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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곳 생산시설 통폐합으로 효율화 추진
신라명과 거래 무산된 증평공장도 매각
2024년 상반기 양산빵 시장 점유율 9.8%
롯데그룹 계열 종합식품업체 롯데웰푸드가 제빵 사업 부문 분리 매각에 나선다. 생산시설 매각을 통해 중복되는 생산 시설을 정리하고, 자산 효율화를 앞당기겠다는 계획이다. 이로써 롯데웰푸드는 2009년 기린식품을 인수하며 야심 차게 발을 들인 양산빵 시장에서 물러나게 됐는데, 업계는 이를 롯데웰푸드의 ‘경영 실패’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생산 및 물류 시설 통매각 유력
20일 투자은행(IB)업계에 따르면 롯데웰푸드는 기린(KIRIN) 브랜드로 알려진 제빵 사업을 분리 매각하기로 결정하고 기업 현황을 담은 티저레터(투자안내서)를 지난해 말부터 주요 기업들에 배포했다. 매각 대상은 증평·부산·수원 공장 등 생산 라인과 물류 시설 일체며, 희망 매각가는 1,000억원대 초반인 것으로 알려졌다. 매각 자문사는 KB증권이다.
지난 2022년 롯데제과와 롯데푸드의 통합법인으로 출범한 롯데웰푸드는 각 사업부 효율화 작업을 단계별로 진행 중이다. 기존 롯데제과와 롯데푸드가 보유한 공장이 각각 7개, 10개로 총 17곳에 달하는 만큼 생산과 물류 등 중복되는 부분을 없애 비용을 절감하겠다는 취지다. 롯데웰푸드는 이와 같은 단계적 생산공장 효율화를 통해 통합 시너지를 극대화할 것으로 내다봤다.
제빵 사업 부문 효율화는 지난해부터 본격 추진됐다. 증평과 부산, 수원 등 기존 3곳이던 제빵 생산기지를 수원과 부산 2곳으로 통폐합하는 방향이다. 이를 위해 지난해 6월에는 증평 공장의 가동을 중단했다. 이후 신라명과를 우선협상 대상자로 선정하면서 매각을 서둘렀다. 하지만 양사가 막판 협상 과정에서 뜻을 모으지 못하면서 증평 공장 매각이 무산됐다.
롯데웰푸드는 이번 제빵 부문 통매각으로 확보한 자금을 빙과사업 부문 경쟁력 강화에 쏟을 방침인 것으로 전해졌다. 현재 롯데웰푸드는 천안 제2일반산업단지에 위치한 빙과 시설을 2만273㎡(약 6,132평) 규모로 증설하는 작업을 추진 중이다. 이 때문에 지난해 12월에는 2,220억원의 투자 계획을 밝히기도 했다. 롯데웰푸드 관계자는 “효율성 차원에서 일부 공장을 정리하고 미래 사업을 위한 동력을 마련하는 중”이라고 전했다.
막강한 경쟁자에 새로운 플레이어까지 등장
시장에서는 롯데웰푸드의 양산빵 시장 고전이 해당 사업부 통매각에 결정적 원인이 됐을 것으로 분석했다. 롯데웰푸드의 전신인 롯데제과는 지난 2009년 호빵으로 유명했던 기린식품을 인수하며 양산빵 시장에 진출했다. 당시 샤니와 삼립 등 SPC그룹 계열사와의 경쟁에서 밀려 법정관리(기업회생절차)에 들어간 기린식품은 부산과 수원 2개 공장을 시세 대비 반값 수준으로 롯데제과에 넘겼고, 롯데제과는 기린식품을 계열사 형태로 3년 넘게 운영했다.
2013년에는 롯데백화점과 롯데마트에 양산빵을 공급하던 롯데브랑제리까지 흡수합병하며 증평공장까지 품게 됐다. 이를 통해 롯데제과는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으로도 사업 영역을 넓혔다. 하지만 OEM 부문의 실적은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2022년 기준 롯데제과 OEM 부문 매출은 약 200억원으로 경쟁 업체인 SPC삼립 제빵 매출의 3% 수준에 불과했다.
제빵 사업 전체로 확대해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 식품산업통계정보에 의하면 지난해 상반기 소매점 매출 기준 롯데웰푸드의 양산빵 시장 점유율은 9.8%로 SPC삼립(69.2%)과 비교해 7분의 1 수준에 그친다. 여기에 세븐일레븐, GS25, CU 등 주요 편의점들까지 잇따라 자체 브랜드(PB) 양산빵을 내놓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롯데웰푸드의 제빵사업에 호재보다는 악재만 쌓여있다는 게 시장의 중론이다.
악화일로 실적에 결국 ‘백기’
업계에서는 롯데제과가 계열사로 유지하던 기린식품을 돌연 흡수합병한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는 시각이 주를 이룬다. 경쟁사의 입지가 확대될수록 기린식품의 적자 폭도 커지고, 이와 같은 손실을 감추기 위해서는 합병이 불가피했을 것이라는 지적이다. 롯데제과는 2009년 10월 인수한 기린식품을 2013년 2월 흡수합병했다.
업계의 지적대로 롯데제과가 운영하는 동안 기린식품의 실적은 악화일로를 걸었다. 기린식품은 2010년 매출액 732억원과 영업손실 21억원을 기록한 데 이어 이듬해에도 매출액 887억원, 영업손실 35억원을 기록했다. 거듭된 영업손실은 2012년 96억원으로 최대에 달했다. 실적이 악화하는 동안 기업가치도 수직 하락했다. 2009년 인수 당시 롯데제과는 기린식품 주식 19만5,800주를 총 980억여원에 매입했다. 매입가를 바탕으로 계산한 1주당 인수 가격은 약 50만원이다. 하지만 2013년 흡수합병가액은 1주당 22만2,457원에 불과했다. 자산가치는 1주당 53만5,421원으로 높게 분석됐으나, 수익가치가 1주당 1만3,815원으로 낮게 평가된 탓이다.
당시 롯데제과는 기린식품을 흡수하며 “자사의 유통 노하우와 네트워크를 활용하면, 양산빵 사업에서도 좋은 결과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지만, 결국 이번 제빵 사업 통매각으로 그간의 자신감도 빛을 잃게 됐다. 이날 롯데웰푸드는 공시를 통해 “제빵 사업 부문 운영과 관련해 여러 가지 방안을 검토 중에 있다”면서도 “구체적인 매각과 관련해서는 아직 결정된 것이 없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