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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제 노동 논란으로 뉴욕 증시 IPO 계획 철회
영국 청문회에선 모호한 답변으로 일관
창업자 강력 의지, 홍콩 이중 상장 가능성도
싱가포르에 본사를 둔 중국계 패스트 패션 브랜드 쉬인(Shein)이 올해 1분기 런던 증권거래소에 기업공개(IPO)에 나설 전망이다. 애초 미국 증시 IPO를 추진했던 쉬인이지만, 당국의 엄격한 조사 과정 등을 우려해 방향을 선회한 것으로 풀이된다. 다만 영국 내부의 발발 또한 거세 적잖은 난항이 예상된다.
英 재무장관 방중으로 런던 상장 물꼬 트나
12일(이하 현지 시각) 업계에 따르면 로이터통신은 지난 9일 익명의 소식통을 인용해 쉬인의 상장이 이르면 오는 4월 20일 이전에 완료될 수 있다고 보도했다. 최근 중국을 방문한 레이첼 리브스 영국 재무장관이 허리펑 중국 국무원 부총리를 만나 경제 및 금융 협력을 논의하는 만큼, 쉬인이 필요로 하는 규제 승인 진전에도 도움이 될 것이란 전언이다. 로이터는 쉬인의 IPO에 대한 평가 및 승인을 담당하는 영국 금융감독원(FCA) 수장이 리브스 재무장관의 중국 방문에 동행했다고 덧붙였다.
애초 쉬인은 2023년 말 뉴욕 증시 상장을 추진했다. 당시 쉬인은 상장 주관사로 골드만삭스와 JP모건체이스, 모건스탠리 등을 선임하는 등 이듬해 초 뉴욕 증시 상장을 위해 총력을 기울였다. 하지만 미국 정치권이 중국과 관련한 위험 및 노동 부정행위 혐의에 대한 우려로 쉬인의 뉴욕 상장에 제동을 걸었다.
마르코 루비오 상원의원을 비롯한 미 유력 인사들은 “쉬인이 3달러짜리 티셔츠와 10달러짜리 청바지를 만들기 위해 위구르 무슬림들의 강제 노동력을 이용했다”고 주장하며 “이 과정에서 노동자들에게 하루 16시간 근무를 강요하고, 임금을 보류하며, 아동 노동을 이용했다”고 비난했다. 2012년 중국에서 설립된 쉬인은 2022년 본사를 난징에서 싱가포르로 이전했지만, 여전히 5,800여 개의 위탁 제조업체 대부분이 중국에 소재하고 있다.
결국 쉬인은 뉴욕증권거래소(NYSE)에 공개적으로 신청서를 제출하라는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의 제안을 거절했고, 거대한 시장 기회를 포기했다. 뉴욕 증시 상장 작업에 잡음이 커지면서 한때 900억 달러(약 120조원)로 평가받던 쉬인의 기업 가치 또한 최근 600억 달러 선으로 낮아졌다.
노동 착취 관련해선 영국도 ‘예민’
업계에서는 쉬인이 런던 증시로 방향을 틀었지만, 여기서도 적잖은 난항에 부딪힐 것으로 예상했다. 영국의 유력 정치인과 사회운동가들 역시 쉬인의 공급망을 둘러싼 잠재적인 윤리 문제에 대해 상당한 우려를 제기하고 나선 탓이다. 영국 의회 상무무역위원회는 지난 7일 청문회에 쉬인 관계자를 소환해 공급망 내 노동자 권리 문제를 집중 조사했다.
주이난 쉬인 유럽 담당 법률 고문은 이번 청문회에서 자사의 의류에 중국 신장 지역에서 온 면화가 포함되어 있는지, 또는 공급 업체에 해당 지역에서 원료를 조달하지 말 것을 지시했는지에 대한 질문에 직접적인 답변을 거부했다. 대신 모든 관할 구역의 관련 법률을 준수하고 있다는 추상적인 답변과 함께 서면 답변을 제공하겠다고 밝혔다.
쉬인의 공급망 체계가 공장과 노동자들을 착취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비판도 나온다. 베트남, 인도네시아 등 저가 의류를 판매하는 경쟁국은 대부분 원자재를 중국에서 수입하기 때문에 생산 효율성이 떨어진다. 반면 쉬인은 중국 내에서 원단, 지퍼, 단추까지 모든 자재를 조달해 생산 속도를 극대화하고 있다. 나아가 쉬인의 알고리즘은 소비자 구매 데이터를 기반으로 공장에 신속한 추가 생산을 요청한다. 이러한 방식이 의류 생산업체와 노동자들에게는 빠져나가기 힘든 굴레로 작용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중국 광저우에서 3곳의 의류 공장을 운영하고 있다는 한 업계 관계자는 BBC와의 인터뷰에서 “쉬인과 거래하기 전에는 우리가 직접 의류를 생산하고 판매했다”면서 “그때는 직접 원가를 계산해서 가격을 매기고 이익을 산정할 수 있었지만, 이제는 쉬인이 가격을 통제하고 우리는 비용 절감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고 했다. 또 다른 대표도 “주문량은 많지만, 이익은 낮다”며 쉬인과의 거래 구조를 비판했다.
모든 가능성 열어둔 채 IPO 주력
쉬인이 미국에서 영국 증시로, 영국 증시에서 다시 홍콩 증시로 오가며 상장을 가늠하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미국에 이어 영국에서도 증시 문턱에 막힌 만큼 그에 대한 ‘플랜B’를 마련해 두려는 조치다. 지난해 7월 파이낸셜타임스(FT)는 해당 사안에 정통한 5명의 소식통을 인용해 “쉬인이 영국 금융 규제 당국에 IPO와 관련한 기밀 서류를 제출했지만, 여러 반발에 직면했다”며 “이 때문에 홍콩 상장을 백업 계획으로 고려하고 있다”라고 보도했다.
FT 쉬인이 계속 나라를 바꾸면서까지 상장하려는 데에 창업자의 의지가 짙게 작용했다고 풀이했다. 쉬인의 창업자이자 최고경영자(CEO)인 쉬양티엔(Xu Yangtian)이 투자자들의 압력과 회사 성장 둔화 등에 대한 우려로 최대한 이른 시일 내 IPO가 완료되기를 원한다는 설명이다. 아울러 일각에선 쉬인이 이중 상장을 목표로 홍콩 증시를 예의주시한다는 분석도 제기됐다. 과거 쉬인의 전임 고위 직원은 “홍콩을 포함한 이중 상장이 가장 완벽한 그림”이라며 “이를 통해 중국과의 관계는 물론 세계 시장 내 입지도 균형 있게 유지할 수 있다”라고 말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