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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산 연장 소식에 국제 유가 소폭 상승 유가 위협하는 트럼프 “드릴 베이비 드릴” 에너지 시장, 사우디 ‘지고’ 미국 ‘뜨고’
러시아와 사우디아라비아가 주도하는 산유국 협의체 석유수출국기구플러스(OPEC+)가 글로벌 수요 둔화 전망 속에 내년 중으로 계획했던 원유 감산 완료 시점을 2026년 말까지 1년 연장한다.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증산 정책 가능성에 유가 방어를 위한 결정으로 풀이된다. 다만 최근 글로벌 석유시장 내 러시아의 입지가 약화하고 있어 성과를 거둘지는 불확실한 상황이다.
자발적 감산 완료 2025년 말→2026년 말
5일(현지 시각) 로이터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OPEC+는 이날 화상회의를 열고 원유 증산 전환 시점을 연기하는 데 합의했다. 현재 OPEC+ 참가국 23곳은 하루 200만 배럴씩 공식 감산 중이다. 또 사우디 등 8개국은 1단계 하루 165만 배럴, 2단계 하루 220만 배럴을 기준으로 자발적 감산 중이다.
OPEC+는 이와 같은 공식 감산 및 1단계 자발적 감산의 완료 시점을 2025년 말에서 2026년 말로 연장했다. 2단계 자발적 감산도 당초 2025년 1월부터 감산량을 단계적 하향할 계획이었지만, 3개월 연기했다. 내년 4월부터 하루 평균 13만8,000배럴씩 18개월에 걸쳐 감산 폭을 줄여 나간다는 설명이다.
OPEC+의 감산 연기 소식이 알려지면서 국제 유가는 소폭 상승했다. 미국 뉴욕상품거래소에서 이날 오전 10시 15분 서부텍사스산원유(WTI) 2025년 1월 인도분은 배럴당 68.61달러에 거래됐다. 이는 전날보다 0.1%(0.07달러) 오른 수준이다. 영국 런던ICE선물거래소의 브렌트유 2025년 2월 인도분 가격 또한 전날보다 0.15%(0.11달러) 오른 배럴당 72.42달러를 기록했다.
유가 하락 대한 두려움 최고조
그간 시장에서는 국제유가 급락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유가 정보업체 OPIS의 글로벌 에너지 분석 책임자인 톰 클로자는 “아랍의 봄 이후 그 어느 해보다 2025년 유가에 대한 두려움이 커지고 있다”며 “OPEC이 (감산을) 풀고 생산을 억제하기 위한 실질적인 합의에 나서지 않으면 유가는 배럴당 30달러 또는 40달러까지 내려갈 수 있다”고 경고했다. 현재 WTI와 브렌트유 가격이 70달러 안팎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절반 가까이 하락하는 셈이다.
컨설팅회사 유라시아그룹의 에너지·기후·자원 책임자인 헤닝 글로이스타인 역시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내년 석유 수요 증가율이 하루 100만 배럴을 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고려할 때 OPEC+의 공급 감축이 완전히 해제되면 원유 가격은 배럴당 40달러까지 매우 가파르게 하락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전문가들은 유가 하락이 전망되는 배경으로 원유 최대 소비국인 중국의 경기 침체와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증산 정책 가능성 등을 꼽았다. 실제로 트럼프 당선인은 선거 기간 조 바이든 행정부의 에너지 개발 제한 정책이 인플레이션을 초래했다고 비판하며 석유 시추를 의미하는 ‘드릴 베이비 드릴’(drill, baby, drill. 석유를 시추하라) 슬로건을 외친 바 있다. 인공지능(AI) 시대에 초래한 전력 수요 급증으로 대응책 모색이 필요한 가운데 가능한 모든 에너지원을 총동원하겠다는 의미다.
시장 지배력은 ‘증산’ 노선 미국으로
트럼프 당선인은 1기 행정부에서도 OPEC+의 감산 논의를 막아선 전례가 있다. 2020년 4월 국제 원유가격이 18년 만에 최저 수준으로 떨어지자, 사우디와 러시아 등은 감산을 논의하려 했으나, 미국은 이를 제재하고 나선 것은 물론 ‘관세 카드’를 꺼내 들기까지 했다. 트럼프 당시 대통령은 백악관 기자회견에서 “수입산 원유에 관세를 물려야 한다면, 또 미국 에너지 기업을 보호하기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준비태세가 돼 있다”고 강조했다.
유가 급락에 대한 대응책으로 감산에 동참하는 대신 사우디 및 러시아산 수입 원유에 관세를 물려 자국 시장 수입을 차단하는 차선책을 꺼내 든 것이다. 그는 “OPEC+가 뭘 하든 개의치 않겠다”며 “결국 자기들끼리 가격 전쟁을 벌이다 스스로 무너져 내릴 것”이라고 힘줘 말했다. 이 때문에 당시 국제에너지기구(IEA)는 “미국이 합심하지 않는다면 하루 1천만 배럴 감산은 원유 수요 급감에 따른 가격 하락을 상쇄하기에 충분하지 않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런 가운데 최근에는 사우디의 글로벌 석유시장 지배력이 급속히 약화하고 있다는 분석까지 나왔다. 사우디는 현재 1조 달러(약 1,435조원) 규모의 경제 다각화 프로젝트와 2030년 월드엑스포, 2034년 FIFA 월드컵 개최를 위해 고유가가 절실한 상황이지만, 시장 점유율 방어와 OPEC+ 결속 유지라는 상충한 과제를 안고 있다. 아랍에미리트(UAE), 이라크, 카자흐스탄 등 일부 회원국의 증산 요구로 OPEC+ 내부 균열이 심화한 탓이다.
사우디가 내부 균열을 잠재우는 데 힘을 쏟는 사이 시장 지배력은 미국으로 옮겨갔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올해 미국의 일일 원유 생산량은 1,320만 배럴로 사우디 생산량을 47% 상회할 전망이다. 심지어 뉴멕시코 한 카운티의 생산량은 OPEC 핵심 회원국 중 최하위 6개국 생산량을 초과하는 것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미국의 에너지 패권 부상을 여실히 드러내는 대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