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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中 무역 갈등 완화에 되살아난 주식 시장 지난달까지만 해도 곳곳에서 상장 중단 사례 빗발쳐 홍콩, 관세 전쟁 피해와 혜택 동시에 떠안아

글로벌 증시가 활기를 되찾고 있다. 미·중 무역 갈등으로 인한 긴장감이 일시적으로 완화되자, 얼어붙었던 주식 시장이 활기를 되찾으면서 기업공개(IPO) 움직임이 활발해진 것이다. 투자자들은 미·중 관세 전쟁의 직접적 영향권에 들었던 홍콩 증시 등 각국 시장에 찾아올 변화에 이목을 집중하고 있다.
글로벌 IPO 시장 활기 되찾아
15일(이하 현지시각)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올해 들어 전 세계 증시에서 IPO를 통해 모금된 자금은 436억 달러(약 61조원)로 집계됐다. 이는 작년 같은 기간과 비슷한 수준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관세 전쟁'을 선포했던 지난달에는 월간 IPO 실적이 2020년 팬데믹 이후 가장 부진한 수준까지 악화하기도 했지만, 미국과 중국의 무역 갈등이 극적으로 완화되며 상황이 뒤집힌 것이다. 앞서 지난 12일 미국과 중국은 스위스 제네바에서 진행한 고위급 회담을 마치고 90일간 상호 부과한 고율 관세를 대폭 인하하기로 합의한 바 있다.
시장 불확실성을 우려해 몸을 웅크리고 있던 기업들은 기회를 틈타 IPO를 속속 재개하고 있다. 이스라엘계 주식 및 암호화폐 거래 기업 이토로(EToro)는 미·중 무역 합의 이틀 후인 지난 14일 뉴욕 증시에 상장했다. 시장 예상보다 높은 52달러(약 7만2,000원) 선에서 공모가를 책정한 이토로는 상장 첫날 공모가 대비 29% 오른 67달러(약 9만3,000원)에 거래를 마쳤다.
미국 핀테크 기업인 차임(Chime)은 여름 비수기 전 뉴욕 증시 상장을 추진 중이다. 지난 14일 상장 신청이 이뤄졌다는 점을 고려하면 실제 상장 시기는 6월 초가 될 가능성이 크다. 차임은 지난 2021년 투자 라운드에서 250억 달러(약 35조원) 수준의 기업가치를 평가받은 바 있다. 이 밖에도 TV 광고 플랫폼 업체 MNTN, 헬스케어 기업 힌지 헬스(Hinge Health) 등이 증시 입성을 준비하고 있다.
4월에 찾아온 '혹한기'
글로벌 증시는 미국발(發) 관세 전쟁이 본격화한 지난달까지만 해도 꽁꽁 얼어붙어 있었다. 미국에서는 티켓 플랫폼 스텁허브, 의료용품 공급 업체 메드라인 인터스트리 등의 상장이 지연됐고, 유럽에서는 투자회사 그린브릿지 등의 상장 행보가 멈췄다. 아시아에서는 LG전자 인도법인의 상장이 일시적으로 중단됐다.
국제 자본의 중국 진입 경로인 홍콩 증시도 하락세를 피해 가진 못했다. 홍콩 거래소에 상장된 50개 우량 기업의 시가총액을 기준으로 산출하는 홍콩 항셍지수(Hang Seng Index, HSI)는 4월 1일 종가 기준 23,490포인트에서 4월 30일 종가 기준 22,119.41포인트까지 하락했다. 월간 하락률은 약 5.8% 수준이며, 가장 하락률이 컸던 날은 지난 4월 7일(13.22% 하락)이었다. 항셍지수가 하루 만에 13% 이상 하락한 것은 1997년 아시아 금융 위기 이후 처음이다.
홍콩에 H주(H-share)로 상장된 기업들을 대상으로 산출하는 홍콩 H지수(Hang Seng China Enterprises Index, HSCEI)도 4월 1일 종가 기준 약 8,593포인트에서 4월 30일 종가 기준 8,076.26포인트로 한 달간 6.0% 하락했다. H주는 중국 본토에 소재한 기업의 일반 주식으로, 홍콩에서만 거래된다. H지수는 시가총액, 거래량 등의 기준으로 40개의 H주 상장 기업을 추려 산출된다.

홍콩, 관세 전쟁 반사이익 누렸다?
다만 미·중 관세 전쟁이 홍콩 증시에 부정적으로만 작용한 것은 아니다. 중국 기업들은 무역 갈등으로 인해 발생한 지정학적 리스크를 피하기 위해 홍콩 증시로 대거 이동했다. 이와 관련해 한 시장 관계자는 "미국은 중국 기업에 대한 회계 투명성 요구를 강화하고, 엄격한 상장 요건을 내세우며 압박을 가했다"며 "지난달에는 정부 인사가 직접 중국 주식을 미국 거래소에서 상장폐지하겠다고 위협하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안정적으로 글로벌 시장의 자금을 조달하고 싶은 중국 기업들은 미국 대신 홍콩을 찾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실제 미·중 관세 전쟁이 눈에 띄게 격화한 이후 다수의 중국 기업이 홍콩 증시에 도전장을 던졌다. 우선 세계 최대 배터리 기업인 중국 CATL의 경우, 지난 11일 홍콩 증권거래소 IPO를 목표로 상장예비심사청구서를 제출했다. CATL이 제출한 서류에 따르면 이번 IPO를 통해 총 1억1,790만 주가 매각된다. 최대 공모가는 263홍콩달러(약 4만7,000원) 수준에서 책정됐다. 공모가가 상한선에서 결정된다고 가정했을 때 시가총액은 310억770만 홍콩달러(40억 달러, 약 5조6,000억원)다. 향후 거래 규모가 커져 소위 '그린슈 옵션(초과배정옵션)'이 행사되면 IPO 규모는 최대 53억 달러(약 7조4,400억원)까지 확대될 수 있다.
이미 뉴욕 증시에 상장한 중국 로보택시 운영 업체 포니 AI 역시 홍콩 상장을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지난 14일 블룸버그통신은 포니 AI가 홍콩 증권 당국에 은밀히 IPO를 신청했다고 사안에 정통한 복수의 소식통을 인용해 보도했다. 기존 상장돼 있던 미국 거래소에서 상장폐지 위기가 고조되자, 제2의 거점을 마련하기 위해 홍콩으로 눈을 돌린 것으로 풀이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