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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매판매, 전년比 3% 증가 '예상치 하회' 고정자산투자·부동산·실업률도 악화 中 지도부, 내년 적극 부양 방침 천명
중국 당국의 잇따른 경기 부양책에 반짝 살아나는 듯했던 중국의 소비심리가 다시 꺾였다. 투자 지표도 10개월 만에 가장 낮은 증가율을 보이는 등 중국 경제가 좀처럼 회복 모멘텀을 되찾지 못하는 모습이다. 내수 침체에 도널드 트럼프발 관세 리스크까지 더해진 가운데, 그간 기술 돌파에 매진해 온 중국 정부는 ‘급한 불’인 경제 회복에 당분간 주력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내며 더욱 강력한 부양책 마련에 나섰다.
中 11월 소비, 상당폭 둔화
16일 중국 국가통계국은 11월 소매판매액이 4조3,763억 위안(약 862조3,000억원)으로 집계됐다고 밝혔다. 1년 전 11월보다 3.0% 증가한 것으로, 전월(4.8%)보다 둔화했고 블룸버그통신이 집계한 시장 전망치(5.0%)도 크게 하회했다. 중국 내수 부진의 골이 다시 깊어지고 있다는 얘기다.
실제 지난해 11월 10.1%까지 치솟았던 소매판매 증가율은 해가 바뀐 후 계속 미끄러지더니, 급기야 6월 2.0%까지 내려앉았다. 이는 2022년 12월(-1.8%) 이후 최저치다. 7~8월에도 2%대에 그쳤던 소매판매 증가율은 9월 들어 4개월 만에 3%대로 올라서더니 10월 4.8%까지 상승했는데, 11월에 다시 꺾여버린 것이다.
주목할 만한 부분은 그간 부진했던 가전제품 판매가 11월에만 전년 동월 대비 22.2% 증가했음에도 전체 소매판매는 부진했다는 점이다. 11월은 중국 최대 쇼핑 축제인 ‘솽스이(雙十一·11월 11일, 광군제)’가 있는 달로, 중국 정부가 하반기 들어 더욱 힘을 주고 있는 이구환신(以舊換新·낡은 제품을 새것으로 교체) 정책 덕에 가전제품 소비는 늘었지만, 이는 보조금 덕일 뿐 전반적인 소비 심리는 갈수록 얼어붙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이날 함께 발표된 다른 지표들도 대부분 상황이 좋지 않다. 투자 활력을 가늠할 수 있는 고정자산투자는 11월 기준 46조5,839억 위안(약 9,179조3,000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3.3% 증가했다. 1~8월부터 1~10월까지 3개월 연속 3.4%를 유지하다 결국 0.1%포인트 떨어진 것으로, 이는 지난해 1~12월(3.0%) 이후 10개월 만에 가장 낮은 증가율이다. 부동산 개발 투자액도 1~11월 9조3,634억 위안(약 1,845조원)으로 1년 전 같은 기간보다 10.4% 감소했다. 이는 2020년 2월(-16.3%) 이후 최악의 성적이다. 도시 실업률 역시 전월 5.0%에서 5.1%로 확대됐다.
그나마 선방한 부문은 산업생산이다. 전년 동월 대비 5.4% 증가해 10월(5.3%)보다 소폭 확대됐고, 시장 전망치와도 일치했다. 다만 안심하긴 어렵다. 중국 월간 산업생산은 1~2월 7.0%까지 올랐다가 3월 4.5%로 급락했지만, 4월 다시 6.6%로 올라서며 살아나는 듯 보였다. 그러나 5월(5.6%) 이후 조금씩 둔화하더니 8월 4.5%까지 떨어졌다. 9월부터 다시 5%대를 되찾았긴 했지만, 연초와 같은 높은 수준은 보이지는 못하고 있다.
수렁에 빠진 중국 경제, 부양책 효과 어디로
시장에서는 중국이 올해 하반기 들어 쏟아낸 경기부양책이 좀처럼 효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2000년대까지만 해도 중국의 국내총생산(GDP)은 줄곧 두 자릿수 성장세를 보였다. 코로나19 봉쇄 조치 여파가 컸던 2020년(2.2%), 2022년(3.0%)을 제외하면 5% 이하로 내려간 적도 없었다. 지난해도 5.2%의 성장률을 기록하며 정부 목표치(약 5%)를 소폭 상회했다.
하지만 올해는 상황이 다르다. 중국은 지난 3월 열린 양회(전국인민대표대회와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가 함께 열리는 최대 연례행사)에서 올해 경제성장률 목표를 지난해와 같은 5%로 제시했으나 달성하기 쉽지 않다는 데 무게가 실렸다. 이에 지난 9월 말 중국 인민은행이 은행 지급준비율(RRR) 0.5%포인트 인하를 통해 시중에 1조 위안(약 197조원) 규모의 유동성을 공급하겠다고 밝힌 이후, 재정·통화 측면에서 각종 대책을 쏟아냈다. 정책금리인 7일물·14일물 역환매조건부채권(역레포) 및 중기유동성지원창구(MLF) 금리도 내렸고 10월엔 사실상 기준금리인 대출우대금리(LPR)를 0.25%포인트 인하했다. 부동산 분야에선 ‘화이트리스트’로 꼽히는 프로젝트에 올해 총 4조 위안(약 788조원) 대출을 지원키로 했다.
이렇듯 중국 지도부는 내수 부진 타개에 정책의 초점을 맞추며 부양책을 내놨지만, 그럼에도 소매판매는 꺾여버렸고, 내수를 끌어 올릴 수 있는 투자도 살아나지 않고 있다. 소비 심리를 냉탕으로 만든 주범인 부동산 시장 역시 갈수록 악화일로다. 2021년부터 시작된 중국 부동산 시장 침체는 지난해 베이징, 상하이, 선전 등 중국 대도시로까지 번졌다. 중국을 대표하는 대도시 아파트들은 고점 대비 20~30% 가격이 내려갔고 거래량도 급감했다. 중국 정부가 다주택 구매 제한을 풀고 담보대출 요건을 완화하는 등 서둘러 대책을 마련했지만 하락 속도는 더욱 가팔라지고 있다. 부양책이 제대로 통하지 않은 셈이다.
이 같은 부동산 침체는 투자와 소비의 발목까지 잡고 있다. 부동산과 그 관련 산업이 중국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25%에 이르기 때문이다. 지방정부 재정 문제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부동산 개발업체에 아파트 지을 땅을 팔아 얻는 토지매각대금이 중국 지방정부 재정 수입의 40%가량을 차지하는 만큼, 부동산 침체가 계속된다면 지방정부는 재정난이 불가피하다.
내년도 '내수 살리기'에 총력
전문가들은 중국이 내수 부진을 타개하기 위해선 시장의 구조적 문제 해결이 동반돼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인구 감소, 경제성장 둔화, 가계부채 증가 등 근본적인 문제들이 해결되지 않으면 정부 부양책 효과도 제한적일 수 있다는 지적이다. 골드만삭스는 정부 추가 개입이 없을 경우, 부동산 가치가 20~25% 더 하락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렇게 되면 가격 정점에서 반토막이 나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내년 이후다. 중국은 그동안 미국, 유럽연합(EU) 등 서방과 갈등을 지속하면서 대외 환경이 갈수록 악화하고 있다. 미국은 전기차, 이차전지 등 중국산 제품에 대한 관세를 인상했고 반도체 같은 첨단 제품에 대해선 대중 수출 및 투자를 제한하고 있다. EU 또한 중국산 전기차 관세를 대폭 올리며 견제 수위를 높이는 양상이다.
이에 중국 정부도 내년 경기 부양책의 고삐를 더욱 세게 쥔다는 방침이다. 중국을 옥죄려는 트럼프 2기 행정부 등장이 코앞으로 다가오면서 더 이상 주요 성장 동력인 수출에 기대기가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지난 12일 중국 공산당이 ‘중앙경제공작회의’에서 재정적자율을 높이고 초장기 특별국채와 지방정부 특별채권의 발행을 늘리는 적극 재정정책 방향을 확정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였다.
공산당은 통화정책 기조를 ‘온건(穩健·중립)’에서 ‘적정 완화’로 14년 만에 전환해 시중에 더 많은 돈을 풀겠다고 공언하기도 했다. 앞서 시진핑 국가주석이 주재한 중국공산당 중앙정치국 회의에서는 2011년 이후 유지해 온 ‘적극적 재정정책과 온건한 통화정책’ 기조를 ‘더 적극적인 재정정책과 적절히 완화적인 통화정책’으로 변경했다. 중국이 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대대적으로 사용했던 기준금리 인하 등 수단을 다시 적극적으로 동원해 침체된 경기 살리기에 나서겠다는 의미다.
이날 회의에서는 트럼프 정권 출범 이후 수위가 높아질 미국의 대중국 압박에 대비하기 위해 단결을 강조하는 메시지도 나왔다. 내년 경제 정책을 관통하는 6개의 지침 가운데 작년에 나왔던 ‘온중구진(穩中求進·안정 속 진보 추구)·이진촉온(以進促穩·발전 통한 안정 촉진)·선립후파(先立後破·먼저 일으키고 나중에 수정)’ 외에 수정창신(守正創新·올바른 노선을 따르는 혁신), 계통집성(系統集成·통일되고 체계적인 개혁 추진), 협동배합(協同配合·긴밀한 협력을 통한 목표 실현)이 새로 추가됐다. 기존의 키워드는 ‘안정 속의 성장’을 강조했다면, 새로 제시된 키워드들은 국가의 지도 아래에서 ‘결집’과 ‘혁신’에 힘써야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아울러 회의에서는 내년 경제 업무의 최우선 과제로 ‘소비 진작’을 내세웠다. 과학기술 혁신과 함께 가장 시급한 과제로 내수 회복을 꼽은 것이다. 회의는 “전방위로 국내 수요를 확대하고 소비 진작을 위한 특별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했다. 그간 중국 지도부는 미국의 기술 봉쇄에 맞서기 위한 두 날개로 ‘기술 자립’과 ‘안보 강화’를 강조해 왔는데, 지금은 경기 하락을 안보 위협 요소로 보고 이에 대한 대응에 나선 것으로 해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