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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성장 갉아먹는 '가짜노동' 만연, 한국 노동생산성 OECD 최하위 '굴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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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의 사회적 책임을 자각하며 공정하고 균형 있는 시각을 최우선으로 합니다. 꾸준한 추적과 철저한 리서치를 바탕으로 사실만을 전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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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로 시간만 긴 대한민국, 근무시간 27% '딴짓'
출근 후 잡담·웹서핑·담배타임으로 시간 허비
기업 경쟁력 갈수록 뒤처져, 노동개혁 급선무

시간 때우기 관행이 직장 문화로 뿌리내리면서 대한민국이 가짜노동 천국으로 전락했다. 직장인들 스스로 '나는 월급 루팡(일은 안 하고 월급만 받아가는 사람)'이라고 여기는 사람이 적지 않은데, 이는 근로시간이 길건 짧건 마찬가지다. 게다가 30%가량이 가짜노동 시간으로 집계됐지만 나머지 70%도 진짜노동 시간이라 장담하기 어려운 현실이다. 근태 관리는 프라이버시 침해 논리에 밀렸고 근속 연수만 채우면 임금이 오르는 연공급(호봉제) 임금체계도 여전하다. 전문가들은 글로벌 경쟁이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이 낙오하지 않으려면 그 어떤 개혁보다 노동 개혁이 시급하다고 입을 모은다.

한국 직장인들의 가짜노동 현실

10일 HR(인사관리)업계에 따르면 20~50대 직장인들이 업무와 관련 없는 잡담, 개인 용무, 웹 서핑, 취미 활동 등에 쓰는 시간은 근무시간 중 평균 27%를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2023년 기준 한국의 연간 근로시간이 1,872시간인 점을 고려하면 무려 505시간이 가짜노동인 셈이다. 총 근로시간에서 가짜노동을 뺀 1,367시간으로 보면 한국의 근로시간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국 중에서 최하위권으로 떨어진다.

시장조사 전문기업 엠브레인 트렌드모니터가 전국의 만 19~69세 직장인 1,000명을 대상으로 ‘가짜노동 인식 조사’를 실시한 결과도 비슷하다. 조사 결과 70%가 넘는 직장인이 직장생활에서 가짜노동을 체감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중 ‘매우 체감한다’는 27.9%, ‘어느 정도 체감하는 편이다’라고 답한 비율은 43.8%였다. 그도 그럴 것이 직장 내 익명 게시판에는 업무시간 중에도 수시로 업무와 무관한 글들이 올라오고 있다.

실제로 목격한 가짜노동의 사례로는 ‘근무 시간에 빈둥거린다(41.6%)’가 가장 많이 꼽혔다. ‘빨리 끝낼 수 있는 일을 오래 한다(41.0%)’ ‘실무보다는 보고나 검수만 한다(38.6%)’ ‘중요하지 않은 일을 꾸며내서 일한다(35.9%)’ 등의 응답도 있었다. 이어 ‘솔직히 들키지만 않는다면 가짜노동을 하고 싶다’란 질문에 20대는 48.5%가 ‘그렇다’고 응답했고, 30대는 48.0%, 40대는 35.0% 50대는 29.0%, 60대는 19.0%가 그렇다고 답했다.

한 공무원이 자신의 소셜미디어(SNS)에 공개해 논란이 된 게시물/사진=온라인 커뮤니티 갈무리

출장 신청 내고 카페 돌아다닌 공무원

가짜노동은 덴마크의 인류학자 데니스 뇌르마르크(Dennis Nørmark)와 철학자 아네르스 포그 옌센(Anders Fogh Jensen)이 제시한 개념으로, ‘바쁜 척하는 헛짓거리, 노동과 유사하지만 노동이 아닌 활동, 무의미한 업무’ 등을 포괄한다. 10년간 공무원 생활을 한 노한동 작가는 자신의 저서 ‘나라를 위해서 일한다는 거짓말’에서 "공직사회에서 가짜노동은 만연하다는 표현이 부족할 만큼 뿌리 깊게 퍼져 있다”고 짚었다. 가짜노동은 그 자체로 비효율적이지만, 가장 심각한 문제는 진짜 해야 할 일에 소홀하게 된다는 것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이 같은 가짜노동은 공기업·사기업을 가리지 않으며 국적도, 남녀 차이도 없다. 비즈니스인사이더에 따르면 스탠포드 연구원 예고르 데니소프-블랜치(Yegor Denisov-Blanch)는 소프트웨어 개발자의 성과를 평가하기 위해 5만 명 이상의 직원의 작업을 평가하는 알고리즘을 개발했다. 이를 통해 미국 직장 내 개발자를 분석한 결과 9.5%가 '유령 개발자', 즉 가짜노동 직원으로 분류됐다. 데니소프-블랜치는 이들이 팀에 부담을 주고 회사 자원을 낭비하며 다른 사람들의 일자리를 막는 행위를 했다고 분석했다.

우리나라에서는 지난해 초 양주시의 한 9급 공무원 A씨가 자신의 소셜미디어(SNS)에 출장 신청서 사진을 올리며 식당, 카페 등을 돌아다녔다고 밝혀 많은 이들의 공분을 사기도 했다. 당시 A씨는 사진과 함께 “월급 루팡 중”, “출장 신청 내고 주사님들이랑 밥 먹고 카페 갔다가 동네 돌아다님”이라며 허위 출장을 간 것처럼 썼다.

A씨는 또 개발제한구역 내 건축 사안과 관련된 것으로 보이는 공문도 촬영해 올렸다. A씨는 ‘보내는 이’가 양주시청으로 돼 있는 문서들과 함께 “짓지 말라면 좀 짓지 마라”며 “왜 말을 안 듣는 것인가. 공들여 지어놓은 것들 어차피 다시 부숴야 하는데”라고 했다. 이어 그는 “아니 무슨 맨날 회식을 하느냐”며 팀 회식 안내문을 찍은 사진도 올렸다. 이 안내문에는 ‘받는 사람’의 소속과 실명이 그대로 노출됐다. 허위 출장에 따른 근무지 이탈과 출장비 부당 수령 등은 사실일 경우 징계가 가능한 사안이다.

‘월급 루팡’ 양산 임금체계 바꿔야

더 큰 문제는 이런 가짜노동이 우리나라 경제 성장을 갉아먹는다는 데 있다. 2023년 기준 OECD 국가별 시간당 노동생산성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시간당 44.4달러로 38개국 가운데 33위다. 지속적 혁신은 있었지만, 부가가치를 크게 창출하는 파괴적 혁신은 부족했다는 의미다.

한국이 가짜노동 천국이 된 데는 합법적인 근태 관리를 프라이버시 침해로 보는 시각도 한몫하고 있다. 화장실을 갈 때도 시간을 체크하는 선진국 기업들과 대조적이다. 한국에 진출한 독일 기업 관계자는 "독일 직원들은 근무시간 중에 허투루 쓰는 시간이 거의 없다"고 했다. 독일의 연간 근로시간은 1,343시간으로 OECD 34개국 중 가장 짧지만 시간당 노동생산성은 68.1달러로, 미국(77.9달러) 다음으로 높다.

또한 글로벌 기업들은 가짜노동을 근절하기 위해 업무에 세부적인 제한을 두기도 한다. 예컨대 넷플릭스는 15~30분 내로 끝나는 스탠드업 미팅을 도입하는가 하면 주간·월간 보고를 비대면 문서나 슬랙(slack) 등의 협업 도구로 대체했다. 아마존은 파워포인트 보고를 금지하고, 6쪽 이내 서면 문서만 사용한다. 보고서 작성 시간을 줄이기 위해서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이 같은 노동 개혁이 쉽지 않다는 게 중론이다. 그간 많은 기업이 호봉제를 바꾸거나 근태 관리 강화를 시도했으나 기존 관행 유지와 노동조합의 반대로 성공한 사례가 드물다. 특히 1950년대부터 이어져 온 호봉제는 노사 갈등의 시작점일 뿐만 아니라 제조업 경쟁력 저하의 원인으로 지적되고 있음에도 여전히 국내 기업의 80% 이상이 이를 유지하고 있다. 호봉제는 성과나 능력, 직무, 역할과 상관없이 해가 바뀌면 자동적으로 임금이 오른다. 근로자들 사이에 '근속연수만 채우면 된다는'식의 시간 때우기 인식이 팽배해진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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