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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연방정부가 채무 한도를 사실상 확대하면서 장기채 금리가 급등함에 따라 이자 부담에 따른 경기 둔화가 가속화되는 모습이다. 특히 원유를 비롯한 원자재 가격이 큰 폭의 하락세를 나타내고 있다.
4일(현지시간) 뉴욕상업거래소에서 11월 인도분 서부텍사스산원유(WTI) 선물 가격 종가가 배럴당 84.22달러로 전 거래일 종가 대비 5.01달러(5.6%) 급락했다. 지난달 27일 94달러까지 치솟았던 점을 감안하면 1주일만에 10달러나 하락한 것으로, 지난 8월 31일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이다. 같은 날 런던 ICE선물거래소에서는 11월 인도분 브렌트유 선물이 전일 종가보다 5.11달러(5.6%) 내린 배럴당 85.81달러로 장을 마쳤다.
장기채 금리 급등에 장기 경기 침체 우려, 유가 하락세 가속화
미국 중앙은행(Fed)의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위원들이 고금리가 기존 예상보다 장기간 이어질 것이란 발언을 연일 내놓는 데다 미국 연방정부의 장기채 국채 물량이 지속적으로 증가하면서 단기 금리뿐만 아니라 장기 금리도 고금리를 유지하게 됐다는 것이 금융업계의 분석이다.
특히 내년 초부터 금리 인하에 돌입할 것이라는 기대의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비관론이 설득력을 얻고 있어 국제 유가도 동반 하락하는 모습이다. 시카고상품거래소(CBOT)에서는 4일(현지시간) 원유 선물뿐만 아니라 금, 은을 제외한 대부분의 주요 금속 광물들에 대한 수요도 동반 하락세를 나타냈다. 금 선물이 2.6달러, 은 선물이 0.214달러 올라 각가 1,837.4달러, 21.36달러를 기록한 것을 제외하면 구리가 0.29% 하락, 알루미늄이 0.18% 하락 등 대부분의 금속 광물 가격이 하락세를 보였다.
고금리로 주택 수요도 빠르게 얼어붙고 있다. 모기지 금리가 지난 3일(현지시간) 평균 7.22%까지 치솟자 미국 모기지은행협회(MBA)가 발표한 모기지 신청 지수는 지난주에 앞선 주 대비 6%, 전년 동기 대비 22% 하락했다.
사우디 감산 발표에도 하락세 못 막아
신용등급이 낮은 기업들을 대상으로 한 하이일드 채권 투자금액도 급격하게 줄어들고 있다. JP모건 체이스에 따르면, 지난 2일(현지시간) 7억1,700만 달러(약 9,596억원), 3일(현지시간)에는 8억1,600만 달러(약 1조925억원)가 빠져나갔다. 우량 기업들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회사채 금리가 오르면서 안정성이 높은 회사채와 미 국채 간 금리 격차를 나타내는 ‘ICE 뱅크오브아메리카(BofA) 지수 옵션조정 스프레드’는 3일 2bp (1bp=0.01%포인트) 커져 평균 128bp로 벌어졌다.
유가 하락세가 가속화되자 사우디아라비아 에너지부는 이날 공식 성명을 내고 연말까지 하루 100만 배럴 수준의 자발적 감산을 지속한다고 공식 발표했지만 유가 하락 흐름을 막진 못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원유 시장 전문가 발언을 인용해 국제유가가 추가 하락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전문가들은 사우디 등 석유수출국기구플러스(OPEC+)의 감산에도 당분간 시장 내 공급량이 줄어들지 않고, 수요 회복세 역시 더뎌 중동 산유국들이 기대하는 국제유가 상승은 없을 것으로 봤다. 오히려 브렌트유 선물 가격에서 콘탱고(contango) 현상이 시장에 나타났다며 국제유가 추가 하락을 점쳤다. 콘탱고는 가까운 선물 계약 만기 가격은 낮고, 만기일이 멀수록 가격이 높아지는 현상으로, 공급이 충분하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WSJ은 "브렌트유 콘탱고 현상으로 펀드 매니저들은 석유 파생상품에 투자하는 것을 주저하게 할 것"이라며 "이는 석유 강세장에 추가 위험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산유국의 감산이 시작된 상황에서도 콘탱고 현상에 나타난다는 것은 감산에 따른 가격 영향이 크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WSJ은 짚었다.
경기 회복 전에는 유가 오를 일 없을 것이란 전망도
금융권 전문가들은 경기 회복이 가시화되기 전에는 국제유가가 상승세로 돌아서기 어려울 것으로 전망하며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따른 식량 공급 붕괴, 미-중 갈등에 따른 반도체 가치 사슬 및 원자재 공급 왜곡 현상 등이 오히려 경기 회복을 더 더디게 하고 있는 만큼, 내년 상반기까지 국제 유가가 상승세로 돌아서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예측이다. 국내 금융권의 한 관계자는 유가 선물 가격에서 콘탱고 현상이 나타나는 것도 시장에 이미 공급이 충분하다는 신호인 만큼, OPEC 국가들이 추가 감산에 나설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기도 했다.
글로벌 생산량 증가가 국제유가를 끌어내릴 것이라는 관측도 나왔다. 씨티그룹은 최근 내놓은 4분기 전망보고서에서 브렌트유 기준으로 4분기 평균 82달러, 내년 평균 74달러로 예측했다. 사우디와 러시아가 유가를 끌어올리기 위해 감산을 지속하고 있지만 미국, 브라질, 캐나다 등 비 OPEC 국가들의 생산이 늘었고, 재정난에 봉착한 베네수엘라와 이란의 수출이 증가했다는 이유에서다.
국제 유가 시장 전문가들은 사우디와 러시아의 감산 발표가 현실성이 부족하다는 지적도 내놓는다. 재정의 대부분을 석유 수출에 의존하는 사우디와 전쟁 자금이 부족한 러시아가 장기적으로 감산을 유지할 가능성이 낮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