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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가 하락이 나쁜가?" 경제 위축 신호 무시 만성병 된 중국 디플레이션 '日 잃어버린 30년' 위험한 전철 답습 가능성

중국이 올해도 약 5%의 경제성장 목표를 설정한 가운데, 그동안 목표 달성의 원동력이었던 수출 주도 성장이 한계에 부딪히면서 내수 활성화가 시급한 과제로 떠올랐다. 지난 2년간 어려운 경제 환경 속에서도 성장 목표를 달성해 온 중국은 올해도 같은 목표를 제시했지만, 미국을 비롯한 주요국의 관세 장벽이 높아지는 상황에서 수출에 의존한 성장 전략은 더 이상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분석이다.
中, 수출 주도 성장 한계 봉착
11일(현지시간)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따르면 지난해 중국의 GDP(국내총생산) 성장에서 수출이 차지한 비중이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순수출은 GDP 성장의 30.3%에 기여했는데, 이는 2023년 -11.4%에서 크게 반등한 수치다. 반면 소비가 GDP 성장에 기여한 비율은 2023년 82.5%에서 44.5%로 대폭 감소했고, 투자인 자본 형성의 기여도 역시 28.9%에서 25.2%로 하락했다.
문제는 중국의 수출 호조세가 지속되기 어려운 환경이 조성되고 있다는 점이다. 미국은 이미 부과된 약 20%의 관세에 더해 중국산 수입품에 추가로 20%의 관세를 부과했으며, 전기차와 태양열 제품 등 일부 품목에는 100%에 달하는 고율 관세가 적용되고 있다. 다른 국가들도 자국 산업 보호와 무역 불균형 해소를 위해 중국 제품에 대한 관세를 높이는 추세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 경제의 성장 동력을 내수, 특히 소비로 전환해야 할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 중국의 개인 소비는 GDP의 40% 미만에 불과해 미국의 68%에 비해 현저히 낮은 수준이다. 현재 중국 정부는 지난해부터 소비 진작을 위해 다양한 정책을 펼치고 있지만 부동산 침체가 지속되는 상황에서 소비자들의 수요는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이런 가운데 중국은 양회(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전국인민대표대회)가 열리고 있던 지난 5일 전인대 개막식에서 올해 물가 목표를 약 2%로 설정했다. 디플레이션 우려에도 2023년과 지난해에는 목표를 3%로 제시했으나 올해 이를 1%포인트 정도 낮춘 것이다. 중국이 물가 목표치를 2%대로 설정한 것은 약 20년 만으로, 그만큼 지금의 수요 부진 상황을 인정하고 2%의 물가 목표에 맞는 정책을 설정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시진핑, 디플레 위기 간과
최근 중국의 상황을 두고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중국 정부가 점점 더 심각해지는 디플레이션 위험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보좌관들에게 "디플레이션이 뭐가 그리 나쁜가요? 사람들은 물건이 더 싸면 좋아하지 않나요?"라고 물었다는 월스트리트저널(WSJ)의 보도는 중국 최고 지도부가 현재 경제가 직면한 위험의 본질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음을 여실히 드러낸다.
디플레이션은 표면적으로는 소비자에게 유리해 보이지만, 경제 전반에 악영향을 미치는 위험한 현상이다. 지속적인 물가 하락은 소비자들로 하여금 '더 싸질 것'이라는 기대 속에 구매를 미루게 만들고, 이는 기업 수익 감소로 이어져 자본 투자와 임금을 삭감하게 된다. 결국 수요가 더욱 약화되고 물가는 더 하락하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일본은 1990년대 부동산 거품 붕괴 이후 바로 이 같은 디플레이션의 함정에 빠져 '잃어버린 30년'이라는 장기 침체를 겪었다. 일본의 물가와 임금은 주요 선진국 중 가장 낮은 수준으로 떨어졌고, 경제 회복을 위해 막대한 사회적 비용을 치러야 했다. 중국 경제학자들은 일본의 사례를 심도 있게 연구해 왔으나, 최고 지도자가 디플레이션의 위험성을 인식하지 못한다면 효과적인 정책 수립이 어려워진다. 실제로 중국의 근원 소비자물가지수는 2024년에 0.5% 상승에 그쳐 15년 만에 가장 느린 상승률을 기록했으며, 일부 경제 지표는 이미 디플레이션이 진행 중임을 보여주고 있다.
시진핑 주석이 디플레이션보다 인플레이션을 더 큰 위협으로 인식하는 배경에는 중국 공산당의 역사적 경험이 자리하고 있다. 1945년 제2차 세계대전 종전 후 벌어진 국공내전에서 국민당은 심각한 인플레이션을 통제하지 못해 결국 패배했다. 또한 1989년 천안문 사태로 이어진 학생 시위는 20%에 달하는 급격한 물가 상승이 한 원인이었다. 이러한 역사적 경험으로 인해 중국 공산당은 인플레이션을 정권 존립을 위협하는 요소로 인식해 왔고, 이에 재정 규율을 강조해 왔다. 반면 디플레이션과는 싸워본 경험이 거의 없어 그 위험성을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소비 여력 없는데 공급 과잉
현재 중국 경제는 부동산 시장 침체, 소비 부진, 청년 실업률 상승 등 구조적 문제에 직면해 있다. 그런데 이런 위기는 단순 경기 사이클이라기보다는 체제와 관련된 시스템의 문제라는 게 전문가 중론이다. 중국 경제는 아직도 코로나19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모습이다. 이는 국가통계국이 발표하는 소비자신뢰지수에 드러난다. 코로나 위기 속에서도 120포인트 안팎을 오르내리던 지수는 2022년 4월 급락한 뒤 현시점 90포인트 아래에서 머물고 있다. ‘제로 코로나 정책’이 원인이었다. 주요 도시의 봉쇄로 비롯된 불안감이 여전히 소비 심리를 짓누르고 있고, 여기에 부동산 충격이 겹치면서 소비는 축 늘어져 있다. 전형적인 정책 실패다.
물론 중국 정부가 보고만 있었던 건 아니다. 작년 하반기 이후 부동산 시장에 가했던 각종 규제를 풀기 시작했다. 심지어 지방 정부가 나서 남아도는 아파트를 사들이도록 했다. 그런데도 소비 심리는 깨어날 줄 모른다. 소비 기반이 취약하기 때문이다. 소비 여력이 낮으니, 시장은 언제나 공급 과잉이다.
이는 사회 배분 구조에서 비롯된 문제다. 기업의 이익은 3개 경제 주체가 나눈다. 정부는 세금으로 걷어가고, 주주는 배당으로 챙기고, 종업원(소비자)은 급여로 받는다. 통상 이들은 서로 많이 가져가겠다고 싸운다. 노동자 파업은 이를 보여주는 현상이다. 그러나 중국에서 종업원들은 게임에 적극적으로 뛰어들지 못한다.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없으니 종업원들은 회사 이익 배분에서 밀릴 수밖에 없다. 임금이 적으니 가계 소득이 낮고 소비가 위축된다.
이처럼 시스템에서 비롯된 위기는 중진국 함정 탈출을 어렵게도 한다. 선진 경제 진입은 중산층이 대거 소비에 나서고, 경제 구조가 제조업에서 소비 중심으로 바뀌어야 가능한데, 중국은 그게 안 된다. 공산당 권위주의가 경제의 탄력성을 억누르면서 소비 중심의 구조 전환은 쉽지 않은 과제가 됐다. 중국은 ‘신질생산력(新質生産力)’ 육성으로 성장 엔진을 하이테크 중심으로 바꾸겠다는 계획이지만, 이는 제한된 파티일 뿐이다. 해당 산업의 혁신을 가져올 수는 있어도 소비 시장 규모를 키우는 데는 한계가 있어 결국 과잉 생산 문제를 가중할 뿐이다. 중국이 세계 각국으로부터 ‘지독한 디플레이션 수출국’이라고 비난받는 이유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