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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 연구자 포함 반도체 논문 수, 美의 2배 달해 반도체 산업 자립 속도 내는 中, 오픈소스 ISA도 적극 활용 "오픈소스를 어떻게 막나" 美 제재 한계 부딪힐 가능성 커

중국이 반도체 설계·제조 기술에 관한 기초 연구에서 압도적인 성과를 내고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미국의 대중국 반도체 규제가 심화하는 가운데, 기초 연구를 통해 자체적인 기술 역량을 확보하며 '반도체 자립'에 속도를 내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이 같은 중국의 기술 자립 노력은 기초 연구 분야를 넘어 실제 반도체 산업 현장 곳곳에서도 관측되고 있다.
中, 반도체 연구 분야 영향력 확대
3일(이하 현지시간) 미국 조지타운대 신기술 동향 관측소(Emerging Technology Observatory, ETO) 연구진은 2018년부터 2023년까지 전 세계에서 발표된 반도체 설계·제조 관련 논문을 분석한 결과를 공개했다. 연구진은 기존의 컴퓨터 칩, 인공지능(AI) 최적화 그래픽처리장치(GPU)뿐만 아니라 새로운 반도체 아키텍처(설계 방식)를 포함한 신기술까지 범위를 넓혀 연구 동향을 분석했다.
ETO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중국 연구자가 포함된 반도체 설계·제조 관련 논문은 16만852건으로 2위인 미국(7만1,688건) 대비 두 배 이상 많았다. 그 뒤를 인도(3만9,709건), 일본(3만401건), 한국(2만8,345건)이 이었다. 특히 2018~2023년 사이 중국의 반도체 관련 논문 증가율은 41%로 인도(26%), 미국(17%), 한국(6%)보다 훨씬 높았다. 연구진은 “이번 분석은 영어 초록이 있는 논문 47만2,819건만을 대상으로 한 것”이라며 “중국어로 작성된 논문까지 포함하면 중국 연구자의 비율이 더 높아질 가능성이 크다”고 밝혔다.
중국은 논문 수뿐만 아니라 연구 영향력 부문에서도 두각을 나타냈다. 인용 횟수가 상위 10%에 들어가는 논문 중 중국 연구진이 작성한 논문은 2만3,520건에 달했다. 미국(1만300건), 한국(3,920건), 독일(2,716건), 인도(2,706건) 등 여타 국가와 비교하면 압도적인 수준이다. 이에 더해 2018~2023년 반도체 연구를 가장 많이 수행한 상위 10대 기관 중 9곳이 중국 연구 기관이었다.
중국이 반도체 기초 연구에 힘을 쏟는 배경에는 미국의 대중 반도체 제재가 있다. 최근 중국 정부는 미국의 강력한 규제에 대응하기 위해 반도체 자립에 박차를 가하는 중이다. 이와 관련해 제이컵 펠드고이스 조지타운대 분석가는 “중국이 집중 연구하는 기술들은 대부분 미국이 독점하고 있는 기존의 제조 기술이 필요하지 않아 상업화할 경우 미국이 통제하기 어려울 것”이라며 “중국이 차세대 반도체 기술을 성공적으로 상용화하면 오히려 미국을 앞서나갈 가능성도 있다”고 분석했다.
RISC-V 활용도 적극 장려
이 같은 중국의 반도체 굴기 노력은 기초 연구 분야에 국한되지 않는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중국 정부는 오픈소스 명령어 집합 아키텍처(ISA)인 RISC-V(리스크 파이브) 칩의 전국적 활용을 장려하는 정책 가이드를 발표할 예정이다. 해당 정책 가이드는 이르면 3월 내 발표될 가능성이 있으며, 최종 발표 시점은 변동될 수 있다.
RISC-V는 스마트폰용 저전력 칩, AI 서버용 CPU 등 다양한 용도로 활용되는 오픈소스 칩 설계 기술로, 반도체 설계 자산(IP) 확보 역량이 부족한 중국 기업들에 있어 매력적인 선택지라는 평가를 받는다. ARM, x86 등 반도체 IP 시장을 장악한 핵심 아키텍처가 서방 기업들에 의해 통제되는 반면, RISC-V는 오픈소스 기반이라 특정 국가의 영향력이 적기 때문이다. 이에 더해 누구나 라이선스 비용 없이 RISC-V 기반 칩과 소프트웨어를 설계·제조·판매할 수 있는 만큼 비용 절감 효과도 크다.
현재 중국은 RISC-V를 활용한 CPU 양산을 목전에 두고 있다. 지난달 바오윈강(包雲崗) 중국과학원(CAS) 계산기술연구소 부소장은 소셜미디어 웨이보에 올린 글에서 "'샹산(香山) 프로젝트'에 따라 올해 고성능 오픈소스 CPU를 인도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샹산은 고성능 RISC-V 프로세서를 개발하기 위해 마련된 오픈 소스 프로젝트로, 2019년부터 중국과학원 컴퓨팅 기술 연구소와 펑청 연구소의 주도하에 진행되고 있다.

견제 나선 美, 효과는 '글쎄'
미국은 수년 전부터 중국의 RISC-V 활용에 대한 경각심을 드러내 왔다. 지난 2023년 11월 미 상·하원 의원 18명은 “중국이 RISC-V 분야에서 우위를 점하고 미국 안보를 희생시키는 것을 막아야 한다”는 주장을 펼쳤다. 지난해 1월에는 미국 하원의 미중전략경쟁특별위원회(중국특위)가 중국이 'RISC-V'를 사용해 미국의 대중 반도체 수출 통제를 회피할 수 있다며 이를 통제하는 방안을 검토할 것을 정부에 주문하기도 했다.
정계 곳곳에서 우려가 가중되자, 미국 상무부는 지난해 4월 국회의원들에게 중국의 RISC-V 기술 관여가 국가 안보에 미치는 영향을 검토하고 있다는 서한을 보냈다. 상무부는 서한에 “‘잠재적인 위험’을 검토하고 우려를 효과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조치가 있는지 평가하고 있다”며 “RISC-V를 연구하는 미국 기업에 피해를 주지 않도록 주의 깊게 조치해야 한다”고 적었다. 중국의 RISC-V 연구를 잠재적 위험으로 판단하되, 미국 기업들도 RISC-V 개발에 다수 개입돼 있는 만큼 손익을 따져보겠다는 입장을 밝힌 것이다. 실제 RISC-V 프로젝트에는 퀄컴(회장사)·인텔·구글·엔비디아 등 다수의 미국 기업이 참여하고 있다.
다만 관련 업계에서는 미국이 실제 제재에 나선다고 해도 중국의 행보에 제동을 걸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에 힘이 실린다. 오픈소스 기술에 대한 수출 통제는 전례가 없으며, 그 효과 역시 의문스럽다는 분석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RISC-V는 온라인에서 누구나 무료로 내려받을 수 있는 명령어 집합에 불과하다"며 "RISC-V 규제의 효과는 반도체 장비 수출 규제 등에 비하면 사실상 미미할 것"이라고 짚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