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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 맹추격에 놀란 미국 주행 중 사고 보고 의무 간소화 등 규제 완화 안전기준 적용 면제도 미국산 차로 확대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자율주행 차량(Automated Vehicle)의 주행 중 사고 보고 요건을 완화하고 안전 기준도 대폭 낮추는 등 자율주행 자동차에 대한 규제 허들을 크게 낮췄다. 최근 ‘자율주행 굴기’를 펴고 있는 중국의 거센 추격에 따른 대응으로 풀이된다.
트럼프 행정부, 자율주행 안전 기준 대폭 낮춰
24일(현지 시간) 월스트리트저널에 따르면 미국 교통부와 고속도로교통안전국(NHTSA)은 자율주행차의 상용화를 촉진하기 위해 일부 연방 안전 규정에서 면제받는 내용을 확대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운전대나 페달이 없는 차량도 도로에서 시험 운행이 가능해졌다. 또 자율주행 소프트웨어 관련 사고 요건도 간소화하고, 현재 주마다 상이한 자율주행차 규제를 통합해 전국적으로 일관된 규제 체제를 추진한다.
교통부가 제시한 3가지 원칙은 △공공 도로상 자율주행차 운행의 안전성 △불필요한 규제 장벽 제거로 혁신 실현 △안전성과 이동성을 높이는 자율주행차의 상업용 배치를 가능하게 한다는 내용이다. 관련 세부 사항으로는 첨단운전자보조시스템(ADAS)과 자율주행시스템(Automated Driving System·ADS)을 장착한 차량의 충돌 사고 보고를 상시로 의무화한 규정은 유지하되, 보고 절차를 완화할 것이라고 교통부는 밝혔다. 또 그동안 외국에서 수입되는 차에만 적용되던 자율주행차 면제프로그램(AVEP)을 미국에서 생산된 차로 확대하는 내용도 규제 완화 방안에 포함됐다.

중국과 혁신 경쟁, 불필요한 규제 제거
이는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가 트럼프 2기 행정부 인수위원회 시절부터 연방 정부에 요청했던 사안이다. 그동안 미국 자동차업체들은 엄격한 연방 기준으로 인해 운전대나 페달이 없는 자율주행차를 개발하는 데 어려움을 겪어왔다. 테슬라도 운전대와 페달이 없는 레벨5 수준의 자율주행차 '사이버캡'(CyberCab) 출시를 준비 중인 가운데, 이를 금지하는 연방 규정을 주요 걸림돌로 지목한 바 있다.
실제 미국에서 인명 사고로 자율주행차 운행 허가 등이 취소되는 사이, 중국은 정부 지원을 등에 업고 세계 최대 자율주행 시험장으로 거듭나고 있다. 중국 정부는 총 3만2,000km에 달하는 공공 도로를 자율주행차 시험용으로 개방했다. 경부고속도로의 약 75배에 해당하는 규모다. 기업들은 이 인프라를 활용해 방대한 주행 데이터를 확보하고 기술 고도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현재 중국에서 레벨2 이상 자율주행 기술이 적용된 승용차의 보급률은 55.7%에 이른다.
글로벌 시장조사기관 가이드하우스에 따르면 중국 바이두는 2021년 로보 택시 서비스를 시작했음에도 누적 운행 거리가 1억㎞ 안팎이다. 반면 이보다 1년 앞서 서비스를 시작한 미국 웨이모는 현재까지 미국에서 사람이 타지 않은 누적 운행 거리가 3,000만㎞ 수준이다. 지난해 테슬라가 자사의 완전자율주행(FSD·Full Self-Driving) 시스템을 중국에서 시험하겠다고 밝혔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중국은 로보 택시를 좁은 시범 구역에서 운행하는 대다수 국가와 달리 도시 전체에 내보내, 매달 1,000만㎞ 이상의 운행 데이터를 쌓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가격·기술 다 잡은 中 자율주행차, 美 턱밑 추격
이런 상황 속 규제 완화가 발표되자 머스크 CEO는 적극 환영하며 오는 6월까지 텍사스 오스틴에서 사이버캡을 출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현재 오스틴 시 당국과 협력해 관련 인프라를 구축 중이며 캘리포니아에서도 제한적인 자율주행 운행 허가를 획득했다. GM과 토요타를 포함한 주요 자동차 제조업체들도 환영 입장을 밝히며 자율주행차의 상용화를 위한 추가적인 법적 지원을 요청했다. 특히 연간 2,500대까지 허용되는 예외 차량 수를 확대하고, 기존의 안전 기준을 현대화할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다만 규제 완화만으로 자율주행 산업의 판도를 바꾸기는 힘들 것이라는 회의론도 적지 않다. 중국의 자율주행 시스템은 테슬라의 완전자율주행(FSD) 기술에 필적하면서도 가격 경쟁력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고 있어서다. 중국 자율주행 기술의 경쟁력은 ‘생태계 통합’에 있다. 차량 제조사뿐 아니라 반도체, 인공지능(AI), 정밀지도 등 핵심 기술 분야를 자국 기업이 주도하고 있다. 대규모 내수 시장을 바탕으로 대량 생산이 가능해 가격도 획기적으로 낮출 수 있다.
대표적인 예가 라이다 센서다. 일반적으로 라이다는 카메라보다 가격이 10배 이상 비싸 테슬라 등 일부 업체는 비용 절감을 위해 이를 배제하고 있다. 반면 중국 기업들은 대량 생산 체계를 구축해 라이다 가격을 약 1,000달러(약 140만원) 수준으로 낮췄다.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도 경쟁력의 원천이다. 중국 정부의 막대한 지원금을 받은 지리자동차의 '지커'는 지난 23일 열린 상하이 오토쇼에서 레벨3 수준의 자율주행 기술을 공개했다. 레벨3은 AI가 자동차 기능 대부분을 제어해 돌발 상황을 제외하면 운전자의 개입이 필요 없는 단계다. 안충후이 지커 CEO는 “올해 말 레벨 3 자율주행 기술을 탑재한 차량을 양산할 계획”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