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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지주, 롯데글로벌로지스 IPO 실패에 '3,800억원' 풋옵션 떠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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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글로벌로지스, 증시 입성 무산
FI 에이치프라이빗에쿼티, 3,800억원 규모 풋옵션 행사
"좋지 못한 선례" 시장 비판 쏟아져
사진=롯데글로벌로지스

롯데글로벌로지스의 상장이 사실상 무산됐다. 롯데글로벌로지스가 기존 투자자인 H프라이빗에쿼티(H PE)의 투자금 회수(엑시트)를 위해 기업공개(IPO)를 진행한다는 인식이 확산하며 투자 심리가 얼어붙은 결과다. 상장 여부가 불투명해지자 H PE는 풋옵션을 행사했고, 롯데지주는 순식간에 막대한 재무적 부담을 떠안게 됐다.

롯데글로벌로지스 IPO, 왜 실패했나

15일 증권업계에 따르면, 롯데글로벌로지스는 당초 2025년 상반기 코스피 상장을 목표로 IPO를 추진했다. 공모 예정 금액은 희망 공모가 밴드(주당 1만1,500~1만3,500원) 상단 기준 약 2,017억원이었다.

그러나 시장의 시선은 싸늘했다. 롯데글로벌로지스가 신주 발행을 통한 회사 성장 지원보다 2017년부터 롯데글로벌로지스에 투자해 온 재무적 투자자(FI) H PE의 엑시트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인식이 팽배했기 때문이다. 공모 구조는 신주 모집과 구주매출이 각각 50%로 균등했지만 구주매출 물량 대부분이 H PE의 보유 지분이었고, 매각 대금 역시 H PE의 몫으로 돌아갈 예정이었다.

롯데글로벌로지스의 기업가치 평가 방식 또한 논란의 여지를 남겼다. 롯데글로벌로지스는 CJ대한통운과 한진을 비교 기업으로 선정하고, EV/EBITDA(기업가치/상각전영업이익) 방식을 사용해 기업가치를 산출했다. 문제는 롯데글로벌로지스의 캡티브(계열사 내부거래) 매출 비중이 2024년 말 기준 34% 이상으로 상당히 높은 것과 달리, CJ대한통운과 한진의 캡티브 비중은 10% 수준에 불과했다는 점이다. 롯데글로벌로지스와 비교 기업의 수익 창출 구조가 상이했던 셈이다. 높은 캡티브 매출 비중은 시장에서 일반적으로 '성장 한계 요소'로 인식된다.

H FE의 풋옵션 행사

각종 논란이 누적되며 기관투자자 대상 수요예측은 결국 흥행에 실패했고, 롯데글로벌로지스는 공모가 확정조차 시도하지 못한 채 상장 절차를 잠정 중단했다. 이에 H PE는 즉각적으로 풋옵션을 행사했고, 롯데지주(최대주주)와 호텔롯데(4대주주)는 H PE가 보유 중인 주식을 일정 비율로 분담해 매입하기로 했다. 2017년 2,860억원을 투자한 H PE는 현재 롯데글로벌로지스 지분 21.87%(747만2,161주)를 들고 있다.

롯데지주는 내달 11일 H PE 보유 지분 중 604만4,952주를 3,074억원에 현금 취득할 예정이다. 단순 계산 시 1주당 취득 단가는 약 5만857원이다. 매입 후 롯데지주의 롯데글로벌로지스 지분율은 46.04%에서 63.73%로 증가한다. 비상장사인 호텔롯데는 별도 공시를 하진 않았으나, 잔여 142만7,209주를 책임질 것으로 보인다. 롯데지주와 동일한 값으로 계산하면 약 726억원 규모다.

풋옵션을 행사한 H PE는 8년 만에 투자 원금에 더해 약 1,000억원에 달하는 추가 수익을 회수하게 됐다. PE의 풋옵션 행사 가격이 최초 취득 금액인 3만8,250원(주당 평균 브릿지론 조달 비용 포함) 대비 약 32.7% 치솟았기 때문이다. 2021년 이후 IPO를 수차례 연기하는 과정에서 보장 수익률(연복리 3.0~3.5%)이 상향되고, 세부 계약 조건이 더해지며 풋옵션 단가가 뛰어오른 것으로 풀이된다.

시장 좀먹는 풋옵션 리스크

H PE의 '풋옵션 청구서'는 롯데그룹에 있어 상당한 부담이 될 것으로 보인다. 한국신용평가에 따르면 지난해 말 롯데지주의 별도 기준 현금성자산은 1,900억원에 그치는 반면, 1년 이내 만기가 도래하는 단기성 차입금은 1조6,000억원에 달한다. 지분 매입을 위해 추가적인 외부 차입에 나설 경우, 146% 수준인 부채비율 역시 상승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FI 풋옵션 리스크가 막대한 재무적 손실로 돌아온 셈이다.

업계에서는 롯데그룹 측이 투자 유치 과정에서 국내 시장 특유의 기형적인 투자 구조를 고스란히 답습한 점이 문제라는 평이 나온다. 기업이 FI로부터 투자를 유치하며 과도한 풋옵션 조건을 약속하고, 그 부담을 기업 또는 대주주가 고스란히 떠안는 패턴이 국내 시장에서 꾸준히 반복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 신세계그룹의 SSG닷컴은 FI(어피너티에쿼티파트너스, BRV캐피탈매니지먼트)와 맺은 계약 조건 미달 및 IPO 불발 가능성으로 약 1조원 규모의 풋옵션 행사 위기에 직면한 바 있으며, 교보생명 역시 FI(어피너티 컨소시엄)와 풋옵션 가격 산정을 둘러싼 오랜 분쟁을 겪고 있다.

전문가들도 롯데글로벌로지스가 좋지 못한 선례를 만들었다고 지적한다. 한 시장 전문가는 "일반적으로 글로벌 사모펀드들은 IPO를 통해 투자금을 회수할 때 상장 후 수년에 걸쳐 지분을 점진적으로 매각하며 시장 변동성 위험을 감수한다"며 "한국 특유의 FI 계약 관행은 분명히 기형적이다"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런 선례가 계속 쌓이면 사모펀드들은 한국에서 특히 더 빡빡한 투자 조건을 걸게 될 수도 있다"며 "국내 대기업들이 짊어져야 할 부담이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셈"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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