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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그룹, 증권가 지라시 '유동성 위기설'에 휘청 차입금 상환 등 자금 확보를 위한 구조조정 나서 '렌터카 1위' 롯데렌탈 매각으로 1조원 이상 확보
국내 렌터카 1위 기업 롯데렌탈이 매물로 나왔다. 최근 롯데케미칼을 비롯해 핵심 계열사를 중심으로 실적 부진이 길어지면서 재무 건전성에 대한 우려가 확산하자 롯데그룹이 핵심 계열사 중 하나인 롯데렌탈의 매각에 나선 것이다. 이번 매각을 통해 롯데그룹은 1조원 이상의 자금을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롯데렌탈 경영권 지분 60.7% 매각 추진
22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롯데그룹은 롯데렌탈 매각을 위해 복수의 원매자와 협상을 진행할 예정이다. 롯데그룹은 주요 IB를 매각 주관사로 선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매각 대상은 롯데렌탈의 경영권 지분 약 60.67%다. 현재 롯데렌탈은 롯데그룹에 이어 호텔롯데와 부산롯데호텔이 각각 37.8%, 22.8%의 지분율을 확보해 주요 주주로 있다.
롯데렌탈의 시가총액은 지난 21일 종가 기준 1조551억원으로 통상 경영권 프리미엄이 붙는 점을 고려하면 매각가는 1조원을 크게 상회할 것으로 전망된다. 일각에서는 롯데렌탈이 렌터카 업계 1위라는 점, 연간 영업이익 3,000억원대 알짜기업이라는 점 등을 감안할 때 매각가가 1조원 중반대에 이를 가능성도 거론된다. 한국렌터카사업조합연합회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렌터카 시장은 롯데렌탈이 점유율 21%로 1위에 올랐고, 이어 SK렌터카(15%), 현대캐피탈(13%), 하나캐피탈(6%) 등이 뒤를 잇고 있다.
다만 롯데렌탈 측은 22일 전자공시시스템을 통해 "당사의 최대 주주 등은 외부로부터 롯데렌탈 지분 매각에 대한 제안을 받았으나, 현재까지 구체적으로 결정된 바는 없다"며 "추후 구체적인 내용이 결정되는 시점 또는 1개월 이내에 재공시하겠다고"고 알렸다. 앞서 전날 한국거래소는 롯데렌탈이 매물로 나왔다는 보도가 나오자 롯데 측에 조회 공시를 요구했다. 롯데렌탈의 공시 내용은 사실상 매각 추진을 인정한 것으로 업계에 따르면 현재 복수의 업체와 접촉하며 매각에 관한 사안을 조율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유통·석유화학 부진 장기화에 위기설 대두
롯데그룹이 롯데렌탈을 매물로 내놓은 배경에는 그룹의 양대 축으로 꼽히는 유통과 석유화학 부문을 비롯해 계열사 전반의 실적 부진과 유동성 위기가 작용한 것으로 분석된다. 올해 3분기 롯데쇼핑 매출은 3조5,684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4.6% 감소했고, 순이익은 289억원으로 53.3% 줄었다. 롯데케미칼의 경우 2022년과 2023년 각각 7,626억원, 3,477억원의 영업 적자를 기록했고 올해는 1~3분기 누적 손실만 6,600억원을 웃돌아 이미 지난해 연간 손실액(3,477억원)의 두 배 가까이 초과했다.
롯데건설의 부동산 PF(프로젝트파이낸싱) 문제도 현재 진행형이다. 지난해 롯데케미칼 등 롯데의 주요 계열사는 레고랜드 사태 등으로 롯데건설 PF의 차환이 어려워지자 1조5,000억원의 자금을 투입했다. 하지만 여전히 롯데건설의 개발사업 중 착공을 시작하지 못한 현장이 70% 이상에 달해 PF 우발채무가 2조8,000억원에 이른다. 이에 한국 신용평가는 롯데케미칼·롯데건설 등 핵심 계열사의 실적 부진을 반영해 롯데지주와 주요 계열사의 신용등급 전망을 '안정적'에서 '부정적'으로 하향했다.
결정적으로 지난 16일 '롯데그룹 공중분해 위기'라는 제목의 유튜브 동영상이 게시되면서 롯데 위기설이 수면 위로 부상했고, 이후 비슷한 내용의 지라시가 증권가에 유포되면서 투자자의 불안 심리에 불을 붙였다. 유포된 지라시에는 롯데케미칼 등의 차입금이 29조9,000억원에 달하며 다음 달 모라토리엄(지급 유예)을 선언할 것이란 내용이 담겼고 이후 열린 18일 장에서 재계 6위 롯데그룹의 상장사 11곳 중 6곳의 주가가 급락했다. 특히 롯데케미칼과 롯데쇼핑의 주가가 각각 10.2%, 6.6% 떨어졌고 롯데지주는 52주 신저가를 기록했다.
증권가를 중심으로 롯데그룹의 재무 건전성에 대한 우려가 확산하자 롯데그룹은 이례적으로 그룹 자산 현황까지 공개하면서 적극적인 해명에 나섰다. 롯데그룹은 "총자산은 139조원, 부동산·가용예금만 71조원을 보유한 상황"이라며 "차입금(39조원)에 대해 충분히 대처가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전문가들 역시 롯데케미칼의 부채 비율이 높지 않고 3분기 말 기준 3조6,000억원의 현금 예금을 보유했다는 점을 들어 유동성 우려가 과도하다는 분석을 내놨다.
주요 계열사 비상 경영 이어 자산 매각 나서
다만 전문가들은 롯데그룹이 유동성 위기에 대해선 일축했지만 투자 심리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상장 계열사에 대한 추가 리스크 관리를 통해 돌파구를 찾아야 한다고 지적한다. 부진한 성적이 이어지자, 롯데지주를 비롯해 롯데면세점, 롯데케미칼 등 롯데그룹 계열사들은 지난 6월과 8월에 걸쳐 비상 경영에 돌입했다. 특히 롯데 위기설의 발원지로 지목된 롯데케미칼은 공장 가동률을 낮추고 해외 자회사 지분을 매각하는 등 차입금 상환을 위한 자금 확보에 나섰다.
유통 사업군에서는 롯데백화점이 부산 센텀시티점을 매물로 내놨다. 그룹 전반의 위기를 타개하기 위한 방안으로 수익성이 낮은 비효율 점포에 대한 구조조정에 돌입한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지난 2007년 개점한 부산 센텀시티점은 개점 2년 만에 불과 10m 옆에 세계 최대 규모 백화점인 신세계 센텀시티점이 들어서면서 장기간 실적 악화에 시달렸다. 현재 매각 후 임차하는 '세일 앤 리스백(Sale And Lease Back)'보다는 폐점에 무게를 두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롯데렌탈 매각도 그룹의 유동성 확보에 힘을 보탤 것으로 보인다. 롯데렌탈 매각 대금으로 1조원 이상의 자금을 확보한다면 최근 적자 전환한 호텔롯데에 유동성을 공급해 향후 호텔롯데의 기업공개(IPO)에 도움이 될 것이란 분석이다. 롯데호텔의 IPO는 그룹 지배구조 개편의 마지막 퍼즐로 지난 2015년부터 추진해 왔지만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도입 당시 중국인 관광객 감소, 국정농단 사태로 인한 총수의 부재에 더해 코로나19 팬데믹 등 악재가 겹치면서 8년째 상장이 미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