 운영하고 있다는 사실을 이미 몇 년간 봐 왔고, 한국 공학도들의 수학 경시 풍토상, 다수의 인원이 단숨에 한국의 현실을 바꾸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본다.

위의 글에서 밝혔듯이, 국내 공학도들이 최신 머신러닝, 딥러닝, 인공지능 모델이라며 이것저것 언급하는 내용들이 결국 통계학의 기본기를 조금씩 응용하고 변형해서 쓰는 것에 불과하다는 것을 못 깨닫고 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기들이 끝까지 맞다고 주장하는 이유도, 궁극적으로는 그런 기초 통계학 훈련이 전혀 안 된 인력이 엄청난 비율로 인공지능 학계에 진입해 있기 때문이다. 미국 명문대들처럼 철저하게 수학 교육을 시킨 후, 기준을 못 넘는 인재들에게 고급 인공지능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기회를 주지 않는 방식으로 운영됐다면 아마 한국의 대다수 '인공지능 전공자'들은 공부할 기회조차 얻지 못했을 것이다.

인공지능 공학도들의 이해도 - 1.계산과학 이해도 부족

위의 글에 나온 '인공지능 공학도'들의 반응 몇 가지 살펴보자.

  • 딥러닝은 망할 수 있어도 인공지능을 망할 일이 없다, 딥러닝보다 더 나은 인공지능 학습 방식이 나타나면 그땐 딥러닝이 시들 것이다
  • 근본기술이라고 할 수 있는 residual connection, attention mechanism 등 논문을 깊게 들여봤으면... 말한 사람이 누군진 모르겠는데, 학계에서 이 분야에 통달한 대가가 저런 말해도 반박 엄청 들어올텐데 그냥 박사1이 저런 말하는거면 참 가소로울 듯

우선 첫번째 댓글에서는 딥러닝이라고 알려져 있는 계산법이 하나의 독립된 계산법이고, 뭔가 더 좋은 계산법이 나올 것이라는, 이른바 계단식 접근법, 속칭 '특이점 이론가'들의 관점으로 계산 방법들을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계산과학을 제대로 공부했으면 데이터와 계산 목적에 맞게 데이터를 변형하는 방식이 제각각이고, 적절한 계산법이 제각각이라는 것도 알게 된다. 나는 이걸 학위 과정 초반에 '과학적 프로그래밍(Scientific Programming)' 이라는 이름의 과목에서 가르친다. 자칫 더 늦게 가르치면 위와 같이 시장에 널리 알려진 계산법이 무조건 가장 우월하다는 착각에 빠지는 단편적 사고형의 학생들을 너무 자주 봤기 때문이다.

학생들이 학위 과정을 거치면서 데이터와 목적에 맞는 적절한 계산법을 알게 되고, 모든 계산법들이 가장 밑바닥에 수학적 직관을 공유하는 상태에서 조금씩 변형된 계산법이라는 것도 배운다. 덕분에 학위 과정 중반부를 거치면 살아남는 모든 학생들이 딥러닝이라는 계산법은 통계학의 '요인 분석(Factor analysis)'을 다른 방식으로 적용하는 계산법 중 하나에 불과하다는 것을 인식한다. 그래서 '딥러닝이 망하면'이라는 표현을 쓰지 않고, '딥러닝 계산 방식을 다르게 바꾸게 되면'이라는 관점으로 계산법의 변형과 발전을 바라보게 되는 시야를 갖게 된다.

인공지능 공학도들의 이해도 - 2.기초 통계학 이해도 부족

위의 두번째 댓글는 여러가지 측면에서 지적할 부분들이 있다. 먼저 '말한 사람이 누군진 모르겠는데'에서 같은 말을 권위자가 했으면 받아들이겠지만, 권위자가 아니면 위와 같이 '가소로울 듯'이라는 비난을 하겠다는 태도가 보인다. 사실 관계와 설명에 담긴 학문적 깊이를 따지지 않고, 말을 한 사람을 보겠다는 태도는 학문을 공부하는 사람의 태도가 아니라, 정치인, 혹은 정치인과 유사한 사고로 '우리편 구분하기', '편 가르기'하는 분들의 태도다. 석·박 유학 중, 학문적 지식의 깊이가 아니라 남과의 관계로 사람을 평가하던 중국계 학생들 사이에서 매우 자주 봤던 태도인데, 한국 학생들 중에서 국내파 공학도들이 유사한 성향을 띄는 경우가 매우 빈번하더라. 이런 성향의 분들이 내 지적이 틀렸다고 비판할 때 내 학위가 공학이 아니라 계산과학 관련 전공이라는 점을 이용해 내가 전문가가 아니라고 주장하는 것도 자주 겪었다. 내 입장에서는 오히려 내가 당신들을 비전공자라고 지적하고 싶은 상황이건만. 학자라면 수학적 논리와 데이터 기반의 연구 결과물로 상대방의 논리의 옳고 그름을 따져야지 않을까?

또한 'Residual connection'이라는 계산법도, 'Attention mechanism'이라는 계산법도, 마치 새로운 계산법이 나왔기 때문에 기존의 AI에 대한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는 착각이 담겨 있는 것 같은데, 위의 두 계산법도 '요인 분석(Factor analysis)'을 변형한 것에 불과하다. 'Attention'이라고 이름이 붙은 정보량은 좀 더 핵심적으로 짐작되는 요인(Factor)을 찾아내기 위해 계산과정 중 유사성이 높은 정보량을 분리하는 계산 작업이 추가된 상황일 뿐이고, 'Residual'을 연결하겠다는 계산도 잔존 정보량 간의 유사성을 활용해, 버려지는 정보량이 많은 경우에 한정해서 정확도를 높일 수 있는 대안을 찾겠다는 의도가 담겨있다. 즉, 딥러닝이 요인 분석 모델의 변형인 것과 마찬가지로, 위의 댓글에 언급된 계산법들도 여전히 요인 분석 모델을 주어진 데이터 상황, 계산 목적에 맞게 조금씩 변형한 것에 불과한 것이다.

'근본기술'이라는 표현을 쓰며 마치 새로운 지식이 나왔고, 그래서 기존의 AI에 대한 지적이 전혀 관계가 없는 것처럼 자신있게 주장했지만, '근본'이라는 단어가 붙을 수 있는 수준의 지식이 아니고, 특정 데이터에 한정해서 목적을 달성하는데 좀 더 효과적인 변형에 불과할 뿐, 기존 AI모델들이 가진 가장 근본적인 문제인 데이터 의존성이 전혀 해결이 되지 않은 상태인 것은 마찬가지인 것이다.

그 외에도 언급할만한 댓글들은 많지만, 위의 2개 사례를 통해 한국의 인공지능 연구실에 있는 공학도들이 기초 통계학 훈련이 얼마나 부실한 상태인지, 계산 모델에 대한 이해가 얼마나 기초적인 수준을 못 벗어난 상태인지를 단적으로 알 수 있을 것이다.

귀국 후 한동안 국내 인력들 계몽차원에서 강의 및 외부활동을 하며 이런 분들을 매우 자주 봤었는데, 시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국내 공학도들 상당수가 여전히 답보상태인 것을 꾸준히 확인하게 된다.

말을 바꾸면, 저런 상태인데도 불구하고 채용이 되고 있다는 것은, 한국 내에서 공학도들을 채용하는 직장은 대부분 기술력 측면에서 기초 수학에 대한 이해 부족을 해결못한 조직, 즉 학부 이상 수준의 훈련을 요구하는 직장들이 아닌 것이다.

통계학은 학부에서 너무 이론만 가르친다?

반면 통계학은 학교 마다 사정이 다르기는 하겠지만, 대다수의 교수님들이 수학과와 유사한 사고방식으로 수학적 완성도에 집착하는 교육을 하고 있다. 석·박사 과정에서는 그런 탄탄한 수학 훈련이 큰 도움이 될 가능성이 높지만, 학부 졸업 후 직장을 찾아가야하는 압도적 다수의 학생들에게는 효율적이지 않은 교육이다.

그간 대학을 만들어 국내 학생들을 교육하면서 느낀 것은, 한국의 통계학도들 중 학교에서 충실하게 배운 경우는 글로벌 시장에 내놔도 부끄럽지 않은 수준의 고급 훈련을 받았다는 점이었다. 다만 그런 학생들의 숫자가 매우 적을 수밖에 없는 것이, 대부분의 학생들이 학부 3학년을 넘어가면서 고급 수학을 활용하는 전공지식에서 좌절한다.

공학이나 통계학이나 학부 3학년 이상 교육을 글로벌 수준의 고급 교육으로 진행했을 때 살아남는 비율이 높지 않은 것은 큰 차이가 없을 것이나, 공학과 달리 통계학을 고교 수준에서 직장으로 가게되면 경제, 경영학과 등의 문과 전공에 비해 경쟁력이 터무니 없이 부족하다.

통계학과의 고학년 과목들에서 수학적 엄밀성을 따지는 훈련에만 시간을 쓴 탓에, 정작 통계학을 응용해서 활용하는 다른 사회과학도들이 학부 시절에 배운 지식을 거의 배우지 못한 상태에서 졸업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경영학과에서 좀 난이도 있는 세부전공으로 알려진 기업재무의 경우, 회계학으로 중급회계 이상의 지식이 있어야 기업재무로 직장에서 일을 할 수 있는 역량이 생긴다. 경영학과 2~3학년을 거치며 중급회계를 배우고, 함께 공부하는 친구들 중 일부가 회계사(CPA) 시험을 준비하면서 본 세법, 상법, 고급회계 정보를 전해들으면서 음으로, 양으로 공부한 부분을 통계학과 전공자가 얻어가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훈련이 된 경영학과 출신 학생이 직장에 가게되면 고교 수준의 통계 훈련과 경영학과 학부 수준의 지식을 갖춘 인재가 되는 만큼, 기업 입장에서는 통계학과 고학년 교육에 실패한 인재보다 더 나은 인재로 평가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렇다고 통계학과 학부 교육을 전문대 수준으로 낮출 수는 없기 때문에, 일선 대학의 교수님들도 고민이 많을 것이다. 통계학과가 학생이 많고, 교수진이 풍부했다면 일부 교수는 취직 전용 수업을, 또 다른 교수들은 좀 더 고급 수학을 다루는 수업으로 분업을 할 수 있겠지만, 국내 대학들의 통계학과 사정이 그렇게 좋은 편이 아니다. 결국 학교에서 제공해 줄 수 있는 수업은 제한되어 있고, 교수들은 학위 과정 중에 수학적인 엄밀함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교육을 받았던만큼, 시장 수요에 맞춰 학부 수업을 재편하는데 쓰는 시간을 내기도 어렵고, 실제로 그런 수업을 시장의 눈높이에 맞춰 전달하는 경우도 희귀하다.

나 역시 직접 시장 수요에 맞춘 교육을 하기 위해 각종 비즈니스 예제를 갖고 오고, 계산법을 응용하는 다양한 '사례집(Case Study)' 과정을 만들어봤지만, 교육 교재 준비에 바쁘다보면 따라오지 못하는 학생들을 챙길 여력이 없고, 결국엔 따라오는 학생들을 보면 대부분은 수학적 훈련이 잘 된 경우, 혹은 논리적 훈련이 잘 된 경우들 밖에 없었다. 이론 전문 교육을 하는 전공들 대부분이 실용적인 부분은 직장가서 본인이 알아서 배우고, 학교에서는 이론적인 교육에 충실하겠다는 접근을 하는 것이 모두 이런 경험에서 나왔을 것이다.

학부 과정 지식이 없어도 되는 공학 직장이 계속 남아 있을까?

국내 기업들이 해외에 수출할 수 있는 상품들을 보면, 대부분은 반도체, 자동차, 그리고 석유화학이다. 그 외에 식료품 업계처럼 일부 수출이 되는 산업이 있겠지만, 1개의 산업과 부가산업이 10만, 100만 명의 월급을 주면서 산업을 이끌어 갈 수 있는 경우는 없다고 봐야 한다. 지난 몇 년간 IT업계가 벤처기업 붐을 타고 산업을 키웠지만, 네이버, 카카오 모두 해외 수출을 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춘 기업들은 아니다. 네이버의 자회사인 라인을 들면 할 말은 없지만, 미주 시장에서 성공적으로 상품을 판 일부 게임사를 제외하면 국내 IT인력을 채용해 해외에서 매출액을 만들어내고, 그 자금으로 국내 인력에게 안정적인 직장을 제공할 수 있는 IT기업들은 없다고 봐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위의 산업들이 모두 공학이기 때문에, 그리고 각 기업들의 일부 핵심 인력을 제외하면 학부 수준 이상 지식보다 기초적인 이해, 성실성이 더 중요한 시장이었기 때문에 지난 수십년간 공대를 졸업하면 대학원을 가지 않아도 취직이 된다고 생각했었을 것이다.

그런데, 지난 40년 간 그랬다는 이유로 앞으로도 그럴 것인가는 한번쯤 되물어 봐야 한다. 딱히 미래에 통계학과가 더 취직이 잘 될 것 같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공학 전공자들을 받아주던 국내 굴지의 기업들이 미래가 있다고 이야기하기는 어려운 시대가 오고 있기 때문이다. 이미 매우 많은 산업들이 중국에 기술적으로 따라잡히기 직전이거나 심지어 따라잡힌 상태인 반면, 국내 인력들이 급여를 더 많이 받아가니 수익성이 매우 크게 떨어졌기 때문이다.

아마 지난 5년간 국내에서 '인공지능 전문가'라는 이름으로 명문 공대 출신의 연구자들을 뽑아서 인공지능으로 분석하고 상품을 만들었다는 회사들 중에 실제로 인공지능이라고 이름을 붙여도 글로벌 시장에서 부끄럽지 않은 수준의 기술력을 가진 회사들은 거의 없었을 것이다. 국내 굴지의 IT기업들이 내놓은 인공지능 상품들도 글로벌 시장에서 이미 상품화된 기술을 빌려오거나, 심지어는 그대로 복사한 경우들이고, 그 외에는 개발자들 사이에서 돌고 있는 개발용 '라이브러리(Library)' 의존적인 상태인 것은 이미 주지의 사실이기 때문이다. 내 앞에 자신있게 코드와 결과물을 내놓고 인공지능 역량을 검증 받을 수 있는 국내 기업이 단 한 곳이라도 있을까?

'요즘은 고교생들 중에도 인공지능 잘하는 경우가 많다'는 표현을 네이버의 AI실 전체 대표로 있는 서울대 컴퓨터 공학 박사 출신이 썼다. 말을 바꾸면, 고교에서는 절대로 배울 일이 없는 대학 학부 이상의 수학을 당신들의 직장에서 쓰지 않는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다. 그들에게 기회를 줬다는 것 자체가 국내 최고 IT기업에서, 국내 최고 명문대 출신의 컴퓨터 공학 박사가 운영하는 연구실이 대학 수학을 쓰는 인재에게 더 고급 업무를 배정하면서 업무를 분리할 수 있는 역량이 부족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앞으로도 계속 이렇게 대학 교육이 필요없는 상태로 시장이 흘러간다면 어떻게 될까?

지난 몇 년간 국내에서 개발자들에게 수십억을 쓴 내 입장을 묻는다면, 이제 다시는 한국에서 개발자를 뽑을 생각이 없다고 대답할 것이다. 이미 새롭게 만들고 있는 회사 시스템은 모두 인도와 동유럽 몇 개 국가의 개발자들을 이용해서 제작 중이다. 해외 개발자들을 이용해 시스템을 개발하면서 각종 시행착오를 거치고 있는만큼, 시간이 지나면 더 효율적으로 해외 개발자들을 활용하는 시스템을 만들 수 있을 것으로 믿는다. 대학 수학 이상을 써야 하는 직군은 개발자를 뽑는대신, 해외 주요 대학에서 수학적으로 치밀한 훈련을 받은 인재가 아니면 아예 급여를 줄 생각이 없다. 그 수준을 넘지 못하면 그저 개발용 '라이브러리(Library)' 의존적인 상태에 불과하다는 것을 이미 몇 년간의 경험으로 뼈저리게 느끼게 됐기 때문이다.

이미 건설 업계와 조선 업계는 더 이상 한국인 청년들을 쓰지 않는다. 업무에 대한 충실성, 전문성, 경험치가 모두 부족한데 달라는 급여는 많은 반면, 해외에서 수입한 인력들은 급여를 낮춰 지급해도 충분히 생산력을 뽑아낼 수 있기 때문이다. 대학 학부 수준 이상의 지식을 요구하는 직장이 아닌데, 굳이 국내에서 대학만 나왔고 실력은 없는 인력에게 계속 높은 급여를 줄 수는 없다. 그 기업들도 수익성을 내야 생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정부 R&D 지원금이 줄어들면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공학도 전용 직장들이 사라지게 될까?

What got you here won't get you there

라는 영어 표현이 있다. 오늘을 있게 한 과거 유산이 반드시 내일도 적용되지는 않는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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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안 돼서' 외면받는 공공 SW 사업, 정부 손질로 제자리 찾을까

'돈 안 돼서' 외면받는 공공 SW 사업, 정부 손질로 제자리 찾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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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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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같이 달라지는 세상과 발을 맞춰 걸어가고 있습니다. 익숙함보다는 새로움에, 관성보다는 호기심에 마음을 쏟는 기자가 되겠습니다.

수정

공공 SW에 '변동형 계약' 도입, 유연한 사업 대가 정산 가능해
매년 1조원 들여도 삐걱이는 공공 SW, 차후 품질 제고 기대 실려
정부 사업의 고질적 장벽은 '수익성', 이번 방안으로 처우 개선되나
공공sw_20240105-1

정부가 공공 소프트웨어(SW) 사업 품질 저하 요인으로 지목돼 온 확정형 계약 체계를 변동형 계약 체계로 전환한다. 4일 업계에 따르면 디지털플랫폼정부위원회는 지난 8월부터 태스크포스(TF)를 꾸려 논의해 온 '정보화 사업 혁신 방안(혁신안)'을 이르면 다음 주 확정한다. 저품질 공공 SW로 인한 논란이 끊이지 않는 가운데, 사업 구조를 유연화해 품질을 끌어올리겠다는 구상으로 풀이된다.

'유연한 개발, 유연한 대가' 끌어낸다

혁신안 초안에는 △유연한 계약 제도를 위한 변동형 계약 도입 △개발 단가 인상 △유지관리요율 현실화 △수익형 민간 투자 사업(BTO) 확대 등의 내용이 담긴 것으로 파악됐다. 이 중 변동형 계약은 사업 완료 후 사업 대가 정산 시 과업, 일정 변경 등 내용을 반영할 수 있는 계약이다. 실제 업계에서는 개발 기간 동안 변동 사항이 많은 SW 사업의 특징을 강조, 변동형 계약 도입의 필요성을 꾸준히 주장해 왔다.

일각에서는 '애자일 개발'의 도입 필요성도 제기된다. 애자일 개발은 일정 주기를 갖고 반복 개발을 진행하며 하나씩 기능을 추가하는 방식으로, 그때그때 변화하는 요구사항에 민첩하게 대응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에자일 개발과 변동형 개발을 동시에 활용할 경우, 과업이 자주 변경되는 경우에도 제대로 된 사업 대가를 정산할 수 있다. 유연한 사업 전개를 통해 공공 SW 품질을 제고할 수 있다는 의미다.

공공 SW 품질 제고 필요성은 이전부터 꾸준히 제기돼 온 사안이다. 매년 1조원 이상의 대규모 예산이 투입됨에도 불구, 공공 분야 정보 시스템에서 꾸준히 오류가 발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발생한 우정사업본부 시스템 오류, 교육부 교육행정정보시스템(NEIS, 나이스) 오류 등이 대표적인 예다. 공공 분야의 잦은 오류는 국민 불편을 야기할 뿐만 아니라, 정부 시스템에 대한 국민 신뢰 자체를 훼손할 위험이 있다.

개발 역량이 문제인가, 수익성이 문제인가

이에 업계에서는 공공 SW 사업의 근본적인 문제에 대한 논의가 이뤄지고 있다. 이런 가운데 일각에선 변동형 계약이 실제 공공 SW 시장에서 제 효과를 내기 위해서는 기업의 역량 확보가 선행돼야 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유연한 대응을 통해 사업 대가를 인정받기 위해서는 개발 역량 강화가 필수적이라는 분석이다. 반면 공공 SW 사업 품질 하락의 근본적 원인이 '수익성'에 있는 만큼, 기업의 충분한 수익을 먼저 보장줘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사업 대가가 턱없이 부족한 가운데 공공 SW 사업에 총력을 기울일 기업은 사실상 없다는 비판이다.

정부 사업의 수익성 문제는 최근 디지털 전환의 중심축인 서비스형 소프트웨어(SaaS) 시장에서 고스란히 나타난다. 올해 공공 시장 SaaS 계약 전체 건수는 135건, 계약 금액은 약 37억원에 그쳤다. 2022년(153건)과 비교하면 20건 가까이 감소한 수준이다. 계약 체결에 성공한 19개 SaaS 솔루션 중 CSAP(클라우드 보안 인증제도) 인증 비용 이상의 수익을 거둔 기업, 즉 흑자를 낸 기업은 절반 정도인 것으로 추정된다. 계약 체결에 실패한 기업은 물론, 체결에 성공한 기업까지도 고가의 CSAP 인증 비용만 지불한 채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한 셈이다.

정부는 이 같은 문제점을 인지하고 이번 혁신안에 개발 단가 인상 방안을 담을 예정이다. 매년 물가 및 인건비 상승분을 정보화 사업 예산에 반영하는 방식이다. 유지관리요율 현실화를 위해 통합 유지보수료에서 일부를 적정 SW 유지보수 대가로 제공하는 방안도 제시됐다. 공공 SW의 '침체'를 막기 위한 정부의 노력이 이어지는 가운데, 삐걱거리는 시장은 과연 제 기능을 되찾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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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로자 90% "올해 이직 또는 퇴사 계획 있다", 경력직 채용 경쟁 심화하나

근로자 90% "올해 이직 또는 퇴사 계획 있다", 경력직 채용 경쟁 심화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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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인 64.1% ‘올해 이직 계획’, 20%는 ‘무조건 퇴사’
이직하기 적절한 근속 연수론 ‘3년~5년 이내’ 가장 선호
반면 美 이직률은 33개월 만에 최저 수준, 국내와 온도차 ‘뚜렷’
이직희망_잡플래닛_20240105
잡플래닛 '2024년 채용 트렌드' 조사/출처=잡플래닛

직장인 10명 중 9명은 올해 이직이나 퇴사 계획이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직하기에 좋은 시기로는 3년~5년차를 가장 선호했으며, 이직을 원하는 직장으로는 대기업을 희망하는 직장인이 가장 많았다. 이직을 선호하는 경향이 두드러짐에 따라 헤드헌터 등 채용 전문가들 사이에선 올해 경력직 채용 경쟁이 더 심화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잡플래닛, ‘2024년 채용 트렌드’ 발표

4일 커리어 플랫폼 ‘잡플래닛’ 운영사 브레인커머스가 헤드헌터와 채용 담당자, 직장인 등 잡플래닛 이용자 232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2024년 채용 트렌드’ 설문조사에 따르면 직장인의 약 90%가 올해 이직이나 퇴사 계획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올해 이직 및 퇴사 계획을 묻는 질문에 64.1%가 ‘이직할 계획’이라고 답했으며, 20%는 이직과 무관하게 ‘무조건 퇴사하겠다’고 응답했다.

이직하기 좋은 시기로는 3년~5년차(49.7%)가 가장 좋은 근속 연수로 꼽혔다. 이어 '1년 이상~3년 미만'을 선택한 응답자는 37.9%로 나타났으며 '5년 이상'을 선택한 응답자는 9.7%에 그쳤다. 다만 채용 담당자들이 느끼는 직장인들의 근속 연수는 더 짧았다. 채용 담당자의 74.4%는 ‘요즘 직장인들은 1년~3년 정도 일하면 이직한다’고 답했다.

이직하고 싶은 회사에 대한 질문에선 헤드헌터의 89.6%가 ‘대기업’을 1순위로 꼽았다. 직장인도 대기업(48.3%)을 1순위로 꼽았으며, 이어 △외국계(20.7%) △스타트업(14.5%) △공기업(10.3%) 순으로 이직을 희망했다. 기타 응답으로 ‘구내식당 있는 곳’, ‘자유로운 분위기의 회사’, ‘워라밸이 지켜질 수 있는 곳’ 등이 나왔다.

올해 경력직 채용 경쟁에 대해서는 더 치열해질 것이란 전망이 우세했다. 경력직 채용 경쟁률이 ‘올해보다 높아질 것’이라고 응답한 비율은 △헤드헌터 56.3% △채용 담당자 64.1% △직장인 59.3% 등이다. 잡플래닛 관계자는 “2030 세대 사이에서 ‘평생직장’ 개념이 사라지면서 커리어 성장과 워라밸 추구 등 개인의 가치관에 따라 이직과 퇴사를 희망하는 직장인이 많아지고 있다”며 “설문 결과를 보면 직장인들은 이직하고 싶은 회사로 대기업뿐만 아니라 외국계나 스타트업 등 다양한 형태의 기업에서 일하고 싶어 하는 경향을 보였는데, 이러한 결과는 최근 경향을 잘 반영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국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의 美 고용시장

반면 경기 흐름에 따른 고용시장 여건이 한국과 비슷한 미국에선 구인과 이직 건수가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최저치를 기록 중이다. 3일(현지 시간) 미국 노동부 Jolts(구인·이직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채용공고 건수는 879만 건으로, 2021년 3월 이후 32개월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이는 지난해 10월 수정치인 885만2천건보다 6만2천건 감소한 수준이다.

채용공고가 최저 수준을 기록함에 따라 실제 채용도 직전월보다 36만3천건 감소한 546만5천건으로 집계됐다. 고용에서 채용 수치를 나타내는 고용률도 직전월 3.7%보다 낮아진 3.5%를 기록했다. 자발적 퇴직인 이직 역시 전월보다 15만7천건 감소한 347만 건을 기록했는데, 이는 33개월 만의 최저치다. 이직 비율은 직전월 2.3%보다 소폭 줄어든 2.2%로 집계됐다.

구인과 이직 건수는 노동 시장 건전성 척도로 활용되는데, 두 지표가 감소했다는 것은 미국 노동시장이 수요 측면에서 크게 약화됐음을 의미한다. 시장에선 미국 중앙은행의 긴축 장기화와 더불어 지정학적 리스크 등이 지속되면서 노동 시장에도 악영향을 미쳤다는 평가가 나온다. 국내 금융투자 업계 관계자는 “미 연방준비제도(Fed)가 인력 수급 현상을 파악하기 위해 주목하는 구인·구직 비율이 1.4대 1로 하락했다”며 “한때 2대 1에 가까웠던 이 비율이 2022년 수준보다 크게 낮아지면서 노동시장의 수요 과열로 인한 수급 불일치가 해소되고, 전반적으로 과열됐던 경기가 다소 수그러든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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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데믹 수혜 끝났어도 여전히 건재한 K-만화, 세컨더리 IP 사업 기대↑

팬데믹 수혜 끝났어도 여전히 건재한 K-만화, 세컨더리 IP 사업 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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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상반기 콘텐츠산업 동향분석
전체 매출액 전년 대비 2.5% 증가
콘텐츠 간 경쟁 심화, 산업 정체기 불러올까
콘텐츠산업_벤처_20240105

국내 콘텐츠 산업이 코로나19 팬데믹 영향권을 거의 벗어난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해 상반기 매출액과 수출액이 모두 전년 동기 대비 증가세를 나타내면서다. 웹툰을 비롯한 만화산업이 큰 폭의 수출 증가세를 기록하며 K-콘텐츠의 해외 진출 선두에 섰다.

매출액 성장은 출판이 견인, 만화는 수출에서 두각

5일 한국콘텐츠진흥원에 따르면 2023년 상반기 총 11개 분야 국내 콘텐츠산업 매출액은 69조3,009억원으로 집계됐다. 이는 전년 동기(67조5,882억원)과 비교해 약 2.5% 증가한 수준이다. 출판 분야 매출액이 12조1,360억원으로 가장 큰 비중(17.5%)을 차지했고, 이어 방송(11조9,980억원·17.3%), 지식정보(9조9,720억원·14.4%), 광고(9조4,570억원·13.6%) 등이 뒤를 이었다. 음악은 6조1,380억원의 매출액과 함께 전체 매출 중 8.9%의 비중을 기록했고, 만화는 1조2,490억원으로 1.8%의 비중을 차지했다.

지난해와 비교해 매출액이 가장 크게 뛴 분야는 음악(15.2%)이며, 영화(12.3%), 애니메이션(8.6%), 지식정보(8.6%), 만화(6.0%) 등도 팬데믹의 영향에서 벗어나 우상향의 움직임을 보였다. 특히 음악 산업의 경우 방대한 K-POP 팬덤을 타깃으로 한 음반과 화보, 포토카드 등 각종 굿즈 상품 판매가 늘며 대규모 엔터테인먼트사 중심으로 큰 폭의 성장세를 그렸다. 다만 출판(-1.1%)과 캐릭터(-7.5), 게임(-10.9) 산업은 역성장을 기록했다.

지난해 상반기 콘텐츠산업 수출액은 53억8,597만 달러(약 7조664억원)으로 전년 동기(53억1,714만 달러·약 6조9,760억원) 대비 1.3% 증가했다. 게임 수출이 34억4,600만 달러(약 4조 5,211억원·64%)로 가장 많았고, 만화는 약 8,990만 달러(약 1,180억원)를 기록했다. 만화는 전체 수출액 중 1.7%의 비중에 그쳤지만, 전년 대비 증가율 면에서는 71.3%의 압도적인 성장세를 그렸다.

이처럼 가파른 급성장을 기록한 탓에 만화 산업이 정체기에 들어설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된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은 “팬데믹 특수로 만화 및 웹툰의 소비가 급증했고, 이 기간 매출을 비롯한 시장 규모가 크게 증가했다”고 설명하며 “다만 영상이나 게임, 웹소설 등 비슷한 시기에 함께 성장한 다양한 콘텐츠 간 경쟁이 심화하면서 정체기가 시작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진단했다.

이같은 내용이 담긴 한국콘텐츠진흥원의 '2023년 상반기 콘텐츠산업 동향분석 보고서'는 국내 콘텐츠 산업 11개 분야 사업체 1,500곳을 대상으로 한 실태조사 결과와 관련 업종 상장 기업 159곳의 자료 분석을 통한 매출, 수출, 고용 등 주요 산업 동향을 담고 있다.

네이버웹툰 이용자 77%는 해외에서 K-웹툰 감상

업계에서는 K-만화 수출 성장세가 팬데믹 종료 후에도 꾸준히 이어지고 있는 만큼 정체기에 대해서는 크게 우려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내비쳤다. 2020년부터 가파르게 성장한 웹툰 산업이 코로나19 종식과 실외 활동 증가로 하락세에 접어들 것이라는 일각의 우려가 있었지만, 여전히 건재하다는 평가다.

실제로 2022년 하반기 1조1,631억원의 매출액을 기록하며 전년 동기(1조478억원) 대비 1.1% 감소하며 소위 ‘끝물’이라는 인식이 고개를 들었던 우리 만화 산업은 2023년 상반기 곧바로 반등에 성공했으며, 만화 분야 종사자 역시 2022년 하반기(23.6%)와 2023년 상반기(5.1%) 모두 상승세를 유지하고 있다.

네이버웹툰은 K-웹툰을 10개 언어로 지원해 전 세계에 수출하며 우리 만화 산업의 부흥을 이끈 주역으로 꼽힌다. 네이버웹툰이 2013년 3월 첫선을 보인 창작자 수익 다각화 모델 ‘PPS(Partners Profit Share)’ 프로그램은 2출시 첫 해 약 232억원의 매출에 그쳤지만, 2022년에는 약 2조255억원으로 10년 만에 100배가량 성장했다.

지난해 기준 네이버웹툰의 전체 이용자 약 8,900만 명 중 77%는 국내가 아닌 해외에서 K-웹툰을 즐겼다. 네이버웹툰 관계자는 “국내 웹툰들이 전 세계 시장으로 뻗어나가면서 지식재산권(IP)으로서의 가치가 더욱 강화되고 있다”며 “이를 기반으로 IP를 다각도로 활용하는 사업도 늘어날 전망이며, 국내 작가들의 수익도 더욱 증대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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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글의 쿠키 수집 중단에 불 떨어진 광고 업계, 진정한 '쿠키리스' 시대 도래하나

구글의 쿠키 수집 중단에 불 떨어진 광고 업계, 진정한 '쿠키리스' 시대 도래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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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나비의 날개짓이 지구 반대편에서 거대한 태풍을 일으킬 수 있다고 합니다. 작은 사건도 무관심하게 지나치지 않고 하나하나 신중하게 전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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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글, 크롬 사용자 일부 쿠키 수집 중단 발표, 광고 업계 반발↑
개인정보 보호 위한 선택, 타 웹브라우저들은 이미 시행 중
'포스트 쿠키'에 대비해야, 마케팅 전략 변화 불가피
구글-쿠키-수집-중단_20240105.001

구글이 소비자들의 개인정보를 침해한다는 비판을 받던 '쿠키' 수집을 올 연말까지 전면 중단하겠다고 밝혔다. 이로 인한 온라인 광고 업계의 지각 변동은 피할 수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광고 기업 전략의 대부분이 브라우저에서 제공하는 쿠키 정보를 기반으로 운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미 일부 기업은 이번 구글의 발표에 비판을 가하면서도 대책 마련에 서두르는 모양새다.

웹브라우저 시장서 퇴출되는 '쿠키'

4일(현지 시각)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구글은 이날부터 자사 웹브라우저인 크롬 사용자의 1%를 대상으로 크롬에서 서드파티(Third-party) 쿠키의 웹사이트 접근을 제한하는 테스트를 시작한다. 쿠키는 웹브라우저 사용자가 검색하거나 웹사이트에 접속할 때 생성되는 데이터를 뜻한다. 그동안 구글은 해당 정보를 온라인 광고업체와 공유해 사용자 검색기록을 바탕으로 한 개인별 맞춤 광고를 진행해 왔다.

하지만 개인정보 보호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강화되면서 소비자 보호 단체를 중심으로 쿠키가 사용자들의 개인정보를 침해한다는 비판이 지속적으로 제기됐다. 특히 쿠키로 인해 사용자의 병력과 진단 기록 등 민감한 개인정보까지 제3자에게 제공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이와 관련해 유럽연합(EU)에서는 지난 2018년 5월 기업 및 조직이 EU 회원국 내에서 이루어지는 거래와 관련하여 EU 시민의 데이터와 개인 정보를 보호하도록 하는 데이터 보호법(GDPR, General Data Protection Regulation)을 제정해 발표하기도 했다.

이러한 이유로 브라우저 개발사들은 몇년 전부터 서드파티 쿠키의 차단을 시도한 바 있다. 모질라는 지난 2019년 파이어폭스의 서드파티 쿠키를 전면 차단했고, 애플은 지난 2020년부터 사파리의 쿠키를 차단했다. 구글은 이번 테스트를 기점으로 올 연말까지 모든 크롬 사용자에 대한 쿠키 수집을 완전히 차단할 방침이다. 업계에서는 파이어폭스, 사파리, 크롬 등 시장 점유율이 높은 브라우저에서 쿠키 수집이 차단된다는 점을 고려할 때 앞으로 웹브라우저 시장에서 쿠키가 완전히 퇴출당할 것으로 보고 있다.

온라인 광고의 핵심 요소 '서드파티 쿠키'

쿠키는 크게 퍼스트 파티(first-party) 쿠키와 서드파티 쿠키로 분류된다. 퍼스트파티 쿠키는 웹사이트 운영자가 사용하고, 서드파티 쿠키는 외부 업체가 사용한다. 서드파티 쿠키를 가장 많이 사용하는 곳은 광고 업계다. 마케터들은 서드파티 데이터를 통해 개별 기기의 환경과 이용자 행동, 콘텐츠 소비 성향 등을 파악하고, 이를 마케팅과 영업에 적극 활용하고 있다. 일례로 웹브라우저의 사용자가 ‘다이어트’와 관련된 내용을 검색한 이후에 다른 사이트를 방문할 경우 해당 사이트에서 다이어트 보조제, 운동기구, 필라테스 광고 등이 노출되는 방식 등이다. 업계에서는 이를 ‘리타게팅’이라고 부른다.

현재 광고 업계 마케팅은 대부분 리타게팅 방식을 기반으로 이뤄지고 있다. 이렇다 보니 구글이 서드파티 쿠키를 제한할 경우 광고 업계는 기존 리타게팅 기법을 사용할 수 없어 마케팅 전략의 전면적인 대수정이 불가피해진다. 광고 업계의 반발이 큰 것도 이 때문이다. 더욱이 크롬은 사파리나 파이어폭스보다 시장 점유율이 압도적으로 높아 비판이 거세다. 시장 조사 업체 스탯카운터의 최근 조사에 따르면 크롬은 전 세계 인터넷 트래픽에서 65%를 차지해 2위인 사파리를 3배 이상 넘어섰다. 이와 관련해 미국 온라인 광고 업계 이익단체인 앤서니 캐트서 IAB테크랩 최고경영자(CEO)는 “구글은 쿠키를 제거하기 전에 광고 업계가 대체 기술을 테스트할 수 있는 더 많은 시간을 줄 필요가 있다”며 “지금은 광고 업계가 전혀 준비되지 않았다. 이대로라면 구글이 쿠키 제공 전면 금지를 예고한 4분기는 광고 업계에 잔인한 시기가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이번 구글의 결정은 ‘끔찍하다’”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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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케팅용 데이터 분석 관련 이미지/사진=Unsplash

뜻 꺾을 생각 없는 구글, 대책 마련 나선 광고 업계

이 같은 논란에도 구글은 연말까지 쿠키 수집과 제공을 중단한다는 방침을 바꾸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앤서니 차베스 구글 부사장은 쿠키 수집 중단 발표 이후 “온라인 광고 업계에는 수천 개의 회사가 있으며, 결국 이런 흐름에 적응하고 최적화될 것”이라며 “나는 온라인 광고 업계가 변화에 적응할 능력을 충분히 갖추고 있다고 확신한다”고 말했다.

포스트 쿠키 시대를 맞게 된 광고 업계에서는 대안 마련에 분주한 모양새다. 일부 애드테크 기업들은 독자적인 식별자(ID) 정보를 만들어 퍼스트파티 데이터 활용을 극대화할 방법 등 새로운 광고 기법 도입에 열을 올리고 있다. 퍼스트파티 데이터란 고객 및 잠재고객과 기업의 직접적인 상호작용을 통해 수집되는 가장 양질의 데이터를 뜻한다.

구글 역시 대안을 모색하고 있다. 현재 구글은 사용자의 개인정보를 보호하기 위해 이용자 데이터의 제3자 공유를 제한하고, 사이트 간 ID 교차 검증 등을 제한하는 ‘프라이버시 샌드박스’ 베타 프로그램을 선보이고 있다. 해당 프로그램은 시장 전문가들에 의해 광고 관련 API 검증이 진행 중이며, 정식 출시는 2024년 말로 예정돼 있다. 이외에도 구글은 AI로 광고주의 웹사이트를 스캔해 제품 키워드, 헤드라인, 설명, 이미지 등을 자동으로 생성하는 ‘퍼포먼스 맥스(PMax)’를 개발한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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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투세 폐지에 촉발된 ‘가상자산 과세 유예론’, 대통령 대선 공약대로 바뀌나

금투세 폐지에 촉발된 ‘가상자산 과세 유예론’, 대통령 대선 공약대로 바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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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상자산 투자자 “금투세 폐지 시 코인 과세도 원점에서 재검토해야”
정부 “조세정책 완화는 대통령실 주도, 기재부에선 검토하고 있지 않아”
가상자산 시장 안정화 위해 과세 도입 예정대로 진행돼야 한다는 주장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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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게티이미지뱅크

정부가 금융투자소득세(금투세) 폐지 추진을 공식화하자 내년부터 도입 예정이었던 가상자산 과세 역시 유예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여기에 윤석열 대통령이 대선 공약으로 ‘가상자산 비과세 한도를 5,000만원으로 올리겠다’고 내걸었던 점도 제도 도입이 늦춰야 한다는 주장의 근거가 되고 있다. 이에 정치권에선 ‘소득이 있는 곳에는 세금이 있다’는 조세의 원칙을 강조하며 반대 목소리를 내고 있다.

가상자산 과세 도입 유예에 대한 정부 입장

3일 기획재정부 관계자에 따르면 정부는 2025년부터 도입하기로 한 ‘가상자산 소득세’를 두고 현시점에서 유예 또는 완화를 검토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가상자산 양도·대여 시 발생한 소득 중 250만원을 초과하는 부분에 대해 20%의 세금을 부과하는 가상자산 과세는 당초 2022년부터 도입될 예정이었다. 그러나 가상자산 거래소 등 관련 사업자들이 세금 인프라를 마련하지 못했다는 지적이 일면서 시행이 1년 미뤄졌고, 이후 투자자 보호제도 정비 및 가상자산 시장 여건 등의 사유로 시행 시기가 2025년으로 또 한 차례 연기됐다.

그간 시장에선 오는 4월 총선을 앞두고 가상자산 과세 기준을 완화할 수 있단 전망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윤석열 대통령이 대선 공약으로 가상자산 비과세 한도를 5,000만원으로 올리겠다고 공언했기 때문이다. 당시 윤 대통령은 “가상자산 과세 한도를 주식 투자 수익 과세 한도와 맞추는 것이 형평성에 어긋나지 않는다”고 강조했었다. 여기에 최근 정부가 내년 도입 예정이었던 금투세 폐지 추진을 공식화한 점도 투자자들 사이에서 가상자산 과세가 폐지 또는 수정돼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는 이유다. 윤 대통령은 지난 3일 한국거래소에서 열린 ‘2024 증권·파생상품시장 개장식’에 참석해 “과도한 부담의 과세가 선량한 투자자들에게 피해를 주고 시장을 왜곡한다면 시장원리에 맞게 개선해야 한다”며 “구태의연한 부자 감세 논란을 넘어 국민과 투자자, 우리 증시의 장기적 상생을 위해 내년 도입 예정이었던 금융투자소득세 폐지를 추진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현재 정부는 금투세와 가상자산 과세를 별도 사안으로 봐야 한다는 입장이다. 2022년 가상자산 과세 도입을 한 차례 더 유예한 건 가상자산 관련 기본법 제정 등 투자자 보호 체계를 갖출 시간이 필요했기 때문이었단 것이다. 기재부 관계자는 “가상자산은 소득세법상 ‘기타소득’에 해당하기 때문에 금투세의 기준이 되는 금융투자소득과는 하나의 영역으로 볼 수 없다”며 “금투세 폐지 등 주식 관련 조세정책 완화는 대통령실에서 주도하는 부분이며, 현재 기재부에선 가상자산 과세 조정 여부와 관련해선 따로 검토하고 있지 않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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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이 2일 서울 영등포구 한국거래소에서 열린 2024 증권·파생상품시장 개장식에서 축사하고 있다/사진=대통령실

가상자산 과세 찬성론자 “소득 있는 곳에 과세는 당연”

가상자산 시장 안정화를 위해 과세 도입이 변경 없이 진행돼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실제로 가상자산 과세 도입 논의가 한창이었던 지난 2021년 리얼미터가 진행한 ‘2022년 가상자산 과세 찬반 설문조사’에 따르면 과세에 대한 찬성(53.7%)이 반대(38.3%)보다 많았다.

현재 가상자산 과세 찬성론자들은 기본적으로 ‘소득이 있는 곳에는 세금이 있다’는 조세의 원칙이 지켜져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가상자산업법을 발의한 이용우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소득이 생기는 모든 곳에는 세금이 붙게 돼 있다”면서 “주식시장보다 더 큰 변동성 때문에 투기적 행위 등이 쉽게 일어날 수 있는 가상자산 시장 특성을 고려할 때 과세를 통해 이러한 불법 행위를 어느 정도 축소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가상자산 과세가 도입될 경우 제도권 내 포용되지 않았던 가상자산의 입지가 달라질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세금 부과 대상이 될 경우 가상자산이 더 이상 화폐가 아닌 재산적 가치가 있는 재화로 정의되기 때문이다.

다만 찬성론자들은 투자자 보호 조치와 공정 과세가 선행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국내 금융투자 업계 관계자는 “금투세 및 코인 과세를 시행하되, 가상화폐 거래 안전성 등을 보장할 수 있는 제도와 법안 등이 제대로 정비된 상태에서 시행될 필요가 있다”며 “가상자산에 대한 개념 정의나 거래소 플랫폼 투명화 등 투자자 보호 장치 역시 반드시 마련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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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백의 세상에서 회색지대를 찾고 있습니다. 산업 현장을 취재한 경험을 통해 IT 기업들의 현재와 그 속에 담길 한국의 미래를 전하겠습니다.

[개안뽑] ㉖'개밥 테스트'와 사용자 경험(UX)과 실제 사용자

[개안뽑] ㉖'개밥 테스트'와 사용자 경험(UX)과 실제 사용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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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eith 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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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ad of GIAI Korea
Professor of AI/Data Science @ SIAI
개발 완성품을 테스트해봐야 한다는 개발 업계 속어로 '개밥 테스트'라는 표현이 있음
그러나 테스트가 기능 확인에 그치는 경우 많아, 실제 사용자 경험과는 거리 멀어
사용자의 눈높이에서 개발을 해야 진짜 'Great Product' 만들 수 있는 것

개발자들 사이에 흔히 쓰이는 용어로 '개밥 테스트'라는 표현이 있다. 애완견한테 먹이를 주기 전에 주인이 직접 먹어보고 괜찮은 음식인지 확인을 해야 된다는 사고 방식을 빌려와서, 개발 상품을 고객에게 전달할 때 실제로 써 보는 절차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걸 지적하는데 쓰이는 표현이다.

상식적으로 이런 '개밥 테스트'를 안 하는 개발자는 없을 것 같기는 한데, 아무리 개발을 완벽하게 하고, 사용자들을 예측해도 실제 사용자가 아닌 이상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그 사이의 간격을 보통 UX(User Experience, 사용자 경험) 전문가들이 메워넣으면서 디자인을 뜯어고치거나, 개발 결과물을 수정한다고 하는데, 역시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그 누구도 실제 사용자는 아니기 때문이다.

실제 사용자에 준하는 QA라는 사람들을 데려다놔도 완벽하진 않다. 사용자 숫자가 늘면 늘수록 온갖 당황스러운 사건들이 생기고, 결국에는 조금씩 '운영 개발'이라는 걸 하면서 서비스의 완성도를 점차 높이는 방식으로 진행되는게 내가 아는 서비스 개발이다.

개발자-안-뽑음_202312
개발자-안-뽑음_202312

콘텐츠 생산자와 콘텐츠 소비자 사이의 간격

이제는 15년이 훌쩍 넘은 첫 직장 시절, 나는 하루에 많을 때는 100장도 넘는 PPT, Word 보고서를 올려야 했다. 돌이켜보면 그 시절 나는 그 업무를 그렇게 싫어하질 않았는데, 아니 너무 좋아했기 때문에 학부 3, 4학년을 싹 갈아넣고 외국계 증권사의 IBD를 가기위해 발악(?)을 했었는데, 문서를 완벽하게 하기 위해 오타 수정, 표현 수정을 하는 그 '라스트 마일'이 너무너무 싫었다.

밤을 새고 집을 못 가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질만큼 혹사(?)를 당했지만, 잠 안 자고 보고서에 들어간 콘텐츠를 뽑아내던 그 순간만큼은 꽤나 즐겁게 일을 했었다. 그러다 내 기준에 99%가 완성된 보고서를 올리고 부장님, 이사님이 "야 이X끼야, 넌 네가 써 놓고 안 읽냐? 읽지도 않고 나한테 갖다 준거냐?"는 꾸중을 들으면 즐거웠던 기분은 싹 날아가고 나 자신의 바보스러움 때문에 너무너무 괴롭더라.

그렇게 오타를 마구 찍어내고, 문장을 깔끔하게 다듬지 못하는 무능력은 지금도 해결이 안 됐고, 가끔 과거에 쓴 글을 보면 낯이 뜨거워지는 경우가 많다. 처음 쓸 때부터 조금만 더 신경을 썼으면 완성도를 높일 수 있었을텐데, 최소한 써 놓고 난 다음에 이사님, 부장님의 당시 질책대로 한번이라도 꼼꼼하게 읽어봤으면 완성도가 높아졌을텐데, 난 왜 그걸 그렇게 못했었을까?

그런데, 개발자들이 만들어놓은 여러 서비스들을 보면 똑같은 생각을 하게 된다. 왜 코드가 돌아간다는 이유로 이 부분을 더 살펴보지 않았을까, 왜 이걸 쓰는 사람들이 기능이 이상하다고 생각할 부분을 놓쳤을까 싶은데, 그 시절 내가 그랬듯이 그냥 정신없이 기능을 찍어 냈을 것이고, 남들이 보는 관점으로 보정되는 것 없이 자기만의 시야에 빠져 있었을 것이다.

개발 결과물, UX 결과물, 그리고 진짜 사용자

개발자들도, 디자이너들도, 기획자들도 다들 '만드는 사람들'이다. 이 분들 중 매출액을 만들어 내는데 가장 큰 기여를 하는 사람들에 대해서 여러 의견이 있겠지만, 적어도 나는 '사용자의 눈높이'를 얼마나 잘 갖추고 서비스를 바라볼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느냐에 달려있다고 생각한다.

단순히 '개밥 테스트'를 하고 서비스 다 만들었다고 주장하는게 아니라, 실제로 사용자가 되어서 혼자 이것저것 써 보는 것이다. 아무리 QA가 일을 잘 한다고 해도 한계가 있고, 결국은 생산자 본인이 소비자가 되어야 한다. 난 파비리서치에 올라오는 우리 기자, 연구원들의 글을 밤에 자기 전에 꼭 읽는다. 혹시 오타가 있으면 지적하고 싶은 생각도 있고, 쓰라고 시킨 내용들이 잘 전달됐는지도 확인하고 싶은 욕심도 있지만, 그 전에 내가 이런 내용들을 읽으면서 잠들고 싶기 때문이다. 가끔은 다른 언론사들, 연구소 보고서들을 검색해서 찾아보고, "역시 우리만큼 깊은 분석을 한 곳은 없군" 같은 자뻑에 빠지기도 하고, 반대로 다른 보고서들에서 다룬 내용 중에 기사에 충분히 언급할 수 있는 포인트를 놓쳤으면 나 자신의 무능을 자책하기도 한다.

스티브 잡스가 말한 'Great Product'가 어떻게 생산되는지에 대해서 수 많은 의견이 있겠지만, 모든 걸 다 떠나서 내가 쓰고 싶으냐를 충족시키는 상품, 아니 나와 비슷한 수요가 있는 사람들이 모두 선택할만한 상품의 자격이 있는지를 사용자의 시선에서 바라볼 수 있어야 그 상품의 완성도가 올라가고 'Great Product'가 될 후보 자격을 얻을 것이다.

워드프레스 개발자 뽑아야 되는 거 아닌가요? 음...글쎄요?

[개안뽑] 시리즈를 쓰면서 주변에서 "네가 워드프레스 개발자 뽑았어야 되는데 개발자를 잘못 뽑은거다"라는 지적을 받는데, 난 여전히 개발자의 사용 언어로 그렇게 개발자를 구분하는데 동의하기가 어렵다. 그리고, 워드프레스 개발자라는 사람을 뽑아도 위에서 지적한 '사용자 경험'의 결함 문제를 해결하기 어려운 것은 피차 일반일 것 같다. 그간 한국에서 봤던 개발자 분들 중에 게임사에서 QA 작업을 수십번도 더 해보신 분들마저도 기능 개발 오류를 찾는 부분은 전문가여도 정작 사용자들이 어떻게 쓸지를 짐작하고 거기에 맞춰 기획적인 사고력을 갖춘 경우는 찾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앞으로 다시 개발자를 뽑는다면, 아마 '워드프레스 개발자'를 뽑아야 될 것 같은데, PHP를 잘 알고, 백엔드, 프론트 엔드 개발 경험이 풍부하고, 워드프레스의 테마를 만들어 봤고, 서비스하는 플러그인을 만들어 본 경력이 있는 분들이 아니라, 워드프레스로 자기 회사 서비스들을 만들어보면서 불만이 있던 부분을 이래저래 뜯어고친 경험이 있는 사람들을 찾을 것 같다. 한국식으로 개발자, 디자이너, 기획자를 분리해라면 3가지 기능을 적당히 해 본, 한국에서 어디 하나의 직군으로 취직하기 쉽지 않은 분들일 것 같은데, 그간 내 경험상 그런 분들이 가장 효과적으로 내 업무를 대체해줄 수 있을 것 같다.

최근에 회사 내부에서는 100만원 남짓 들어간 서버 시스템으로 구글 페이지 스피드에서 전 영역 100점을 받을 수 있는 서비스를 낼 수 있는만큼, 이걸 Copy & Paste만 해주고 구글 기준 100점 받고 싶어하는 분들께 웹사이트 만들어주는 상품을 팔면 어떻겠냐는 말이 나온다. 웹사이트 제작 전문 에이전시들이 받는 금액의 절반만 받아도 충분히 수익성이 나올 수 있고, 구매자가 직접 이것저것 뜯어고치기 쉬울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수익성이 나쁘지 않을 것 같단다.

글쎄, 수익성이 엄청나게 좋을 것 같지도 않고, 실제로 이 정도 수준의 업무를 내가 하고 있을 수는 없으니까, 담당자를 1명 뽑는다고 하면 어떤 사람을 뽑아야할까는 생각을 한번 해 봤다. 우리 회사 서비스에 손을 대는 것도 바빠서 여유가 안 되는 상황인데, 서비스가 되어버리면 정말 담당자가 따로 배정이 되어야 할 것이다.

어차피 고객이 Copy & Paste된 페이지를 그대로 쓸 수는 없다. 최소한 로고라도 바꿔야 하고, 필요한 기능들이 다를 수도 있다. 그걸 다 맞춰줘야 되는데, 하나하나 들어주고, 거기에 맞춰 필요한 기능들을 설명해주고, 직접 해 볼만한 부분, 해 줘야 되는 부분들을 판단하고 답해줘야 한다. 한국에서 '개밥 테스트'해서 던져주면 자기 업무는 끝이라는 개발자가 이걸 할 수 있을까?

고객의 Needs를 잘 이해하고, 필요한 고민을 함께 해 줄 수 있어야 되는데, 그 모든 걸 1명한테 다 맡기는건 '너니까 할 수 있는걸 딴 사람에게도 강요하는 악독한 대표'라는 꾸중을 들었다.

내가 악독한 대표라면 결국엔 웹사이트 만들고 싶은 소비자들이 더 많은 인력을 갖춘 회사에 더 많은 돈을 지불해야한다. 내가 악독한 사람이 되는, 사고의 폭이 좁은 사람들 여럿을 써야만 겨우 사업이 돌아가도록 구성된, 이런 한국IT업계 사고 방식을 받아들이기가 너무 괴롭다. 그러니까 '[개안뽑]'을 이렇게 외롭게 외치고 있는 거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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