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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임의경매 매물 10만5,614건, 1년 새 61% 늘어 집값 상승기 무리하게 대출 받아 집 산 ‘영끌족’ 매물로 추정 올 상반기까지 고금리 기조 지속될 경우 매물 더 늘어날 전망
지난해 대출 원리금을 제때 갚지 못하고 경매에 넘어간 부동산이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주택 시장 침체와 지속된 고금리 기조에 더해, 이례적으로 전세사기가 급증한 영향으로 풀이된다. 업계에선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이어진 집값 상승기에 부동산 시장에 뛰어든 소위 ‘영끌족’들의 매물이 경매 시장으로 쏟아진 거란 분석과 함께 올 상반기까지 한국은행의 긴축 기조가 지속될 것으로 예상됨에 따라 향후 경매로 넘어가는 매물이 더 늘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부동산 호황기 끝나자 경매장으로 쏟아진 부동산 매물
28일 법원 등기정보광장에 따르면 지난해 부동산(토지·건물·집합건물 등) 임의경매 개시결정 등기 신청 건수는 총 10만5,614건으로, 2014년(12만4,253건) 이후 9년 만에 처음으로 10만 건을 넘어섰다. 임의경매 개시결정 등기 신청 건수는 2019년 9만8,095건에서 2020년 8만7,812건으로 소폭 하락한 이후 부동산 시장이 호황이었던 2021년(6만6,248건)과 2022년(6만5,584건) 6만 건대로 크게 줄었다. 그러나 이후 부동산 시장 침체가 본격화하자 전년 대비 61% 가까이 급증했다.
지역별로는 경기가 전년(5,182건) 대비 114.3% 증가한 총 1만1,106건으로 가장 많았다. 특히 전세사기가 많았던 수원시의 경우 지난해 집합건물 임의경매 개시 결정 등기신청 건수가 전년(352건)보다 181% 급증했다. 그 외 서울이 74.1% 늘어난 4,773건, 부산이 105.4% 늘어난 4,196건으로 뒤를 이었다. 이 밖에도 광주(973건, 103.5% 증가), 세종(424건, 74.4% 증가), 충남(1,857건, 76.3% 증가) 등도 평균 증가율을 웃돌았다.
임의경매는 채권자가 빌린 대출금을 회수하기 위해 담보로 설정한 부동산을 경매에 넘기는 절차로, 강제경매와 달리 별도의 재판 없이 곧바로 법원에 경매를 신청할 수 있다. 통상 은행 등 금융기관이 채권자일 경우 임의경매가 활용된다. 지난해 임의경매 개시결정 등기가 신청된 부동산 가운데 집합건물(아파트·오피스텔·다세대주택 등)은 3만9,059건으로, 전년(2만4,101건) 대비 62% 급증했다. 업계는 소위 ‘영끌족’이 지속된 고금리 속에서 대출금 상환에 어려움을 겪음에 따라 임의경매에 넘어간 집이 늘어난 것으로 보고 있다.
"누군가의 불행이 다른 누군가에겐 기회", 경매 물건 노리는 수요자들
이런 가운데 앞으로 임의경매 증가세가 지속될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지난해 임의경매 개시결정 등기 신청 건수 급증의 배경으로 꼽히는 고금리 기조가 올해도 지속될 가능성이 높은 탓이다. 고금리가 장기화하면 대출금 상환에 어려움을 겪는 차주가 늘어나는 것은 물론, 위축된 부동산 시장마저 반전될 가능성이 낮아진다. 앞서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금통위)는 지난 11일 통화정책방향 회의를 열고 기준금리를 동결한 바 있다. 지난해 2월 이후 총 8차례에 걸친 기준금리 동결로, 2008년 11월(4.0%) 이후 최고 수준의 금리가 1년 가까이 유지되고 있는 셈이다. 금통위는 이날 8회 연속 기준금리 동결 배경에 대해 “물가상승률이 둔화 흐름을 지속하고 있지만 여전히 높은 수준이고 전망의 불확실성도 큰 상황인 만큼 긴축 기조를 유지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판단했다”며 “당분간 물가상승률이 목표 수준으로 수렴할 것이라는 확신이 들 때까지 통화긴축 기조를 충분히 장기간 지속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업계서도 올해 상반기까지는 고금리 기조가 이어질 것이라는 게 중론이다. 금융투자 업계 관계자는 “정부가 올해 연말 국내 물가상승률이 2%에 가까워질 것으로 점치고 있지만, 전달 3.2%를 기록하는 등 아직 3%대인 물가를 고려하면 기준금리 인하는 시기상조”라면서 “특히 중동 리스크와 같은 불확실성이 잇따를 경우 최근 하락세를 보이는 국제유가가 반등함에 따라 물가 둔화에도 제동이 걸릴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급매물이나 경매물건을 노리는 수요자들의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 현재 서울 등 주요 주택 시장 가격이 전반적으로 높다는 심리가 형성된 상황에서 실수요자들 사이에선 보다 저렴한 가격에 내집 마련이나 상급지로 갈아탈 기회로 인식되는 것이다. 부동산 업계 관계자는 “거래 절벽 등 부동산 시장이 침체에 빠지면서 급매물을 기다리는 수요자들이 늘어나는 추세”라면서 “특히 서울에선 경매물건이 급매물보다 더 저렴한 경우가 많기 때문에 법원에 분위기를 살피러 나가는 수요자들마저 늘고 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