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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뜰폰 90%는 정액형 요금제 가입
정부는 “사업자 협상 영역” 선 긋기
시장 성장 둔화, 업체들은 생존 주력
최근 진행된 정부와 이동통신 업계의 알뜰폰 도매대가(망대여료) 인하 논의가 실효성이 없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알뜰폰 요금제에서 대다수를 차지하는 정액형 요금제(RS) 도매대가 인하에 대한 내용이 빠졌기 때문이다. 업계는 가뜩이나 위축된 시장에서 중소 업체들의 경쟁력 약화가 가속화할 것을 우려하고 있다.
알뜰폰 수익 절반, 고스란히 통신 3사로
19일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 따르면 유상임 과기정통부 장관은 지난 13일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유영상 SK텔레콤 대표, 김영섭 KT 대표, 황현식 LG유플러스 대표 등 통신 3사 경영자들과 취임 후 첫 간담회를 열었다. 이 자리에서 유 장관은 통신 3사에 시장 경쟁 활성화를 위해 알뜰폰 업체에 대한 도매대가 인하를 요청했고, 3사 CEO는 협조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알뜰폰 업계에서는 이 같은 도매대가 인하 논의가 실효성이 없다는 비판이 주를 이룬다. RS 도매대가 인하에 대한 내용은 찾아볼 수 없어서다. 알뜰폰 요금제는 RS와 종량제(RM) 방식으로 구분된다. 이 중 RS는 통신 3사와 같은 구성의 상품을 가져와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에 재판매하는 요금제를 의미한다. 가입자 1명당 월 요금의 일부를 도매대가로 통신 3사에 지급하는 방식이다. 반면 RM은 알뜰폰 업체가 자체적으로 구성한 요금제로, 가입자가 사용한 음성·문자·데이터 양을 집계해 사후 지불하는 방식이다.
업계는 현재 알뜰폰 요금제 중 90% 이상이 RS 방식으로 판매되고 있는 것으로 추산했다. 이동통신 가입자들의 데이터 평균 사용량이 급증함에 따라 종량제 방식의 요금제 판매는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게 알뜰폰 업계의 중론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올해 도매대가 인하를 고려하더라도, 종량제 방식으로 8GB(기가바이트) 이상의 데이터만 주면 수익이 남지 않게 된다”고 말했다. 이어 “이 때문에 RM은 전체 알뜰폰 중 10% 수준에 불과하다”고 설명했다.
알뜰폰 업체는 RS 가입자당 월 요금 중 LTE는 40%, 5G는 50%를 도매대가로 지불한다. 사실상 벌어들이는 수익의 절반을 통신 3사에 고스란히 토해내야 하는 셈이다. 하지만 RS 도매대가 인하율은 해마다 1% 수준에 그치는 것으로 전해진다. 과기정통부가 RS와 관련한 내용을 사업자 간 협상 영역으로 판단, 별다른 조치에 나서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과기정통부 관계자는 “RS는 이번 간담회의 협의 사안으로 언급되지 않았다”며 “통신 3사에 RS 도매대가도 인하해 달라고 독려하고 있기는 하지만, 기본적으로 사업자들이 협상해야 하는 영역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이렇다 보니 알뜰폰 시장의 침체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한석현 서울YMCA 시민중계실장은 “알뜰폰 업계에 대한 혜택을 줄이는 정책이 한 번에 쏟아져 나오고 있는 상황에서, RS 도매대가에 대한 논의까지 빠진다면 시장 침체가 가속할 것”이라며 “RM 방식은 외국인이나 노인 등 일부만 사용하는 탓에 도매대가를 인하해도 업체들에 가는 실질적 혜택은 크지 않다”고 지적했다.
‘저가’ 메리트 위협하는 통신 3사
통신 3사의 통합요금제 출시도 알뜰폰 업계엔 악재다. 알뜰폰 사업자는 그간 저렴한 LTE 요금제를 주력으로 몸집을 키워왔지만, 통신 3사가 고객 선호도를 겨냥한 요금제를 내놓으면 가격 경쟁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통신 3사의 통합요금제는 세대별 기술 방식을 구분하지 않고 데이터 용량 및 전송 속도에 따라 요금을 선택하는 상품으로, 가계 통신비 안정화를 도모한다는 취지에서 도입됐다.
업계 관계자들은 통신 3사의 통합요금제가 출시되면 그간 알뜰폰으로 분산되던 중저가 요금제 수요가 다시 이통사로 집중될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실제로 통신 3사가 5G 중저가 요금제를 연이어 출시한 올해 알뜰폰 번호이동 순증 규모는 1월 8만1,048건에서 지난 9월 1만8,339건까지 감소했다. 한 관계자는 “중저가 요금제 시장을 알뜰폰이 선도하게 둬야 건전한 경쟁 구도가 만들어진다”며 “시간이 조금 걸리더라도 정부가 중저가 요금제 운용을 알뜰폰 사업자에 맡겼으면 한다”고 호소했다.
야심 차게 입장한 은행들, 백기 일보 직전
이 같은 시장의 위축은 잇따라 알뜰폰 시장에 진출한 은행 업계의 부진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은행권 가운데 가장 먼저 알뜰폰 시장에 진출한 KB국민은행은 올 상반기 요금 인상을 단행했다. 신규 고객 확보 경쟁에서 벗어나 수익성 확대에 중점을 두겠단 계산이다. 현재 KB국민은행의 알뜰폰 서비스인 KB리브엠 가입자 수는 42만 명 수준으로, 당초 제시한 가입자 목표인 100만 명에 크게 미치지 못한다.
KB국민은행은 KB리브엠 출시 당시 망 도매가의 60~70% 수준의 요금제를 출시하며 고객 확보에 나섰지만, 사업은 적자 행진 중인 것으로 파악됐다. 지난달 국정감사에서 한민수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KB국민은행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KB리브엠은 2019년 8억원, 2020년 140억원, 2021년 184억원, 2022년 160억원, 2023년 113억원의 적자를 기록했다.
LG유플러스와 손잡고 알뜰폰 시장에 진출하겠다는 포부를 밝힌 우리은행은 알뜰폰 서비스 우리WON 모바일의 출시를 내년으로 미뤘다. 기간통신사업자 승인과 내부 시스템 최적화 등을 고려해 서비스 개시 시점을 재조정한다는 입장이지만, 업계에서는 시장의 성장 둔화가 우리은행의 사업 추진 속도를 늦추고 있다는 반응이 주를 이룬다.
알뜰폰 중소업체와 은행의 마찰 또한 거세지는 모양새다. 김형진 한국알뜰통신사업자협회장은 기자간담회에서 “요즘 금융권에서까지 알뜰폰 시장에 발을 들이고 있는데, 그 목적을 묻고 싶다”며 “알뜰폰 사업 하나에만 몰두하는 기존 업체들 입장에선 생존 차원에서 경계할 수밖에 없다”고 역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