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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이란 원유 제재, ‘경제난’으로 연결 인구 수백만 명 ‘비공식 노동’ 몰려 고통은 “정권 아닌 국민이”
본 기사는 VoxEU–CEPR(경제정책연구센터)의 칼럼을 The Economy 편집팀이 재작성한 것입니다. 원문 분석을 참조해 해석과 논평을 추가했으며 본 기사에 제시된 견해는 VoxEU 및 CEPR과 반드시 일치하지 않음을 밝힙니다.
2012년 미국과 유럽연합(EU)이 원유 수출에 전면적인 제재를 가하면서 이란은 전례 없는 경제 쇼크를 겪었다. 대상 품목의 교역에만 영향을 미치는 일반적인 경제 제재와 달리, 원유 수출국에 내린 원유 제재는 이란 경제의 핵심을 뒤흔들었다. 이란에게 원유는 주요 수출품일 뿐 아니라 정부 수입의 근원이었고 결국 수백만 명의 국민이 비공식 노동(informal labor, 법적 규제를 벗어나 운영되는 일자리) 시장으로 내몰리는 결과로 이어졌다.

2012년 원유 금수조치로 ‘이란 경제 붕괴’
보통의 경제 제재는 생산 비용을 올리고 공급망을 무너뜨린다. 하지만 이란에 가해진 원유 금수 조치는 핵심 수출품의 교역을 막았을 뿐만 아니라 정부 지출의 근원이 되는 자금줄까지 끊었다. 2011년에 하루 250만 배럴에 달하던 원유 수출은 제재 이후 2013년 중반이 되자 110만 배럴로 감소했고, 이로 인해 정부 예산도 300억 달러(약 43조원)가 줄었다. 사회 기반 시설과 학교를 포함한 공공 투자도 하룻밤 사이에 증발했다.
물가 상승과 수요 감소가 동시에 일어나면서 이란 경제는 장기 침체로 접어들었다. 2012~2014년 이란의 국내총생산(GDP)은 8%가 줄고 인플레이션은 2013년 중반 45%까지 치솟았다. 하지만 진짜 고통은 공식적인 통계에 나타나지 않았다. 최악의 고통을 끌어안은 이들은 정규직을 잃고 비공식 일자리로 밀려난 수많은 이란 국민이었다.


산업 위기로 ‘비공식 고용 인구’ 급증
연구에 따르면 경제 제재 이후 무역 의존도가 높은 산업 및 연관 종사자들이 비공식 고용으로 이동할 확률은 5~6%P 더 높다고 한다. 이란의 경우는 수요 감소와 공급망 와해가 동시에 진행되며 도매상, 공장 노동자, 노점상, 서비스직 등 다양한 직종의 생계가 위협받았다.
그중에서도 가장 큰 타격을 받은 계층은 저학력 청년들이었다. 이미 24%라는 높은 실업률에 시달리던 대다수는 차량 호출 서비스나 온라인 재판매 같은 임시직(gig work)으로 발길을 돌렸다. 이란 노동 인구의 25%를 차지하던 여성들도 다수가 정규직에서 내몰려 2013년 비공식 일자리의 40%를 점유했다.
미국과 유럽의 경제 제재는 사실상 이란을 글로벌 시장에서 분리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경제학자들은 이를 ‘교역이 끊어진 헤커-올린(Heckscher-Ohlin, 생산 효율이 높은 상품을 수출하고 효율성 낮은 상품은 수입하는 무역 방식)의 세계’라고 비유하기도 한다. 이란 산업의 근간인 자본 집약적 원유 생산과 석유화학 산업은 위기에 처했고 자본재는 휴면 상태에 들어갔다.
저숙련 노동력을 수용하던 건설 및 소매 등 원유 수입 의존 산업도 침체에 빠졌다. 무역 단절로 생산 요소 비용과 수요를 조율할 수 없게 되자 임금과 투자 수익률도 급감했다. 그나마 군수품 제조나 정유 시설 등 국영 기업은 정부의 보호를 받았지만 영세 상인과 노점상, 무허가 작업장 등은 치솟는 위기 속에서 스스로를 지켜야 했다.
경제 제재와 비공식 고용 ‘상관관계’
경제 제재와 비공식 고용의 관계는 이란에서만 나타난 현상이 아니다. 수십 년간 제재를 겪은 쿠바 역시 비공식 경제 인구가 전체의 44%에 이른다. 북한도 완전 고용을 달성하고 있다는 공식 주장과 달리 ‘장마당’으로 알려진 노점이 주민 생존의 근간이 된 지 오래다. 2022년 제재를 받은 러시아도 원유 수입으로 충격을 완화하려 했지만 물류 및 디지털 영역을 중심으로 비공식 노동의 빠른 증가를 경험했다.
이상이 사실이라면 정책 당국은 고민에 빠질 수밖에 없다. 체제를 겨냥한 경제 제재가 비공식 경제 인구를 포함한 서민들에게 가장 큰 타격을 주는 것이다. 제재로 무역이 중단되면 정부 수입이 줄고 당연히 지출도 감소한다. 공급망이 붕괴하면 가장 먼저 자리를 접어야 하는 것은 소상공인들이다. 인플레이션이 치솟아도 가장 큰 고통을 겪는 이들은 고용 계약도, 사회 보험도, 노조도 없는 비공식 노동자들이다.
적절한 구호 조치나 지원책이 없다면 경제 제재는 ‘긴축 정책’과 비슷하게 작용하는데 이마저도 계층 간 불평등이 존재한다는 얘기다. 엘리트 계층과 국영 기업들은 정부의 도움을 받아 위기를 넘기지만 저소득층과 청년 및 여성은 충격을 고스란히 받아내야 한다. 이러한 상태가 지속되면 빈곤과 불평등이 심화하는 것도 문제지만 경제 제재를 통해 얻고자 한 목표를 달성할 수 없다는 사실도 심각한 고민거리다.
경제 제재의 의도와 목표는 적절하고 건전할 수 있다. 하지만 비공식 경제 인구에 미치는 악영향과 고통은 부수적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치명적이다.
원문의 저자는 알리 모가다시 켈리쇼미(Ali Moghaddasi Kelishomi) 러프버러 경영대학원(Loughborough Business School) 강사 외 1명입니다. 영어 원문 기사는 The impact of international economic sanctions on informal employment | CEPR에 게재돼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