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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맹국 방위비 확대 ‘강조 또 강조’ 트럼프, 나토 탈퇴 가능성까지 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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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래 중심적 동맹관’ 거듭 강조
전쟁 장기화에 미국 패권 약화
탈퇴 가능성 희박, 협력 약화 의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회원국들의 방위비 분담금 인상을 또 한 번 강조하고 나섰다. 이들 회원국이 적절한 수준의 분담금을 지불해야 미국이 나토 내 역할을 유지할 것이라는 주장이다. 유럽에서 미국의 나토 탈퇴 가능성을 고려한 다양한 시나리오가 쏟아지는 가운데, 외교·안보 전문가들 사이에선 미국의 나토 탈퇴가 현실화할 가능성은 비교적 낮다는 데 의견이 일치하는 분위기다.

“청구서 제대로 지불해야”

트럼프 당선인은 8일(현지 시각) 방영된 미국 NBC 대담 프로그램 ‘미트 더 프레스(Meet the Press)’에 출연해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러시아에 대한 방어막 역할을 해온 유럽 군사 동맹인 나토에 미국을 계속 두지 않겠다”며 “그들이 청구서를 제대로 지불하는 경우에만 나토에서 미국의 역할을 유지할 것”이라고 말했다.

만약 이와 같은 방위비 분담금 인상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나토 탈퇴 가능성도 있느냐는 앵커의 질문에는 “물론이다”라고 답했다. 트럼프 당선인은 대선 후보 시절부터 나토 회원국들의 방위비 지출이 적다고 지적하며 거래 중심적 동맹관을 강조해 왔다. 현재 국내총생산(GDP)의 2% 수준인 나토 회원국의 국방비를 3% 이상으로 늘려야 한다는 게 트럼프 당선인의 주장이다.

우크라이나 전쟁과 관련해서는 “가능하다면 전쟁을 끝내기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할 것”이라면서도 “우크라이나는 내가 백악관으로 돌아가면 미국으로부터 많은 군사 지원을 받지 못한다는 걸 예상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전쟁 조기 종식을 위한 방법으로 우크라이나 지원을 중단하겠다는 뜻을 밝힌 것으로 풀이된다.

대선 공약이었던 이민자 추방에 관한 발언도 이어졌다. 트럼프 당선인은 불법 이민자와 미국 시민으로 구성된 ‘혼합 신분 가족’의 추방을 고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대규모 추방 정책이 시행될 경우 혼합 신분 가족 내에서 부모와 자녀가 분리될 가능성에 대해서는 “가족이 흩어지지 않게 하는 유일한 방법은 그들을 함께 모두 돌려보내는 것”이라고 강경한 태도를 보였다.

트럼프의 당선 이후 첫 단독 인터뷰인 해당 방송은 지난 6일 녹화됐으며, 트럼프 당선인은 녹화 다음 날 프랑스 파리 노트르담 대성당 재개관식에 참석해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만났다. 트럼프 정권 인수위원회 관계자는 “젤렌스키 대통령은 회의 마지막 10분 정도 참여했다”고 NBC에 전했다.

마크 뤼터 나토 사무총장(오른쪽)이 11월 22일 플로리다주 팜비치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과 만나 악수를 나누고 있다/사진=나토

‘혼란·전쟁’ 최악 시나리오까지 거론

나토의 시작은 냉전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한때 동맹국이었던 미국과 소련의 대립이 심화하면서 미국은 서유럽을 소련의 영향력으로부터 방어해야 한다는 결정을 내렸고, 이와 같은 결정이 미군의 장기 주둔과 나토 결성으로 이어졌다. 이 과정에서 유럽은 과도한 군비 경쟁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막강한 전투력을 갖춘 미군이 주둔하고 있는 상황에서는 서로를 두려워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유럽 내 중도 진영이 주도하는 안정적 정치 구조가 형성될 수 있었던 배경이다. 유럽 국가들 입장에서 미국은 유럽을 보호해 줄 만큼 강력하지만, 위협이 되지 않을 정도로 적당히 거리를 둔 든든한 존재였던 셈이다.

이처럼 든든한 동맹이었던 미국의 나토 탈퇴 가능성이 대두되면서 유럽 내에서는 그에 대한 대비책들이 쏟아지고 있다. 먼저 유럽 국가들이 자체적으로 연합해 미국의 공백을 메우고, 러시아의 위협에 대응하는 시나리오가 거론된다. 유럽의 경제적·군사적 능력이 충분한 만큼 자기방어에도 무리가 없다는 것이다. 실제로 유럽연합(EU)의 GDP는 러시아의 10배에 달하는 데다, 최근까지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원에서도 미국보다 더 많은 몫을 감당해 왔다.

다만 해당 시나리오의 경우 한계도 명확하다. 유럽은 다수의 이해관계자로 구성돼 있어 의견 조정이 매우 힘들기 때문이다. 특히 안보와 관련해서는 각국의 입장 차이가 상당히 크다. 유럽이 처한 안보적 위협은 러시아와 맞닿은 동쪽이 클 수밖에 없는데, 서쪽에 있는 스페인과 동쪽에 있는 폴란드가 동일한 수준의 행동에 나서기를 기대하는 것은 무리일 수밖에 없다.

이 같은 한계를 고려해 도출된 또 다른 시나리오는 유럽 내 국가들이 서로 위협하지도, 지켜주지도 않는 상황으로 변화하는 것이다. 앞선 시나리오보다 현실적인 대안이라고 할 수 있지만, 방위력 강화를 위해서는 증세 또는 부채 확대가 필수인 만큼 이를 수용할 국가는 제한적일 것이라는 게 안보 전문가들의 일관된 견해다.

유럽 국가 간 갈등과 적대감이 부활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냉전 종식 이후 미국의 나토 잔류로 오랜 시간 유예된 최악의 상황인, 혼란과 전쟁으로 점철된 대륙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민주주의라는 가치를 공유하며 안보 공동체 역할을 해 온 유럽과 미국의 결속이 미국의 일방적 판단으로 한 순간 물거품이 될 수 있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탈퇴 대신 ‘유사 효과’ 노렸나

전문가들은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로 미국의 패권이 약화할 대로 약화한 만큼 미국이 실제로 나토 탈퇴 결정을 내리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김정섭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우크라이나 전쟁은 단순한 지역 분쟁이 아닌, 강대국의 국제정치가 얽혀 있는 복잡한 문제”라고 짚으며 “러시아의 침략이 성공하면 이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유지돼 온 미국의 패권에도 큰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말했다.

전쟁의 문턱이 낮아지면서 대만해협 등 전 세계 각지에서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는 점도 미국의 패권이 흔들리고 있음을 여실히 드러낸다. 김 연구위원은 “대만 등 남아 있는 ‘화약고’에 긴장감이 감도는 등 ‘다극 질서’가 도래했다”며 “이런 와중에 미국은 자국이 주도해 구축해 온 국제질서를 스스로 어기는 행동을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일각에서 트럼프 당선인의 이번 발언을 두고 실제 나토에서 탈퇴하지는 않으면서 협력 수위를 약화하려는 의도로 풀이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나토는 탈퇴 통지가 있은 후 1년이 지난 시점에 회원국 자격을 종료하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나토 자체가 회원국의 기여와 신뢰를 바탕으로 작동한다는 점에서 특정 회원국의 최고 의사결정권자가 탈퇴를 언급하는 것만으로 탈퇴와 유사한 효과를 낳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미국의 나토에 대한 협력 수위 약화 방안으로는 나토 주재 대사 임명 보류, 유럽 주둔 미군 규모 축소, 군사훈련 불참 등이 거론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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