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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수산물 수입' 두고 줄다리기해 온 중일 오염수 방류 16개월 만에 정책 변경 고려 트럼프 2기 앞두고 대일 관계 개선 목적
중국이 지난해 일본의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 오염수 해양 방류를 이유로 중단했던 일본산 수산물 수입을 재개하기로 했다.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을 앞두고 미국의 우방들과 관계 개선에 나서는 등 ‘전랑(늑대 전사)외교’ 전략은 잠시 접어둔 채 해묵은 갈등 해소에 집중하는 모습이다.
日수산물 수입 재개 검토
24일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은 최근 중국 정부는 전면 중단했던 일본산수산물의 수입을 내년 상반기에 재개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닛케이의 중국 소식통에 따르면 내년 5∼6월 일본에서 개최 예정인 한중일 정상회의에 맞춰, 중국 리창 총리가 일본을 찾아 수입 재개 방침을 전달하는 방안이 유력하다. 이에 앞서 왕이 중국공산당 중앙외사판공실 주임(외교부장 겸임)이 방일해 수입 재개 방침을 밝힐 가능성도 있다. 일본 정부는 내년 초 왕이 주임을 일본에 초청할 방침이다.
일본산 수산물 최대 수입국이었던 중국은 지난해 8월 도쿄전력이 후쿠시마 제1원전 오염수 방류를 시작하자 즉시 일본산 수산물 수입을 전면 금지했다. 동시에 중국은 일본이 ‘핵 오염수’를 무단 방류했다며 강하게 비판했다. 이후 일본이 중국측에 수산물 금수조치를 해제해 달라고 거듭요구하자, 중국은 국제원자력기구(IAEA)와 별개로 오염수 시료를 독자 채취해 검사하게 해 달라고 요구했다. 이에 일본 정부는 지난 9월 IAEA 틀 내에서 중국이 시료 채취에 참여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같은 달 양국 정부는 중국의 안전 검사 등을 조건으로 수산물 수입의 단계적 재개에 합의했다.
이어 시진핑 중국 주석과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가 지난달 페루 리마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계기로 만나 일본산 수산물 수입 재개 합의를 착실하게 이행한다는 방침을 확인했다. 양국 정부는 지난 18일에도 베이징에서 오염수 방류 관련 세 번째 전문가 회의를 열었다. 한 외교 소식통은 닛케이에 "중국 측에서 먼저 회의 개최 말을 꺼냈다'며 "(중국이) 일본산 수산물 수입 재개를 위한 출구를 찾으려 하고 있다"고 전했다.
중·일 관계 개선 위한 외교 카드
중국이 이처럼 수입 재개 쪽으로 적극 선회하고 있는 것은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에 대비, 일본과의 관계 개선을 도모하려는 목적이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미국의 우방들과 관계를 개선해 대중 견제 전선을 느슨하게 하고, 이해관계가 비슷한 국가들과 연대해 대미 협상력을 높이겠다는 전략이다.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은 선거운동 기간 중국에 60%의 고율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공약한 상태다.
닛케이는 “중국이 보호주의적 트럼프 당선인에 대한 발언력과 협상력을 높이는 데 같은 수출국인 일본 등과의 관계 개선이 유효한 것으로 보고 있다”며 “트럼프 당선인이 ‘미국 우선주의’를 내걸어 동맹국에 부담 증가를 요구하는 것도 일본에 접근을 촉진하는 요인”이라고 전했다.
주변들과의 관계 개선 추구도
현재 중국은 미국의 다른 우방들에도 화해의 손을 내밀고 있다. 지난 3일에는 호주를 상대로 마지막 남은 무역 제재였던 ‘호주산 쇠고기 수입 금지’ 조치를 4년여 만에 전면 해제했다. 지난 10월 리창이 예고했던 호주산 랍스터 수입 전면 재개 조치도 이달 20일부터 이행됐다. 2020년부터 4년 넘게 끌어온 중국-호주의 무역 분쟁이 막을 내린 것이다.
지난 10월에는 시진핑 중국 주석이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와 5년 만에 양자 정상회담을 갖고 2020년 국경 충돌로 냉각된 관계를 정상화하기로 합의했다. 회담 직전에는 양국이 관계 회복의 걸림돌이었던 국경 분쟁 문제 해결에도 합의했다는 발표가 나왔다. 시 주석은 올해 하반기에 브릭스(BRICS·신흥국 경제 협의체),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G20 등 다자 외교 무대를 계기로 한국·일본·뉴질랜드·호주·영국·인도 등 캐나다를 제외한 미국의 주요 안보 협력국과 정상회담을 했다. 특히 중국과 영국의 정상회담은 6년 만에 성사됐다. 중국이 국제사회에서 운신의 폭을 넓히기 위해 전통적 우호국인 북한·러시아와 적극적인 밀착을 꺼리고 있다는 관측도 있다.
중국이 입국 비자를 면제한 국가도 한국·일본·호주 등 미국의 동맹국으로 빠르게 넓어지는 중이다. 코로나19 기간에 입국 장벽을 높게 쌓았던 중국이 상호주의 원칙까지 내려놓으며 일방적으로 무비자 입국 선물을 뿌리고 있는 것이다. 중국 정부는 이달 1일 한국의 일반 여권 소지자에게 무비자 입국을 허용했고, 이후 무비자 체류 기간을 15일에서 30일로 늘렸다. 일본인에 대해서도 지난 22일 중국 입국 단기 비자를 면제하는 조치를 내놨다.
다만 전문가들은 중·일관계가 내년 하반기 다시 얼어붙을 수 있다고 관측하고 있다. 9월 3일 중국의 항일전쟁(중일전쟁) 승전 80주년을 비롯해 만주사변, 난징대학살 발발일 등 일본의 침략과 관련한 역사적 기념일이 하반기에 몰려 있다. 실제 닛케이에 따르면 한 중국 정부 관계자는 “역사 문제에 초점이 맞춰지기 전 수산물 수입 재개를 실현하고 싶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