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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일 방한한 야시르 오스만 알루마이얀 아람코 회장 겸 사우디 국부펀드 PIF(공공투자기금) 총재가 자산운용사, 연기금 등 한국 금융기관과 대대적인 미팅을 가질 예정이다. 앞서 넥슨, NC소프트에 대규모 자금을 투자한 PIF는 국내 금융기관과 장기적 협력 관계를 강화해 한국에서 더 다양한 투자 기회를 발굴할 계획이다.
PIF 총재 외에도 최근 글로벌 사모펀드들의 한국 투자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는 분위기다. 한국이 IT, 엔터테인먼트 등 신산업 영역에 선두 주자에 있다는 판단 아래 투자 포트폴리오를 다각화하기 위해서다. 다만 최근 제조업 기반 우리 기업들이 자금난에 허덕이고 있는 상황에 놓여 있는 만큼, 일각에선 글로벌 투자자들이 우리 기업의 지분을 값싸게 취득하기 위해 '냄새를 맡으러 온 것' 아니냐는 지적도 제기된다.
PIF 총재, 韓 금융업계와 장기적 관계 도모 위해 방한
7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글로벌 금융기업 HSBC가 8일 서울의 한 호텔에서 'PIF 투자 라운드테이블'을 주최한다. 해당 자리에는 알루마이얀 PIF 총재가 참석할 예정이다. 또한 자산운용사, 연기금 등 한국 금융기관과 PIF 고위급 인사들이 참석해 서로의 최근 동향과 투자 전략을 설명하고, 질의응답을 진행할 예정이다.
1971년 설립된 PIF는 사우디아라비아의 국부펀드로, 운용 자산(AUM)은 7,000억 달러(약 933조원) 이상이며 직간접적으로 56만 개의 일자리를 창출했다. 아울러 미래 석유 자원 고갈을 대비하고 경제 다각화를 추진하는 '비전 2030'의 중추 역할을 맡고 있다. PIF는 2030년까지 AUM 2조 달러(2,667조원)를 달성한다는 계획이다.
PIF 총재는 지난해 5월 윤석열 대통령 취임식 당시 한국을 방문한 뒤 1년 4개월 만에 한국을 다시 찾을 정도로 한국 투자 생태계에도 관심이 많은 것으로 알려진다. PIF가 한국 금융 기관 다수를 대상으로 미팅을 갖는 것은 한국 금융업계와 장기적 협력 관계를 구축하기 위한 차원으로 풀이된다. 그간 PIF는 넥슨의 일본 상장사 넥슨재팬에 누적 2조원 이상, NC소프트에 1조원 이상, 카카오엔터테인먼트 6,000억원을 투자하며 주목받았다. 향후엔 이같은 개별 투자 건에 대한 직접 검토를 넘어 유망한 한국 벤처케피털(VC), 사모투자펀드(PEF) 운용사 등에 출자함으로써 보다 속도감 있는 투자를 진행할 가능성이 높게 점쳐진다.
다만 사우디가 올해 들어 한국 증권 시장에서 주로 매도 포지션을 구축했던 만큼, 한국 투자에 대해선 아직 아직 확신하긴 이르다는 지적도 나온다. 금융감독원이 발표한 '외국인 투자자 증권 매매 동향'에 따르면 올 1월부터 올 7월까지 사우디 국적 투자자들은 1월과 6월을 제외하곤 유가증권시장에서 총 1조3,070억원을 순매도했다.
관련주 급등세로 이어져
한편 PIF 총재 방한 소식에 네옴시티 관련주들 또한 급등세를 보였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알루마이얀 PIF 총재 방한 소식이 처음 공개된 1일 기준 네온시티 관련주 중 희림은 전 거래일 대비 29.94% 상승한 8,680원으로 장을 마쳤고, 한미글로벌 주가는 전 거래일 대비 21.22% 오른 28,850원으로 장을 마감했다. 이외에도 인디에프, 유신, 코오롱글로벌, 제이엔케이히터, 도화엔지니어링, 수성샐바시온, SM Life Design 등 주가도 이날 급등세를 기록했다. 네옴시티는 무함마드 빈 살만 알사우드 사우디 왕세자 겸 총리가 주도하는 2030년 목표의 대규모 신도시 건설사업으로, 그 규모는 1조 달러(약 1,336조원)에 달한다. 우리나라 기업들 또한 해당 프로젝트에서 주요 사업을 수주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아울러 HD현대도 PIF와의 협력 기대에 주가가 상승세를 기록했다. 8일 HD현대는 오후 12시 26분 기준 전날 대비 5.02% 오른 66,900원에 장중 거래되고 있다. HD현대는 아람코, 사우디아라비아와 정유, 건설기계, 조선 부문에서 오랜 기간 협력 관계를 맺어오고 있다. 특히 HD현대는 2017년부터 사우디아람코개발회사, 사우디 국영 해운사인 바흐리 등과 삼자 협력을 통해 496만㎡(약 150만 평) 부지에 합작 IMI를 건설 중이다. IMI는 중동 지역 최대 조선소로 올해 말 준공을 앞두고 있다.
글로벌 투자자들의 韓에 대한 관심 느는 추세
알루마이얀 PIF 총재뿐만 아니라 최근 들어 글로벌 금융회사의 한국 진출과 최고경영자들의 방한이 잇따르고 있는 분위기다. 당장 지난 7월엔 글로벌 사모펀드 운용사 콜버그크래비스로버츠(KKR) CEO가 방한해 국내 기관투자자(LP)들 간의 관계 강화를 도모한 바 있으며, 이달엔 텍사스퍼시픽그룹(TPG) 창립자인 짐 콜터 회장이 한국을 찾을 예정이다. 이에 전직 IB 업계 관계자 A씨는 "올 연초부터 아시아 시장을 담당하는 글로벌 사모펀드 고위 관계자들이 한국을 방문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며 "중국의 경기 침체가 장기화되면서 이런 추세는 더 강화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처럼 글로벌 '큰손'들이 한국 투자에 관심을 갖는 건 정보기술(IT)·엔터테인먼트·K-뷰티·헬스케어 등 이른바 신산업 영역에서 한국이 선도적인 위치에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신성장동력을 발굴하려는 글로벌 투자자들 입장에서 IT 강국을 표방하는 한국만큼 적절한 투자 파트너를 찾긴 어렵다는 해석이다. 실제 지난해 5월 아랍에미리트(UAE) 국부펀드 무바달라는 GS 등과 컨소시엄을 맺고 보톡스 제조사 휴젤을 1조7,200억원에 인수했고, 2017년 TPG는 카카오모빌리티에 컨소시엄 형태로 4,500억원 규모의 투자를 집행한 데 이어 지난 7월엔 화장품 용기 등을 제조·판매하는 회사 삼화를 인수키로 했다.
다만 일각에선 최근 우리나라의 기업들이 사업 영위를 위한 자금 조달에 난항을 겪고 있는 가운데, 글로벌 사모펀드들이 우리 기업을 헐값에 지분을 사들이기 위해 한국을 탐색하러 왔다고 봐야 한다는 시각도 나온다. 이와 관련해 A씨는 "현재 중국의 경기 불황으로 제조업 중심의 우리나라 기업들이 무역 실적 악화가 계속되면서 '지갑이 홀쭉'해지고 있는 가운데, 설비 투자를 위해 울며 겨자 먹기로 자산 매각을 진행하는 경우도 빈번하다"며 "이를 포착한 글로벌 투자자들이 자금 조달에 절박한 우리 기업들의 지분을 값싸게 취득하기 위해 주변을 탐색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