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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 독일 플랙트그룹 15억 유로에 인수 지난주에는 美 프리미엄 오디오 브랜드 사들여 사법 리스크 떨쳐낸 이재용, 사업 확장에 속도 내나

삼성전자가 독일 플랙트그룹(FläktGroup, 이하 플랙트)을 인수한다. 지난주 오디오 사업 부문에서 대규모 인수합병(M&A)을 단행한 데 이어 공조 사업 부문에서도 사업 확장에 속도를 내는 양상이다. 시장에서는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의 사법 리스크가 일부분 해소된 만큼, 앞으로도 삼성전자가 공격적인 M&A 행보를 이어갈 것이라는 전망에 힘이 실린다.
삼성전자, 공조 사업 확장 '박차'
14일 삼성전자는 독일의 공조기기 업체 플랙트를 15억 유로(약 2조3,780억원)에 인수했다고 밝혔다. 플랙트는 1918년 설립된 유럽 최대 공조기기 기업으로, 100년이 넘는 업력을 발판 삼아 유럽 공조 시장을 선도해 왔다. 현재 대형 병원, 박물관, 공항, 터미널 등 민간 및 산업 시설과 다수의 글로벌 대형 데이터센터에 플랙트의 고성능 공조 시스템이 공급되고 있다.
삼성전자는 이번 인수를 통해 플랙트의 글로벌 대형 고객사와 고효율 공조 기술을 확보하게 됐다. 이를 기존에 보유한 빌딩 통합 제어 솔루션과 결합하면 서비스 안정성·수익성 측면에서 유의미한 시너지를 창출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노태문 삼성전자 디바이스경험(DX)부문장 직무대행은 “삼성전자는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 등에 수요가 큰 중앙공조 전문업체 플랙트를 인수하며 글로벌 종합 공조 업체로 도약하기 위한 발판을 마련했다”며 “앞으로 고성장이 예상되는 공조 사업을 미래 성장동력으로 지속 육성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오디오 부문에서도 '빅딜' 추진
삼성전자의 적극적인 M&A 행보는 지난주부터 본격적으로 부각돼 왔다. 지난 7일 삼성전자는 전장·오디오 자회사인 하만 인터내셔널(하만)을 통해 미국 마시모사 산하 오디오 사업부를 35억 달러(약 4,800억원)에 인수한다고 밝혔다. 2016년 11월 80억 달러(약 9조원)를 투자해 하만을 인수한 이후 약 8년 만에 처음으로 대규모 M&A에 나선 것이다.
이번에 하만이 인수하는 프리미엄 오디오 브랜드는 바워스앤윌킨스(이하 B&W), 데논, 마란츠, 폴크, 데피니티브 테크놀로지 등이다. 1966년 영국에서 설립된 B&W는 관련 시장을 대표하는 럭셔리 오디오 브랜드로 꼽힌다. 데논은 CD 플레이어를 최초 발명한 115년 전통의 오디오 브랜드이며, 마란츠는 프리미엄 앰프·리시버 제품군에서 소비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하만은 이번에 인수하는 마시모의 오디오 사업을 하만의 라이프스타일 사업 부문과 결합해 사업 경쟁력을 강화할 계획이다. 카돈, JBL, 뱅앤올룹슨 등을 기존 보유 브랜드를 중심축 삼아 움직이던 하만의 카 오디오 사업 부문도 M&A를 기회 삼아 포트폴리오를 확대한다. 이를 통해 자동차 업체와 고객에게 브랜드별로 차별화된 오디오 경험을 제공하고, 사업 위상을 공고히 한다는 방침이다.

이재용 회장의 화려한 복귀
시장은 삼성전자가 수년간 외면했던 대규모 M&A를 연달아 추진하기 시작했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그동안 삼성전자는 M&A를 통한 미래 성장 동력 발굴에 소극적이라는 비판에 시달려 왔다. 이건희 선대 회장 별세 후 이 회장이 국정농단 등 각종 사법 리스크에 시달리며 경영에 집중하지 못해 M&A 관련 의사 결정이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회장은 검찰의 상고로 현재도 부당 합병 및 회계 부정 혐의 재판을 받고 있으나, 올해 2월 3일 ‘제일모직-삼성물산 부당 합병’ 항소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으며 운신의 폭이 넓어진 상황이다. 이 회장의 지휘 아래 앞으로도 공격적인 M&A 행보가 지속될 수 있다는 의미다. 이와 관련해 한 시장 관계자는 "삼성전자는 AI, 로봇, 전장 등을 미래 먹거리로 점찍고 관련 매물을 지속적으로 탐색 중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며 "가전제품, 반도체, 스마트폰 등 기존 사업을 육성하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자본 시장에 진출해 체급을 키우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M&A를 위한 '실탄'은 이미 충분한 것으로 추산된다. 지난해 9월 말 기준 삼성전자가 보유한 현금성 자산은 약 104조원(현금 및 현금성 자산 43조1,000억원, 단기금융상품 60조6,000억원)에 달한다. 이는 전년과 비교해 10조원 이상 많은 수준이다. 반도체 등 부문에서 시설 투자 지출이 확대되고 있음에도 불구, 보유 현금 규모가 늘어날 정도로 유동성 곳간에 여유가 있다는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