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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감독원, 현대차증권에 정정신고서 제출 요구 자본 적정성 개선 위해 유상증자 단행했나 "회사 빚을 주주 돈으로 갚는 것" 개인투자자 반발
현대차증권의 2,000억원 규모 유상증자가 암초에 부딪혔다. 투자 위험 요소가 크다고 판단한 금융당국이 증권신고서 정정을 요구하면서다. 개인 투자자들 역시 주가 하락 가능성, 유증 목적 등을 문제 삼으며 반기를 들고 나섰다. 유증을 둘러싸고 곳곳에서 잡음이 이는 가운데, 시장에서는 차후 현대차증권의 자본 적정성 개선이 지연될 수 있다는 평이 나온다.
금감원 "현대차증권 증권신고서, 투자 판단 저해"
13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11일 금융감독원은 현대차증권이 지난달 27일 제출한 유증 증권신고서에 대한 정정신고서 제출을 요구했다. 금감원은 제출된 증권신고서의 형식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거나 거짓으로 기재된 경우, 또는 기재가 누락돼 있거나 중요 사항의 표시 내용이 불분명한 경우 정정신고서 제출을 요구할 수 있다.
금감원은 현대차증권이 제출한 증권신고서가 투자자의 합리적인 투자 판단을 저해하거나 투자자에게 중대한 오해를 일으킬 수 있다고 판단했다. 이에 따라 현대차증권이 지난달 27일 제출한 증권신고서의 효력은 정지되며, 3개월 내 정정신고서가 제출되지 않으면 철회된 것으로 간주한다.
당초 현대차증권은 내년 3월 5일자로 2,000억원 규모의 신주 상장에 나설 계획이었다. 구주 1주당 신주 0.699주를 기존 주주에게 먼저 배정한 뒤 실권주가 나오면 일반 투자자에게 공모하는 방식이다. 유증으로 발행되는 신주는 총 3,012만482주로 기존 총 발행주식의 94.9% 규모다.
유상증자는 '부실 메우기' 수단?
시장에서는 현대차증권이 자본 적정성 개선을 위해 유증에 나섰다는 평이 나온다. 최근 현대차증권의 실적은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 지난 2021년 1,177억원에 달했던 현대차증권의 당기순이익은 2022년 871억원, 2023년 535억원으로 감소했다. 올해(1~3분기) 기록한 당기순이익은 359억원에 그친다. 전임 최병철 대표 시절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사업을 무리하게 확장했던 여파가 실적을 갉아먹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부동산 PF 리스크로 인해 최 전 대표는 올해 초 임기가 남았음에도 경질됐고, 현재 후임인 배형근 대표가 사태 수습을 위해 움직이고 있다.
신용평가사들은 현대차증권의 부동산 부실을 우려하며 꾸준히 자본 적정성 개선이 필요하다고 지적해 왔다. 신용평가사들이 현대차증권의 이번 유증에 대해 일제히 긍정적 평가를 내놓은 이유다. 기본적으로 증권사의 자본 적정성 지표는 영업용순자본비율(NCR, Net Capital Ratio)이 사용된다. 다만 신용평가사들은 금융당국이 표준으로 제시한 신NCR의 신뢰도가 낮다고 보고 자체적인 모델을 사용하고 있다.
한국기업평가는 '수정 NCR'을 사용하고 있다. 한국기업평가 기준 현대차증권의 수정 NCR은 ▲2021년 227.5% ▲2022년 230.7% ▲2023년 231.2% ▲2024년 9월 말 229.3% 등 꾸준히 250%를 밑돌았다. 한국신용평가의 경우 '조정 NCR'을 기준으로 삼고 있다. 한국신용평가 기준 현대차증권의 조정 NCR은 지난 6월 말 기준 236.3%로 중소형 증권사 평균(306%)를 하회하고 있다. 이번 유증이 성공할 경우 현대차증권의 조정 NCR은 273.5%로 눈에 띄게 개선될 수 있다.
개인 투자자 '반기'
한편 개인 투자자들은 현대차증권의 유증 결정에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한 증권업계 관계자는 "개인 투자자들은 밸류업 공시가 나와야 할 상황에 거꾸로 회사가 주주에게 손을 벌렸다고 불만을 표출하고 있다"며 "자금 여유가 있는 회사가 주주를 'ATM(현금인출기)로 쓴다는 비판도 나온다"고 전했다. 업계에 따르면 현대차증권의 자본금은 1,938억원, 순자산(자본총계)은 1조2,699억원이 수준이며, 배당하지 않고 쌓아둔 이익잉여금은 5,934억원에 이른다.
유증의 '목적'도 문제로 지목된다. 현대차증권은 증권신고서를 통해 시설투자에 1,000억원, 채무 상환에 225억원, 기타자금으로 775억원을 사용하겠다고 밝혔다. 그런데 이 중 기타자금은 지난 2019년 현대차증권이 경영상 목적을 위해 발행했던 상환전환우선주(RCPS)를 갚는 데 쓰이게 된다. 이와 관련해 한 시장 관계자는 "투자자들 사이에서는 '빚은 회사가 냈는데 돈은 주주가 갚는다'는 불만이 터져 나오고 있다"며 "제조 설비 등이 불필요한 증권사가 시설투자에 대규모 자금을 투입한다는 것도 불만 요인"이라고 설명했다.
현시점 현대차증권의 주가가 과거 유증을 실시했을 때보다 현저히 낮다는 점도 투자자 불신을 키웠다. 현대차증권이 2009년 9월 주주 배정 유증을 실시할 때 주당 발행가액은 1만8,900원이었으나, 이번 공시 직전 주가는 8,800원에 불과했다. 15년 동안 주가가 반토막 난 셈이다. 당시엔 주주 배정 유증에 앞서 현대차가 제3자 배정 유증 방식으로 주당 2만3,650원에 3.36%의 지분을 인수해 기존 주주 부담을 경감했지만, 이번에는 이 같은 안전장치도 마련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