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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 임점 실사 무산에 인수전 차질
고용승계 양보 없다는 노조에 발목
124만 보험계약자 불안감 확대
MG손해보험 매각이 장기전으로 흘러가는 가운데, 인수 우선협상대상자인 메리츠화재에 대한 노조의 반발이 갈수록 그 수위를 높이고 있다. 이에 매각 주체인 예금보험공사는 MG손보의 청산 또는 파산까지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업계는 메리츠화재가 MG손보 인수전에서 물러날 가능성을 저울질하는 분위기다.
4차 매각 또는 청산·파산 등 정리방식 가능
22일 금융권에 따르면 예보는 현재 메리츠화재의 MG손보 매수가 어려울 경우에 대비해 금융위원회 등 당국과 4차 매각 또는 예금보험금 지급 이후 청산·파산 등 다양한 정리방식을 협의 중이다. ‘금융산업의 구조개선에 관한 법률’에 의거해 금융위는 부실금융기관의 부채가 자산을 뚜렷하게 초과해 합병이 어렵다고 판단할 경우 계약이전 결정, 6개월 이내의 영업정지, 영업 인가·허가 취소 등 필요한 처분을 할 수 있다. 2022년 MG손보의 부실금융기관 결정 이후 예보 측이 직접 청산·파산을 검토하고 나선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업계에서는 MG손보 노조의 대안없는 매각 방해를 그 원인으로 지목했다. 예보는 지난해 12월 메리츠화재를 MG손보의 매각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하며 경영 정상화를 서둘렀다. 하지만 노조는 MG손보 매각이 고용승계 의무가 없는 자산부채이전(P&A) 방식으로 진행된다는 점을 지적하며 반대하고 나섰다. 이달 9일 진행된 실사에서는 현장에 난입해 집기와 비품, PC 등을 이동시키면서 작업을 방해한 것으로 알려졌다.
예보 관계자는 “대표관리인의 허락 후 실사단과 MG손보 임점 실사를 진행하려고 했으나, 노조가 이를 저지했다”며 “당시 컴퓨터를 치우고 실사단 개인의 휴대전화까지 빼앗으려는 시도가 있었고, 실사단은 물리적 충돌을 피하기 위해 철수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인수 희망자의 실사는 정당한 절차인 만큼 노조의 방해가 있어도 관리인과 협의해 방안을 지속 모색하고 있다”며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업무방해, 출입금지 방해 가처분 등 법적 조치 또한 추진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금융당국 직무 유기 지적하고 나선 노조
노조는 즉각 반박했다. 노조 관계자는 “예보에 대해 어떠한 업무방해 행위도 없음을 자신할 수 있으니 법적 검토만 하지 말고 신속하게 법적으로 대응할 것을 요구한다”며 “사실 확인은 예보 안전경영실 직원의 보디캠 영상을 보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MG손보 노조는 이날 기자회견을 열고 복현 금감원장을 직무 유기 혐의로 고발하겠다고 밝혔다. 그간 꾸준히 제기된 메리츠화재 특혜 논란을 다시 한번 문제 삼고 나선 것이다.
금감원이 표준검사 처리 기간을 8개월 이상 초과하면서까지 메리츠화재에 대한 검사 결과 발표를 늦추고 있다는 게 노조 측 주장이다. 금감원의 금융기관 검사 및 제재에 관한 규정에 의하면 정기검사는 6개월, 수시검사는 5개월 이내에 검사 결과를 통보해야 한다. 노조는 금감원이 이를 초과하여 메리츠화재 검사 결과를 의도적으로 지연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와 관련해 금융위가 금감원의 직무 유기를 방관한다면, 금융위에도 법적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고용승계 문제와 관련해서도 입을 열었다. 앞서 메리츠 화재는 MG손보 실사 종료 후 고용 문제를 별도 협의하겠다는 계획을 밝힌 바 있다. 배영진 MG손보 노조 지부장은 “메리츠화재는 과거 노조를 없앤 전력이 있다”고 짚으며 “노조까지 떠안으면서 MG손보 직원들을 굳이 고용승계하진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다른 부분에서는 얼마든지 양보하고 협의할 준비가 돼 있다”며 “금융위와 예보가 정상적인 경쟁 매각을 추진할 수 있도록 협조하겠다”고 덧붙였다.
메리츠·노조는 셈법 복잡, 계약자들은 불안 고조
불과 지난달까지만 해도 유재훈 예보 사장은 “MG손보의 청산이나 파산 등은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밝혀 놨다. 하지만 예보가 돌연 입장 바꾸면서 업계 일각에서는 메리츠화재가 인수전에서 물러날 수 있다는 관측이 제기됐다. 적치권의 특혜 논란에 노조의 반발까지 겹치면서 인수가 미뤄지는 사이 MG손보의 상황은 악화를 거듭하고 있기 때문이다.
MG손보의 지급여력(KIC-S)비율은 지난 2023년 1분기 82.56%에서 지난해 3분기 43.37%까지 떨어졌다. 경과조치를 제외할 시 MG손보의 지급여력비율은 3분기 기준 35.91%에 불과하다. 금융당국 권고치인 150%보다 턱없이 낮은 수준이다. 핵심인 력도 줄줄이 빠져나갔다. 지난해 9월 말 기준 MG손보의 임직원 수는 588명에 그쳤다. 특히 결산 담당 인력 9명 중 8명이 이탈하면서 2024년 회계 결산 업무 마무리조차 어려운 것으로 전해졌다. 메리츠화재로서는 무사히 인수에 성공한다고 해도 막대한 돈과 시간을 투입해야 하는 셈이다.
MG손보의 존속을 확신할 수 없게 되면서 소비자들의 불안도 확대되는 모습이다. 청산·파산 방식으로 보험사를 정리하게 될 경우, 계약자들은 예금자보호 한도인 5,000만원 이내에서만 권리를 주장할 수 있다. 이마저도 납입보험료가 기준이 아닌 해약환급금이 기준인 탓에 일부 또는 전부 손해가 불가피하다. 동일한 조건으로 여타 보험에 가입할 수 있을지도 미지수다. 금융권에 따르면 MG손보의 보험계약자는 2023년 9월 말 기준 124만 명, 보험계약 건수는 156만 건에 달한다.
노조가 책임을 나눠 지려는 모습을 보일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쏟아지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MG손보의 위기가 실적 부진과 부실금융기관 지정에서 비롯된 건 분명하지만, 상황이 이토록 악화한 배경에는 노조의 강경한 태도 또한 깔려 있다는 비판이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MG손보 노조가) 단지 고용승계만 외치면서 반발을 이어간다면, 그저 자기들 밥그릇 챙기기에 급급하다는 비난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일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