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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산 우선 구매 정책, 무역 시장 변화 속에서 유효성 논란 ‘일자리 창출이냐, 경제적 효용이냐?’ 중간재 수입 규제까지 강화할 경우 비효율 더 커져
더 이코노미(The Economy) 및 산하 전문지들의 [Deep] 섹션은 해외 유수의 금융/기술/정책 전문지들에서 전하는 업계 전문가들의 의견을 담았습니다. 본사인 글로벌AI협회(GIAI)에서 번역본에 대해 콘텐츠 제휴가 진행 중입니다.
1933년 제정된 미국산우선구매법(Buy American Act)은 대공황 이후 미국 경제 정책의 초석을 이뤄 왔지만 세계 무역 시장의 변화와 보호주의의 대두 속에서 새로운 시험대에 올랐다. 찬성자들은 해당 정책의 일자리 창출과 산업 성장 기여를 강조하지만, 늘어나는 복지 비용과 비효율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크다. 또한 해당 조치는 엄청난 교역 규모와 함께 교역 물품의 2/3 이상이 중간재에 해당하는 현재의 글로벌 경제에서 사실상의 ‘비관세 장벽’(non-tariff barriers)이 갖는 경제적 부작용에 대해서도 되돌아보게 한다.
미국산우선구매법, 30년대 발효 이후 지속 강화
30년대 경제 위기 속에서 발효된 미국산우선구매법(Buy American Act, 이하 구매법)은 연방 정부 기관들이 완제품과 건설 자재 포함 3천5백 달러(약 502만원) 이상의 조달 계약 체결 시 미국산 제품 구입을 원칙으로 하며, 50% 이상의 부품 및 재료가 미국산이어야 한다는 규정이다. 연방 고속도로 관리국(Federal Highway Administration)의 미국산 사용 정책이나 2021년 ‘인프라 투자 및 고용법’(Infrastructure Investment and Jobs Act)에 포함된 ‘미국 건설, 미국 구매’(Build America, Buy America) 조항이 모두 이 법에 뿌리를 두고 있다.
수십 년간 민주당과 공화당 정부는 구매법을 개정해 왔으며 최근 트럼프(Trump)와 바이든(Biden) 행정부도 해당 규정을 더욱 엄격하게 강화한 바 있다. 이에 따라 2029년까지 연방 계약에서 요구되는 미국산 제품 비중은 최근 70년 기간 중 가장 높은 상승률을 기록할 전망이다.
한편 구매법의 비용 대비 효과에 대한 논란도 뜨거운데 2001~2019년 기간 연방 조달 데이터 시스템(Federal Procurement Data System) 자료에 따르면 연방 조달 계약 비용은 2001년에서 2008년 사이 두 배로 증가해 4천억 달러(약 573조6천억원) 수준에서 안정화된 것으로 파악되며, 다양한 산업을 포괄하는 제조업 분야가 전체 예산의 1/3을 점유하고 있다.
또한 민간 분야에 비해 정부 구매 물품의 ‘수입 침투율’(import penetration ratios, 국내 수요 대비 수입 비중)이 매우 낮아 관련 법이 엄격히 준수되고 있음도 보여주고 있다.
고용 창출에 기여하지만 관련 비용도 무시 못 해
연구가 찾아낸 가장 큰 시사점은 구매법이 미국 내 일자리 창출에는 기여하지만 관련 비용도 무시할 수준은 아니라는 점이다. 만약 구매법 관련 수입 규제가 철폐되면 십만여 개의 제조업 일자리가 사라질 것으로 예상되지만 해당 일자리 유지를 위해 소요되는 복지 비용도 인당 132,100~137,700달러(약 1억8천9백~1억9천7백만원)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된다. 규제 철폐가 어려울 것으로 예상되는 안보 관련 산업을 제외하더라도 결과는 크게 다르지 않다.
한편 구매법으로 인해 정부 구매 물품 중 최종 생산물 수입 비중은 제조업 전체에 걸쳐 평균 96% 감소한 것으로 추산된다. 중간재에 대한 정부 물품 수입 규제는 아직 엄격하지 않지만 트럼프와 바이든 행정부 정책에 따라 한층 강화돼 최소 비율이 현재 50%에서 2029년까지 75%로 상승할 것이 예상된다.
이렇게 된다면 중간재 수입 규제 강화로 41,300명의 제조업 피고용자가 늘어나지만 일자리 하나당 무려 154,000~237,800달러(약 2억2천1백~3억4천1백만원)의 복지 비용이 따를 것으로 예상된다. 중간재 산업은 최종 소비재 산업에 비해 노동 소득 분배율(labor share, 전체 생산량에서 인건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낮은 데다, 정부 조달 의존도가 높은 지역일수록 높은 재료비가 공공재 가격 인상을 부르기 때문에 비용 상승 요인이 크다.
구매법의 효과가 미국 전역에 고르게 미치지도 않아 연방 조달 계약 내역을 살펴보면 경제적 영향에 있어 심각한 지역 격차가 존재한다. 통계 모델 분석에 따르면 노동자 1인당 2,947달러(약 423만원)의 정부 예산을 5년 동안 특정 통근 지역(commuting zones, 주거와 직업 활동이 일어나는 지역 단위) 생산품 구매에 추가 투입할 경우 0.47%P의 제조업 고용률 상승을 가져올 것으로 예상되기는 하나 그 혜택은 정부 조달 계약이 왕성한 지역에 집중돼 있다.
산업별 ‘규모의 경제’와도 무관하게 적용
한편 구매법이 간과하고 있는 것은 ‘외부 규모의 경제’(external economies of scale, 비용 감소를 가져오는 외부 요인, 산업 클러스터가 대표적)다. 이론적으로 고용 증대를 통해 생산성이 증진되는 산업에서 구매법은 개인과 기업의 복지를 향상시키는 것이 맞다. 하지만 현행 구매법은 파급력이 높은 산업을 차별화해 적용되지 않기 때문에 전체 경제에 미치는 효용이 제한적이다.
따라서 산업별 규모의 경제에 맞게 미국산 사용 규정을 재배분하는 방안을 검토해 볼 수 있는데 이렇게 할 경우 1인당 3.69 달러(약 5,300원) 정도의 복지 증진을 가져올 것으로 예상되나 역시 13,700개의 일자리를 대가로 지불해야 한다.
결국 미국 구매법은 산업적 목표와 경제적 효용 사이의 복잡한 균형 문제를 제기한다. 국내 일자리 창출에 기여하는 것은 명백하지만 수반되는 비용도 커 지속 가능성에 대한 의문을 지울 수 없다. 분명한 것은 향후 미국산 사용 규정이 더욱 강화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고용과 복지 극대화 사이에서의 고민도 한층 커질 것이란 사실이다.
원문의 저자는 마틸데 봄바디니(Matilde Bombardini) UC 버클리(University of California Berkeley) 하스 경영대학원(Haas School of Business) 교수 외 3명입니다. 영어 원문 기사는 The increasing cost of buying American | CEPR에 게재돼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