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산 공세 막겠다” EU ‘중국 지우기’ 급진전, 中도 반격 준비
“중국산 공세 막겠다” EU ‘중국 지우기’ 급진전, 中도 반격 준비
입력
수정
사이버 안보 우려에 따른 중국산 인버터 및 통신 장비의 퇴출 합의 첨단 기술 연구 지원 중단과 산업가속화법 통한 투자 진입 장벽도 구축 중국 의존도 탈피 및 역내 제조 경쟁력 강화 움직임 가속화

유럽연합(EU)의 대중(對中) 디커플링(탈동조화) 기조가 통신·반도체를 넘어 전력 인프라와 첨단 제조 전반으로 확산하고 있다. 중국산 장비를 사이버 안보 위협으로 규정한 EU는 보조금 제한과 공급망 규제를 결합해 중국 의존도를 낮추겠다는 전략에 속도를 내는 분위기다. 이에 반발한 중국 역시 대응 조치를 예고하고 있어, 향후 EU와 중국 간 통상·기술 갈등은 공급망과 투자 규제를 둘러싼 전면전 양상으로 번질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EU, 중국산 인버터 사용 시 보조금 중단
6일(이하 현지시간) 파이낸셜타임스(FT), 유로뉴스 등에 따르면 최근 EU 집행위원회는 중국, 러시아, 북한, 이란 등 고위험 국가로 취급되는 국가에서 생산되는 인버터를 유럽 시장에서 퇴출하는 데 합의했다. 중국 이외 국가의 인버터는 시장 점유율이 매우 작은 만큼 사실상 중국산 인버터 사용을 금지한 셈이다. 인버터는 재생 에너지원을 전력망에 연결하는 역할을 하는 핵심 장치로, 주로 태양광 패널이나 전기차, 풍력발전, 배터리 저장 시스템 등 여러 친환경 관련 제품에 탑재된다.
현재 중국은 인버터 시장에서 전 세계 공급의 80%를 차지할 만큼 확고한 지배력을 갖춘 상황이다. EU 집행위는 중국산 인버터가 잠재적인 사이버 안보 위협 수단으로 활용될 수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컨설팅 회사 우드매켄지가 1월에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중국 브랜드 화웨이와 선그로우는 지난해 상반기 세계 상위 두 태양광 인버터 제조업체로 선정되며, 독일의 SMA와 오스트리아의 프로니우스를 제쳤다.
이번 조치에 따라 금융기관들은 이달 15일까지 EU 내외에서 진행 중인 프로젝트를 EU 전력망에 연결된 중국 인버터를 사용할 경우 집행위에 통지해야 했다. 집행위는 올해 11월 1일까지 개별 사례별로 공급업체를 변경하지 않고는 사업을 지속할 수 없는 프로젝트에 대해 면제 여부를 결정할 방침이다. EU 집행위 당국자는 “급박한 외국의 사이버 위협 중 하나는 외국에서 EU의 핵심 에너지 인프라를 교란할 수 있다는 것”이라며 “실제로 EU 회원국 전력망을 인버터를 통해 원격 차단할 수 있다는 것이 확인됐다. 이렇게 되면 유사시 국가 전체가 정전 위협에 처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첨단 방산 분야서도 중국산 부품 완전 배제
유럽의 중국 배제 조치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EU는 인공지능(AI)·반도체 등 첨단 분야와 관련해 연구비 지원 프로그램인 '호라이즌 유럽(Horizon Europe)'에서도 중국 측의 참여를 막고 있다. 중국산 인버터 퇴출과 마찬가지로 이유는 민감한 정보 공유에 따른 안보 우려 및 군사적 전용 가능성 등이다. 집행위 관계자는 최근 웨비나를 통해 경제적·지정학적 환경 속에서 누구와 협력하는지 면밀히 살펴야 하는 상황이라고 밝히며 지식재산권(IP) 보호를 핵심 우려 사항으로 지목했다.
EU는 중국에 있거나 중국의 통제하에 있는 연구기관은 올해부터 AI·5세대(5G) 통신·보건·반도체·바이오·양자기술 등에 대한 연구비 지원을 신청할 수 없게 했다. 이에 따라 베이징항공항천대학 등 중국 산업정보화부 관련 7개 대학을 가리키는 이른바 '국방의 일곱 아들'도 연구비 신청이 막혔다. 중국 밖 연구기관이라 하더라도 협력하는 기관이 중국 기관에 의해 직접적으로 소유·통제되지 않는다는 점을 입증해야 해당 분야에서 연구비 지원을 받을 수 있다.
유럽은 또 산업가속화법(Industrial Accelerator Act·IAA) 추진을 통해 중국의 투자 참여를 제한하고 있다. EU 집행위가 지난 3월 초안을 발표했고 현재 회원국 논의가 진행 중인 이 법안은 배터리와 태양광 패널, 원자력 등 전략 산업에서 세계 생산의 40% 이상을 차지하는 국가로부터 1억 달러(약 1,450억원) 이상의 외국인 투자가 있을 경우 이에 대해 제한을 가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 담겼다. 구체적으로는 최소 50% 이상의 인력을 EU 내에서 고용해야 하고 현지 기업이 제조 과정에 참여토록 해야 하며 기술 노하우를 유럽 파트너에게 이전하도록 했다. 또 자동차 등 일부 핵심 산업 생산품에 대해서는 정부 조달이나 보조금 지급 대상으로 선정할 때 전체 가치 기준 최소 70% 이상이 EU산이어야 한다는 규정도 담고 있다.
EU 집행위는 지난해 이 법안에 대한 준비 작업을 하면서 "중국의 제조업 육성 전략인 '중국제조 2025'와 '중국제조 2035'를 참고해 반영했다"고 했다. FT는 "이 법안은 과거 중국이 외국 기업에 대해 합작투자 파트너와 함께 투자하도록 요구하고 기술 이전을 강제해 온 관행에 대한 EU의 대응으로 해석된다"고 짚었다. 현재 유럽 기업들은 정부의 대규모 보조금을 받는 중국 제조업체들이 기술을 확보하고 고부가가치 제품의 생산 능력을 갖추면서 더 이상 공정 경쟁이 어렵다고 호소하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중국 제조업체는 경쟁국 대비 3~9배 수준의 보조금을 받는다. 유럽은 과도한 보조금이 과잉 생산으로 이어져 저가 중국산 수입품이 역내 시장에 대거 유입된다고 본다. 그 결과 현지 제조업 경쟁력이 약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EU는 제조업의 역내 국내총생산(GDP) 비중을 지난해 14.3%에서 2035년까지 20%로 끌어올리겠다는 계획이다.

中 화웨이·ZTE 통신 장비 배제 권고도
EU는 여기에 그치지 않고 중국 통신 장비 기업을 유럽 통신 인프라에서 퇴출하는 움직임도 가속하고 있다. 집행위는 지난 4일 브뤼셀에서 열린 브리핑을 통해 회원국들이 자국 통신사업자의 연결 인프라에서 중국 화웨이와 ZTE 장비를 사용하지 않도록 권고했다고 밝혔다. 이 조치는 통신망 보안과 국가안보 우려를 이유로 이른바 ‘고위험 공급업체’ 장비를 단계적으로 줄이려는 유럽 차원의 움직임으로 해석된다.
EU는 현재 개정 중인 'EU 사이버 보안법(Cybersecurity Act)'을 통해 고위험 공급업체의 네트워크 장비 사용을 제한하거나 금지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마련하려 하고 있다. 아직 최종 법률로 확정된 단계는 아니지만, 기존의 자율적 권고 방식에서 벗어나 회원국 전체에 적용될 수 있는 강제 규제로 발전할 가능성이 커졌다.
이번 조치는 2020년 도입된 ‘5G 보안 툴박스(5G Security Toolbox)’의 연장선에 있다. 당시 EU는 5G 네트워크 보안을 강화하기 위해 회원국들이 공급망 위험을 평가하고, 고위험 공급업체 의존도를 줄이도록 하는 공통 지침을 마련했다. 이후 집행위는 2023년 6월 화웨이와 ZTE가 다른 5G 공급업체보다 실질적으로 더 높은 위험을 제기한다고 평가했다.
문제는 회원국들의 대응 속도였다. 일부 국가는 이미 화웨이와 ZTE 장비를 핵심 통신망에서 제한하거나 배제하는 결정을 내렸지만, 다른 회원국들은 중국의 보복 가능성과 장비 교체 비용 부담 때문에 신중한 태도를 유지해 왔다. EU 집행위가 이번에 더 강한 규제 카드를 꺼낸 배경도 여기에 있다. 자율 권고만으로는 유럽 전체의 통신망 보안 수준을 맞추기 어렵다는 판단이 작용한 것이다.
중국 “차별적 조치” 강력 반발
이에 중국은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중국 측은 “EU의 새 사이버보안 규칙이 중국 기업을 겨냥한 차별적 조치”라며 “사이버보안 우려 국가와 고위험이라는 표현이 포함된 조항을 삭제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중국 외교 당국자는 EU가 이중잣대를 적용하고 있다고 주장하며, 관련 규정이 수정되지 않을 경우 대응 조치를 취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화웨이도 EU의 움직임을 보호주의로 규정했다. 화웨이 측은 공급업체를 기술적 기준이나 실제 증거가 아니라 원산지 기준으로 제한하거나 배제하는 입법은 EU의 공정성, 비차별, 비례성 원칙에 어긋난다고 주장했다.
중국은 EU의 산업가속화법에 대해서도 날선 반응을 쏟아내며 대응 조치에 나설 수 있음을 경고했다. 중국 상무부는 지난달 27일 대변인 명의의 입장문을 통해 "상무부는 EU 집행위에 EU의 산업가속화법안에 대한 의견서를 공식 제출해 중국의 공식 입장과 엄중한 우려를 표명했다"고 밝혔다. 상무부는 해당 법안이 외국을 상대로 배터리·전기차·태양광·핵심 원자재 등 4가지 신흥 전략산업에 대한 투자를 제한하고 공공 조달·지원 정책에 'EU 원산지'라는 배타적 조항을 설정해 투자 장벽과 제도적 차별을 뒀다고 지적했다. 또 이에 대해 최혜국 대우 등 기본 원칙과 관세·무역 관련 협정 등을 위반했으며 시장 경제 원칙에 위배되는 조치로 중국 투자자들이 차별을 받게 될 것이라고 비판했다.
상무부는 이어 EU에 외국인 투자자에 대한 차별적 요구와 원산지 요구, IP·기술 강제 이전 요구, 공공 조달 제한 정책 등의 내용을 삭제할 것을 건의했다며 해당 법안에 대해 EU와 대화·소통을 원한다는 뜻을 표했다. 아울러 "EU가 중국의 제안을 무시하고 법 추진을 강행해 중국 기업의 이익을 해친다면 중국은 부득이하게 대응 조치를 취하고 중국 기업의 합법적 권익을 단호히 수호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중국 관영매체도 중국 내 전문가들을 인용해 비판의 목소리를 내놨다. 관영 글로벌타임스에 따르면 젠쥔보 푸단대 국제문제연구원 중국·EU관계센터 주임은 "이번 법안은 특히 신흥·전략 분야에서 중국 기업에 대한 심한 차별과 함께 명백한 보호주의와 특정 대상을 표적으로 한 특징을 지녔다"며 "확고한 법적·합리적인 근거가 부족해 최혜국 대우 원칙 같은 주요 국제 무역 규칙과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ATT) 1994 같은 협정을 위반할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했다.
스샤오리 중국정법대 WTO법률연구센터 주임은 "EU가 중국과의 경제 협력에 대한 실질적인 요구가 강하지만 미국의 압력으로 인해 무역법에 표적 조항을 삽입하는 등 억제 지향적 전략에 동조하게 됐다"며 "이는 EU와 회원국들의 근본적인 이익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젠 소장은 이어 "EU가 무역과 기술, 공급망 전반에 걸쳐 규제를 강화하는 것은 내부 분열, 산업 경쟁력 저하, 성장 동력 약화에 직면함에 따라 전략적 불안이 더 깊어졌다는 점을 반영한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