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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가 전장에서 우위 점해” 주장
전선 동결 및 비무장지대 설정 거부
젤렌스키 “트럼프 종전안 듣고 싶어”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전쟁이 서로 미사일을 주고받으며 벼랑 끝을 향하는 가운데, 러시아가 ‘한국식 시나리오’를 포함해 분쟁을 동결하는 모든 방안을 거부한다고 강조했다. 우크라이나의 영토를 대거 빼앗는 것은 물론 자국의 승리로 전쟁을 끝내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분쟁 동결 제안 단호히 거부
26일(현지 시각) 타스통신에 따르면 세르게이 나리시킨 러시아 대외정보국(SVR) 국장은 이날 모스크바에서 열린 제20차 독립국가연합(CIS) 안보·정보기관 회의를 직후 기자간담회에서 “러시아는 한국식 시나리오든 다른 방식이든 분쟁을 동결하는 어떠한 제안도 단호히 거부한다”고 밝혔다.
서방에서 우크라이나 분쟁을 동결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는 것은 러시아가 전장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게 나리시킨 국장의 주장이다. 그는 “우리는 앞으로 수년간 지속될 ‘견고하고 장기적인 평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하며 “이 평화는 무엇보다 러시아와 러시아 시민들을 위해 보장돼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우크라이나 분쟁을 일으킨 핵심 원인을 제거하는 방법뿐”이라고 덧붙였다.
이는 지난달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특별군사작전’과 관련해 한국식 휴전 또는 현 상태를 동결하자는 제안이 나오는 것에 대해 “러시아는 어떠한 양보도 하지 않을 것”이라는 발언에 이은 것으로, 당시 푸틴 대통령은 “어떤 결과가 나오든 러시아에 유리해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푸틴 대통령과 나리시킨 국장이 한국식 시나리오에 대해 구체적으로 언급한 내용은 없다. 다만 국제사회는 어느 한 쪽이 승리하는 게 아니라 휴전 협상 당시 상황을 동결하는 방식으로 분쟁을 종식하는 방법을 의미한 것으로 풀이했다. 1950년 발발한 한국전쟁은 3년 넘게 이어졌고, 1953년 7월 정전 협정 이후 아직까지 종전이 선언되지 않은 상태다.
국제연합(UN)이 개입해 전선을 동결하고, 비무장지대를 설정하는 것도 한국식 종전 모델에 포함된다. 서방에서는 분쟁이 장기화한 상황에서 그나마 현실성 있는 종전 방안으로 이같은 시나리오를 거론하고 있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튀르키예 대통령은 이달 18일~19일 브라질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를 앞두고 “도네츠크 지역에 비무장 지대를 설치하고 국제적인 안보 병력을 배치하는 방안을 제안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드미트리 페스코프 러시아 대통령 대변인은 “튀르키예 대통령의 어떠한 공식 제안도 받은 바 없다”고 잘라 말하며 “현 경계선을 기반으로 한 동결 제안은 러시아에 수용될 수 없다는 입장을 명확히 밝힌다”고 힘줘 말했다.
NATO 군사 동맹 가입 포기 요구도
이런 러시아의 태도는 지난 6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제안한 휴전 조건과도 궤를 같이한다. 당시 러시아 대사 회의에 참석한 푸틴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정부에 자국이 부분적으로 점령한 4개 지역(도네츠크·루한스크·헤르손·자포리자주)에서 철수할 것을 촉구했다. 이에 더해 우크라이나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군사 동맹 가입을 포기한다고 공식 선언해야 러시아의 공격이 멈출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우크라이나 정부가 이와 같은 결정을 내릴 준비가 됐다고 선언하는 즉시 우리 측은 바로 휴전을 위한 협상에 나설 것”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우크라이나는 즉각 불쾌감을 드러냈다. 푸틴 대통령의 발언이 공개된 직후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한 이탈리아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푸틴의) 메시지는 최후통첩이다”며 “‘체코슬로바키아의 일부를 내주면 여기서 끝내겠다’고 말한 히틀러와 다름이 없다”고 말했다. 과거 히틀러의 나치 독일은 체코슬로바키아의 수데텐 지역을 요구하며 영국과 프랑스를 압박했고, 이에 유럽은 나치 정권을 달래기 위해 해당 영토를 양보했다.
서방에서도 비판이 이어졌다. 로이드 오스틴 미국 국방장관은 “푸틴은 불법적으로 우크라이나의 주권 영토를 점령했다”며 “그는 우크라이나가 평화를 이루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지시할 위치에 있지 않다”고 일갈했다. 옌스 스톨텐베르그 NATO 사무총장 또한 푸틴 대통령의 발언을 두고 “성의 있게 제안된 것이 아니다”라고 평가했다.
미국에 '더 강한 입장' 촉구하고 나선 우크라이나
이런 가운데 우크라이나에서는 종전을 위한 발걸음을 서두르는 모양새다. 그간 러시아의 무력 침공을 강력히 비판하며 휴전 및 종전에 대한 구체적 언급을 삼갔던 젤렌스키 대통령이 종전안을 들고나오면서다. 그는 지난 23일 자국 식량 안보 관련 회의에 참석해 “러시아가 전쟁을 끝내길 바란다고 결정할 때 (전쟁도) 막을 내릴 것”이라며 “미국이 더 강한 입장을 취할 때, 글로벌 사우스(신흥국 및 개발도상국)가 우크라이나 편에 서고 전쟁 종식에 찬성할 때”라고 부연했다. 이어 “이것은 쉽지 않은 길이 되겠지만, 나는 내년에 이를 달성할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확신한다”고 말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의 제안을 듣고 싶다고도 말했다. 트럼프 당선인은 선거 기간부터 “취임 후 24시간 안에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을 종전시키겠다”고 공언해 왔다. 또 러시아가 전쟁으로 점령한 영토 일부를 우크라이나가 양보해야 한다는 취지의 발언을 하기도 했다. 이 때문에 국제사회는 미국이 우크라이나에는 군사 원조 중단을 압박하는 동시에 러시아에는 일부 우크라이나 영토 점령을 인정해 주는 조건으로 종전을 추구할 것이라는 관측에 힘을 실었다.
러시아는 이같은 트럼프 당선인의 종전안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분위기다. 이달 초 트럼프 당선인과 푸틴 대통령의 통화 직후 페스코프 대변인은 “트럼프 당선인은 적어도 러시아에 전략적 패배를 안기려는 대립이 아니라 평화에 관해 말했다”며 “그는 모든 것을 거래라고 생각하는 자신이 모두를 평화로 이끄는 거래를 성사할 수 있다고 자신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트럼프 당선인은 예측할 수 없는 인물로, 그가 선거운동 때 한 말을 얼마나 지킬지도 예측이 어려워 일단 지켜봐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