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수정
경기도 협력으로 8년여 사업 추진
7,000억원 쏟아붓고 ‘프로젝트 중단’
경기도는 책임 회피, 부채는 눈덩이
CJ라이브시티가 8년 동안 추진해 온 K-컬처밸리 복합개발 사업을 백지화한 후 그 여파가 그룹 전반으로 확대되는 분위기다. 사업 준비 과정에서 투입한 수천억원대 자금을 고스란히 손해 보는 것은 물론 기존에 보유하던 아레나 공연장까지 경기도에 증여하게 된 탓이다. 여기에 그간 사업 지연에 따른 지체상금 문제 또한 남아있어 그 손해가 눈덩이처럼 불어날 것이라는 업계의 평가다.
50개월 씨름 끝에 백기 든 CJ라이브시티
8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CJ라이브시티는 오랜 시간 진행해 온 K-컬처밸리 복합개발 사업의 무산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앞서 CJ그룹은 2015년부터 2조원대 규모의 ‘K-컬처밸리 프로젝트’를 추진해 왔다. 해당 프로젝트는 CJ그룹과 경기도 협력해 고양시 장항동 일대에 세계 최대 규모의 K-팝 공연장(아레나)과 사무실, 상업시설 등이 밀집한 복합문화시설을 조성하는 대대적인 국책사업이었다.
프로젝트 추진을 위해 CJ ENM은 2015년 말 지분 90%를 출자하는 방식으로 CJ라이브시티를 설립하고 사업을 주도해왔다. 하지만 장장 50개월에 걸친 인허가 지연과 건설 원자재 가격 상승, 인근 하천 수질 개선 공공사업 지연, 전력 공급 유예 통보 등으로 결국 지난해 공사 중단을 맞았다. 이후 경기도와 합의점을 도출하지 못했고, 결국 지난 7월 프로젝트 중단을 결정했다.
CJ라이브시티가 K-컬처밸리 복합개발사업을 추진하면서 투입한 사업비는 7,000억원에 육박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막대한 투자금은 대부분 차입금으로, CJ라이브시티의 부채비율은 2023년 말 기준 4,748%에 달했다. 순차입금은 5,966억원에 이르는 반면 보유 현금및현금성자산은 33억원에 불과하다. 결국 모회사인 CJ ENM의 자금 수혈이 필수인 셈이다.
경제자유구역 지정 늦춰지며 경기도도 몸살
K-컬처밸리 조성 사업의 장기화는 경기도에도 부담으로 작용했다. 공사가 차일피일 미뤄지며 고양 지역 정치권과 시민들 사이에서 우려가 쏟아진 것이다. 당초 경기도는 K-컬처밸리 일대를 경제자유구역으로 지정한다는 청사진을 제시하며 상반기 내 이를 위한 구상안을 산업자원통상부에 제출할 방침이었다. 하지만 이는 두 달 이상 지체됐다. 경제자유구역으로 추진할 후보지 선정이 문제가 됐다. 앞서 경기도는 지난해 5월 산업연구원에 경제자유구역 추가지정 개발계획 수립 연구용역을 의뢰, 후보지 면적이 지나치게 비대하다는 의견을 받았다.
이에 경기도는 26.7㎢(약 800만 평)이던 기존 후보지에서 K-컬처밸리를 포함한 개발 지역은 배제하고 17.66㎢(약 534만 평)으로 34% 축소해 경제자유구역 지정을 추진했다. 하지만 CJ라이브시티와의 계약이 해지되며 K-컬처밸리를 다시 후보지에 포함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 이를 위해서는 개발 계획을 초기부터 전면 수정해야 하는 것은 물론, 주민 의견 청취 등의 절차를 거쳐야 한다. 무엇보다 산자부에서 이를 수용할지도 불확실한 상황이다.
시민들 사이에서는 CJ라이브시티와 사업 협약 해제에 대한 설명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지난 7월 경기도청원 사이트에 게시된 ‘CJ라이브시티 관련 상세한 소명, 재검토, 타임라인 제시 요청’ 제목의 글에서 청원인은 “경기도는 관련 사업 지연에 대한 책임과 그간의 해결 노력에 대해 설명해 달라”며 “주택용지 중심의 특색 없는 개발이 될까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이어 “향후 일정과 목표도 제시해 달라”고 요청했다. 해당 청원은 보름 만에 도지사 답변 기준인 1만 명을 충족했다.
이와 관련해 김완규 경기도의원은 “8년간 지연된 경기 북부 최대의 민간투자사업인 K-컬처밸리가 백지화 되고, 이에 상세한 소명과 재검토를 요구하는 도민 청원이 이미 1만 명을 넘었다”며 “공공주도의 공영개발을 발표한 경기도가 구체적인 계획이나 재원 조달 방안은 제시하고 있지 않은 상황에서 고양시 경제자유구역 추가 지정에 피해가 가지 않도록 책임감 있는 행정을 해야 한다”고 힘줘 말했다.
김동연 경기도지사는 “CJ 측의 전체 공정률은 약 3%에 불과한 데다 사업계획을 4차례나 변경했으며, 지난해 10월에는 계약당사자인 경기도와 협의 없이 국토부의 ‘민관합동 건설투자사업 조정위원회’에 상업용지와 숙박용지의 계약 해제를 요구하기도 했다”며 “CJ라이브시티는 도민과의 약속을 어겼고 공사 주체로서 책임을 회피했다”고 말했다. 계약 해지와 공사 중단의 책임이 CJ라이브시티에 있다는 취지의 발언으로 해석된다.
막대한 차입금 규모, 나눠 갚기에도 버거워
CJ 측은 경기도가 사업 무산의 책임을 CJ라이브시티에만 돌리고 있다는 점에서 매우 부당하다며 반박에 나섰다. CJ는 “경기도의 일방적인 사업 협약 해제 통보에 재고를 요청하는 공문을 두 차례 발송했지만, 구체적인 해제 사유에는 답하지 않았다”고 주장하며 “당사의 이런 노력에도 경기도의 경직된 행정으로 사업 정상화가 점점 요원해지는 현 상황에 대해 깊은 유감을 표한다”고 말했다. 나아가 CJ는 사업 무산에 대한 천문학적 손해 또한 고스란히 떠안게 됐다.
CJ라이브시티는 그간 키움증권, KEB하나 등 금융사로부터 유동화 대출, 사모사채 등을 일으켰다. 또 기업어음도 다수 발행했다. 현재 공시된 부채 대부분은 1년 이내 상환해야 한다. CJ라이브시티의 지분은 90%가 CJ ENM가 들고 있는데, 문제는 CJ ENM의 재무상태에도 먹구름이 껴 있다는 점이다. 공시에 따르면 CJ ENM은 지난해 말 연결기준 146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당기 순손실 규모만 3,967억원에 달한다. 매출은 4조3,683억원으로 전년 대비 8.8% 감소했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해 12월에는 CJ라이브시티에 1,500억원 규모의 유상증자까지 단행했다. CJ ENM을 넘어 그룹 차원의 ‘빚 나눠 갖기’가 절실한 이유다.
한국신용평가는 올해 1월 CJ라이브시티 기업어음에 대한 신용평가를 진행하며 “모회사의 재무적 융통성이 인정된다”면서도 “CJ ENM이 CJ라이브시티의 사업계획 재점검, 지분 투자 최소화 등을 통해 투자 부담을 완화할 수는 있지만, 유의미한 수준의 재무 부담 완화는 쉽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