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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아연, 원아시아 '묻지마 투자' 논란 중학교 동창 펀드에 모금액 90% '투입' 이례적인 현물투자 방식으로 일부 회수
고려아연의 사모펀드(PEF) 투자 중 일부가 회수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를 두고 경영권 경쟁을 벌이고 있는 MBK파트너스 측은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이 이사회를 무력하고 사적 인연으로 '묻지마 투자'를 한 것이라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고려아연, 원아시아 계열사 지분으로 투자금 회수
15일 투자은행(IB)업계에 따르면 국내 PEF 운용사 원아시아파트너스는 최근 코리아그로쓰 제1호 펀드 투자금 일부를 회수했다. 최근 고려아연이 투자한 코리아그로쓰 펀드는 주요 투자처인 아크미디어의 경영 실적이 악화한 탓에 매각 원매자를 찾지 못하면서 자금을 회수하기 어려워졌는데, 펀드 만기일이 도래하자 해당 펀드의 운용사인 원아시아파트너스가 계열사인 높은엔터테인먼트 지분을 현물출자 방식으로 고려아연에 넘겨준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현물출자 방식은 회사 설립 또는 신주 발행 시 예외적으로 인정하는 방식으로 투자금 회수 과정에서는 잘 사용되지 않는다. 통상 사모펀드는 만기일이 다가오면 투자한 기업의 매각을 통해 자금 회수 작업에 들어가고 만기를 연장할 경우에는 밸류업을 통해 기업가치를 높여 추후 기업공개(IPO) 또는 매각 등으로 최종 엑시트한다. 그마저도 불가능하면 손실을 감안하고 헐값에 매각해 회수한 현금을 LP(출자자)들에게 배분한다. 즉 원아시가 아크미디어 등을 매각해 현금을 마련하고 이를 고려아연에 배분하는 게 일반적이다.
IB 업계 관계자는 "LP에게 수익을 배분할 때 현물로 지급하는 것은 시장에서 거의 찾아보기 어려운 사례"라며 "이런 경우 신뢰를 잃은 펀드 운용사는 더 이상 LP로부터 출자금을 받을 수 없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고려아연 측은 코리아그로쓰 제1호와 관련해 투자금 회수 등 논의가 없었다는 입장이다. 고려아연 관계자는 "투자금 회수를 위해서는 임시사원총회 결의가 필요한데 관련 논의를 진행한 적 없다"고 말했다.
원아시아 지창배 대표, 최윤범 회장과 '막역지우'
이렇게 원아시아파트너스가 현물출자 방식을 택할 수 있었던 것은 고려아연과 원아시아 간 특별한 관계가 있었기 때문이라는 게 업계 시각이다. 원아시아 대표는 과거 현금입출금기(ATM) 제조사 청호컴넷을 운영하던 지창배 전 회장으로 최 회장과는 중학교 동창 사이다. 두 사람은 서울 강남구 논현동 소재 고려아연의 옛 본사 건물을 수시로 드나들 정도로 막역한 사이로 알려져 있다. 지 대표는 지난 2020년 청호컴넷을 매각하고 원아시아를 통해 엔터테인먼트와 투자 분야 사업에 집중했다.
지 대표는 코리아그로쓰 제1호를 통해 모금한 951억원으로 아크미디어를 인수하고 회장으로 취임했다. 아크미디어는 한국 최초로 국제 에미상 텔레노벨라 부문을 수상한 '연모', 디즈니 오리지널 시리즈 '카지노' 등을 제작한 콘텐츠 제작사로, 한예슬, 조여정 등이 소속된 높은엔터테인먼트를 계열사로 갖고 있다. 당시 고려아연은 해당 펀드에 900억원을 투자했다. 투자 초기 아크미디어는 2021년 1,003억원이었던 매출액이 2022년 1,418억원으로 41.4% 증가했고 영업이익도 같은 기간 111억원에서 149억원으로 34.2% 늘었다.
하지만 지 대표가 검찰의 수사선상에 오르며 상황이 바뀌었다. 지난해 2월 검찰은 SM엔터테인먼트 인수전에서 지 대표가 배재현 전 카카오 투자총괄대표와 공모해 SM엔터테인먼트의 주식을 고가에 매수하는 방식으로 시세조종에 가담한 것으로 보고 수사를 벌였고 올해 4월 그를 구속기소 했다. 지 대표는 2019년 10월 코리아크로쓰 제1호 펀드 자금 104억원을 빼돌려 자신의 빚을 갚는 데 쓴 혐의도 받고 있다.
원아시아 펀드 90%에 고려아연 투자
이런 상황을 두고 최 회장과 경영권 경쟁을 벌이고 있는 영풍·MBK 연합은 고려아연 창업주 일가의 '묻지마 투자'를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최 회장이 사업 다각화를 앞세워 회삿돈을 석연치 않은 곳에 대규모로 투자했다는 게 논란의 핵심인데 이 중에는 원아시아파트너스도 있다. 영풍·MBK 측은 고려아연이 원아시아파트너스의 손상차손을 적절히 반영했는지 살펴봐야 한다고 지적한다. 손상차손이란 자산가치가 장부가보다 현저히 낮아질 경우, 장부가격에서 회수 가능액을 뺀 금액을 재무제표에 손실로 반영하는 것을 말한다.
실제로 고려아연은 원아시아파트너스에 막대한 자금을 투자했다. 펀드 약정 규모 6,900억원 중 6,000억원, 전체 90%가 고려아연의 몫이었다. 신생 사모펀드에 한 기업이 홀로 대규모 자금을 출자하는 경우는 매우 이례적으로, 원아시아파트너스는 이 자금으로 △코리아그로쓰(951억원) △아비트리지(916억원) △저스티스(503억원) △바이올렛(890억원) △탠저린(961억원) △그레이(1,104억원) △하바나(1,112억원) △망고스틴제1호(501억원) 등 펀드를 설립했다. 이 중 코리아그로쓰 등 5개 펀드는 고려아연 지분율이 99%를 웃돈다.
더군다나 최 회장의 묻지마 투자는 손실로 이어졌다. 그가 주도한 38건의 투자에서 24개 사가 최근 5,297억원의 총손실을 기록했다. 현재 고려아연 주식에 대한 공개 매수를 진행 중인 MBK 측은 고려아연의 "최 회장이 이사회를 무력화하고 독단적인 결정으로 회사가 심각한 재무적 위기에 처했다"고 주장하면서 최대 주주로서 최 회장의 투자 결정 과정에 대한 문제를 제기했다. 이에 대해 고려아연 측은 "회사의 현금 여력을 감안할 때 무리한 투자가 아니며 모든 출자에 이사회 결의가 필요하지 않으며 적법하게 이뤄졌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