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수정
포스코, 4개월 새 공장 2곳 폐쇄 공급 과잉·저가산에 수익성 악화 현대제철도 中 공세에 구조조정
포스코 포항제철소 1선재공장이 45년 9개월간의 가동을 마치고 문을 닫았다. 글로벌 철강 공급과잉과 중국 등의 저가 공세에 따른 결정이다. 자동차, 조선 등 국내 핵심 산업의 뒤를 단단히 받치며 ‘메이드 인 코리아’ 신화를 쓴 한국 철강 산업이 미중 무역 갈등 여파에 시름하는 모습이다.
포스코, 포항제철소 '1선재공장' 폐쇄
20일 철강업계에 따르면 포스코는 45년 넘게 가동해 온 포항제철소 1선재공장을 전날 폐쇄했다. 이는 지난 7월 포항 1제강공장 폐쇄에 이어 올해 두 번째 주요 철강 설비 셧다운(shutdown)이다. 제강 공정은 쇳물의 불순물을 제거하고 성분을 조정하는 제철소의 핵심 공정이고, 선재 공정은 고로에서 생산된 빌렛(billet·반제품)을 제품화시키는 후공정에 해당한다.
1제강공장은 국내 최초 일관제철소 건립을 위한 마침표라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포항제철소 1기 공장 중 후판공장·열연공장은 1972년 먼저 준공됐고, 1973년 6월 9일 쇳물을 만드는 고로에 불이 켜졌다. 같은 달 1제강공장 준공을 끝으로 포항제철소는 비로소 국내 최초 일관제철소 건립을 완성할 수 있었다. 1제강공장은 대한민국 최초로 전로를 도입해 철강을 생산하기도 했다. 1980년대 자동차 산업 부흥기에는 타이어코드와 자동차 엔진밸브용 제품을 이곳에서 생산했고 이후 선재부터 세계 최대 두께 후판용 슬래브까지 생산한 이력이 있다.
1선재공장은 1979년 2월 28일 가동을 시작해 두 차례 합리화(최신 설비로 교체)를 거쳐 45년간 누적 2,800만 톤의 선재 제품을 생산했다. 1선재공장에서 생산한 선재는 못, 나사 등의 재료, 자동차 고강도 타이어 보강재 등으로 활용돼 왔다.
중국산 저가 공습 '치명타'
하지만 두 공장 모두 전방 업계의 부진과 외국산 철강재 유입의 여파를 끝내 이기지 못했다. 이 같은 위기의 가장 큰 원인은 세계 최대 철강 생산국이자 소비국인 중국의 경기 침체다. 건설 경기를 비롯한 중국 내수 침체로 자국에서 과잉생산된 철강이 소비되지 못하자, 저가 제품이 대거 국내로 유입되기 시작한 것이다.
포스코에 따르면 작년 세계 선재 시장 생산 능력은 2억 톤에 달했지만, 실제 수요는 9,000만 톤에 불과했다. 이 가운데 1억4,000만 톤의 생산 능력을 보유한 중국 선재 공장은 내수 건설 경기가 부진하자 제품을 저가로 주변국에 수출하기 시작했고, 이는 글로벌 선재가격을 끌어내리는 기폭제가 됐다.
이에 포스코는 현재 적자 사업, 비핵심 자산 125개를 선정해 처분하는 혹독한 구조조정을 진행하고 있는 상태다. 최근 포스코가 보유한 중국 유일의 제철소 장자강포항불수강(PZSS) 매각에 돌입한 것도 자산 구조 개편의 일환이다. PZSS는 2010년 중반까지만 해도 매년 수십억원에서 수백억원까지 이익을 내는 알짜 회사였다. 한국 연간 스테인리스강 생산량(200만 톤)의 절반이 넘는 110만 톤을 생산할 수 있는 대형 시설로, 포스코는 시설을 짓는 데만 1조원을 투자했다.
그러나 중국 정부가 철강 자립화를 추진하면서 공급 과잉이 발생해 2015년부터 적자를 내기 시작했다. PZSS는 지난해에만 1,699억원의 영업손실을 냈는데 이는 포스코 해외법인 38곳 가운데 가장 큰 손실이다. 이에 포스코는 PZSS 정리로 뜻을 모았다. 여기엔 중국 경기 둔화로 건설 자재 등에 주로 쓰이는 스테인리스강 시장 전망이 밝지 않은 것도 영향을 미쳤다. 실제 이 때문에 영업 적자는 2022년 820억원에서 1년 만에 두 배 넘게 증가했다. PZSS 외에도 포스코그룹 내 38개 해외법인 중 적자를 본 회사는 13개에 달한다. 포스코의 아르헨티나와 튀르키예 법인 등도 지난해 700억원 이상의 적자를 내며 부담을 가중시켰다.
현대제철도 '포항 2공장' 문 닫기로
중국 철강의 저가 공세에 휘청이는 건 비단 포스코만이 아니다. 포스코에 이어 국내 2위인 현대제철도 생산량을 줄이기 위해 ‘장기 특별 보수’에 돌입한 상황이다. 충남 당진제철소는 지난 9월부터 3개월간 특별 보수 공사에 착수했고, 인천 공장 역시 지난 2월부터 6개월간 특별 보수를 진행했다.
그간 보수 공사를 반복하며 가동률을 낮췄던 포항2공장은 전격 폐쇄를 추진하고 있다. 포항2공장의 제강·압연 연간 생산 규모는 각각 100만 톤, 70만 톤 규모로, 특수강과 건설 현장에 투입되는 봉형강 생산에 특화됐다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전방산업인 건설경기 침체에 이어 중국의 물량 밀어내기까지 더해지면서 부진이 지속되자 현대제철도 생산 중단을 결정한 것이다.
현대제철의 최근 실적은 이 같은 위기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현대제철은 연결 기준 올해 3분기 영업이익이 515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무려 77.4% 감소한 것으로 집계됐다. 매출은 5조6,243억원으로 작년 동기 대비 10.5% 줄었고, 순손실은 162억원으로 적자로 돌아섰다.
철강업계는 지금의 보릿고개가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중국 건설 경기의 회복 시점이 불투명한 데다, 현재로선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정책이 국내 업계에 우호적이지 않아서다. 철강산업에서 강력한 반중국 정책을 예고한 트럼프 당선인이 중국산 철강 수입품에 높은 관세를 부과할 경우 우리나라를 포함한 주변국으로 우회 수출이 늘어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트럼프 당선인은 모든 수입품에 대한 관세를 최대 20%까지 인상하고 중국산 제품에는 최대 60%의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공언한 상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