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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박 수위 높인 영풍·MBK, 고려아연은 ‘소수주주 과반결의제’로 맞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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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현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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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K·영풍 경영권 행사 견제 시도
국민연금 ESG 평가 노렸나
유상증자 철회로 역전 기회 무산

MBK파트너스·영풍 연합과 경영권 분쟁을 벌이고 있는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이 기관 투자자 및 소액주주 마음잡기에 분주한 모습이다. 소수주주 과반결의제(MOM·Majority of Minority Voting) 도입을 추진하겠다고 밝히면서다. 업계는 수세에 몰린 최 회장의 MOM 카드가 실현되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전망하면서도, 이 과정에서 기관 투자자의 환심을 살 수 있을지 주목하는 모양새다.

전체 주주 이익 위해 지배주주 의결권 행사 차단

15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최 회장은 13일 기자회견에서 이사회 의장직을 내려놓고, 소액주주 권리 보호의 일환으로 MOM 도입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MOM을 통해 일정한 이사를 추천하는 방안 등에 대해 검토하고 있다”며 “이를 통해 소액주주의 의사와 여론을 이사회 구성과 주요 경영 판단에 반영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현재 고려아연의 지배 주주인 MBK·영풍 연합의 경영권 행사를 견제 또는 차단하는 장치를 만들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MOM은 합병이나 분할합병, 포괄적 주식교환 등 지배주주와 일반주주 간 이해충돌의 소지가 있는 안건에서 지배주주의 의결권 행사를 제한하는 제도다. 예컨대 주주인 이사가 자신의 보수를 정하는 안건 또는 오너 일가 구성원의 개인 자산을 회사에 양도하는 안건 등에서 이해관계인은 의결권이 없다. 이는 해당 의사 결정이 전체 주주의 이익에 반하지 않도록 하는 데 그 목적이 있다.

미국 내 기업들은 합병 과정에서 이같은 MOM을 자주 활용한다. 의무는 아니지만, 법적 분쟁이 따를 것을 우려한 대주주가 자발적으로 도입하는 사례가 대부분이다. 이는 주주소송이 잦은 미국의 기업 환경과도 관련이 있는데, 미국의 경우 디스커버리(증거개시) 제도가 있어 주주의 피해사실을 입증하기 쉽고, 우리와 달리 배상이 주주들에게 직접 주어지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선 2015년 삼성물산 합병과 관련한 삼성바이오로직스의 행정소송과 올해 7월 두산그룹 내 두산밥캣과 두산로보틱스 불공정 합병 논란 당시 도입이 논의된 바 있다.

국내에서 주로 활용되는 지배주주 견제 장치는 상법상 ‘총회의 결의방법과 의결권의 행사’다. 상법 제368조 제3항은 “총회의 결의에 관하여 특별한 이해관계가 있는 자는 의결권을 행사하지 못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하지만 이를 엄격하게 적용하는 데는 무리가 있다. ‘특별한 이해관계’에 대한 구체적인 정의가 없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최준선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는 “상법에 지배주주 견제 장치가 있는데, 선례가 별로 없다”며 “주주들이 소송을 걸고 판례가 축적돼야만 이를 따져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분 열세 ‘명확’, 우군 확보 관건

업계에선 MBK·영풍 연합 측의 압박에 몰린 최 회장이 절박함에 MOM 카드를 꺼내 든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이르면 연말 임시 주총이 열릴 가능성이 큰 현재 MBK·영풍 연합 측보다 지분 열세를 보이는 최 회장 입장에선 우군 확보가 절실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최근에는 영풍 측에서 고려아연 이사들이 선관주의의무를 다하지 않고 회사에 6,733억원 상당의 손해를 끼쳐 해당 금액만큼의 배상금을 회사에 지급해야 한다는 취지의 주주대표소송을 제기하기도 했다. MBK·영풍 측이 압박의 수위를 높이고 있는 셈이다.

일각에선 고려아연이 MOM을 도입할 경우 MBK·영풍 연합의 의결권 행사를 막을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안건에 따라서는 고려아연 특별 이해관계인의 범주에 MBK·영풍 연합을 포함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 경우엔 양측 모두 의결권을 행사할 수 없다. 문제는 MOM 도입을 위해 주주총회 정관을 변경해야 한다는 점이다. 상법에 따르면 주총 특별결의는 출석 주주의 3분의 2 이상과 발행주식총수의 3분의 1 이상 두 조건을 모두 충족해야 한다. 현재 고려아연 지분율을 39.83%까지 늘린 MBK·영풍 연합이 동조하지 않는 한 정관 변경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은 최 회장의 MOM 도입 발언을 국민연금 등 기관투자자의 환심을 사려는 의도로 풀이하기도 한다. 국민연금은 ESG(Environmental·Social·Governance, 환경·사회·지배구조) 평가를 통해 소액주주 보호 및 지배구조 개선 등을 실시한 기업에 우호적인 점수를 매긴다. 현재 국민연금이 보유 중인 고려아연 지분은 7.5%로, 이를 확보하는 쪽에서 경영권을 가져갈 것은 자명하다.

이익 앞에 친분 없다

그간 우호 세력으로 분류되던 주주들이 속속 떠나고 있다는 점도 최 회장에겐 악재다. 9월 중순까지만 해도 60만원을 밑돌던 고려아연 주가가 10월 말 150만원 선까지 치솟으면서 이익을 실현한 투자자들의 이탈이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대표적으로는 한국투자증권을 꼽을 수 있다. 한국투자증권은 김남구 한국투자금융지주 회장과 최 회장의 친분을 바탕으로 이번 경영권 분쟁에서 최 회장의 우호 세력으로 분류돼 왔다. 하지만 최근 보유 중이던 고려아연 지분 0.8%(15만8,861주)를 모두 처분했다. 매각 시기는 고려아연의 자사주 공개 매수 이후인 것으로 알려졌다.

최 회장의 초등학교 동문이자, 고(故) 구본무 전 LG그룹 회장의 맏사위인 윤관 블루런벤처스(BRV) 대표도 투자전문회사 에이알티를 통해 보유하던 고려아연 주식 약 0.2%를 대부분 매각한 것으로 전해진다. 업계에서는 에이알티가 지난해 말 고려아연 주식 4만1,044주를 매입하고 올 10월께 처분하는 과정에서 최소 132억원의 차익을 실현했을 것으로 추정한다.

이런 가운데 고려아연은 2조5,000억원 규모의 유상증자 계획을 철회했다. MBK·영풍 연합과의 지분율 격차(약 4.5%p)를 뒤집을 수 있는 역전 카드가 무산된 셈이다. 이 때문에 시장에서는 MBK·영풍 연합의 고려아연 이사회 장악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데 의견이 모이고 있다. 수세에 몰린 최 회장이 기관 투자자 및 소액주주의 마음 잡기에 성공해 긴 경영권 분쟁의 마침표를 찍을 수 있을지 이목이 쏠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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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현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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