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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마트, 병행수입 협력사에 'TIPA 인증' 요구 방안 검토 계속해서 불거지는 '가품 논란' 방지 위한 조치로 풀이돼 유통업계 좀먹는 가품들, 소비자 신뢰도 훼손 우려
이마트가 병행수입 제품 관련 검수 체계를 강화한다. 향후 이마트에서 병행수입 상품을 판매하고자 하는 협력사에 별도의 진품 인증을 요구하겠다는 계획이다. 최근 불거진 수차례의 가품 논란으로 소비자 신뢰 훼손 위기가 본격화한 가운데, 납품 업체의 품질 검증 의무를 강화해 유사 사태 재발을 방지하겠다는 구상으로 풀이된다.
이마트, 병행수입사에 '품질 검증' 주문
17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최근 이마트는 병행수입 상품을 판매하려는 협력사에 ‘무역관련지식재산권보호협회(TIPA) 진품 인증’을 추가로 요구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앞으로 TIPA 인증이 없는 병행수입 상품의 판매를 전면 금지하겠다는 것이다. ‘병행수입’은 특정 브랜드에 대한 전용 사용권이 없는 제3자가 다른 유통 채널을 통해 관련 상품을 저렴하게 수입하는 행위를 말한다. 공식 수입사보다 저렴하게 제품을 수입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그만큼 가품 유입 가능성이 높다.
이마트가 진품 인증 기관으로 지목한 TIPA는 기업의 지식재산 보호를 위해 설립된 민간 기구로, 관세청 및 특허청 등 관계 기관과 연계해 가품 유통 방지에 앞장서고 있다. 그동안 이마트는 직매입 상품에 한해서만 TIPA 진품 인증을 요구해 왔다.
연이은 가품 논란
이마트가 검수 체계를 강화한 원인으로는 최근 불거진 '스투시 가품 논란'이 지목된다. 해당 논란은 지난해 12월 유튜버 A씨가 이마트 트레이더스에서 스투시 브랜드 의류를 구매하면서 시작됐다. 한 벌당 가격이 18만원 이상인 스투시 상의(맨투맨)가 9만원대에 판매되는 것을 수상하게 여긴 A씨는 한국명품감정원과 리셀 전문 플랫폼 크림에 해당 제품의 감정평가를 의뢰했고, 이들은 A씨가 의뢰한 제품이 모두 ‘가품’이라고 판정했다.
이마트는 가품 논란이 불거진 이후 관련 제품 전량(1,000여 벌)을 리콜하기로 결정했으며, 현재 논란이 된 제품을 회수 중이다. 일부 제품은 명확한 감정 평가를 위해 스투시 본사가 있는 미국으로 발송한 상태이며, 감정 평가 결과가 나오기까지는 약 2주 정도의 시간이 필요한 것으로 전해졌다. 단 이마트는 조사 결과와 무관하게 선제적으로 문제 상품에 대한 전액 환불 조치를 취할 예정이다.
한편 이마트에서 판매되는 의류가 '가품 논란'에 휩싸인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 2022년 말에는 이마트 트레이더스에서 판매된 명품 의류 브랜드 몽클레르의 제품이 가품이라는 논란이 제기된 바 있다. 당시 가품 의심을 받은 제품은 몽클레르의 여성용 헤르미퍼 패딩, 남성용 클루니 패딩 등이다. 이에 이마트 측은 의심 제품 30벌 전량을 회수하고 전액 환불 조치했다.
'신뢰 훼손'에 신음하는 유통업계
주목할 만한 부분은 이마트 외에도 다수의 업체가 의류 상품의 '신뢰도' 문제로 인해 홍역을 치르고 있다는 점이다. 일례로 최근 국내 패션 브랜드 라퍼지스토어는 덕 다운(오리 솜털) 아르틱 후드 패딩 등의 충전재 혼용률을 허위로 기재하며 소비자 비판을 샀다. 해당 브랜드를 입점 운영 중인 무신사와 29CM는 오는 4월부터 라퍼지스토어를 퇴점시킬 예정이다. 이랜드월드가 운영하는 브랜드 후아유 역시 일부 구스 다운(거위 솜털) 제품의 충전재로 거위털 80%를 사용한다고 기재해 왔으나, 실제로는 거위털 30%와 오리털 70%를 혼합 사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후아유는 관련 제품의 환불 절차를 밟고 있다.
가품 유통 문제의 심각성은 이 같은 개별 사례를 넘어 통계치에서도 확연하게 드러난다. 특허청의 ‘위조 상품 단속 현황’에 따르면, 2019~2023년 5년간 위조 상품임이 적발돼 압수된 물품은 756만 점(거래가격 1,912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품목별로는 의류(67만8,138점)가 가장 많았고, 화장품·장신구·가방·신발·시계 등이 뒤를 이었다. 디자인 모방 및 영업 비밀 단속으로 형사입건된 인원은 2019년 104명, 2020년 169명에서 2023년 356명으로 대폭 증가했다.
가품 유통은 유통업계에 있어 소비자 신뢰도를 훼손하는 '대형 악재'다. 이와 관련해 한 업계 관계자는 "일반적으로 소비자는 구매를 실질적으로 진행한 곳의 명성을 믿고 구매를 결정한다"며 "가품 문제가 발생하면 실제 납품 업체가 아닌 '최종 판매처'에 막대한 피해가 돌아가는 구조인 셈"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최종 판매처가 논란 재발을 막기 위해 납품업체에 심사 강화를 주문할 경우, 납품업체는 심사 비용 등 부담을 고스란히 떠안게 된다"며 "결국 최초로 가품을 생산·판매한 곳 외에는 모두 손해를 보는 악순환이 이어지는 것"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