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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매년 해당 연도에 추진할 ‘정부입법계획’ 을 법제처 주관으로 수립한 뒤, 국무회의를 거쳐 매년 1월 31일까지 정부입법계획을 국회에 통지한다. 올해에도 정부는 2023년 1월 30일에 총 210건의 법률안 제출계획을 담은 『2023년도 정부입법계획』을 국회에 통지했다. 이를 통해 국회는 정부가 어떤 내용의 법률안을 언제 국회에 제출할지에 관한 정보를 미리 제공받아 의정활동의 예측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
하지만 현행 정부입법계획은 연중 수정이 잦고, 그 내용이 추상적이어서 활용도가 낮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사실상 '입법 예측'이라는 실질적 역할을 수행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에 일각에서는 의정활동의 효율성 제고를 위해 정부입법계획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정부입법계획제도의 문제점
2000년부터 2022년까지 정부입법계획 대비 정부안 실제 제출 실적 비율은 연평균 약 84.6%이며, 제출된 정부안 중 국회에서 가결(원안·수정)된 비율은 연평균 약 42%이다. 하지만 최근 10년으로 범위를 좁히면 정부안 연평균 가결률은 약 26%까지 하락한다. 2000년 이후 정부안 가결률이 점차 낮아지고 있다는 뜻이다.
정부입법계획의 실효성이 떨어지는 원인은 무엇일까. 가장 먼저 정부입법계획이 자주 변경되어 입법 활동 예측에 실질적 도움을 주지 못한다는 점이 꼽힌다. 정부가 정부입법계획에 반영하지 않은 법률안을 일단 국회에 먼저 제출하고, 정부입법계획을 사후 수정하는 경우가 대표적이다. 정부입법계획 수립 이후에야 관계기관 협의를 실시하는 현행 「법제업무 운영규정」 역시 문제로 지목된다. 입법 추진 과정에 이르러서야 이해관계자 간 이견이 부각되면 정부입법계획이 자주 변경될 수밖에 없다.
정부입법계획의 추상적인 기술 역시 제도의 효용성을 낮추고 있다. 현행 정부입법계획은 정부안의 ‘주요 내용’ 대신 ‘제안 이유’ 위주로 구성되어 있어, 어느 조항을 어떻게 개정할지에 관한 구체적인 정보가 부족한 상태다. 이에 더해 비교적 단기적 관점에서 수립되고 있어 대통령과 행정부가 추구하는 정책 비전을 명확히 드러내는 데에도 한계가 있다. 중·장기적 정책 목표와 방향성이 정부안의 미시적 내용 및 추진 일정 등과 어긋나고 있는 셈이다.
효율적인 의정활동 위한 제도 개선 필요
잦은 정부입법계획 변경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먼저 국무회의 보고 및 국회 통지를 의무화하는 방안을 검토할 수 있다. 「행정기본법」의 개정을 통해 정부입법계획 변경 절차를 강화하고, 정부입법계획을 신중히 수립하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부처별 입법계획을 수립해 정부입법계획에 반영한 뒤에야 관계기관 간 협의를 거치도록 하는 현행 「법제업무 운영규정」을 개편하는 방안도 고려해볼 수 있다. 관계기관 간 협의가 선행되지 않은 채 수립된 입법계획은 부처 간 이견으로 인해 철회·수정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한편 일각에서는 국가가 놓인 환경과 상황이 시시각각 바뀌는 만큼, 정부입법계획의 수정 역시 불가피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무조건적으로 계획에 얽매이다 보면 상황과 맞지 않는 계획들에 끌려다니게 되고, 오히려 의정활동의 효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정책 일관성 유지 측면을 고려하면 잦은 변경을 옹호할 수만은 없지만 없지만, 국민을 위한 변경이라면 의정활동에 일부 혼선이 생기더라도 기꺼이 감수해야 한다는 분석이다.
정부입법계획 작성 기준 구체화의 필요성도 제기된다. 정부입법계획은 국회와 일반 국민이 정부가 어떤 법률의 개정을 언제, 어떻게 추진할지를 알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 추상적이고 단편적인 형태로 작성되면 사실상 본래 목적을 달성하기 어려워진다. 이 같은 점을 고려해 정부입법계획에 반드시 포함되어야 할 사항과 작성 기준 등을 구체화해, 법률에 규정하는 방안을 고려해볼 수 있다.
상위 정책 비전과 정부입법계획의 유기적 연계를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를 위해 정부안 제출 시점이 국회 심의 결과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 국회 및 대통령 임기에 따른 중·장기 관점에서 정부입법계획을 작성·통지해야 할 필요가 있다. 국정 비전-입법 목표-정부안 추진과제로 이어지는 하향식(top-down) 수립 절차를 명확히 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정부입법계획제도는 정부가 형식적으로 입법계획을 작성·통지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었다. 의정활동은 물론 일반 국민의 정부 입법·정책 예측에도 실질적 도움을 주지 못하는 '구색 갖추기'에 불과했던 셈이다. 차후 의견의 절충과 심도 있는 논의를 통해 정부입법계획제도가 본분의 역할을 확실히 수행할 수 있게 될지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