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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 원유에 관세 매기겠다" 미국 행보에 캐나다 비상 캐나다산 원유 아시아 유입될 가능성 커, 韓도 수혜 전망 관세 부과로 인한 미국 물가·산업계 타격은 변수

미국과 캐나다의 '무역 전쟁'이 한국에 반사이익을 안겨줄 것이라는 전망이 제기됐다. 미국이 캐나다산 원유에 대한 관세 부과를 앞두고 있는 가운데, 궁지에 몰린 캐나다가 미국 외 수출처를 모색할 가능성이 커지면서다. 업계에서는 저렴한 캐나다산 원유가 한국으로 흘러들어올 경우, 국내 정유업체들의 가격 경쟁력이 강화되며 수익성이 대폭 개선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북미 에너지 시장 '격변' 예상
11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최근 국내 정유업계에서는 캐나다산 원유의 수입이 활성화될 수 있다는 기대가 일고 있다. 미국과 캐나다의 관세 갈등으로 인해 북미 에너지 시장에서 '지각변동'이 발생할 것으로 전망되기 때문이다. 지난달 1일(이하 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캐나다산 제품에 25%, 원유에 10%의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밝혔고, 이후 캐나다 측이 펜타닐 단속 강화 등을 약속함에 따라 해당 조치 적용 시기를 30일 유예한 바 있다. 지난 6일에는 관세 부과 시기를 약 한 달간 추가 유예했다.
다음 달 미국이 캐나다산 원유 관세에 본격적으로 관세를 부과할 경우, 미국과 캐나다의 원유 수출입 전략 역시 급변할 것으로 전망된다. 한 시장 전문가는 "관세 부과가 본격화하면 미국은 가격 부담으로 인해 캐나다산 원유 수입을 줄일 가능성이 크다"며 "미국 수출 의존도가 높은 캐나다 역시 수출 감소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수출처 다변화를 시도할 것으로 보인다"고 진단했다. 실제 EIA(미 에너지정보청)에 따르면 미국 전체 원유 수입의 60%가 캐나다에서 비롯되며, 캐나다의 원유 수출 물량 중 97%가 미국으로 향하고 있다.

韓 정유업계에는 이득
시장에서는 캐나다가 미국의 대체 수출처로 아시아를 택할 것이라는 전망에 힘이 실리고 있다. 특히 글로벌 5위권의 석유 제품 수출국이자, 캐나다 원유 수입이 사실상 전무했던 한국은 캐나다의 잠재 고객이 될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다. 대한석유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월간 기준 우리나라의 주요 원유 수입국은 사우디아라비아(39.1%), 미국(15.3%), 이라크(11.7%), UAE(11.4%), 쿠웨이트(6.5%) 등이다. 캐나다산 원유 수입은 아예 없었다.
캐나다산 원유 수입이 활성화된다면 국내 정유업체들은 가격 경쟁력을 눈에 띄게 강화할 수 있다. 캐나다산 원유가 중동·미국산 원유 대비 저렴하기 때문이다. 지난 9일 기준 캐나다산 원유(WCS) 가격은 배럴당 54.01달러로 두바이유(71.09달러)보다 24.0%, 서부텍사스원유(WTI·66.69달러)보다 19.0% 싸다. 국내 정유사는 해외에서 들여온 원유를 정제한 뒤 석유 제품으로 팔아 마진을 남기는데, 원유 수입 가격이 배럴당 1~2달러만 저렴해져도 영업이익이 대폭 개선된다. 이에 더해 우리나라와 캐나다가 자유무역협정(FTA)을 맺은 만큼 수입 시 관세 부담도 없다.
캐나다산 원유가 중질유라는 점도 호재다. 원유 정제 공장은 경(輕)질유·중질유 등 유종에 따라 설계가 상이한데, 국내 정유사 설비는 대부분 중질유인 중동산 원유에 맞춰져 있다. 중동산 원유를 정제하던 국내 정유업체가 캐나다산 원유를 사들이면 설비 확충·교체 부담 없이 석유 제품을 생산할 수 있다는 의미다.
"미국이 캐나다 놔줄까" 의문도
다만 일각에서는 미국이 실제 캐나다산 원유에 관세를 부과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미국은 세계 최대 원유 생산국이지만, 에너지 산업 생태계가 '자급자족' 구조로 짜여 있지는 않기 때문이다. EIA에 따르면 미국 내에서 처리되는 전체 원유의 약 40%가 해외에서 수입된다. 캐나다산 원유에 높은 관세를 부과할 경우 에너지 가격이 급등할 가능성이 큰 셈이다. 미국이 캐나다산 제품 전반에 25%의 관세를 부과하면서도 원유 등 에너지 관세율은 10%로 조정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현재 미국 제조업의 중추 역할을 수행하는 화학 산단 대부분이 중질유 정제에 특화돼 있다는 점도 문제다. 캐나다산 중질유 수입이 축소되면 제조업 경쟁력 자체가 약화할 수 있다는 의미다. 미국 연료 및 석유화학 제조협회(AFPM)는 지난 1월 발표한 관세 정책 관련 입장문에서 "정유 산업은 서로 다른 원유를 혼합해 최대치의 생산 효율을 발휘해야만 한다"며 "미국 정유산업의 70% 이상이 (셰일이 아닌) 중질유에 의존하고 있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에너지 산업계가 트럼프 대통령의 중요한 정치적 지지 기반이라는 점도 변수다. 지난해 치러진 대선에서 석유·가스 기업들은 트럼프 대통령에게 7,500만 달러(약 1,090억원)를 기부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후 파리기후변화협정 탈퇴, 화석연료 확대 등 업계 친화적 정책을 내놓으며 공생 관계를 형성했다. 그러나 원유를 대상으로 한 관세 부과가 현실화할 경우, 트럼프 대통령의 정책과 에너지 업계의 이해가 충돌하며 이 같은 관계가 붕괴될 가능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