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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C, 1억5,000만 달러 부당이익 반환 요구 "머스크, 트위터 지분 공개 늦춰 헐값 매수"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첫 정치적 과제 될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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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가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를 증권법 위반 혐의로 고소했다. 특정 상장 기업의 지분 5% 이상을 보유하면 10일 이내 공시해야 하는 이른바 '5%룰'을 위반한 혐의다. SEC는 2022년 머스크가 엑스(X·옛 트위터)를 인수할 당시 자신의 지분 공개 시점을 의도적으로 늦춰 1억5,000만 달러의 부당이득을 얻었다며 민사상 벌금과 부당이익의 반환을 요구했다.
트위터 인수 과정에서 '5%룰' 지키지 않아
15일(현지 시각)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SEC는 워싱턴DC 연방법원에 머스크 CEO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소송의 핵심은 이른바 '5%룰' 위반 혐의다. 머스크가 트위터 지분 5% 이상을 확보한 시점으로부터 10일 이내에 이를 공시해야 했지만, 이를 제때 공개하지 않아 공개 의무를 위반했다는 것이다. SEC는 "머스크가 지분 공시를 늦추면서 최소 1억5,000만 달러(약 2,200억원)의 부당이익을 얻었다"며 그에 대한 민사상 벌금과 부당이익의 반환을 청구했다.
SEC 규정에 따르면 투자자는 특정 상장 기업의 지분을 5% 이상 보유하게 될 경우 10일 이내 지분 보유와 관련한 지분현황보고서(Schedule 13D)를 제출하고 이를 공시해야 한다. 머스크는 트위터 인수 전부터 트위터의 지분을 꾸준히 매입해 왔고, 2022년 3월 지분 5%를 초과 보유하게 돼 3월 24일까지 이를 공시해야 했다. 하지만 머스크는 트위터 이사회에 합류한 이후인 같은 해 4월 4일에서야 지분 보유 사실을 공시한 것으로 파악됐다.
머스크는 공시 기한이던 3월 24일 다음 날에도 트위터 주식 약 350만 주를 매수해 지분을 7%로 늘렸다. 그가 트위터 이사회 합류 후 지분을 공개했을 때는 이미 지분 9% 이상을 소유한 상태였다. 머스크의 지분 공개 직후 트위터 주가는 27% 이상 급등했다. SEC는 머스크가 의무 공시 기간과 실제 공시일 사이에 주식을 추가 매입하는 과정에서 공시를 지연시켜 주가 상승을 억제함으로써 인위적으로 낮은 가격에 주식을 매입해 비용을 덜 지불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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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표현의 자유' 주장하며 트위터 인수
사실 머스크의 트위터 인수는 시작부터 숱한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테슬라와 스페이스X의 성공 이후 새로운 도전 거리를 찾던 머스크는 2022년 1월 측근에게 트위터 주식 매수를 지시했다. 때맞춰 만기가 도래한 테슬라 스톡옵션을 행사해 생긴 100억 달러(약 13조원) 상당의 현금을 트위터에 투자하기로 결심한 것이다. 이후 9.1%의 지분을 확보하며 단일 최대 주주에 오른 머스크는 그해 4월 14일 트위터를 430억 달러(약 60조원)에 인수하겠다고 제안했다.
이 과정에서 많은 논란이 있었지만 결국 2022년 4월 25일 트위터 이사회는 머스크의 인수 제안을 만장일치로 수락했고 같은 해 10월 머스크는 440억 달러(약 62조원)에 트위터를 인수했다. 이 과정에서 인수 자금 130억 달러(17조7,000억 원)를 모건스탠리와 뱅크오브아메리카 등에서 빌렸는데 1년에 대출 이자만 10억 달러(약 1조4,000억 원)가 넘었다. 이 때문에 업계에서는 8년 동안 적자가 누적된 기업을 인수하기에는 과감한 베팅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머스크는 무리해서 트위터를 인수한 이유로 표현의 자유를 들었다. 머스크는 이전부터 트위터가 증오 표현, 백신 음모론 등을 올린 계정을 삭제하거나 영구 정지시키는 것에 대해 불만을 표출하며 "최대한 신뢰할 수 있고 광범위하게 포용적인 공공 플랫폼을 갖는 것은 문명의 미래에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해 왔다. 일례로 2021년 1월 트위터는 지지자의 폭력을 선동할 수 있다는 이유로 트럼프의 트위터 계정을 영구 정지시켰는데 당시 머스크는 "트럼프를 막은 것은 옳지 않다"는 의견을 밝힌 바 있다.
이 때문에 머스크가 트위터를 인수한 직후 뉴욕타임스, CNN 등 미 주요 매체들의 관심이 트럼프의 트위터 계정 복구 여부에 쏠렸다. 논란이 커지자 머스크는 "플랫폼의 안정성과 신뢰 유지를 위해 계정이 정지된 사람들을 당분간 트위터에 복귀시키지 않겠다"고 했지만, 트럼프 계정을 정지시킨 임원은 즉시 해고했다. 이는 더 많은 사용자에게 발언 기회를 제공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으로 이러한 변화에 대해 트럼프는 "제정신인 사람이 트위터를 소유해 기쁘다"며 환영했다.
트위터를 장악한 머스크는 친공화당 행보를 이어갔다. 2022년에는 미 중간 선거를 하루 앞두고 무소속 유권자들을 향해 공화당에 투표하라고 촉구했다. 그는 "공유된 권력은 양당의 권력 남용을 억제한다"며 "대통령이 민주당 소속임을 고려해 의회는 공화당에 투표할 것을 추천한다"고 트위터에 썼다. 머스크가 표현의 자유를 강조하지만, 그가 거느린 팔로워 수만 1억1,000만 명에 달하는 만큼 실상은 트위터를 장악해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쏟아졌다.
바이든 행정부 임기 종료 앞두고 고소 이뤄져
이러한 배경을 고려할 때 이번 SEC의 고소가 조 바이든 행정부의 임기가 얼마 남지 않은 시점에서 이뤄진 것은 정치적 고려가 반영된 것이라는 해석도 제기된다. 게리 겐슬러 SEC위원장은 트럼프가 취임하는 1월 20일에 사임할 예정으로 머스크에 대한 소송은 트럼프가 임명한 폴 앳킨스 신임 SEC위원장이 진행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트럼프가 머스크를 정부효율부(DOGE) 수장으로 임명하는 등, 두 사람의 가까운 관계를 감안할 때 이번 소송이 어떤 방향으로 전개될지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이번 소송은 SEC가 머스크와 벌인 세 번째 법적 다툼으로 이중 첫 번째가 2018년 트럼프 대통령 첫 임기 중 제기된 소송이었다. 당시 머스크는 테슬라의 상장 폐지 가능성을 시사하는 트위터 게시물을 올려 시장에 영향을 미쳤다며 SEC로부터 소송을 당했다. 당시 트럼프가 임명한 제이 클레이튼 SEC위원장은 머스크가 2,000만 달러의 민사 벌금을 지불하고 테슬라 변호사들이 일부 트위터 게시물을 사전에 검토하는 조건으로 소송을 종결지었다.
한편, 최근 몇 주 동안 머스크는 자신의 X에 SEC의 소송 제기 가능성에 대해 조롱하는 게시물을 올렸다. 지난해 12월에는 자신의 변호사가 SEC에 보낸 편지를 공유하며 이 사건에 대한 합의 제안을 거부했다고 밝힌 바 있다. 이날 SEC가 소송을 제기한 사실이 알려지자 머스크 측은 즉각 반발했다. 그의 변호인인 알렉스 스피로는 CNBC에 "머스크는 잘못한 게 없다"며 "수년간 머스크를 괴롭혔던 캠페인의 결과물이 겨우 혐의 하나로 구성된 하찮은 불평으로 정점을 찍었다"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