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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정부가 UN의 ‘사형제 집행 중단 결의안’에 찬성표를 던진 것으로 16일 확인됐다. 유관 기관인 법무부와의 협의 등을 거쳐 내린 결정으로, 우리 정부가 사형 집행 중단 결의안에 찬성표를 던진 것은 문재인 정부에 이어 이번이 두 번째다. 유엔 총회에 참석한 184개국 중 125개국(영국, 프랑스, 독일 포함)이 찬성표를 던졌고, 37개국이 반대표(미국, 중국, 일본 포함)를 던졌으며 기권은 22개국이었다.
사실상 사형 폐지국인 한국, 사형에 대한 찬반 근거 팽팽히 맞서
대한민국은 김영삼 정부 시절인 1997년 12월 30일 마지막 사형 집행이 있었고 그 이후 단 한번도 사형을 실제로 집행하지 않았다. 이에 사실상의 ‘사형 폐지국’으로 우리나라는 분류되고 있다. 그러나 헌법 제110조 4항에 의해 사형제도의 존재가 헌법적으로 사실상 인정되고 있기에, 사형제도 자체의 존재는 1996년, 2010년 있었던 헌법재판소의 두 차례 판단에 의해 합헌으로 인정되고 있다. 현재 헌재는 사형제에 대한 세 번째 헌법소원을 심리 중이다. 그렇게 사형 자체는 2005년 연쇄살인범 유영철에 대한 사형판결이 있었던 것처럼 1997년 이후에도 선고되고 있으며, 2022년 2월 기준으로 우리나라에는 59명의 살아 있는 사형수가 있다.
사형 제도 존치에 찬성하는 쪽은 ▲우리나라의 실질적 민주주의 및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오판에 의한 희생 확률이 낮고 ▲헌법상 간접적으로 그 존재가 인정되고 있으며 ▲범죄인, 피해자 그리고 일반 국민에게 갖는 심리적 효과가 분명히 존재하며 ▲사회정의를 추구하는 국민 법 감정과 사형제 존치가 좀 더 부합하다고 주장한다.
반대로 사형 제도 폐지에 찬성하는 쪽은 ▲사형의 범죄 억제 효과가 불확실하며 ▲인혁당 사건처럼 오판 가능성이 여전히 존재하며 ▲ 사형제 폐지가 OECD 회원국 등 인권 선진국의 스탠다드라고 주장한다.
실증적인 데이터 부족으로 철저한 가치 판단의 영역이 돼 버린 사형제도
사실 양 쪽이 내세우는 근거가 전부 각자의 타당성이 있다. 사형제 폐지 여부가 철저한 가치 판단의 영역에 해당한다는 뜻이다. 실제로 사형제도의 범죄 위하력 여부에 대한 국내의 과학적인 학술 연구는 매우 찾아보기 힘든데, 이는 실증적인 근거를 통해서 사형제도의 개폐를 논하는 것이 대한민국 현실상 매우 어려울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고학수 서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사형제가 범죄 억지력이 있는지 결론을 내리기 어렵다”는 의견서를 헌법재판소에 제출한 바 있다. 사형제의 효과를 분석할 수 있을 만큼 국내의 데이터가 풍부하거나 관련 분석이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에 ‘사형제 효과가 있다’ ‘효과가 없다’는 식의 결론 도출이 어렵다는 취지다. 고 교수의 지적대로, 사형제 폐지는 아직 객관적인 데이터를 통해 분석하기 어려운 영역에 해당한다. 즉 실질적인 사형제도가 갖는 범죄 위하력 여부 외에, 우리나라 사회의 전통적인 규범과 사회적 철학 등을 고려해서 판단해야 할 문제인 셈이다.
여론은 사형 제도 존치 및 사형 집행에 찬성
다만 한 가지 확실한 점은 윤석열 정부의 지지층은 사형 제도의 완전 폐지에 반대한다는 것이다. 아예 사형 집행 자체에도 찬성하는 비율이 높다. 2021년 머니투데이가 한국갤럽에 의뢰해 9월 13일과 14일 이틀 동안 진행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응답자 1007명 중 779명(77.3%)이 사형제도를 유지해야 한다고 답했다. 절대적으로 찬성 여론이 높은 셈이다. 정치성향별로는 보수 성향일 경우 사형제도 존치 찬성 비율이 81.7%로 높았다. 특히 사형제도 존치를 찬성하면서 집행에도 찬성하는 비율은 정치성향이 보수인 경우 무려 96.4%나 됐다.
비슷한 시기 실시된 일요신문의 여론조사 결과도 마찬가지였다. 여론조사기관 조원씨앤아이에 의뢰해 사형 집행 필요성 여부를 묻는 여론조사(2021년 9월 5일부터 7일까지 사흘간 만 18세 이상 유권자 1000명을 대상으로 진행, 95% 신뢰수준, ±3.1%포인트)에 따르면, 사형 집행이 필요하다고 응답한 비율은 70.2%였다. 특히 국민의힘 지지자의 사형 집행 찬성 응답 비율이 79.7%로 가장 높았다. 윤 대통령의 지지자들은 사형 집행에 대부분 찬성하는 셈이다.
이런 지지층의 여론에도 불구하고 윤석열 정부가 UN 사형제 모라토리움 결의안에 찬성한 것은 일종의 국제적이고 대외적인 ‘국가 이미지 관리’ 차원인 것으로 보인다. 법무부는 최근 헌재에 제출한 의견서에서 UN 결의안에 찬성했더라도 사형제 폐지를 찬성하는 것은 아니라는 취지의 주장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법무부는 “찬성 표결은 사형 집행을 유예하는 현 상태를 인정한 것으로, 국제사회의 인권 옹호 노력에 동참한다는 의의다. 결의안 찬성으로 사형제 폐지나 형법 체계 변경 등에 책임이 발생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결국 우리나라의 사형은 당분간 죄는 맞지만 그 죄를 받지 않는 상태에 머무를 것으로 보인다. 사실 59명이라는 현존하는 사형수의 수와, 97년 이후 단 한 명도 사형 집행이 되지 않았다는 점을 고려하면 사형제도의 범죄 억지력에 대해 정확한 연구를 산출하는 것은 앞으로도 어려운 일이 될 수밖에 없다. 이럴 경우 사형제도 존치 및 사형 집행 여부는 철저히 우리 사회의 윤리와 도덕 그리고 법 규범 및 국민 감정을 고려하는 정치적인 결정의 영역일 수밖에 없다. 헌법재판소의 현명한 결정을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