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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금전적 보상 앞세워 자국민 자원입대 유도 죄수·북한군 등 적극적으로 동원해 전력 확보 자국민 강제 동원 꺼리는 푸틴, 정치적 리스크 고려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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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당국이 자국민의 자원입대를 유도하고 있다는 보도가 나왔다. 정치적 리스크로 인해 자국민을 강제 징집하기 어려운 상황이 연출된 가운데, 금전적 보상을 앞세워 전력 확보에 속도를 내는 양상이다. 이 밖에도 러시아군은 전쟁에 죄수를 동원하는 등 다양한 방법으로 병력을 확충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러시아 '계약병' 사망자 급증
25일(현지시각) 러시아 독립 매체 메디아조나는 러시아군 사상자 발생 현황을 조사한 자료를 공개했다. 해당 자료에 따르면 지난 2022년 2월 24일 전쟁이 발발한 직후 발생한 러시아군 전사자 대다수는 특수부대와 정규군 병사들이었다. 같은 해에 예비군 30만 명을 대상으로 동원령이 내려진 뒤에는 평균 나이 30대 중반의 예비군 전사자가 늘기도 했다. 2023년부터는 러시아 각지 교도소에서 징집한 죄수병과 민간군사기업(PMC) 용병들을 중심으로 전사자가 발생했다.
지난해부터는 전사자 중 40대 이상 ‘계약병’의 비중이 확대됐다. 이는 러시아 당국이 거액의 보너스, 후한 임금, 채무 탕감 등을 앞세워 자국민의 자진 입대를 유도한 결과로 풀이된다. 현재 러시아에서 자원입대 포상을 가장 많이 주는 지역인 사마라주의 경우, 자원입대자에게 이달 기준 400만 루브(약 6,500만원)를 제공하고 있다. 해당 지역 노동자의 월평균 임금이 6만5,000루블(약 106만원)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상당한 거액이다.
전문가들은 많은 러시아인들이 사회적 지위 상승을 목적으로 자원입대를 선택하고 있다고 본다. 키릴 로고프 오스트리아 빈 인문학연구소(IWM) 사회학자는 “모스크바의 자원입대자는 200만 루블(약 3,200만원)을 위해 가족 모두를 데리고 모병사무소를 찾는다”며 “이 돈은 막 결혼한 아들을 위해 아파트를 사거나 또는 대학에 가는 데 쓰인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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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의 병력 충당 노력
러시아는 금전적 보상 외에도 각종 수단을 동원해 병력을 충당해 왔다. 앞서 지난해 10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형사사건 피고인들이 입대를 선택할 경우 재판을 중단한다는 내용의 형법 개정안에 서명했다. 기존 러시아 형법은 유죄 판결을 받은 재소자가 군에 등록하면 석방될 수 있으며, 수사가 진행 중이지만 아직 재판을 받지 않은 혐의자는 입대 시 수사를 중단할 수 있다고 규정해 왔다. 법률 개정을 통해 재판 단계에 있는 피고인들도 군 복무 계약에 동의하면 형사 절차를 유예할 수 있는 혜택을 받게 된 것이다.
같은 달 우크라이나 당국은 러시아가 간염바이러스 보균자인 죄수들을 전장에 투입할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러시아군이 B형·C형 간염을 앓고 있는 수감자들로 ‘B-C 러시아 돌격중대’를 편성, 전쟁에 투입하기로 결정했다는 것이다. 러시아군의 구금시설에 수감된 간염 환자는 1만 명이며, 이 중 약 15%가 전투에 나서겠다는 의사를 밝힌 것으로 전해진다. 앞서 지난 2023년에는 외신을 통해 러시아군이 사면 및 치료제 제공 혜택을 앞세워 인체면역결핍바이러스(HIV) 양성 판정을 받은 죄수들을 전투에 투입하고 있다는 러시아군 포로의 증언이 공개되기도 했다.
러시아가 전쟁에 북한군을 동원한 것 역시 병력 보충을 위한 선택일 가능성이 크다. 국가정보원 등에 따르면, 북한은 지난해 10월부터 러시아를 돕기 위해 병력 약 1만1,000명을 파견했다. 이들은 2024년 5월 체결한 북·러 조약에 따라 우크라이나가 역습한 러시아 쿠르스크 지역에 집중 투입됐다. 북·러 조약은 양국의 군사·경제 분야 협력을 위해 체결됐으며, 북한이나 러시아가 다른 나라로부터 침략을 당했을 시 군사적 지원이 가능하다고 명시하고 있다.
강제 징집 사실상 어려워
이처럼 러시아가 병력 확보에 총력을 기울이는 원인으로는 막대한 규모의 '인력 손실'이 지목된다. 최근 영국 국방성이 분석한 바에 따르면, 우크라이나 전쟁 중 죽거나 다친 러시아군은 86만 명에 달한다. 영국 국방성은 "현재 러시아 군인은 최소한의 훈련을 받고 있고, 러시아 지휘관은 높은 사상자율에도 기본적인 전술을 사용하여 진격을 계속하고 있다"며 "러시아는 전쟁 전 복잡한 작전을 수행할 수 있는 현대적이고 전문적인 군대를 구축하려 했지만, 현재 막대한 사상자 때문에 불가능해졌다"고 짚었다.
죄수, 북한군 등을 적극적으로 활용한 것은 현재 러시아가 자국민을 강제로 전쟁에 동원하기 어려운 상황이기 때문이다. 러시아는 과거 강제 징집으로 인해 수차례 혼란을 겪은 바 있다. 이와 관련해 익명을 요구한 한 외교 전문가는 "1979년 옛 소련은 아프가니스탄 침공을 감행하며 수많은 징집병을 전투에 투입했다"며 "옛 소련 국민들은 강제 징집에 강력하게 반발했고, 이로 인해 엄청난 사회적 파장이 일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후 1990년대 일어난 체첸 전쟁 당시에도 징집에 대한 부정적 여론은 지속됐다"고 부연했다.
푸틴 대통령은 여론을 의식해 우크라이나 침공을 단행하며 대부분의 러시아 국민들에게 '전쟁 발발 이후에도 일상생활에 변화가 없을 것'이라고 공언해 왔다. 전쟁이 장기화하며 이미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한 가운데, 일반 국민까지 강제로 전장에 투입하면 푸틴 대통령을 비롯한 러시아 지도부가 막대한 정치적 리스크를 떠안게 될 수 있다는 의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