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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행정부 인사들 "GDP에서 정부 지출 제외해야" 美 경제 1분기 역성장 전망, 주요 지표도 줄줄이 악화 "결국은 데이터 조작이다" 전문가들 비판 쏟아내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국내총생산(GDP)과 정부 지출을 분리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의 경제 정책으로 인해 미국의 GDP 성장세가 꺾일 것으로 전망되는 가운데, 산출 방식 변경을 통해 활로를 찾겠다는 구상이다. 전문가들은 트럼프 정부의 이 같은 행보가 '통계 조작'의 일환이라는 신랄한 비판을 내놓고 있다.
美, GDP 산출 방식 손보나
4일(이하 현지시간) 외신에 따르면 최근 미국 정부 인사들은 GDP 계산에서 정부 지출을 제외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부 장관은 2일 폭스뉴스 인터뷰에서 "정부가 탱크를 구입하면 그것은 GDP가 된다"며 "그러나 탱크를 구입하는 것에 대해 생각하도록 1,000명에게 돈을 준다면 그것은 GDP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어 "역사적으로 (미국) 정부는 GDP를 엉망으로 만들었다"면서 "그들은 정부 지출을 GDP의 일부로 계산하지만, 나는 그 둘을 분리하고 더 투명하게 만들 것"이라고 덧붙였다.
미국 정부효율부(DOGE) 수장인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 역시 유사한 논리를 펼치고 있다. 그는 지난달 말 자신의 엑스(X·옛 트위터)에 올린 글에서 "정부 지출을 제외해야 더 정확하게 GDP를 측정할 수 있다"며 "그렇지 않으면 국민의 삶을 낫게 만들지 않는 것에 돈을 지출함으로써 인위적으로 GDP를 높게 측정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암울한 美 경제 전망
미국 정부가 GDP 산출 방식을 손질하고자 하는 것은 트럼프 정부 출범 이후 미국의 경제 성장 전망에 먹구름이 꼈기 때문이다. 미국의 경제성장률을 실시간으로 추정하는 애틀랜타 연방준비은행의 'GDP 나우(now)' 모델은 지난 3일(현지시간) 미국의 1분기 올해 성장률을 전기 대비 연율 환산 기준 -2.8%로 제시했다. 지난달 28일 1분기 성장률을 -1.5%로 종전 대비 3.8%p 낮춘 뒤 일주일도 되지 않아 재차 큰 폭의 하향 조정을 단행한 것이다.
성장 전망치 하향의 배경에는 주요 경제 지표의 부진이 있다. 미국 공급관리협회(ISM)에 따르면 미국의 2월 제조업 관리지수(PMI)는 50.3을 기록했다. 이는 전월(50.9)과 예상치(50.7)를 모두 하회한 수치다. PMI는 기업의 구매 담당자를 대상으로 신규 주문, 생산, 재고 등을 조사한 후 가중치를 부여해 0~100 사이의 수치로 나타낸 값으로, 경기 활성화 정도를 보여줘 경기 전망 자료로 흔히 활용된다. PMI가 50 이상이면 경기의 확장을, 50 미만일 경우에는 경기의 위축을 점친 구매 담당자가 많다고 해석한다.
소비 관련 지표 역시 속속 악화하고 있다. 미국의 1월 개인소비지출은 전월 대비 0.2% 감소했다. 이는 전문가들의 예상치(0.1% 증가)를 하회하는 수치이자, 코로나19 팬데믹 초기인 2021년 2월 이후 약 4년 만에 최대 감소폭이다. 개인소비는 미국 경제의 3분의 2를 차지하는 핵심 지표로 꼽힌다. 소비가 흔들리면 사실상 미국 경제 전반의 침체 위기가 가중된다는 의미다.
文 정부 '통계 조작'과 닮은꼴
다만 전문가들은 경제 성장 둔화가 예상된다고 해서 GDP 산출 방식을 변경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지적한다. 익명을 요구한 한 경제 전문가는 "GDP에서 정부 지출은 핵심 구성 요소"라며 "이를 산출 과정에서 제외하면 사실상 경제 정책의 실패를 감추기 위해 데이터를 조작하는 꼴이 된다"고 꼬집었다. 이어 "우리나라에서도 문재인 정부 당시에 유사한 통계 조작 사건이 있었는데, 법적으로 문제가 돼 재판이 진행 중이다"고 덧붙였다.
실제 김수현·김상조 전 청와대 정책실장, 홍장표 전 대통령비서실 경제수석, 김현미 전 국토교통부 장관, 강신욱 전 통계청장 등 문재인 정부 관련 인사 11명은 현재 통계법 위반, 직권 남용 등 혐의로 기소돼 재판을 받고 있다. 이들은 한국부동산원이 산정하는 ‘주간 주택가격 변동률’을 2017년 6월부터 2021년 11월까지 125회에 걸쳐 조작한 혐의를 받는다. 주간 주택가격 변동률은 주택 시장의 평균 가격 변화를 측정해 주 1회 공표되는 통계로, 부동산 대책 수립의 중요한 판단 지표다.
이들의 통계 조작 시도가 집중된 시기는 2020년 4월 총선 이전이었다. 검찰에 따르면 이들은 2019년 12월부터 2020년 3월까지 4개월간 해당 통계를 28차례 조작했다. 당시 국토부 실무자들은 규제 지역을 추가 지정해 집값 상승을 막으려고 했으나, 청와대는 해당 선거구의 여론 악화를 이유로 대책 시행을 미뤘다. 대신 통계를 조작해 정부의 부동산 대책 효과로 집값이 안정된 것처럼 보이게 했다. 이에 따라 해당 통계 수치는 2019년 2월부터 2020년 3월까지 오름세 없이 하향하는 추세를 보였다. 반면 민간 부동산 가격 통계 지표인 ‘KB 변동률’은 총선 직전인 2020년 2~3월 뚜렷한 상승세를 기록했다. 검찰은 이 같은 차이가 정부 차원의 통계 조작 정황을 보여준다고 판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