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수정
유럽 완성차 업체들로부터 내연차 기술 전수받던 ‘중국 자동차 업계’ 전기차·자율주행 시대 맞아 이젠 ‘기술력 제공’하는 위치로 올라서 현대차·KG 모빌리티 등 국내 기업들도 ‘중국 따라잡기’에 열중
글로벌 자동차 제조사들이 최근 중국 자동차 시장에 맞춘 사업전략을 내놓고 있다. 대표적으로 독일의 폭스바겐은 중국 내 보급형 전기 자동차를 위해 새로운 플랫폼을 개발하고 현지 부품까지 적극 사용하고 있다. 현대차그룹 등 국내 기업들도 중국 완성차 업체와의 교류를 통해 중국 전용 제품 제조 및 판매에 나선 가운데, 미쓰비시 등 일본의 몇몇 완성차 업체들은 '중국 따라잡기'에 실패하자 아예 중국 시장을 포기하고 사업을 철수하고 있다.
중국 시장에 맞춰 과거 전통적 제조 방식까지 버린 ‘폭스바겐’
27일(현지 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독일 폭스바겐이 새 모델을 내놓는 중국 전기차 제조사들과 경쟁하기 위해 신차 개발 주기를 기존 4년에서 2년 6개월로 줄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폭스바겐은 현재 2026년 출시 예정인 중국 시장용 보급형 전기차에 탑재할 새 전기차 플랫폼까지 개발 중이며 2030년까지 중국에서 새 전기차 모델을 30개 이상 출시할 계획이다.
폭스바겐은 과거 유럽에서 자동차를 생산하고 중국 시장에 맞춰 개량해 수출해 온 전통적 제조 방식을 버리고 있다. 이미 현지 공급업체로부터 디스플레이, 미디어 시스템, 전기차 배터리와 헤드라이트 등 부품 조달을 늘리고 있으며, 여기에 중국 내수용 전기차 생산을 위한 새로운 전용 플랫폼까지 개발에 나서며 수요층 확대에 힘쓰고 있다. 폭스바겐에 따르면 해당 플랫폼을 통해 4개 차종이 개발될 예정이며, 중국의 상하이자동차 및 제일자동차그룹(FAW)과의 합작을 통해 생산이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나아가 폭스바겐은 중국의 첨단 전기차 기술을 확보하기 위해 현지 기업에 수십억 달러를 투자하고 있다. 중국 자율주행 소프트웨어와 반도체를 만드는 호라이즌로보틱스와 중국 전기차 스타트업인 엑스펭, 배터리 제조업체인 궈시안하이테크 등이 투자 대상이다. 폭스바겐 중국 승용차 부문 최고경영자(CEO) 랄프 브란트슈테터는 “전동화와 디지털화된 중국 자동차 시장에선 고객 요구사항이 시시각각 변화하기 때문에 과거와 같은 접근 방식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며 “기존의 중국 기업들이 보여준 것처럼 비용 최적화가 이뤄진 생산 플랫폼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도요타, 스텔란티스’ 등 중국으로 몰려드는 글로벌 완성차 기업들
중국은 이미 5년 전 전 세계 가장 중요한 자동차 시장이 됐다. 지난 4월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처음 중국에서 열린 세계 최대 모터쇼 ‘2023 상하이 모터쇼’에선 전 세계 주요 업체들이 잇따라 신차를 선보인 점이 이를 증명한다.
이러한 중국 시장을 점유하기 위해 폭스바겐뿐만 아니라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은 중국 기업들로부터 전기차 제조·판매 노하우 등을 습득하고 있다. 크라이슬러, 피아트, 지프 등의 브랜드를 소유한 스텔란티스는 지난달 중국 전기차 회사 립모터(Leapmotor)의 지분 20%를 인수하며 현지에서 전기차를 공동 개발해 중국에서의 입지 강화에 나섰다. 일본의 도요타는 지난해 10월 중국 비야디(BYD)의 전기 모터와 배터리를 탑재한 전기차 ‘bZ3’을 출시하기도 했다.
국내에서는 현대차그룹과 KG모빌리티 등 주요 완성차 기업들이 중국 내 판매 부진에서 벗어나기 위해 중국 기업들과 적극 교류하고 있다. 기아는 올해 말 중국 전략차종으로 출시 예정인 준중형 전기 SUV ‘EV5’의 중국 판매분에 BYD의 블레이드 배터리를 탑재할 예정이며, KG모빌리티도 지난 9월 출시한 전기 SUV ‘토레스 EVX’에 BYD의 배터리를 사용했다.
업계 관계자는 “중국 자동차 시장의 주요 고객인 젊은 소비자들은 자동차를 살 때 주행 성능이나 승차감보다 자율주행 기술, 최신 소프트웨어 서비스 등의 탑재 여부에 더 민감한데, 이러한 변화에 상대적으로 둔감했던 전통 완성차 업체들이 현지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며 “과거에는 창청, 체리, 지리자동차 등 중국 완성차 업체가 현대차를 롤모델 삼아 공정관리, 연구개발에 상당한 투자를 해왔지만, 이제는 반대로 우리 기업들이 중국 완성차 업체 따라잡기에 나서고 있다”고 전했다.
중국산 전기차 따라잡기를 포기하고 아예 중국 시장에서 철수하거나, 탈(脫)중국을 고민하는 기업들도 있다. 코로나 팬데믹 이전인 2019년 중국에서만 12만3,581대를 판매한 일본의 미쓰비시는 지난해 판매량이 3만1,826대에 그치면서 광저우자동차그룹과 합작사업을 중단하고 지난달 중국 시장에서 철수했다. 또 지난 7일 월스트리트저널 보도에 따르면 스바루와 닛산은 2023회계연도 상반기(4~9월) 중국 내 매출 규모가 각각 37%, 20% 줄자 탈중국을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