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와 기회 공존" 트럼프노믹스 2.0에 요동칠 韓 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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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관세 난타전' 비화 땐 韓수출 60조원 감소 전망
반도체 보조금 지급요건 강화·무력화 가능성↑
"대중국 반도체 견제 시 반사이익" 장밋빛 전망도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재집권에 성공하면서 한국 경제도 불확실성의 소용돌이에 휩싸이게 됐다. 미국 우선주의를 천명하며 기존 글로벌 문법을 깨트린 트럼프 당선인의 '관세 폭탄'에 따른 우려다. 트럼프 발 보호무역 정책에 의한 국내 수출 감소 폭이 최대 62조원, 실질 경제성장률(GDP) 하락 폭은 최대 0.7%에 이를 수 있다는 암울한 시나리오가 나오는 한편, 그에 따른 반사이익으로 일부 산업군은 수혜를 입을 수 있다는 전망이 제기되는 등 호재와 악재가 뒤엉킨 모습이다.
감세로 악화할 재정적자, 관세로 상쇄
6일(현지시간) 미국 대선에서 승리한 트럼프 당선인의 경제 정책 핵심은 ‘감세’와 ‘관세’로 요약된다. 트럼프 감세안의 골자는 △내년 만료되는 개인소득세율 인하 등의 조치 영구 연장 △법인세 최고세율(21→20%·미국 국내 제조기업 15%) 인하 △팁·사회보장급여에 대한 소득세 면제 등이다. 다만 이 같은 대규모 감세 정책은 재정적자를 유발하기 마련인데, 미국의 모든 수입품에 보편 관세를 부과해 구멍난 재정을 메우겠다는 게 트럼프의 관세안이다.
트럼프 당선인이 공약대로 관세를 인상할 경우 세계 무역 판도에도 즉각적 변화가 초래될 것으로 전망된다. 그는 재집권 시 중국산 제품에 60%의 고율 관세를, 다른 국가 상품에도 10~20%의 보편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공언한 상태다. 현재도 높은 대중 관세 장벽을 더욱 높이고 EU(유럽연합)·캐나다·한국 등 핵심 동맹국에까지 보편 관세를 매겨 자국 산업과 일자리를 지키겠다는 것이다. 이는 무차별적인 관세 난타전 양상을 부추기고 전 세계적으로 자국 우선주의 통상 정책을 강화하는 데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보편관세, 물가상승·경쟁력약화 초래
또한 이 같은 무역장벽 정책은 상대국의 보복관세 촉발, 상품 가격상승 및 제조업 고용 감소로 이어지면서 중장기적으로는 미국 경제도 하방리스크를 부담하게 될 것이란 평가가 적지 않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TD증권 애널리스트들은 10% 보편 관세로 인해 0.6∼0.9%포인트가량의 물가 상승이 있을 것으로 추산했다. 이어 관세 인상은 트럼프 당선인의 이민 제한 강화 공약 등과 결합해 미국의 성장률을 1∼2%포인트 낮출 수 있고, 이에 따라 경기 침체도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고 봤다.
스탠다드차타드 이코노미스트들도 트럼프 당선인의 관세 공약이 현실화할 경우 물가가 2년간 1.8% 오를 수 있다고 예상했다. 울프리서치 역시 트럼프 당선인의 보편 관세 정책이 민주당의 부유층 감세 종료 계획보다 경제에 악영향을 끼칠 것으로 봤다. 실질적인 증세 효과가 더 큰 데다 비용 변화에 민감한 중산층·저소득층에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재닛 옐런 미국 재무부 장관도 보편 관세가 미국의 가계 부담을 제고하고, 나아가 기업의 경쟁력까지 약화시킬 것으로 보고 있다. 옐런 장관은 "중국의 시장 접근 장벽과 불공정 무역 관행은 현재 미국 기업과 근로자는 물론 중국에서 사업을 하려고 하는 다른 외국 기업에도 어려움을 주고 있다"며 "중국의 정책이 핵심 산업에서의 과잉 생산으로 이어지면서 미국 기업 등의 생존 가능성을 위협하고 공급망이 과잉 집중되는 리스크를 키우고 있는데, 이는 글로벌 경제 회복력을 약화시킨다"고 지적했다.
배터리·자동차 산업 '시계제로'
트럼프 당선인의 고율 관세 공약은 한국 경제에도 직격탄이 될 전망이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은 트럼프 당선인이 관세 정책을 시행하면 한국의 수출액은 최대 448억 달러(약 62조원) 감소할 것으로 내다봤다. 이는 한국에 보편관세 10~20%를 부과할 경우 직접적으로 줄어드는 총수출액(152억~304억 달러)에 더해, 미국이 제3국에 관세를 부과해 한국산 중간재에 대한 수출이 감소(47억~116억 달러)하는 경우, 상대국이 미국에 보복관세를 부과하면서 한국산 중간재 수출이 줄어드는 경우(6억~28억 달러)까지 고려한 추정치다.
여기에 최근 미국의 대한국 무역적자가 최근 크게 확대됐다는 점도 큰 부담이다. 이미 트럼프 1기 행정부 때인 지난 2018년 무역적자를 이유로 한미 FTA(자유무역협정) 개정을 요구한 바 있다. 당시 132억 달러(약 18조3,700억원) 수준이었던 미국의 대한국 무역적자는 지난해 445억 달러(약 61조9,500억원)로 3.3배 늘어난 상태다. 올해 상반기에도 미국의 한국 상대 무역적자는 340억7,800만 달러를 기록하며 증가세를 이어가고 있다. 2021년만 해도 14위에 머물렀던 한국의 무역적자국 순위도 2022년 9위, 2023년 8위로 빠르게 올라갔다.
이런 가운데 전문가들이 가장 먼저 타격을 입을 것으로 거론하는 산업군은 배터리 업계다. 트럼프 당선인은 조 바이든 정부가 도입한 IRA(인플레이션감축법) 폐지를 공언해 왔다. 당초 한국 배터리 업계는 IRA 효과로 일본을 제치고 미국 시장 점유율 1위에 오른 터였다. 이런 상황에서 향후 IRA 지원 규모가 축소될 경우 한국 배터리 업계의 투자 위축과 수익성 악화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자동차 업계도 비상이다. 전기차로 대미 수출 비중을 전체 자동차 수출의 절반까지 높였던 완성차 업체로서는 트럼프 당선인의 ‘친환경 정책 폐기’로 위기를 맞게 됐다. 특히 트럼프 당선인은 자국 우선주의 원칙 하에 수입차에 최대 100%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예고한 상황이다. 미국 내 자동차 제조를 늘리기 위함인데, 결국 수입차 관세 인상은 한국 완성차의 가격 경쟁력을 약화하고 미국 내 현지 생산을 검토할 필요성을 높인다는 게 전문가 중론이다.
반도체·방산·원전은 반사이익 기대
다만 기회와 위협이 동시에 언급되는 분야도 있다. 반도체 산업이 대표적이다. 당장 바이든 행정부에서 진행된 '반도체 과학법'(칩스법)법 혜택은 축소될 것으로 전망되지만, 이 같은 견제 조치를 중국도 함께 받는 만큼 한국 반도체가 반사이익을 얻을 수 있다는 관측이다. 산업연구원은 최근 ‘미국 대선 시나리오별 한국 산업 영향과 대응 방향’ 보고서에서 “트럼프 당선인의 집권으로 반도체 지원을 축소하는 대신 투자를 늘리라는 압박을 받을 수 있으나, 중국 견제 및 자국 내 첨단공정 제조 기반 생태계 구축이라는 목표를 고려할 때 이는 현실화 가능성이 낮을 것으로 보인다"며 "오히려 반도체 및 핵심 판로 수요산업 내 중국 경쟁기업 견제 강화로 한국 반도체의 반사이익 기대된다”고 분석했다.
방산 산업은 트럼프노믹스 2기에 따른 호재가 예상되는 분야다. 트럼프 2기 출범과 동시에 국제적 안보 불안감이 커지고 각국의 방위비 분담이 늘어날 경우 방산 수요가 커질 것이란 기대다. 현재 트럼프 당선인은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NATO) 폐지를 공공연하게 언급하는가 하면, 유럽 내 나토 국가들의 국방비 지출을 GDP의 3% 수준까지 끌어올리라고 압박하고 있다. 산업연구원에 따르면 유럽 국가들이 GDP 3% 수준까지 국방비를 늘리려면 향후 최대 5,000억 달러(약 696조원)의 국방비 순증이 예상된다.
원전 산업도 수혜를 입을 것으로 점쳐진다. 트럼프 당선인은 원전 발전 허가 취득 절차 간소화, 원자력규제위원회(NRC) 규제 완화 등을 공약한 바 있다. 여기에 중국·러시아 견제를 위해 소형모듈원전(SMR) 관련 지원이 확대되면 관련 산업의 미국 진출이 탄력을 받을 수 있다는 분석이 우세하다. 중국산 저가공세 속 좀처럼 빈틈을 찾지 못했던 에너지저장장치(ESS) 분야도 활로를 모색할 수 있을 전망이다. 아울러 조선업계도 최대 경쟁국으로 꼽히는 중국에 높은 관세 부과 등 제재를 적용하면 발주가 늘어날 것으로 예측되며, 트럼프 행정부의 화석 연료 중심 정책도 국내 조선 산업에 긍정적인 환경을 제공할 것으로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