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尹 대통령 위원장 맡은 국가우주위원회 계엄·탄핵 후폭풍에 이달 회의도 무산 전망 우주개발 주요 연구원장들 선출도 표류
윤석열 대통령 탄핵 정국이 본격화되면서 우주개발도 차질이 불가피해졌다. 당장 윤 대통령이 위원장을 맡고 있는 국가우주위원회 제3회 회의의 개최 유무와 일정도 불투명한 형세다. 장기간 수장 공백을 겪고 있는 과학기술계 기관들은 공백이 더욱 길어질까 속앓이를 하고 있다.
우주委 개최 불투명
9일 우주항공청과 우주 분야 학계에 따르면 당초 이달 말 열릴 예정이던 국가우주위원회 제3회 회의는 내년으로 미뤄질 전망이다. 국가우주위원회는 윤 대통령이 위원장을, 윤영빈 우주청장이 간사를 맡고 있는 우주 개발 관련 최상위 정책조정기구다. 민간에서는 방효충 한국과학기술원(KAIST) 교수가 부위원장을 맡았다.
국가우주위는 우주청 출범 직후인 지난 5월 말 윤 대통령이 직접 참석해 1회 회의를 열었고, 지난달에는 실무적인 안건을 처리하기 위한 2회 회의를 윤 대통령이 참석하지 않은 가운데 개최했다. 이달 말 열릴 예정이던 3회 회의는 윤 대통령이 다시 참석해 차세대발사체 개발 계획과 달 착륙선 개발 계획 등 굵직한 우주 개발 관련 안건들을 다룰 예정이었다.
그러나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와 곧바로 이어진 탄핵 정국으로 인해 국가우주위원회 3회 회의 개최 여부가 불투명해졌다. 우주청과 국가우주위원회 관계자들은 공식적으로 정해진 바가 없다고 말하지만, 내부적으로는 사실상 이달 말 개최가 어렵다고 보고 있다. 내년 초로 미뤄도 언제 열 수 있을지 가늠하기 어렵다는 게 관계자들 전언이다.
공백 장기화할 듯
더군다나 윤 대통령 외에 국가우주위원회 당연직 위원인 국방부 장관, 행정안전부 장관 등 여러 정무직 공무원 자리도 공백이다. 정상적인 회의 개최 자체가 어려운 상황이다. 이와 더불어 우주개발의 핵심 연구기관인 한국항공우주연구원과 한국천문연구원의 신임 원장 선임 절차도 중단됐다. 이상률 항우연 원장과 박영득 천문연 원장은 임기가 각각 지난 3, 4월에 끝났음에도 새 원장 선임이 늦어지면서 반년 넘게 원장직을 연장하고 있다.
앞서 정부출연연구기관 원장 선임을 진행하는 국가과학기술연구회는 지난 8월 두 기관의 원장 선임 공고를 내고 10월에는 원장 후보를 3배수까지 추렸지만 이후 두 달이 지나도록 아무런 소식이 없다. 출연연 원장 선임을 위해서는 대통령실에서 인사 검증 등을 진행해야 하는데, 탄핵 정국 이후 대통령실의 업무 자체가 마비된 상황이라 언제 선임 작업이 재개될지 가늠하기 힘들다.
한 우주 스타트업 대표는 “우주청이 5월에 발표한 우주개발계획은 구체적인 내용 없이 제목만 나열한 수준이어서 기업 입장에서 앞으로의 사업 계획을 정하려면 이번 국가우주위원회에서 나올 결과가 중요하다”며 “위원회 자체가 표류하면서 우주 기업들의 불확실성도 커진 상태”라고 말했다.
'아포피스' 탐사 좌초 위기
이런 가운데 우주청이 주요 미션으로 제시했던 '아포피스(Apophis)' 탐사도 예산 문제로 좌초될 위기다. 아포피스는 지름 370m의 소행성으로, 2029년 4월 지구에서 3만2,000km까지 가까워진다. 지구를 도는 정지궤도 위성 고도인 3만6,000km보다 가깝다. 앞서 정부는 한국이 탐사선을 보내 주도하는 첫 소행성 탐사 대상으로 아포피스를 꼽고 천문연 중심으로 아포피스 탐사 사업을 추진했지만 2022년 4월 예비타당성예타 조사에서 탈락했다. 성공 확률과 비용 대비 효율이 낮다는 판단이었다.
잊혀졌던 아포피스가 재부상한 건 올해 5월 우주청이 개청하며 발표한 '우주항공청 정책방향'에서다. 우주청은 정책방향에서 아포피스 탐사를 검토하겠다고 명시했다. 아포피스 탐사를 위한 기술 개발 과정 자체가 한국의 우주 기술 역량 제고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업계 기대감을 높였다.
하지만 지난 8월 말 우주청이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에 업무보고한 내용에 아포피스는 빠져 있었다. '소행성 탐사 등 우리나라 역량과 수요를 종합적으로 고려한 우주탐사 임무 발굴'이라고 모호하게 적혀있을 뿐이었다. 같은 달 우주청이 공고한 2024년 우주항공분야 신규 프로젝트 탐색연구(R&D) 기획과제에도 우주청이 개청하며 꼽은 임무 중 하나인 '제4라그랑주점(L4) 탐사 선행연구'는 포함됐으나 아포피스 관련 연구는 찾을 수 없었다. 이에 대해 천문연 관계자는 "우주청이 최근 발표한 업무 자료에 아포피스 탐사 내용이 빠져 있다는 것은 관련 예산 확보가 어려운 상황이라는 점을 짐작할 수 있다"고 말했다.
과학계는 예상했다는 분위기다. 한국이 탐사선을 개발해 아포피스를 탐사하려면 적어도 2027년에는 지구를 떠나야 하기 때문이다. 2022년 예타 탈락 당시 적지 않은 천문학자들은 "2023년부터 탐사선 개발을 시작해야 했다"면서 "예타 탈락으로 탐사 기회가 아예 사라진 것"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