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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중 패권 경쟁에 관세폭탄 덮쳐 제조·공급 업체들 ‘탈중국’ 속도 ‘세계의 공장’ 타이틀 인도로 이동하나

중국 이외 지역으로 생산지를 옮기는 글로벌 기업들의 ‘차이나 엑소더스’가 속도를 내고 있다. 그간 기업들은 중국 공급업체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기 위해 중국 외 다른 국가 업체를 찾아 중국 업체를 보완하는 ‘중국 더하기 1’ 전략을 추진해 왔지만, 이제는 아예 생산 기지를 중국에서 다른 국가로 옮기는 전략이 새로운 원칙으로 떠오른 분위기다. 다만 단기적으로는 공급망 전략을 빠르게 선회하고 있으나, 불확실한 정책 환경으로 장기 계획은 여전히 수립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관세폭탄에 공급망 수정 가속화
27일(이하 현지시간)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글로벌 마켓 인텔리전스 발표에 따르면, JD 밴스 미국 부통령이 지난 22일 인도를 방문해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와 잠재적 무역 협정을 논의하는 등 미국 정부의 새로운 무역 정책이 본격화되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 취임 이후 몇 달 동안 대부분 국가에서 수입되는 상품은 새로운 관세 대상이 되거나 오는 7월까지 추가 관세가 부과될 전망이다.
이 같은 관세정책에는 미국의 5대 교역 상대국인 멕시코, 중국, 캐나다, 독일, 일본에 대한 20% 이상의 관세율이 포함된다. 이들 국가의 2024년 누적 교역 규모는 1조6,660억 달러(약 2,394조원)로 미국 전체 수입의 약 절반을 차지한다. 특히 중국에 대해서는 100% 이상의 고율 관세가 부과되고 있어 공급망 재편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이런 가운데 다국적 기업들이 취할 수 있는 핵심 단기 전략은 '제품 흐름 재배치'다. 예컨대 100% 이상의 고율 관세가 적용되는 중국에서 미국 시장용 제품을 생산하는 기업은 중국산 제품을 다른 국가 시장으로 돌리고, 미국 시장은 상대적으로 관세율이 낮은 국가의 생산 시설을 통해 공급하는 방식이다.
애플, 美 판매 아이폰 인도 생산 검토
실제 다수 기업은 관세 충격을 최소화하기 위한 단기 전략을 이미 실행 중이다. 네덜란드 맥주 기업 하이네켄홀딩은 관세 발표에 앞서 미국 창고에 여분의 맥주를 미리 선적했고, 생활용품 기업 킴벌리-클라크는 관세 영향을 완화하기 위해 특정 시장에서 제품 공급처를 전환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애플도 공급망 다변화 전략을 가속화하는 모습이다.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애플은 2026년 말까지 매년 미국에서 판매되는 아이폰 6,000만 대 이상을 전량 인도에서 조달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앞서 트럼프 행정부는 인도에도 26%의 상호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발표했지만 90일간 적용을 유예했다. 또 스마트폰과 개인용컴퓨터(PC)를 포함한 전자제품을 상호관세 부과 대상에서 제외했다. 이에 따라 현재 인도산 아이폰에는 관세가 부과되지 않는다.
애플은 그간 공급망 다각화를 위해 다분히 노력해 왔다. 이를 감안해도 연간 6,000만 대 이상에 달하는 미국 판매용 아이폰 전량을 인도에서 조달하겠다는 목표는 업계의 당초 예상을 넘어선 것이다. 지난 20여 년간 막대한 비용을 투자해 중국에 세계 최고 수준의 생산 라인을 구축하고 이를 기반으로 3조 달러(약 4,300조5,000억원) 규모의 거대 기술 기업으로 성장한 애플이 이제는 인도에서 아이폰 생산량을 지금의 두 배로 늘리겠다는 의미다. 이와 관련해 시장조사업체 퓨처럼그룹의 다니엘 뉴먼 최고경영자(CEO)는 “중국에서 인도로의 생산 전환 조치는 애플이 성장과 모멘텀을 유지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비용·생산량 면에서 중국 능가할 국가 없어"
다만 시장에선 애플의 완전한 탈중국은 쉽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2024년 애플의 전 세계 아이폰 출하량 2억3,210만 대 중 약 28%가 미국 시장에서 판매됐다. 그런 만큼 모든 미국 판매 아이폰을 인도산으로 대체하려면 인도 내 생산 역량을 대폭 확대해야 한다. 현재 애플은 폭스콘과 타타전자 등 계약 제조업체를 통해 인도 내 생산 능력을 확장하고 있으나, 최종 조립만 인도에서 이뤄질 뿐 여전히 수백 개 부품은 중국 공급업체에 의존하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모펫네이선슨의 크레이그 모펫 애널리스트는 최근 고객 메모를 통해 “조립 공정을 인도로 옮기더라도 공급망은 여전히 중국에 뿌리를 두고 있다”며 “조립 이전은 중국 정부 저항에도 직면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실제 애플은 최근 중국에서 인도로 시험 장비를 반출하려고 했지만 중국 당국이 이를 지연하거나 차단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른 기업 상황도 마찬가지다. 골드만삭스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이 중국에서 수입하는 품목의 36%(1,580억 달러 상당)는 중국이 공급의 70% 이상을 차지하고 있어 미국 수입업자들이 상당한 관세 압박하에서도 대체 공급원을 찾을 수 있는 단기적인 유연성은 제한적이다. 특히 통신, 건설, 제조, 기계, 전기 장비 부문은 중국 공급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 실제 미국 국제무역위원회 자료를 보면 중국은 2024년 미국이 수입하는 PC 모니터와 스마트폰의 70% 이상, 노트북의 66%를 공급했다. 이는 완전한 디커플링(탈동조화)이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것을 보여준다.
정치적으로도 디커플링 추진은 지속이 어려울 수 있다. 중국 전문 컨설팅기업 가베칼 드래고노믹스는 보고서를 통해 2024년 대선에서 트럼프를 지지한 블루칼라 노동자들이 주로 일하는 건설, 자동차 제조, 섬유 부문이 중국 부품에 대한 의존도가 가장 높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이들 부문에 경제적 혼란을 초래하는 관세는 중국과 디커플링을 추구하려는 정치적 의지를 약화시킬 수 있다"고 경고했다.
기업들이 탈중국을 가속화하고 있지만 중국의 인프라와 공급업체, 노동 생태계를 따라잡을 수 있는 국가는 아직 없다는 평가도 나온다. 시장조사기관 IDC의 마리오 모랄레스 분석가는 “장기적으로 새로운 생산 라인을 만드는 것은 더 비싸고 위험해질 수 있다”며 “중국에서 철수할 경우 공급업체에 최대 15%의 비용이 더 들 수 있다”고 추정했다. 그는 이어 “중국 제조업을 이기기는 어렵다”며 “비용, 생산량, 납기 면에서 그들을 능가할 수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