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멕시코 투자 이력 기업만 2,000여 곳 돌발변수 맞서 '플랜B·C' 대비책 고심 정부·산업계 '한미 FTA 재협상' 주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멕시코와 캐나다에서 들어오는 제품에 고율 관세를 부과하겠다는 뜻을 밝히면서 이 지역에 생산 기지를 둔 국내 기업들이 ‘트럼프 쇼크’에 직면하게 됐다. 역대 최대 수준의 대미 무역 흑자를 기록하고 있는 우리나라도 한·미 자유무역협정(FTA)만 믿고 안심할 수 없는 처지란 의미다.
韓 기업들, 대응책 마련 부심
27일 재계에 따르면 현재 멕시코에는 기아 공장을 비롯해 현대모비스, 현대위아, 삼성전자, LG전자, 포스코와 대기업과 부품 협력사들의 생산공장이 몰려 있다. 한국은 지난해 멕시코에 7억5,400만 달러(약 1조600억원)를 투자했다. 멕시코가 유치한 해외직접투자 국가들 중 10위 규모다. 특히 미국·멕시코·캐나다무역협정(USMCA, 옛 NAFTA )효과가 극대화된 2022년에는 한국 기업들의 투자액(6억8,600만 달러)은 전년(3억100만 달러)보다 2배 이상 늘었다. 멕시코는 값싼 인건비와 미국 무관세 수출 혜택으로 특히 자동차 제조사들이 많이 진출했다.
증권가에선 트럼프의 대선 공약인 10% 보편관세만 현실화해도 기아의 내년도 영업이익이 올해보다 26% 이상 줄어들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자동차 업계 한 관계자는 "트럼프 1기 정부를 전후로 대중 무역 제재를 피해 미국과 무관세 협정을 맺은 멕시코에 투자를 늘리고 미국 수출 전진기지 역할을 맡겼다"며 "트럼프의 25% 관세 부과가 현실화되면 멕시코 투자 전략도 전면 재조정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멕시코에 북미 수출기지를 두고 있는 가전업계도 미국에만 생산망을 구축한 월풀 등보다 상대적으로 가격 경쟁력이 떨어질 것을 우려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멕시코에 텔레비전 공장을, LG전자는 텔레비전과 냉장고, 전장 공장을 운영하고 있다. 삼성과 LG는 멕시코 생산 기지와 미국 현지 공장 등을 바탕으로 북미 텔레비전 및 생활가전 시장에서 매출 점유율 1, 2위를 차지해 왔다. 전자업계 한 관계자는 "멕시코뿐 아니라 미국을 포함해 다른 지역에도 공장을 운영하고 있고, 향후 트럼프의 멕시코 협상 전략이 또 어떻게 변할지 예측할 수 없기 때문에 다양한 가능성에 대비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지금까지 멕시코는 미국 ‘니어쇼어링(인접국으로의 생산기지 이전)’ 정책의 최대 수혜국으로 각광 받았다. 특히 자동차와 자동차 부품의 USMCA 적용으로 관세가 붙지 않는다. 기아가 멕시코에서 생산한 차를 미국으로 수출할 경우 완성차를 미국으로 옮기는 물류비용은 발생하지만 멕시코의 인건비가 미국에 비해 저렴하기 때문에 원가 측면에서는 오히려 경쟁력을 가질 수 있었다. 그러나 트럼프가 멕시코에서 수입하는 제품에 25%의 관세를 물리겠다고 선언함으로써 이 같은 계획은 수정이 불가피해졌다.
사실상 'USMCA' 무효화
더 큰 문제는 한미 FTA의 향방이다. 트럼프는 이번에 고율 관세를 공식화하며 USMCA의 사실상 무효화를 선언했다. 2017년 트럼프 1기 행정부 때 본인이 직접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을 없애고 새로 서명한 USMCA를 다시 휴지조각으로 만든 것이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트럼프가 ‘국가 비상사태’ 선언을 염두에 뒀을 수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국제긴급경제권법(IEEPA)’은 비상사태 선언 시 대통령에게 경제와 무역거래를 통제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하는데, 이는 트럼프가 보편관세 공약을 실행할 때 사용할 수 있는 방안 중 하나로 언급돼 왔다. 이를 활용하면 한미 FTA 또한 사정권에 들어간다.
‘FTA 재협상’ 만약의 수 대비해야
이에 우리 정부와 경제계는 차기 미국 정부가 한미 FTA 재협상을 요구할 가능성을 주시하고 있다. 다만 현시점에서 통상 전문가들은 트럼프 취임 초기 한미 FTA가 도마에 오를 가능성을 낮게 보고 있다. 중국과 멕시코, 베트남 등 미국이 먼저 ‘손봐줄’ 나라가 많다는 이유에서다. 게다가 한국의 대미 무역수지 흑자는 8위 수준이지만 한미 FTA는 이번 미국 대선 과정에 한 번도 언급되지 않아 한미 FTA 재협상은 후순위라는 관측이 많다.
여기에 과거처럼 관세를 협상 도구로만 활용할 개연성도 있으나, 전문가들은 트럼프가 한미 FTA를 USMCA처럼 만들 수 있다고 보고 만반의 대응책을 강구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더욱이 외교가에선 미국의 만성적인 무역 적자에 대응하기 위해서라면 경제가 아닌 정치·외교·안보 등 이슈에도 관세 카드를 수시로 꺼낼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앞서 트럼프가 미군 방위비 분담금 증액 필요성을 강조하며 한국을 '머니 머신'이라고 언급한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는 설명이다.
한 통상외교 전문가는 "한미 FTA 해체는 그 자체로 재앙이다. 우리 기업들이 미국에서 적잖은 무역흑자를 올릴 수 있었던 배경엔 미국과 FTA를 체결하지 않은 일본 제품에 비해 가격 경쟁력이 있었기 때문"이라며 "그 비교 우위가 사라지거나 약해지면 한국의 대미 수출은 큰 차질을 빚을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