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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5년 獨 철강 자존심, 인력 40% 감축 체코 억만장자에 매각 계획, 500명 근무 공장도 폐쇄 독일 내수 부진에 완성차 이어 철강도 휘청
215년 역사의 독일 최대 철강기업 티센크루프스틸이 인력을 40% 감축한다. 저가 중국산 철강 제품 덤핑이 쏟아지는 데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자국 제조업이 극심한 불경기를 맞으면서다.
생산량 25% 줄이고 인건비 10% 절감
25일(현지시간) 티센크루프스틸은 "생산 감축과 행정 효율화를 통해 2030년까지 일자리 약 5,000개를 감축하고 나머지 6,000개 일자리는 외부 서비스 제공업체로 이전하거나 사업 매각을 통해 줄이겠다"고 발표했다. 이는 티센크루프스틸 전체 인력 2만7,000여 명의 40%에 해당하는 규모다.
티센크루프스틸은 수년 내에 인건비를 평균 10% 절감하고 연간 생산량은 현재 1,150만 톤에서 870만~900만 톤으로 줄여 "미래 시장 기대에 부응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뒤스부르크 지역에 있는 자회사 크루프마네스만 제철소를 매각할 계획이다. 아울러 500여 명이 근무하고 있는 크로이츠탈-아이헨 공장도 폐쇄하기로 결정했다.
4년 연속 영업손실
티센크루프스틸의 철강 사업 부문은 200여 년이 넘는 역사를 지니고 있다. 뒤스부르크 공장은 독일이 산업 강국으로 부상할 당시의 주역으로 상징성과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지만 최근 4년 동안 영업손실이 발생하는 등 그 위상이 다소 약해졌다.
그간 티센크루프스틸은 전통적으로 독일 대기업에서 큰 영향력을 행사해 온 강력한 노조의 보호 아래 지금까지 대규모 구조조정을 피할 수 있었지만 지난 2월 독일 경제부 장관을 역임한 티센크루프스틸 유럽의 지그마르 가브리엘(Sigmar Gabriel) 회장이 티센크루프스틸이 근본적으로 변화해야 한다고 경고하면서 사업 재편에 대한 우려가 커졌다. 당시 가브리엘 회장은 티센크루프스틸 유럽이 연간 약 1,200만 톤의 철강을 생산할 수 있지만, 판매량은 약 900만 톤에 불과하며 앞으로 더 적을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중국산 저가 덤핑·독일 내수 부진 직격탄
티센크루프스틸가 부진한 배경에는 중국의 밀어내기 수출이 자리하고 있다. 최근 내수 침체에 시달리고 있는 중국은 과잉 생산된 철강 제품을 해외에 수출하며 활로를 모색하고 있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지난달 중국 강철 수출은 지난달보다 10.1%, 전년 동월 대비 40.8% 증가한 1,118만 톤에 달했다. 올해 1~10월 강철 수출량은 전년보다 23.3% 늘어난 9,189만 톤으로 집계됐다. 2016년 이후 최고치다. 이렇다 보니 가격도 하락을 면치 못하고 있다. 25일 상하이선물거래소에서 철근은 전년 대비 16.35% 하락한 톤당 3,299위안(약 63만7,000원)에 거래를 마쳤다.
독일 내수 부진도 티센크루프스틸의 경영 악화 원인으로 작용했다. 지난 9월 폭스바겐이 자국 공장 10곳 중 3곳을 폐쇄하겠다고 밝히는 등 독일 제조업은 위기 상황이다. 폭스바겐과 부품공급업체인 ZF프리드리히하펜, 셰플러, 보쉬 등도 최근 몇 달간 직원 수만 명을 감원한다고 발표했다. 독일 산업 생산량은 지난해 6월 이후 지난 9월까지 16개월 연속 전년 동기 대비 감소했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독일 제조업의 부진이 길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보스턴컨설팅그룹(BCG)과 독일경제연구소는 최근 공동 발표한 보고서를 통해 2030년까지 독일 산업생산량이 현재보다 약 20% 줄어들 수 있다고 내다봤다. 이들은 높은 독일의 에너지 비용과 독일 상품시장 축소를 그 원인으로 꼽았다. 두 기관은 "독일이 수십 년간 구축해 온 연소기술 등의 우위는 중요성을 잃고 있으며 지정학적 긴장, 세계적 보호주의 흐름이 커지면서 독일의 수출 모델은 점점 더 압박받고 있다"고 지적했다. 번거로운 행정 절차, 낡은 물리적 기반 시설과 취약한 디지털 인프라도 독일 경제의 약점으로 지목했다.
일각에서는 이번 구조조정이 티센크루프그룹이 자회사 티센크루프스틸을 매각하기 위한 과정의 일부라는 평가도 나온다. 체코 억만장자 다니엘 크리텐스키는 지난 4월 티센크루프스틸 지분을 20% 인수한 데 이어 30% 지분을 추가 확보하는 방안을 티센크루프그룹과 논의하고 있었다. 이 과정에서 '녹색 전환'에 대한 그룹과 티센크루프스틸 간의 이견이 발생해 베르나르트 오스버그 전 티센크루프스틸 최고경영자(CEO) 등 임원 7명이 회사를 떠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