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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 변화 속 ‘나 홀로 경직’ 한국 창업 생태계, 기업·자본·인재 모두 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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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현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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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트업 10곳 중 6곳 “규제 과도해”
규제샌드박스 법령 정비율 15% 그쳐
인력 유출·성장 동력 저해 ‘심각’ 수준

국내에서 창업하고도 본사를 해외로 옮기는 스타트업이 늘고 있다. 이들 스타트업은 해외 시장에 비해 까다로운 국내 규제와 투자 위축, 과도한 세금 부담 등을 그 이유로 꼽았다. 스타트업 활성화를 위해 마련된 규제샌드박스 또한 실효성이 높지 않다는 평가다. 여기에 최근에는 우수 인재들의 이탈마저 눈에 띄게 증가하며 창업 생태계의 경쟁력 약화를 가속하는 모습이다.

규제 입법 늘었지만, 법령 정비는 제자리

3일 벤처 업계에 따르면 최근 국내 스타트업 사이에서는 본사를 해외로 이전하고 기존 한국 법인은 지사로 전환하는 경영 방식인 플립(Flip)을 택하는 곳이 증가 추세다. 해외 진출이 화두로 부상한 이유도 있지만, 국내 시장의 까다로운 규제와 투자 위축, 인재 유출, 조세 부담 등 경영 애로 요인이 산적한 탓에 사업 지속 및 확대를 위해서는 해외 진출이 불가피하다는 게 이들 기업의 공통된 견해다.

일례로 서울 테헤란로에 사무실을 운영하던 핀테크 스타트업 A사는 최근 본사를 미국 캘리포니아로 이전했다. 국가 간 결제를 위해서는 온라인 전자결제대행(PG) 서비스 스트라이프(Stripe)를 이용해야 하는데, 국내에서는 전자금융거래법 규제로 해당 서비스를 이용할 수 없었던 탓이다. 기존 사업을 지속하는 데는 문제가 없지만, 사세 확장을 위해서는 해외로 본사 이전밖에는 방법이 없었다는 설명이다.

또 다른 핀테크 스타트업 B사는 오는 6월 싱가포르로 본사 이전을 추진 중이다. B사의 주력 사업 모델은 디지털 자산 및 토큰 발행으로, 가상자산공개(ICO) 등 관련 규제가 상대적으로 느슨한 싱가포르로 본사를 옮기는 게 회사 미래를 위해 더 낫다는 판단을 내렸다. B사 관계자는 “최근 싱가포르에 진출한 한국 스타트업 대부분이 블록체인 관련 사업을 추진 중인 회사들인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업계에서는 한국을 등지는 스타트업이 점점 더 많아질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한국 시장의 불합리한 규제가 급변하는 글로벌 시장의 상황을 전혀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한국경영자총협회의 설문조사에서도 창업 7년 미만 스타트업 300곳 중 63.4%가 ‘한국에서 규제로 인해 사업상 애로가 있다’고 응답했다. 이들 응답 기업 중 37.7%는 한국의 스타트업 규제 수준이 ‘미국·중국·일본 등 경쟁국보다 높다’고 답했다.

특히 인공지능(AI) 관련 규제 입법이 과도한 것으로 파악됐다. 지난 21대 국회 4년간 발의된 AI 관련 규제 법안은 191건인 데 반해, 개원 8개월 차인 22대 국회에서는 벌써 64건이 발의됐다. 지난해 12월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AI 기본법’ 제정안은 고영향 AI를 국민의 생명이나 기본권에 위험을 초래할 수 있는 시스템으로 규정해 규제를 강화했으며, 법을 위반하면 3,000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한다고 명시했다.

스타트업 활성화를 위한 규제샌드박스 제도가 실시되고 있지만,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비판 또한 거세다. 실증 특례 등으로 규제를 일부 풀어주는 시늉만 하고 실제로는 사업을 확장할 수 없을 정도로 여러 조건을 추가했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산업통상자원부에 의하면 2019년부터 지난해까지 규제샌드박스 승인을 받은 총 709건 중 법령 정비까지 완료된 것은 106건으로, 법령 정비율은 15%에 그쳤다.

시장 침체로 인한 투자 위축도 스타트업들의 한숨을 깊게 만드는 요소다. 벤처 투자 정보업체 더브이씨에 따르면 2021년 17조9,000억원에 달했던 국내 스타트업 투자 규모는 지난해 6조800억원으로 쪼그라들었다. 해외 진출을 고려 중이라고 밝힌 한 스타트업 대표는 “창업가 사이에서는 국내 주식시장이 부진한 만큼 해외 투자 유치에 열을 올리는 동시에 ‘나스닥에 상장하는 게 여러모로 유리하겠다’는 인식이 주를 이룬다”며 “본사를 해외로 옮기려는 스타트업 행렬은 한동안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돌아올 줄 모르는 기업·자본

기업의 탈(脫)한국 현상은 비단 스타트업만의 일이 아니다. 대기업과 중견기업 또한 각종 규제와 반기업 정서, 포퓰리즘을 이유로 국내 사업 영위의 어려움을 토로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매우 낮은 수준의 해외 진출 기업 국내 복귀(리쇼어링)에서 확인할 수 있다. 2023년 해외로 나간 우리 기업은 2,816개에 달한 반면 국내 리쇼어링 기업은 22개에 불과했다. 최근 5년으로 범위를 넓혀도 유턴 기업은 108개에 그쳤으며, 이 가운데 대기업은 현대모비스 등 단 4개였다.

기업의 경영 활동이 위축되면서 투자금 역시 갈 곳을 잃고 헤매는 모습이다. 산업통상자원부가 집계한 지난해 외국인직접투자(FDI, 신고 기준)는 345억6,800만 달러로 역대 최대치를 경신했다. 하지만 실제 집행된 FDI(도착 기준)는 147억7,100만 달러로 전년 대비 24.2% 줄었다. 반면 국내 기업 등이 해외에 투자하는 ODI는 지난해 3분기까지 465억 달러에 달했다. 이는 지난해 연간 FDI(345억6,800만 달러)와 비교해도 크게 웃도는 수준이다.

재계에서는 과도한 기업 규제, 고용 경직성과 대립적 노사 관계, 높은 고용 비용이 한국 기업의 국내 유턴을 막고 있는 평이 주를 이룬다. 반기업주의가 팽배하는 풍토에서 기업의 창의와 열정은 위축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옛 교육과학기술부) 제2차관을 지낸 박종구 초당대 총장은 “삼성과 현대, SK 등 국내 기업들은 우리보다 낮은 수준의 규제를 받는 애플, 제너럴모터스(GM), 구글 등과 치열하게 경쟁해야 한다”며 “한 손이 뒤로 묶인 채 싸우는 꼴”이라고 일갈했다.

AI 인재 10명 중 4명 탈한국

기업과 자금 이탈에 이어 우수 인력들도 한국을 등지는 추세다. 2023년 미국이 석박사급 이상 한국인 고급 인력 및 가족에게 발급한 취업 이민(EB-1.2) 비자는 5,684건에 이른다. 4인 가족으로 계산하면 1,500명 안팎의 고급 인력이 한국을 떠나 미국행을 택한 셈이다. 인구 10만 명당 EB-1.2 비자 발급 건수에서도 한국은 10.98명으로 인도(1.44명)와 중국(0.94명)의 10배를 넘어서며 1위를 기록했다.

AI와 같은 첨단 분야의 고급 인력 유출은 훨씬 심각한 수준이다. 2022년 기준 한국에서 석박사를 취득한 AI 분야의 인재 40%가 해외로 떠났으며, 이들 대부분은 국내 기업 대비 3배에 달하는 연봉과 함께 성과에 대해 확실한 보상을 지급하는 미국 빅테크로 향했다. 이 때문에 산업부는 디지털, 반도체 등 5대 신기술 분야에 2027년까지 34만5,000여 명의 인력이 모자랄 것이란 전망을 내놓기도 했다.

경제학에서는 생산의 3요소로 토지와 노동, 자본을 꼽는다. 기업(토지)과 인력(노동), 자본이 모두 빠져나가는 한국으로서는 생산의 3요소를 모두 놓치고 있는 것과 같다. 최대 50%에 달하는 상속세율을 비롯한 막대한 세금 부담, 기업의 연구·개발 기능을 저해하는 주 52시간 근무제 등 왜곡된 평등주의 문화에서 비롯된 규제들이 자본 시장과 노동 시장을 경직시키고, 나아가 한국의 성장동력까지 억누르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는 배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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